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9편 기도문을 통한 참회기도에 대하여 2

Buddhastudy 2011. 9. 15. 18:14

  방송 보기: 정토TV

그래서 저는 어떤 수행을, 수행이 뭔지를 얘기하고, 그 중에 어느 수행을 할거냐 하는 거는 사람이 인연을 따라 다 조금씩 다르다. 내가 아무리 축구하고 싶어도 지 혼자 살면 혼자서는 축구 할 수가 없잖아. 그죠? 패가 있어야 편을 갈라 하지. 그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아무리 조깅하고 싶어도 어디 뛸 때가 없다. 그러면 수행을, 건강을 못하느냐? 아니다. 그때는 맨손체조도 있고, 요가도 있고. 이런 것처럼.

그러니까 그런 걸 가지고 논할 필요는 없다. 여러분들이 스님을 만나거나 누구 만나다 보면, 선승을 만나면 참선을 하면 되고, 염불스님 만나면 염불을 하면 되고. 그런데 그것이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근본 요지를 잊지 마라 이거야. 무엇이 수행이냐 하는 근본을 놓치면 아무리 염불을 해도 그거는 밖을 찾아 구하면 그건 입으로 하는 거요. 아무리 참선을 한다고 앉아 있어도 밖을 찾아 구하면 그건 앉은뱅이에 불과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하잖아. ‘아이고, 그건 스님 그래도 우리 같이 사는 사람들, 운동 아침에 한 가지는 같이 한 번 해 봅시다. 각자 알아서 뭐 축구 더 찰 사람 있으면 더 차고, 뭐 등산갈 사람 가더라도 우리 전체적으로는 아침에 앉아서 하나 정해놓고, 아침에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합시다.’ 그러면 하나 정해야 되잖아. 그게 꼭 좋아서가 아니라. 그럼 뭐 할까? 아침에 맨손체조 하자. 운동의 기본 아니오. 그죠?

그래서 정토회에서 대중들이 스님들이 아니라 일반 신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이치의병이, 마음의 병이 뭐냐? 스트레스란 말이오.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딴 병도 있지만 이게 병의 80~90% 주종이란 말이오. 이런 병을 치료하는 데는 제일 좋은 게 뭐다? 자기가 옳다하는 거를 내려놓는 참회란 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참회를 정했다. 참회는 모든 수행의 기본인 동시에, 마치 맨손체조를 잘하면 가장 건강할 수도 있는 것처럼. 그것은 수행의 끝이기도 하되 기초이기도 하고.

그러면 이제 참회를 하라니까 엎드려서 절하면서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참회한다고 말은 하고 절은 하는데 마음에서 뭔가 뉘우치는 게 참회지 ‘참회 합니다.’하고 생각하는게 참회가 아니라는 거요. ‘아~ 그래 잘못했구나.’ ‘아~ 고집했구나,’ ‘아~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마음이 돌이켜지는 거를 이름하여 뭐라 한다? ‘참회다’ 이러지. ‘참회합니다.’ ‘참회합니다.’ ‘殺生重罪今日懺悔살생중죄금일참회’ ‘偸盜重罪今日懺悔투도중죄금일참회’ 이런다고 참회가 아니란 말이오.

뭔가 이 뉘우쳐져야 된단 말이오. 이제까지 내가 옳다 하고 쥐고 있던게 ‘아, 이게 아니구나.’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이렇게 뭐가 바뀌어야 참회란 말이오. 바뀌어야.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잘못을 자기가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지금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은 누가 와서 “너 말이야, 아무날 아무시에 니가 그렇게 그렇게 했는데 잘못했잖아.” 이 얘기 딱 들으면 ‘아, 내가 잘못했구나.’ 이렇게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얘기해도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도 있어.

그러니까 자기가 그런 걸 듣고 ‘아~ 참 잘못했구나.’ 이제까지는 옳다고 했는데 ‘아~ 그건 내 잘못됐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고, 도저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말이야. 지금 여러분들이 수영하다가 물에 빠져가지고 죽다가 살아났어. 그럼 다음에 수영하자 그러면 거부반응이 생겨요? 안 생겨요? 생기지. 그럴 때 왜 거부반등이 생기냐? ‘아, 지난번에 내가 물에 빠져 혼 줄이 났기 때문에.’ 이렇게 자기가 거부반응이 생긴 원인을 아는 게 있다 이 말이야. 그러나 한 살이나 두 살이나 세 살이나 요때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살아나는 거는 나이가 들면 자기가 물에 빠진 걸 기억할 수 있나? 없나? 기억할 수는 없는데 물만 보면 어때요? 겁이 난단 말이오.

그러면 왜 이렇게 물에 거부반응이 있는지를 본인이 알 수가 없다. 이 말이오. 이렇게 우리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거를 자기가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자기가, 내가 왜 이런지. 이거 아마 전생에 내가 무슨 일이 생겼나? 이런 생각이 들만큼 도저히 나로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이 말이오. 이렇게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말이오. 알 수 있는 건 누군가가 내가 잊어버렸더라도 얘기해주면, 기억을 되 살려 주면 ‘아, 그렇구나.’ 이래 되는데. 내가 도저히 기억이 안 되는, 누가 옆에서 얘기해줘도, 나하고는 해당이 안 되는 얘기다. 이 말이야.

그러니 내가 나를 잘아나? 사실은 내가 나를 모르는 것도 많이 있나? 모르는 것도 많이 있어. 지 몸에 생기는 병을 지가 제일 잘 알아야 되는데, 어디 아픈지 딱 느끼면, 위가 아픈지, 간이 아픈지 자기는 느껴지잖아. 남은 그게 느껴지나? 안 느껴지나? 안느껴지잖아. 그죠? 그러면 지병을 자기가 가장 잘 알아야 되는데. 보통은 잘 아는데 어떤 거는 의사보다 모르는 게 있어요? 없어요? 있다. 그러니까 아프면 어디 가서 물어본다? 의사한테 가서 물어보잖아.

그런 것처럼 내 이 마음의 병이 내가 아는 것도 있는데, 자기가 정신을 딱 차리고 집중하면 다 알 수 있어. 남한테 물을 게 사실은 없는데, 우리가 지금 정신없이 살다보니까 자기가 자기를 잘 몰라. 그래서 전문 의사한테 가서 물어 본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보살님한테 기도문을 받은 거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 의사진단이 나는 자꾸 배가 아파서 갔는데, 딱 의사가 보더니 ‘아~ 위에 무슨 위궤양이다’ 이러면 자기 생각하고 의사생각이 딱~ 맞으니까 어때요? ‘옳거니.’ 이렇게 되니까 금방 수술하자든지 치료하라고 그러면 약을 먹는데.

나는 위가 아파서 갔는데, 저 사람이 진찰 하더니 그거 뭐 별거 아니고, 심장이 나쁘다든지, 신장이 나쁘다든지 딴 게 나쁘다 그러면, 그건 내가 생각할 때 아무렇지도 않고, 아프긴 이게 아픈데 자꾸 저쪽이다 그러면, 의사 말이 믿어지나 안 믿어지나? 안 믿어지지. 저거 돌팔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이오. 우리 몸의 병도 그렇잖아.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그 병과 실지로 진단상에서 정말 위험한 병이 다르다 이거야. 드러난 것은 여기서 아픈 거처럼 드러나도 실제 원인은 딴 데, 더 큰 게 딴 데 있어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의사가 필요한 거 아니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선지식이 필요한 거란 말이오. 그럼 그 말을 믿어야 되. 그런데 자기 생각에 빠져가지고 ‘에이, 아니에요.’ 이러면 뭐하러 물으러 가노. 지가 하지. 그래 자기가 하면 되지. 물으러 갔을 때는 그 사람 말을 믿어야 될 거 아니냐 이거요. 내가 비록 여기 아프지만 이쪽이 아프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아, 이게 별거 아니고 이쪽이 아프구나’해서 그거에 대해서 자기가 연구를 해야 된단 말이오. 자기가 딱 해보니 ‘아~ 자기도 그렇구나.’ 이렇게 되야 될 거 아니야. 그래서 진단이 자기가 생각했던 거 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거도 있고 자기 생각은 얼토당토 앉는 것도 있다 이 말이오.

다시 말하면 이런 처녀가 와가지고 아들이 없는, 애가 없는, 부인이 와서 애 좀 낳게 해 달라. 애 언제 낳나? 어떻게 하면 낳느냐? 이거 물으러 왔단 말이야. 그런데 가만 보니 홀로 될 여자야. 곧 남편이 죽을상이야. 그러면 남편이 죽어도 이 사람이 애를 가질라 그럴까? 그럼 중요한 건 애 낳는 게 중요한 거냐? 남편 살리는 게 중요하냐? 그럴 때는 기도문이 어느 쪽으로 갈까? 남편 단명 위험이 있으니까 이거 피해가는 게 급하단 말이오.

그렇지. 그러니까 하지. 나도 단명인 사람인데 지금 이렇게 살잖아요. 장가갔으면 벌써 죽었어. 그러니까 이게 자기가 원하는 거 하고 맞을 때도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거 하고 안 맞을 때도 있다 이거야. 그러니 이게 잘 모른다 이거야. 자기는 자기 생각에 빠져서 거기 귀에 안들어 온다 이거야. 지금 애 문제, 애 어떻게 낳느냐 물었는데 멀쩡한 남편 기도를 왜하라 그러느냐?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다 이거야. 그러니 우리가. 그러면 다시 생각을 딱 바꿔서 아~ 남편기도에 딱 집중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오늘 우리 보살님 질문한 거 딸이 서른 살이 넘어 결혼을 못하니까 ‘와 저게 결혼을 못할까? 전생에 뭐가 있어 결혼을 못하나? 딴 사람 스물 넷, 다섯 되면 다 하는데, 결혼을 안할라 그럴까?’ 엄마는 이런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지금 최대 고민은 뭐다? 딸 시집가는 게 문제란 말이오. 그러면 여기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 보살님은 도가 다 트여가지고. 법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얘기하는 거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그게 자기가 해야 되는 게 있고 옆에서 도와줘도 도움이 되는 게 있어. 우리가 빚도 자기가 갚아도 되지만 옆에서 갚아줄 수도 있는 것처럼.

그런데 여기는 이럴 때 해결책이 여러 개가 있죠. 이 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이 일은 부차적인 게 되죠? 지금은 딸 결혼이 어떠니 저쩌니 하다가 집이 불이 나고, 부도가 나고, 남편이 병나고 하면 딸 결혼문제는 부차적인게 되고, 병간호 할 사람 없는데 시집안가고 혼자 있으니 훨씬 잘 됐고, 이리 되는 수도 있다. 이 말이오. 이거보다 더 급한 다른 일이 있어서 그걸 해결을 하라는 그런 자기, 사실 이건 중요안한데 본인이 괜히 거기 묶여 있는 경우도 있고.

두 번째는 딸 결혼이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 한다고 해결이 되는게 아니고, 그게 해결될 수 있는 실제적인 어떤 일이 일어나야 된다. 그런데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실지로는 해결될 수 없는 행동을 자기가 하고 있을 때는 자기가 그게 해결 될 수 있는 행위로 바뀌어 줘야 되겠죠. 그러면 이게 해결이 될 거 아니냐. 이 말 두 개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애가 공부를 안 하는데 애는 공부를 안 하는 이유가 엄마가 볼 때는 애가 공부를 안하는거 같은데. 애는 지금 엄마아빠가 싸우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여 공부를 안한다 이 말이오.

그럴 때 우리 애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법당에 와서 기도하고 집에 가서는 맨날 싸우면, 이루어 질수가 없는 일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애가 공부를 잘하도록 실제로 될 수 있는 행위가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이거야. 그때 부부가 화합하는, 남편이 참회해서 부부가 화합하면 애는 공부가 저절로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게 안 되도록 해 놓고 자꾸 되게 해 달라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뭔가 바랄 때는 바라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바라는 것이 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바라기만 할 때는, 즉 바라는게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하도록 이루어지는 게 있고, 두 번째는 바라는 거 자체가 잘못됐을 때는 바라는 그 자체를 버려야 되겠죠.

아들 장가보내려는데 이거 장가보내면 홀로될 여자하고 만나서 몇 년 안에 죽을 거 같으면 장가를 보내는게 좋으나? 안보는게 좋으나? 그래도 죽어라고 보내겠다면 어떻게 하겠어? 보내는게 안 좋은 줄을 본인이 알아버리면 그 원은 성취 된 거야? 안 된거야? 성취된 거지. 그러니까 우리는 모른다 이거야. 한치 앞도. 그래서 제가 매일 얘기하잖아. 쥐가 뭐다? 쥐약을 먹고, 지 눈깔 지가 지 찌르고, 여기도 그저 남자한테 덕 볼라고, 인물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돈도 좀 많아 보이고, 배운 것도 많겠다 싶어서 괜찮은 남자라고 덥석 물었다가 신세 조진사람 많이 있죠?

그게 자기 욕심대로 해서 이루어지지도 않아서 괴롭지만, 이루어져도 이게 도리어 더 큰 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이제 다. 그게 보살님은 80을 살아놓으니 그게 해 봐야, 아는데. 젊은 사람들은 아직도 멀었어. 그래서 수행은 두 가지야. 하나는 미리 법문 듣고 깨치는 것도 있고, 자~ 그래서 이제 우리 보살님 기도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자기가 원하는 건 ‘애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가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 애가 왜 결혼 안할 생각을 했을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요. 애가 왜 여자애인데 ‘나 시집안가겠다.’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거는 엄마 아빠 사는 걸 보고, 엄마가 살면서 고통 받는걸 보고, ‘아~ 나는 절대 시집을 안가겠다.’ 이렇게 어릴 때 마음에 맺힌 거요. 그러니까 이 애가 시집을 안가는 원인이 나한테 있다 이 거야. 딴 데서 받은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도록 내가 해놓고, 내 사는 모습이 아이가 절대로 결혼을 안하겠다는 결심을 더욱더 굳히도록 하면서 애보고 자꾸 시집가라, 시집가라, 시집가라 그런다고 가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니 내가 이제까지 결혼해서 살아오면서 내가 마음자리를 어떻게 썼는지를 찬찬히 살펴봐야 되. 나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남편이 협조를 안해줘가지고 참 억울하게 살았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은, 이렇게 깊이 하나하나 마음 쓰는 거를 자기가 살펴보면 내가 마음을 어떻게 잘못 썼는지를 알 수가 있어. 이게 그냥 내가 잘못했다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 하나하나를 다 깊이 절을 하면서 둘러봤을 때 ‘아~ 내가 이런 마음을 내고, 이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저 사람이 원하는게 이런 건데 그걸 서로 안 맞았구나. 내가 이렇게 할 때 저사람 어떻게 했겠느나?’

이런 걸 다~ 잘 살펴서 ‘아, 이건 정말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렇게 해서 딱 바뀌면 어떻게 될까? 이건 뉘우쳐져야 바뀌지. 바뀌고 싶다. 우리 둘이는 화합하겠다. 잘 보여 줘야겠다. 이런다고 되는게 아니야. 인생이 그런다고 되면 얼마나 좋겠어? 생각은 중요한게 아니야. 생각은 뭐 일 뿐이다? 번뇌 일 뿐이야. 그거는 만 번 결심해도 안 돼. 뉘우쳐져야 변하지, 생각으로 ’잘해야지‘ 한다고 안 된다 이거야. ’잘해야지‘ 이건 수행이 아니라니까. 번뇌에 속하지.

그게 딱 뉘우쳐지면 바뀐다 이거야. 바뀌면 아이가 어때요? 집안에 분위가 바뀌니까 느낌이 달라지겠지. 옛날에는 비록 거기 거부반응이 있어서 안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하더라도 집안 분위가 바뀌어서 자기가 느낄 때 결혼해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이 이게 또 들겠어? 안 들겠어? 언뜻언뜻 든다 이거야. 그러나 아직도 과거의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이렇게 바뀌어 나가는 거요. 그러니까 기도를 하니까 어때요? 아이 생각이 바뀌는 거요.

그러면 문제는 결혼에 대한 거부반응을 갖고 있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어떨까? 행복 할까? 안할까? 행복 안하겠지. 이게 언제 날짜 잡아서 결혼을 시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혼을 해서 결혼안하는 것 보다 더 잘살아야 어때요? 그게 진짜 의미 아니냐? 결혼을 그냥 시켜버리려는 거는 내 면피, 아이는 아무 고려안하고 나만 어쨌든 빨리 책임 면해 버리겠다. 이런 자기 욕심에 불과한 거요. 거부반응이 있는데 애가 결혼을 했다. 거부반응이 있는데 결혼을 했을 때는 살아보고, 사람이 살다보면 저도 그렇고, 누구도 그렇고, 낯선 사람하고 살면 처음에는 갈등을 좀 격어야 되나? 안 격어야 되나? 격어야 되. 필연적으로.

우리는 아무리 어느 정도 해가지고는 자기식대로 뭐든지 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서로가 자기 식대로 하려는 게 다르니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거야. 그럴 때, 갈등이 생길 때, 결혼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는 사람은 인생이 살면서 갈등이 생기는게 정상이고, 이걸 어떻게 서로 맞추어 나갈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아~ 결혼을 잘못했다’ 이런 생각으로 팍 가버린다니까. 안해야 되는데 내가. 엄마한테 밀려서 했다. 생각이 이렇게 간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걸 풀어갈 힘이 안 나고, 앞에 장벽이 부딪치면 그거를 차고 나갈 힘이 안 나고, 어디로 가버린다? 뒤로 물러나버린다 이거야.

그리고 원망을 한다 이거야. 엄마를. 책임소재를 엄마한테 떠 넘겨 버린다 이거야. 엄마가 자꾸 하라 그래가지고 내 인생 버렸지 않냐?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불행을 또 만드는 행위요. 그런데 이 엄마나 아빠의 삶의 과정을 딱 변한 걸 지켜본 애가 ‘아~ 결혼해도 괜찮겠다.’ 이렇게 느끼면 애가 결혼을 하면 어떠냐? 갈등이 생길 때 오히려 엄마아빠가 다투어었다가 좋아진 경험을 애는 봤기 때문에 어때요? 이 갈등을 물러나는 마음을 안보고, ‘아이고 우리 어머니는 20년을 싸우다가도 마음 바꿔서 뭐해졌다? 좋아졌는데, 이 정도야.’ 이렇게 생각이 바뀐다니까. 모범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안 맞던 사람도 좋아지는 걸 봤기 때문에 이걸 크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마흔에 하든, 50에 하든, 그게 중요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할 수 있는 준비가 돼서 뭐 해야 된다? 결혼을 해야 되고. 상대가 나이가 얼마냐? 돈을 얼마가지고 있느냐? 키가 얼마나 크냐? 이게 중심과제가 되면 안 되고, 서로가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맞추어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을 때 그게 뭐다? 결혼해도 될 때다. 나이가 들면 결혼하면 그건 짐승하고 똑같지 뭐. 살면 새끼 낳아지고 하는 거, 그거야 뭐.

그러니 ‘아이고, 애 저거 언제 결혼 할 수 있겠습니까? 어이하면 결혼합니까?’ 이러는데 기도문은 ‘자기 마음 쓴 거를 낱낱이 참회해야 된다.’ 이렇게 기도문이 나오는 거요. 이해가 됐어요? 그러니까 기도문에 집중해서 딱~ 해 보면, 전에 같으면 막 콱~ 다투다가도 딸이든, 남편이든, 시부모든, 누구하고든 다투다가도 이 기도문이 있기 때문에 늘 딱 어떤 사건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를 돌아본다. ‘아~ 지금 내 마음 쓴거 제대로 썼나?’ 이렇게. 과거의 쓴거부터, 과거에 쓴 걸 쭉~ 참회하고 살펴보고, ‘아~ 그건 잘못했지. 그땐 잘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참 마음 잘못썼구나.’

이렇게 하면 지금 그게 돌아 와가지고 과거 거는 물론이고, 지금 마음을 쓴 뒤에 바로 어때요? ‘아~ 이거 또 내가 잘못 쓰고 있구나.’ 이렇게 자각이 된단 말이오. 그러면 옆에서 보는 사람이 어때요? 전에 같으면 팩해가지고 하루씩 이틀씩 삐졌다가도, 요즘 팩 하다가도 2, 3분 만에 그냥 없었던 것처럼 돌아온다든지. 이게 자꾸자꾸 시간이 흐르면 어때요? 팩 하려고 하다가 ‘아’ 금방 바로 딱 일어난 순간 자기가 탁 느낀단 말이야. 시간이 흐르면. 전에는 절하다가 어제 했던 일 느끼는데, 지금은 20년 전 것도 아직도 옳다 고집하다가, 수행을 자꾸 하면 아침기도 할 때 어제 그제 했던 거 ’아 내가 잘못했구나‘ 느끼다가.

이게 자꾸자꾸 가면 어떠냐? 딱 일어나는 순간 자기가 탁~ 느낀다. 오! 이렇게 자기를 챙기게 되니까, 딱 일어나다가 ‘아~’ 하다가 ‘탁’ 들어간단 말이오. 그건 참는 게 아니오. 자기를 살피는 거요. 그러면 수행자지. 사람이 옆에서 그때는 옆에서 보는 사람도 어때요? 뭔가 사람이 좀 변한거 같애. 자기가 ‘나 요새 좀 변했지.’ 이러면 안 돼. 그래서 우리가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서 빚어진 거기 때문에, 그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때 이게 사라진다. 그러면서 기도문을 딱 가지고 구체적으로 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마음자리 쓴 것을 하나하나 낱낱이 참회하라. 그 마음자리 쓸 때마다, 마음 ‘탁’ 쓸 때마다 살펴야 되. 과거거도 물론이고 현재거도. 됐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