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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28_3. 농사를 지을 때도 본의 아니게 살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Buddhastudy 2017. 12. 1. 20:28


직업 중에 소위 윤회라고 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실천하는 최고의 직업은 농사입니다. 농사보다 좋은 직업은 없어요. 왜냐하면 가장 양심적이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완벽하게 자연과 순응하는 직업 중에 하나가 바로 농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좋은 직업은 선생이라는 직업이 참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어떤 경우가 있어서 남한테 도둑질하라고 가르치지 않거든요. 선생님은 남한테 항상 좋은 일 하라고 가르치거든요. 착하라고 가르치고, 좋은 일 하라고 가르치고, 질서를 이야기하고, 세상 살아가는 삶의 윤리를 가르치고. 선생님보다 좋은 직업이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직업의 종류를 이야기 하라면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생이라고 하는 부분과 연계되지 않은 부분의 삶을 살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 현실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부분일 수밖에 없어요. 질문주신 분 같은 경우는 무척 착하신 분 같아요.

 

이 분은 아마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약을 방제하면서도 그 생명에 대한 어떤 그런 부분에 미안함 같은 것을 갖고 사는 그런 순수한 분일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곤충에게 미안해서 그냥 모든 것을 다 양보를 해버리고 나면 우리가 너무 주리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인 고로,

 

아까도 얘기했지만 일부러 장난삼아 죽이지 않는다면 그냥 최소한의 어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방제를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너무 그냥 손도 까딱 안하고 그냥 모든 부분을 다 약에 의존하고, 그래서 모든 생명을 막 저해 해가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어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농사를 짓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을 하시기를 직업 중에서 살생을 하는 직업은 구태여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살생을 해도 괜찮다.” 그러지는 않으셨거든요.

 

최소한의 직업의 윤리에 있어서

업의 사슬에 거슬리지 않는 직업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라.

 

그래서 아함경에 보면 그런 것이 나와요. 살생하는 직업을 가지면 윤회의 과정으로 봤을 때 가난함을 벗어버리기 어렵다.

 

정토종 팔조 연지대사가 말씀하신 7가지의 불살생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이 있거든요. 그 내용의 첫째가 뭐냐 하면 [최소한 생일날만큼은 살생하지 마라.]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내 생일날만큼은 제발 살생하지 마라. 그러니까 저도 어렵게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를 통해서 세상 바깥에 나오면서 살자고 발버둥을 쳤을까? 안 쳤을까?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우리는 죽는 재수를 했어요? 안했어요? 왜 죽는 재수를 했다고 그래? ? 죽을까봐. 살고 싶은 마음에 그 죽는 재수를 해놓고, 생일날이라고 남의 살 뜯고 있으면 돼? 안 돼? 그러니까 생일날만큼은 살생하지 마라.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또한 [자식 낳은 날에는 살생하지 마라.] 우리 어머니들이 내 자식을 낳아놓고 그 생명이 꺼질까봐 얼마나 노심초사 하셨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또한 [제삿날 살생하지 마라.] 누군가 죽은 날은, 내 부모의 죽은 날은 잊지 못할 제삿날이 되는데, 누군가의 생명을 죽이는 그 날은 누군가의 제삿날을 만드는 거예요? 안 만드는 거예요? 또 다른 제삿날은 만들지 마라. 참 멋진 말씀이신 것 같아요. 내 조상 귀한 것은 알면서도 그 누군가의 생명은 인간이냐 짐승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생명은 같아요? 안 같아요? 같아요.

 

그 다음에 네 번째는 [혼례 하는 날에 살생하지 마라.]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축복의 날에 누군가의 생명을 저해하면 죽어가는 그 생명은 그냥 죽을까요? 이 갈고 죽을까요? 그냥 죽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죽는 생명은 없어. 죽을 때 반드시 원한을 품고 죽게 되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거룩한 날, 왜 원한을 만드느냐? 행복을 위해서, 사랑을 싹틔우기 위해서 하는 혼례라고 하면 그 혼례의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생명을 저해하는 일은 삼가하고 우리가 축복할 일이다.

 

[연회를 할 때 살생하지 마라.] 나 좋으려고 그 누군가를 끌어 모아놓고 그들에게 뭔가 소위 살생을 하는 그런 부분은 행하지 마라.

 

[기도할 때 살생하지 마라.] 기도하러 가는 거 어떤 마음이에요? 자비심을 만들러 가는 게 기도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기도하러 가는데 개구리가 있으면 개구리 잡아가면서 그거는 제대로 된 기도가 될 수 없겠죠. 기도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살생하지 마라.

 

그리고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살생이라 하는 직업을 되도록 갖지 마라.] 그렇지만 이 세상에 어떻게 살생 안하고 살 수는 없는 고로, 그럴 수밖에 없는 직업에 처해 있으신 분들은 차선책으로서 방생을 많이 하라. 그 누구보다도 우린 방생을 많이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방생의 해석을 잘해야 되요.

 

잘 다니는 고기를 사다가 그것을 비닐에 주워 담고, 버스를 타고 7시간 8시간 달려가서, 생명부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놔줘가면서, 용왕님에게 가서 일러서 우리 아들 대학시험에 합격시켜 달라.”고 빌고 가는 사람 있어? 없어? 그게 방생일까?

 

방생은 내가 아까 얘기 했듯이

자연스럽게 내 앞에 와져있는 어떤 생명이

고통을 가지고 있고,

그 고통으로부터 뭔가 생명을 살려줄 수 있는 행위가

진정한 방생일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여러분 방생 중에 제일 좋은 방생이 뭐냐 하면

남편한테 바가지 안 긁는 게 방생이에요.

아내한테 속 안 썩이는 게 방생이야.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효도하는 게 방생이고,

자식이 원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방생이고,

친구간의 신뢰를 지켜가는 게 방생이고,

법회 날 주지스님 속 안 썩이는 게 방생이고,

 

왜냐? 주지스님은 법회 날만 되면 오나? 안 오나? 우리 신도님들 목이 빠지게 기다려? 안 기다려? 그런데 개인 일 있다고 안 오면 그것은 방생이 아니거든.

 

모든 사람들의 입장을 통해서

그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진정한 방생이다.

 

그 다음에 [공익을 위해서 희생하는 게 방생이에요.] 보시하는 마음, 공덕을 짓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참회를 습관화해서 사는 모습이 진정한 살생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인 고로, 여러분들이 절대 직업의 먹이사슬에 있어서 나는 이 부분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좋은 일을 하고, 더 열심히 보시를 하고, 더 열심히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을 하고 살다보면 업보다 복을 많이 지을 수 있는 인연의 주인공들이 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든지 넉넉하고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