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20 : 동탁을 따르는 자들

Buddhastudy 2024. 1. 11. 19:56

 

 

184년부터 시작된 서량(양주)의 난은

황건적의 난 때와는 달리, 전문적이고 조직화 된 반란이었습니다.

 

변장ㆍ한수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반란은

백성들의 삶을 힘겹게 하는 십상시의 무리들을

파멸시키겠다는 명분을 걸고 중앙 권력을 위협하였습니다.

 

서량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새롭게 구성된 군대는

장온을 중심으로 휘하 6개의 부대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주신 부대를 포함한 5개 부대가 전투에서 궤멸당했습니다.

살아남은 부대는 동탁이 이끄는 3만 명의 병력으로

동탁의 부대는 난의 진원지를 치기 위해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동탁은 적의 근원을 도려내고자 했으나

따라오는 후방의 부대들이 모두 붕괴되면서

되려, 강족과 호족들에게 포위당하며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장온이 주도한 작전에 따라 선봉에 나선 동탁이었지만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군량조차 떨어지고 나니

제대로 전투를 치를 힘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동탁은, 우선 하천 옆에 자리를 잡아

견고하게 진을 구축하고 적과의 대치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동탁의 부대가 자리한 주둔지 옆에는

소도수(所度水)라는 큰 하천이 있었는데

수심이 깊어, 말을 타고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서량의 반란군들은 깊은 하천을 끼고 있는

동탁의 진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들이 무리해서라도 강을 건너려 하면

이동 속도가 느린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대치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동탁의 부대는 식량이 떨어져 갔고

이에 동탁은 부하들에게 물고기를 잡으라고 명했습니다.

식량을 보충하려는 소문을 들은 반란군은

궁지에 몰린 동탁군을 비웃으며, 좀 더 굶기도록 놔뒀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물고기를 잡는 척하는 소문을 일부러 냈고

군중에 모래주머니를 많이 만들었다가

한밤중에 보를 완성한 다음

자신의 군대를 둑 아래로 은밀히 철수시켰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척하며 빠져나간 동탁은

도중에 하천을 막아 연못을 만들었는데

군대를 통과시키고 나서는 제방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때문에, 강족과 호족은 물이 깊어 추격하지 못했고

도주하는 동탁 부대를 그대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장온이 보낸 여섯 군 중에

다섯 군은 모조리 패배하였지만

오직 동탁의 군대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을 온전하게 살렸다는 공로로 조정에서는 동탁을 승진시켰고

부하들은 더욱 동탁을 존경했습니다.

 

변장과 한수가 이끄는 반군과의 정면 대결에서

장온은 산하 부대의 대부분이 궤산되어

더 이상 반란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온은 동탁에게 살아남은 병력만으로도

부대를 이끌고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변장, 한수와의 맞대결에서 패전의 궁지에 몰린 장온은

중앙 정부에서의 자신을 문책하는 것이 두려워

병사들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전투를 치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장온의 진격 명령을 거절하고

되려, 부대의 위치를 한 발 뒤로 물러나 상황을 관망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장온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한

동탁의 부대를 자신이 거처하는

장안성으로 입성하라고 소환했는데

동탁은 장온의 소환 명령도 거절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탁은 단신으로 장온을 찾아갔고

장온은 상부의 명령을 어긴다는 일로 꾸짖었지만

동탁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등

상사의 지적에 불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장온은 동탁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해

노여움을 표하고 싶어했지만 가만히 참았습니다.

동탁은 장온이 이렇게 속타는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는데

그는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위세가

장온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탁을 따르는 휘하 장수와 군사들은

젊을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로 충성심이 높았으며

당시, 서량의 난을 진압할 때도

동탁을 제외하고서는 변변찮은 전투 부대가 없었습니다.

 

또한, 평소 동탁은 조정의 실세들인 환관들에게도

부지런히 뇌물을 바치며, 외호세력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그동안 쌓아 올린 동탁의 성을

상급자라고 해서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시, 장군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황보숭 또한

부하들을 아끼고 서로를 신뢰했지만

동탁이 대하는 부하들과는 방식이 사뭇 달랐습니다.

 

황보숭은 부하들을 아끼지만, 군율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따뜻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반해, 동탁은 전투에서 생긴 전리품이나

횡령 등의 위법 사항에서 생긴 물품들이나

무엇이든 간에 부하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 황보숭과 부하들의 관계가 질서 있는 상하 관계라면

동탁과 부하들은 끈끈함으로 다져진 관계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온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동탁의 태도를 보며

손견을 중심으로 한 젊은 장수들은

동탁을 전시 명령 불복종으로 처형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장온의 계산으로는 동탁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서량을 정벌할 엄두가 나지 않아 손견의 청을 무시했습니다.

 

관군의 내부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지만

동탁으로 인해, 더 이상의 부대가 소요되지 않고 있자

장온은 관군 모집 등을 통해, 다시 정벌군의 상태를 수습했습니다.

이에, 변장과 한수의 반란군들은 직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정의 대군에 맞서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때문에 중앙 정부로 향하던 군대를 뒤로 물리며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갔습니다.

 

186, 조정에서는 장온이 서량 반군을 물리쳤다고 인정하여

삼공 직위 중 하나인 태위에 임명했습니다.

태위(太尉)는 후한 말에는 사마(司馬)라고도 불렸는데

사도(司徒), 사공(司空)과 함께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관직으로서 주로 군사 방면을 담당했습니다.

 

삼국지 시대적 배경에서 태위로 유명했던 인물로는

이각이 황제를 겁박해 대사마(大司馬)로 명칭이 바뀐 사마를 맡았으며

삼국으로 분열된 후에 위나라에서 태위를 맡았던 인물로는

가후와 사마의 등이 있었습니다.

 

 

 

장온을 중심으로 한 정벌군으로 인해

변장ㆍ한수의 난이 일단락되는 듯싶었지만

이듬해인 187년에 서량 반군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한수가 병사를 이끌어 농서군을 함락시켰고

량주자사 경비는 내분에 의해 병사들에게 피살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태위가 된지 1년 만에 장온은

서량의 반란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다는 책임으로 면직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탁을 군벌로 다스려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손견의 의견에 대한 거절은 훗날,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훗날, 동탁이 중앙 권력을 차지하며 한나라를 손에 넣었을 때

장온은 왕윤과 함께 동탁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탁은 장온의 평소 우유부단함이나 무능력함을 경멸하여

죄를 덮어 씌운 후, 장온을 때려죽였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러한

장온과 동탁, 손견 사이의 갈등이 실려있지 않을 정도로

장온의 존재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데, 소설 한 장면에서는

여포가 동탁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직접 장온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오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187년 서량의 강족과 호족들의 난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반란군은 한 무리로 잘 뭉쳐, 단합을 하는 듯 보였으나

이들 또한, 내부적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갈등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수는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 등

초기 반란군의 수장들을 모두 죽이고, 나머지를 한 세력으로 묶었습니다.

 

한수는 여러 세력을 10여만 군사조직으로 통합한 후

농서군의 주성을 포위했는데

농서태수 이상여는 한수의 기세에 눌려

바로 항복하며, 자신의 군대와 함께 모두 반란군에 가담했습니다.

 

한수는 이렇듯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금세 신임을 얻어 통합하는 일에는 능통했으나

자신이 직접 중심이 되어 진두지휘하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반란군의 우두머리로 왕국(王國)을 추천하였고

자신은 통합된 세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서량 지역의 본래 이름은 량주로

량주자사였던 경비는 한수, 왕국 등의 공격으로 패하였습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작은 성이 함락되는 동안에도

량주 한양성에서 반란군에 끝까지 대항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섭이라는 자로 중앙 정부 시절 환관들을 대상으로

이들을 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 낙양 바깥인 한양태수로 임명된 자였습니다.

부섭은 백성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며 온정을 베풀었고

반란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적은 군사로도 끝까지 대항했습니다.

 

부섭에게는 젊은 아들인 부간이 있었는데

부간은 아버지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지만

부섭은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섭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싸우다 전사하며 생을 마감하였고

아들 부간에게는 마등을 섬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세월이 흘러, 부간은 마등에게 지혜를 빌려주기도 하며

삼국 시대로 접어들었을 때는 조조를 섬기게 됩니다.

 

마등은 중국 후한의 명장이자 개국 공신인

노익장의 대명사, 마원의 후손으로

강족과 혼혈인 마등은 신장 8척에 신체가 장대하며

집안의 유명세와는 달리 매우 가난해

나무를 베며 생계를 꾸려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서량의 반란군이 나타나자, 관군의 모병에 지원했는데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며, 전투력에도 뛰어나

금세, 장교로 배치되었으며 공을 세워 편장군까지 승진했습니다.

하지만, 반란군과의 싸움에서 한수에게 붙잡혔고

한수의 설득에 넘어가, 반란군의 주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수와 마등은 처음 만남부터 뜻이 잘 통해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관우,장비에 밀려

거의 존재감이 없는 사이였지만

정사 삼국지에서 둘의 우정은 실로 의형제를 맺었다고 합니다.

 

왕국을 우두머리로 내세우고, 한수와 마등이 연합하여

한나라의 서쪽 지역을 끊임없이 약탈하자

조정에서는 이전에 활약했던 동탁을 승진시켰습니다.

그리고,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영웅 황보숭을 불러

황보숭과 동탁 두 장군에게 각각 2만 명의 병력을 붙였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20번째 시간으로

동탁을 따르는 자들과

한수, 마등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