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즉문즉설 2_7. 미니법분, 붓다로 가는 길

Buddhastudy 2017. 6. 28. 20:05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우리 천태종은 고려 대각국사 의천께서 중각의 지자대사의 탑전에 예를 올리고 우리나라의 천태종을 받아들이셔서 개성이라고 하는 곳에 국청사라고 하는 절을 짓고 천태학을 강의하면서 우리나라 천태종이 시작이 되어 집니다. 이 천태종은 그야말로 엄청난 역할을 하죠. 대각국사 의천께서는 송나라에 건너가셔서 3,500권에 이르는 많은 경전들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의 황제의 보호를 받으면서 많은 고승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당시에 불교라는 것은 선과 교가 서로 부딪혀서 싸우고 있을 때인데, 대각구사 의천께서는 고려문종의 넷째 아들이시고 숙종의 동생이십니다. 숙종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송나라를 밀행을 하셔서 가십니다. 몰래 건너가셔서 대상국사를 비롯해서 모든 절들을 다니시면서 고승들을 만납니다. 고려의 왕자, 또 숙종의 동생이 스님이 되어서 송나라에 건너갔을 때 송나라의 황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애를 썼고, 또 많은 시자들을 붙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경전을 얻고, 가는 곳마다 문답을 했죠. 그러다가 지자대사의 명성을 듣습니다. 천태지자대사라고 하는 분은 바로 뭐라고 일컬어졌느냐 하면 해동석가여래다. 석가재연지자대사.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에서 탄생을 하셔서 인도에서 구업을 하셨는데, 동방, 바로 이 동방 쪽, 동아시아지역의 석가재연, 석가모니 부처님이 재연해서 오실 정도로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바로 지자대사께서 출연하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교가 그 아주 일사분란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대하는 사람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경전이 최고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고, 서로 다툼도 벌어진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데 지자대사께서는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설정을 하시되 처음 설하신 경전은 화엄경이었다. 두 번째로 설하신 경전은 아함경이었다. 세 번째로 설하신 경전은 방등경이었다. 그다음에 설하신 경전은 소위 반야를 설하셨고, 마지막에 법화열반을 설하셔서 부처님께서 그 경전을 설하신 과정은 논리가 아주 정연하게 그 시기를 정해서 설하셨다. 그것을 일컬어서 58교의 장르를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모든 스님들이 당시에 공부를 해봤을 때 이처럼 논리체계가 갖추어진 학설을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다가 지자대사의 가르침에 귀를 세워서 그 제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낸 모습을 우리 대각국사 의천께서 가셔서 접하시면서 이분이야 말로 석가재연의 소위 지자대사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시고 해동, 고려에 돌아가거든 반드시 당신이 가르침인 천태교학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귀국을 하십니다.

 

돌아오실 때 3천여 권의 경전을 가지고 옴으로 해서 대각국사 의천께서 그 많은 경전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속전경이라고 하는 경전의 목록을 만들지 않았다면 팔만대장경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본이 있어야 경전을 만들 거 아닙니까? 팔만대장경 목판을 그냥 만든게 아니에요. 대각국사 의천께서 가지고 온 경전들이 있었기 때문에 경전판각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대각국사 의천께서는 우리나라에 귀국을 하시고 난 이후에 많은 스님들에게 천태교학을 가르쳤고, 그래서 선과 교가 싸우지 않고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교관쌍수를 가르친 것이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한 아주 멋진 시원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설명을 다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시간에 이어서 천태종의 역사에 대한 부분을 계속 설명을 드릴 테니까 이 자리에 앉아계시는 분들은 다 듣지 못했거든 앞으로 BTN텔레비전을 계속 시청하셔서 다음 장르로 이루어지는 천태의 역사를 기억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