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삼국지 33 - 십상시의 난 & 동탁

Buddhastudy 2024. 2. 28. 19:47

 

 

189, 한나라는 영제 사후

대장군 하진이 주요 권력을 잡고서

원소의 독촉으로 십상시를 압박하던 도중

궁지에 몰린 장양을 비롯한 십상시는

되려 하진을 함정에 빠뜨려 처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른 조서를 위조하여

그간 환관들과 가깝게 지내온 번릉과 허상을

각각 사례교위와 하남윤으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하진의 충직한 부하였던 오광과

황실 근위대의 지휘 책임자였던 원술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이에 놀란 장양과 무리들은

태후와 어린 황제를 협박하여

유협인 진류왕을 함께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환관들은 북궁으로 통하는 통로를 따라 도망가다가

멀리서 환관들을 찾아 나서던 노식과 마주쳤는데

무기를 들고 있던 노식이 환관 단규를 향해 소리치자,

놀란 단규가 하태후의 손을 놓쳤고

이 틈을 타 하태후는 혼자서 도망을 쳤습니다.

 

한편, 하진이 장양에게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그간 환관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줄곧 펼쳐온 원소는

숙부인 원외와 의논하여 조서를 고치고

조금 전에 임명되었던 번릉과 허상을 불러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습니다.

 

이어, 평소 하진의 세력에 몸담아 있던

장군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는데

여기에는 원소와 하묘, 오광 등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광은 하진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하묘가

대장군이었던 하진을 시기 질투하여

틀림없이 장양 및 환관들과 머리를 맞대어

형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고 선동하였고

오광의 병사들은 하진의 복수를 해야만 한다고 흥분하며

여기에 동탁의 동생이었던 동민까지 같이 합세하여

하묘를 죽이고서, 시체를 후원에 버렸습니다.

 

하진이 죽은 후, 궁궐의 분위기는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도

원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을 지휘해

병사들을 풀어, 눈에 보이는 대로 환관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무기를 갖춘 원소의 병사들은 궁궐 안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환관들을 모두 죽여버리면서

2천명이 살해당했는데

그야말로 궁궐은 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평소 행실이 바른 환관들도 포함되었지만

단지, 환관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으며

환관이 아닌데, 수염이 없는 자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울러, 어떤 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바지를 모조리 벗어

주요 부위를 보여주어, 살아남은 자도 있었습니다.

 

 

 

원소가 궁 안을 휘저으면서 궁궐을 장악해 나가자

장양과 단규 등의 살아남은 소수의 환관들은

어린 황제와 진류왕을 인솔해 궁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들은 한밤중에 걸어서 도망을 쳐

낙양의 방어를 위해 세운 8개의 도위 중 하나인

소평진 (小平津)에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서 황제의 옥새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옥새라 하면 황제를 대신하는

옥으로 된 도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나라 때 옥새는 모두 7개로,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황제행새(皇帝行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신새(皇帝信璽),

천자행새(天子行璽), 천자지새(天子之璽)와 천자신새(天子信璽)

6개와 나머지 하나로 구분되었습니다.

 

황제의 옥새 중 가장 중요한 옥새는

춘추전국 시대 때부터 계승되어 온 전국옥새로

시대별로 디자인은 달랐지만

고대 중국의 전승과 천자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물품이었습니다.

 

노식은 도망친 황제 무리를 추격하였는데

이때, 왕윤이 부하인 민공에게 병졸들을 이끌고

노식을 수행해 함께 황제를 찾게 했습니다.

 

밤늦도록 추격한 민공과 병사들은 환관들을 여럿 죽이다

결국, 강가에서 어린 황제와 장양을 만났고

벼랑 끝까지 몰린 장양과 단규 등의 환관들은

황제에게 마지막 절을 올린 후

강물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환관들을 모두 죽인 민공은

소제와 유협을 부축하여 몇 리를 걸어가다

민가를 만나 잠시 머물렀습니다.

 

 

십상시의 난으로 하진이 죽고 난 후,

하진 세력의 반격으로 궁궐이 불타고

황제와 진류왕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무렵

낙양 근처에서 불타는 낙양을 보고 있던 동탁은

군대를 강행군시켜, 해가 뜨기도 전에 황제를 찾아냈습니다.

 

어린 황제는 최근 며칠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참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나머지

맨정신이 아니었고

무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동탁과 뒤따라오는 수천의 장병들을 보고서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자, 황제를 모시러 나왔던 전 태위 최열이

예의를 갖추지 않은 동탁을 꾸짖으며

군대를 뒤로 물리라고 명했습니다.

하지만, 동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국가의 대신들이 왕실을 바로 잡지 못해

국가가 파탄에 이르렀는데, 내가 그 책임을 물어

이 자리에서 목을 벨 수도 있다며 신하들을 겁박했습니다.

 

 

 

십상시의 난과 함께 궁궐에서 큰 소동이 벌어지자

사라졌던 황제와 황제를 찾아 나간 병사들

그리고 동탁과 그의 군대는 모두 낙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동탁은 황제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소제는 놀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동탁의 기에 눌려, 말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는데 반해

진류왕 유협에게 상황을 묻자

유협은 더욱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그간 있었던 일을 조리 있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이에 동탁은, 유협의 보호자가 동태후였다는 점을 떠올려

속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유협을 황제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또한, 소제의 보호자로 하태후가 살아있고

아직, 하진의 잔류세력들이 소제를 뒷받침하는 반면

유협에게는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좀 더 황제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유협의 원래 보호자가 동씨였다는 명분 또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동탁이 궁궐 밖에서 황제 환궁 수호를 강제로 맡은 일은

일개 지방 관리 신분으로 반역죄에 해당하는 범죄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무력을 기반으로

국가 권력을 수중에 넣으려 했고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전국옥새를 제외하고

잃어버렸던 나머지 옥새들은 모두 찾아냈습니다.

 

이렇게, 동탁이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고

궁성 주변을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권력을 차지하는데 있어서는

처리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선, 궁중 내 중심 군벌 세력인 원씨 형제인 원소와 원술이

어느 정도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고

죽은 하진과 하묘의 부대들도 그들 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울러, 동탁이 낙양에 입성할 때, 뒤따라 입성한

무맹도위 정원의 용맹한 정예군도 신경이 쓰였는데

동탁의 군세에 다른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볼 때도

정원만큼은 평락관 아래 군대를 주둔시켜

동탁의 전횡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 시위를 보였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33번째 시간으로

십상시의 난 이후, 혼란스러운 궁궐 상황과

동탁의 등장까지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