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괴로움 바로 보기,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Buddhastudy 2024. 1. 8. 20:16

 

 

괴로운 일은 그 후에도 긴 여파를 남긴다.

PTSD가 그것이다.

그러나 PTG - 외상후 성장도 있다.

마음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변형도 가능하다.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 성숙의 내용은 지혜와 자비다.//

 

 

 

오늘은 괴로움 바로보기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괴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이겠죠.

하지만 인간은 살면서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걸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외로움이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우리는 디딤돌로 만들어야 하겠죠.

 

그래서 이 괴로움을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가 잘 해결하고

해결할 뿐만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느냐 하는 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그 실마리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라고 하는 이제 연기법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따라서

괴로움을 잘 해결하면 효능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지혜가 밝아진다는 것이고

-하나는 자비로움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첫 번째

괴로움을 통해서 어떻게 지혜가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하는 얘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생명체가 가진 가장 실존적인 실감

실감을 어떻게 하는가 하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죠.

그래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저도 한 번 마비가 되어 본 적이 있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건 살아있지 않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고통을 느끼고

고통이 가장 실존의 느낌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은 좀 특별하게도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반,

치킨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이런 것처럼 반반입니다.

물론 다양한 조합이 있겠죠.

괴롭기만 한 사람이 있고 즐겁기만 한 사람인데

둘 다 생각할 겨를이 없죠.

고통 속에 빠져 있거나 쾌락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러나 반반인 사람은 이것과 저것을 교차로 경험하는 사람은

생각이라고 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추위와 배고픔과 적군의 침략 이런 것도 있지만

내 안에서 솟아나는 괴로움

혹은 내 안에서 뭔가 이런 것들이 괴로움을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관찰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괴로움의 유발자를 욕망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배가 고플 때 밥을 찾는 것은

이 욕 자를 같은 욕 자를 써도 한자가 다릅니다.

배고플 때 밥을 찾는 것, 졸릴 때 자고 싶은 것 이런 욕 자는

하고자 할 , 순수한 욕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욕심, 탐욕, 이런 야욕 이런 욕을 쓸 때는

하고자 할 욕 밑에 마음 심 자가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인위적으로, 의도적으로, 조작적으로 마음이 욕심을 내는 것

이것을 욕심낼 욕자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좌절이 되면 화가 나고 괴로움이 되겠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

이걸 내가 다스려야 되겠다.’

다스린다는 것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

이해해서 거기서 풀려난다는 의미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게 진짜로는 좋은 게 아니구나

이게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런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싫어하게 됩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염오라고 합니다.

염증을 염증나기 싫어한다,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염오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욕, 그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겁니다.

완전히 떨어져 나가면 그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해탈의 의미는

더 이상 욕망이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욕망으로부터 내가 자유를 얻는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이런 진절머리가 나야 되는 것도 있지만

또 양쪽을 다 갖춰야 되니까 공부도 해야 되거든요.

욕망이 왜 고통으로 가는 거지?’

그래서 욕망은 이해했어

진절머리가 나지만 욕망이 솟아오른다 하는 건 이해했습니다.

근데 그 욕망이 왜 고통이 되지?’

하는 것은 아직 모르죠.

 

그래서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욕망이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괴로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죠.

야 이게 모든 것이 상황이나 여건이 이렇게 쫙 맞아떨어지면 뭐가 생겨.

그리고 이 상황이나 여건이 흩어지면 그건 소멸하는 것 같아.

그래서 이 생성과 소멸이

어떤 조건의 결합과 해체에 달려있는 것 같아라고

분석적으로 보게 되면 그걸 알게 되죠.

 

그런데 야 근데 생기는데 이게 안 생겼으면 좋겠어.’

이빨이 안 썩었으면 좋겠어이렇게 되는 거고

그다음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생기는 것을 싫어하고

또 사라지는 것을 싫어하고 이렇게 저항하게 되면

에너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충돌하게 되겠죠.

 

그래서 저항이 에너지의 충돌을 불러오고

그 에너지의 충돌을 우리는 고통이다, 마음의 괴로움이다

이렇게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이제 욕망 그다음에 욕망의 좌절,

욕망의 좌절에는 나의 저항

이런 것이 고통의 메커니즘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뭘 해야 되는가 하면은

모든 것은 조건 따라 일어나고 조건 따라 사라진다라고 하는

연기법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대입해 보고 이렇게 하면서

점점점점 더 확실하게 우리가 연기법을 이해하고 볼 수 있게 되면

모든 것이 그 부분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의 건강, 재산, 내 마음의 상태,

그다음에 어떤 여러 가지 바깥의 상황들

그다음에 나의 어떤 사회적 지위

이런 것들 모두가 인연 따라 생성되었고 인연 따라 소멸할 수 있겠구나 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지금은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가지지 않고 있고

그것에 상관없이 나는 그것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다

이렇게 되겠습니다.

 

근데 왜 집착하지 않는가 하면

, 이거는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잡을 수 없구나

이거는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막을 수 없구나라고 하는

완전한 무능력의 상태, 무기력의 상태를 확실히 알게 되면

즉 무상하다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

집착이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집착에서 이해를 통해서 벗어나는 것이

지혜가 시작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혜의 과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우여곡절 끝에

이런저런 알고리즘을 통해서

우리를 지혜로 이끌어간다라고 하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고통은 또 무엇을 우리에게 주는가 하면

자비, 사랑 이런 것을 우리에게 줍니다.

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자비라고 하는 말을 여러 가지로 이제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데

컴페션compassion이라는 말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컴페션은 컴com과 페션passion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까?

이 컴은 위드, 함께한다 이런 뜻이고

그다음에 페션은 열정도 있지만 고통이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에 함께한다 이런 뜻이죠.

 

그런데 이것이 앰퍼스epathy 심퍼스sympathy하고

조금 동정 연민하고 조금 다른 것은

이거는 연민이나 공감 같은 것은 조금 더 마음이 더 강하죠.

마음으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컴페션, 이 컴은 뭐냐 하면은

상대방의 고통이 상대방의 고통스럽겠다라고 하는 정도의 마음에

참 안 됐다하는 마음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 고통이 내가 마치 겪는 것처럼 내가 느껴지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고통스러우면 나는 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뭐라도 행동하지 않을 수 없죠.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스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그 타인의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서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죠.

 

사랑이 뭡니까?

상대방이 아프면 나도 아프잖아요.

그러면 상대방이 아프면

내가 뭔가를 행동하지 않고는 못 견디지 않습니까?

이것이 컴페션이다, 자비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자식이 아프면 우리는 다 공감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혹은 자식이 아프면 나는 더 아프죠.

이것이 컴페션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가르치는 컴패션은

나와 친밀한 가족이나 친지를 넘어서서

모든 생명체에게로 확장되는 컴페션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우리가 거기까지 너무 넓힐 필요는 없고요.

근데 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건 분명하죠.

내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나의 고통에 비추어

타인도, 다른 생명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알기 때문에

예를 들면

뇌경색으로 다리를 온전히 못 걷는 상태를 겪어봤기 때문에

밖에 나가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눈에 잘 띄어요.

그건 내 마음이겠죠.

그래서 거기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걷는 상태를 보면

저거 지금 안간힘을 써서 걷고 있는데

내부적으로는 이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 정말 괴롭고 힘들 텐데

이런 느낌을 내가 제가 다시 받는 거죠.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리로 갈 수 있다.

 

만약에 모른다면

부자는 배고픔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겠죠.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렵겠죠.

잘 달리는 사람은 잘 뛰지 못하는,

구보 못하는 소대원이 구보 잘하는 소대장을 이해하기가 어렵겠죠.

 

그러니까 과부 신세는 홀아비가 안다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남을 구할 수 있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은 부자에게지만

실제로 이제 서로를 돕는 것은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없이 사는 것이 무엇이다라고 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서로 도울 수가 있는 겁니다.

 

고통의 두 번째 역할은 뭡니까?

나의 고통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서 나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듯이

타인의 고통을 들어주려고 행동하게 되는 것

이것이 자비이고

그래서 고통은 그런 또 알고리즘을 통해서 자비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고통이라는 관점으로 만물은 나와 한몸이다.

고통이라고 하는 관점으로 일체는 평등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이제 고통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지혜

-두 번째는 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고 도우려고 하는 마음인 자비

이 두 개가 괴로움을 우리가 바로 이해하기만 하면 생겨날 수 있는 미덕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에서는 PTSD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트라우마라고 하기도 하고

그다음에 한 번 큰 상처를 입고 나면

그쪽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굉장한 심리적인 불편감

회복되지 않는 통증을 느끼지만

사실은 PTSD만 있는 게 아니고

PTG도 있습니다.

Post-Traumatic Growth라고 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고통은 힘든 것이죠.

하지만 잘 겪어내기만 하면

마음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음이 긍정적인 변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뭡니까?

성장이잖아요. 성숙이잖아요.

이 성장과 성숙의 내용에 크게 2가지

하나는 지혜

또 하나는 자비

이런 두 가지가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뭡니까?

괴로움은 우리가 바로 보고

바로 극복하면

올바르게 극복하면

절대로 걸림돌이 아니고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괴로움의 효능에 대해서

괴로움 바로보기를 통해서 생겨나는

지혜와 자비에 관해서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