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스코필드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5. 3. 20:53


100년 전인 거잖아요.

만약에 사진이 없었다면 우리가 그냥 상상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걸 누가 찍었을까?

 

장윤주,

기억하여 기록하다.

 

석호필,

앞으로 자네의 이름은 석호필일세.

한국어 교사 목원홍, 석호필

 

조선을 사랑하던 캐나다의 스코필드

그러나 독립에 대한 조선인들의 열망엔 회의적이던 그였습니다.

조선의 독립은 헛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한 조선인 친구가 찾아옵니다.

저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사진 좀 찍어주십시오.

아마 다시 뵙진 못할 겁니다.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

한 조선인 친구의 짧은 부탁

 

191931

파고다 공원 앞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에 도착한 그곳

삼삼오오 모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였습니다.

 

종로 일대를 뒤흔든

대한독립 만세

실제 스코필드가 찍은 3.1 만세운동 현장

 

종로의 가게들은 5일 동안 모두 문을 닫았다.

가게 문을 열라는 명령도 거부했다.

사람들은 하나로 뭉쳐있었다.

 

독립은 헛된 꿈이라 여겼던 그의 마음을 뒤흔든 함성.

3.1운동은 한국인 정신의 상징이다.

 

3.1운동의 현장을 담은 필름을

구두 굽에 숨겨 해외로 전달

그로부터 한 달 뒤

그가 마주한 또 다른 현실

 

그곳은 화마와 무차별 학살에 모든 것을 빼앗긴 시골 마을들이었습니다.

완전한 폐허였다.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이런 끔찍한 심판이 그들을 덮친 걸까.

분명히 뭔가 잘못됐다.

 

50여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

그에게 누군가 질문을 들립니다.

 

선교사 양반,

기독교 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오?”

-친일파 이완용

 

친일파 이완용에게 망설임 없이 던진 그의 대답

먼저 2,000만 국민에게

사죄부터 하시오

-스코필드

 

나는 눈으로 무엇이든 분명하게 볼 것이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이용해

한국인들의 소원을 세게에 알릴 것입니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독립운동가 석호필

 

일제만행의 뚜렷한 증거이자

꺼지지 않는 민족 항거의 증언이 된

그날, 그의 기록들

 

석호필

(889.3.15~1970.4.12)

 

장연주,

기억하여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