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16. 윤홍식의 즉문즉설 - 중도 (中道)

Buddhastudy 2013. 4. 28. 17:52

출처 : 홍익학당

  

~ 앞에서 유사한 얘기들을 많이 해서요. 했던 얘기 또 할 필요는 없으니까 중용얘기만 한번 드릴게요. 오신 김에 중용도 광고도 하나 할까요? 아무튼. 제가 살림지식총서에서 논어랑 중용을 두 권을 이번 겨울에 원고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책이 엄청 얇아요. 제가 볼 때는 제가 낸 책 중에 제일 얇은 책이라 들고 다니시면서 보시기에 아주 좋을 겁니다. 거기 중용에도 제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결국 옛날 성인들이 연구한 게 마음, 영혼에 경영. 어떻게 내가 내 영혼을 다스릴 거냐? 이걸 연구했고요. 내 영혼만 다스리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도 한번 알아두시고요. 예전에 연구하던 분들은.

 

예전에 영적*을 연구하던 분들은 도심이라고 했는데요. 道心도심하고 人心인심이 있는데. 욕심하고 양심이죠. 요즘 말로 하면. 양심하고 욕심이 늘 충돌 나는데. 도심을 자기 마음의 중심에다 딱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요걸 내 마음에 중심으로 삼는 사람은 이 인심까지도 조화롭게 다 경영할 수 있다. 이게 中化중화사상입니다. 중화민족 중화가 아니고요. 中化중화. 그래서 이거는 내 마음의 중심. 내 마음이 지금 여러분 마음이 지금 양심이 중심에 계십니까? 욕심이 중심에 계십니까? 요것도 포착하셔야 되요. 그럼 인심이 일으키는 게 뭐냐 하면 희로애락입니다. 그럼 보십시오. 기쁨_, 분노_, 슬픔이나 우울함_. 즐거움_. 우린 이 감정이 한쪽에 치우쳐있거든요.

 

그 감정이 즐거울 때는 즐거워죽겠어. 기뻐죽겠어. 분노_화나죽겠어. 슬퍼죽겠어. 우린 이 상태로 가 있는데. 그러면 중심이 지금 인심이 중심을 잡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마음의 중심이 인심 쪽에 가면 화가 아니라 뭐죠? 不和불화상태입니다. 감정이 불화에요. 그래서 내 감정이 불균형. 조화를 이루었어 라고 혹시 판단되신다면 무조건 뭘 하셔야 되겠습니까? 에고가 지금 시끄럽단 얘기죠. 에고가 균형을 잃고 나는 지금 화나 죽겠어. 뭐에 죽겠어.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참나 옆에다 바로 데려다 놔야죠. 그럼 조용해집니다. [몰라. 괜찮아]만 하십시오. [몰라. 괜찮아] 하시면. ~ 이거를 어떻게 그려볼까요?

 

우리 마음에 오행으로 그리면 희, 노는 싸늘하죠. 분노는. 기쁨은 목 기운이고요. _한참 기쁨이 타오르면 락이 되고. 찬물 끼얹으고 슬픔이 이제 극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기가 중심이겠죠. 감정 어디 한군데 치우쳐 계세요. 오행 중에 오행이 깨져있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을 오행으로 보면. 에너지가 발산하는 에너지냐? 쪼그라드는 에너지냐에 따라서 내 마음이 발산하기도 하고 쪼그라들기도 하면서, 요 균형이 맞아야 되는데. 조화를 이루어야 되는데. 화가 깨져있으면 한쪽으로 아주 쏠려있겠죠. 이게 우울증이죠. 슬픔에 쏠려있거나 분노에 쏠려있습니다. 우리한테 특히 이쪽이 문제인데. 그때 중심으로 가야지하고 중심을 찾아가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분노를 내가 조절해서 분노를 다스려봐야지. 이렇게 하지 마시고. 곧장 중심을 바로 들어가 버리시라는 겁니다. [몰라. 괜찮아] 하시면 중심에 가계세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슬플 때요. “나 슬퍼죽겠어하다가 이렇게 얘기하세요. “난 모르겠다.” “슬퍼?” “몰라.” 슬픔을 모른다고 해버리시면 여러분 중심에 가계세요. 그냥.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상태가 중심이기 때문에 그냥 중심에 가계세요. [몰라] 라고 하는 순간. [진지하게 모르겠다] 라고 5분만 하고 계시면 화가 났건 슬펐건 중심에 가 계실 겁니다. 그 중심을 아는 사람이라야 다시 역으로 다시 감정을 조화를 이루게 할 수가 있어요.

 

왜 그렇게 화를 냈었어. 아까 제가 드린 말씀이 그겁니다. 에고한테 이제 달래주세요. 중심이 잡혔으니까 에고를 이제 부하직원 다루듯이 경영을 해보세요. “왜 그렇게 화나있었어? 너 그 화낼 일 맞아. 하지만 거기서 더 나가는 건 아니야.” 이런 말을 중심이 잡힌 뒤에는 이게 감정이 말을 듣지만. 중심이 안 잡혀있는데 화내지 말자라고 해 봤자 이 화나는데 더 기름을 붓는 격이 됩니다. 그래서 중심으로 돌아간 뒤에 경영을 하시면 이 중용의 핵심사상은 중심을 잡으면 조화를 이룰 수가 있는데, 그러면 이 얘기가 [도심을 가지고 인심의 중심을 잡아라] 하는 얘기를 순 임금이 우 임금이라고 천자끼리 서로 그 권력, 천자의 권력을 주고받을 때 그 전대 천자가 꼭 이것만 지키면 천하경영 잘 할 수 있어. 하고 가르쳐 준 게 이겁니다.

 

뭘 얘기 하냐 하면요. 동양고대핵심사상은 자신의 양심을 중심에 세워서 자기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것. 마음을 경영한다는 건 천하를 경영한다라는 거와 똑같다고 보고. 천하 경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부터 경영할 줄 알아야 된다라는 요 메시지 하나입니다. 중용은. 그래서 지금 여러분 아까 분노. 슬픔. 이런 게 사소한 게 아니고요. 그 마음을 못 경영하면 남의 마음을 또 어떻게 경영하며, 내가 또 사회적인 친구를 어떻게 다 완수하겠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문제로 다뤄주십시오. 감정을. 대신에 감정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거랑 이 감정에 집착한다는 거랑 다릅니다. 적당하게 무시할 줄 알아야 감정하고 밀당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무시할 땐 칼같이 무시했다가 또 다시 가서 달래주고. “잘해보자.”하고 또 내 감정을 다독여주고. 또 확~ 분노나 슬픔이 치솟을 때는 몰라.” 하고 또 한발 빠졌다가. 또 좀 진정되면 가가지고 또 달래서 경영해주고. 이거를 하실 수 있으면 천하경영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감정을 가지고 자기감정을 가지고 실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그래서 이렇게 마칠게요.

 

 

 

Q2

. 중도는 뭘까요? 왜 중도라고 할까요? 이거는 이 질문은 이렇게만 이해하고 가시죠. 이걸 왜 이제 양심이 우리 마음에 순수한 중심이고 희로애락이 감정이라는 걸 아실 텐데. 그럼 중도라는 건 뭘까요? 중도를 따라라. 분명히 중심이 양심이니까 양심하고 관련돼 있는 거 같지만, 중도라고 하면 양심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중도대로만 살아라.’ 하는 거는 치우치지 마라란 얘기잖아요. 그럼 중도의 반대는 치우침이겠죠. 치우친다는 게 뭘까요? 분노에 치우치거나 욕망에 치우치거나 슬픔에 치우치거나 내 마음의 감정에요. 내 욕심을 따라가는 걸 우리가 치우쳤다고 합니다.

 

그럼 중도는요? 양심대로만 하는 걸 중도라고 하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양심대로 하면 기쁨과 슬픔이 다 제자릴 찾아요. 그런데 욕심대로 하면 그 감정이 꼭 치우치게 되기 때문에 균형을 잃기 때문에 부조화 상태의 반대말이 지금 중도죠. 그래서 이 중심만 잡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중심을 잡고 늘 조화롭게 감정을 경영하는 거, 전체를 중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늘 내가 내 감정을 조화로운 상태로 끌고 가는 거. 조화롭단 얘긴 치우치지 않았단 얘기죠. 그래서 중도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