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27_5. 남은 여생을 남자친구와 보내신답니다.

Buddhastudy 2017. 11. 29. 20:08


그 어머니는 잘이 아니에요. 그냥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을 뿐입니다. 자식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식 곤란할까봐 당신의 감정을 숨긴 거예요. 수많은 욕구가 왜 없겠습니까? 수많은 유혹이 있었겠죠. 그렇지만 내가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가면 그야말로 내 자식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끊임없는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던 거예요. 자식이 볼 때는 평온했겠죠.

 

우리 어머니는 아무 문제없었어. 우리 어머니는 자식만을 바라다보는 행복한 사람이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입장이지 어머니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 어머니 그 끓는 외로움, 고독,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오직 자식위한 마음으로 희생만을 했던 거죠. 이제 자식 다 길러놨어요. 30대에 홀로되신 그 어머니가 연세가 높아지셨어요.

 

지금 상황에 와보니까, 내가 자식을 위한 희생은 이만큼이면 됐다는 생각을 했겠죠. 이제는 정말 나이가 들고나면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어요. 그 영역이 뭔지 아세요?

 

첫째가 무위입니다.

할 일이 없다는 거예요.

할 일이 없는 삶의 고통이라는 자체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두 번째가 뭔지 아세요? 고독입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효를 한다 한들 옆에서 등 긁어줄 그 누구만큼은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어요. 이야기라는 것도 수준이 맞아야 되는 거잖아요. 이심전심의 대화가 되어야 되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연세 높으신 어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그냥 밥 드시면 되고,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고,

그냥 손자들 재잘거리면 된다고

자기 기준으로 부모를 바라다 볼 뿐이지,

 

얼마나 고독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 저는 이런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멋지게 불러주는 것도 저는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주신분이 그래도 내가 볼 때는 장가는 참 잘 들은 거 같아요. 그래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래, 그것은 맞아. 어머니 고통 충분히 우리가 이해해 드려야 돼.” 라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이 당신 스스로가 너무 지금 독설적이고, 너무 이기적이라고 하는 판단? 맞는 것 같습니다.

 

십분 발휘해서 어머니 가까이 모시고, 또 그 부분이 지금 등기부등부를 어떻게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슨 배다른 형제를 만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좀 적극적으로 뭔가 거들어 드릴 수 있는 부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어르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뭐냐 하면 무위입니다.

고독이에요. 고독.

그 다음에 질병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가난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모든 고통을 다 가진 것이 우리 어르신들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우리가 생각을 달리해서, 이 세상에 가장 좋은 게 누굽니까? 친구 아닙니까? 그렇죠? 친구처럼 이라고 하는 부분이요. 젊었을 때는 기동력이 있어서 보고 싶으면 외로우면 전화해서 뽈뽈 거리고 나가 만나면 되요. 그런데 연세가 높으시면 기동력도 없어요. 정말 외로운데 그 외로운 부분은 맨날 약속해서 만나시기 어려워요.

 

어차피 힘든 인생이니까, 서로 기대고 잠깐 동안이라도 기대고 살겠다고 이야기하거든 그 부분도 사회적 구조를 통해서, 정말 합의되신 부분이라면 너무 그렇게 강하게 반대하지 않는, 그리고 그 어머니의 감정을 십분 이해해 줄 수 있는 효도하는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