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즉문즉설 2_6. 오랫동안 사귄 연인과 헤어졌어요.

Buddhastudy 2017. 6. 27. 19:54



이별이라는 것은

또 다른 만남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한번 흩어진 인연인데,

그 인연을 그리워하는 것은

저는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그를 위해서 그리워하고 그를 위해서 상상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인연을 위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보되, 그 어떤 인연을 꼭 만나겠다고 하는 것 보다는 긍정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생활을 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인연이 또 나타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면 누군가가 이별을 하고 나면 그 이별이라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그리워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가끔 보면 여러분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라고 하는 게 나오잖아요. 거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게 견주가 강아지 주인이 평소에 기를 때는 엄청 정 있게 기르다가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강아지들이 나타나요. 그런데 그 강아지는 저를 버렸다는 사실을 몰라요.

 

그리고 끊임없이 그 주인이 올 때를 바라고, 그냥 차가 지나가도, 사람이 지나가도, 항상 귀를 세워서 주인을 기다리는 그런 견공들을 보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린 어떤 생각이 들어요? 무지라고 하는 것이 저런 고통을 만들어 내는구나.

 

저 강아지가 생각이 있고 소통의 방법을 안다면 저렇게 저를 버렸는데, 맹목적으로 충성스럽게 밥을 굶어가면서 자기 생명이 닳아져 가는 것을 그냥 직시하지 않고, 그렇게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때로는 무지라고 하는 부분이 저런 고통을 만들어 내는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잊어줄 때는

잊어버려주는 것 자체가 지혜로움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물을 바라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견공이 또 다른 주인에게 가서, 과거에 버림받았던 부분을 싹 잊어버리고, 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울 텐데도 불구하고, 그 견공은 저를 살려주고 저를 정을 주려고 하는 그런 것은 다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저를 버렸던 그 배신한 그 주인을 위해서 맹종하고 있는 그 모습이 오히려 고통을 잉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한을 남기지 않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못 잊는다고 이 갈아 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되도록이면 세상은 소통의 방법을 알고 사는 겁니다. 놓을 때는 놔주고, 잡을 때 잡아줄 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나간 인연에 따라서 그 소중한 추억이라고 하는 것까지 없애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집착하지 않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