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563회] 천주교 신자인데 불교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Buddhastudy 2020. 1. 7. 20:47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요 불교에 관심이 점점 많아집니다

하느님을 배신해서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불교에 자꾸 끌리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다니시면서 그냥 법륜스님 유튜브도 듣고

절에 가을풍경도 구경 가고, 법당에 가서 절도하고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무 문제가 없어.

 

옛날에는 이게 문제가 되었어요.

옛날에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일 뿐이고,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일 뿐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 귀화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

일본에서 태어나서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가서 미국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이럴 때 그걸 뭐라고 그런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그래. 코리안-어메리칸이라고 그래.

그러면 코리안이 있고, 어메리칸이 있고, 또 뭐가 있다? 코리안-어메리칸이 있는 거요.

 

부디스터도 있고, 크리스천도 있고, 어떤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크리스천-부디스터도 있을 수 있는 거요.

미국에는 크리스천-부디스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기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집에서 태어나서 크리스천으로 살았는데

불교 얘기 들으니 너무 좋아.

그래서 이걸 버리고 저걸 갖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자기를 고수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왜 내가 이걸 갖기 위해서 저걸 버려야 될 이유가 뭐가 있나?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지

그게 뭐다? 크리스천-부디스트요.

이게 미국에는 광범위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제기 요번에 미국 갔을 때 워싱턴 디시에 있는 가톨릭 대학에 가서도 강의를 했고

강의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다? 크리스천-부디스트들이오.

샌디에이고에 있는 가톨릭대학에 가서도 강의를 했어요.

전번엔 제가 뉴욕 맨해튼에 가면 유니언신학대학이라고 있어요.

개신교신학대학 중에 굉장히 유명한 대학이 있는데, 거기 가서도 신학 공부하는 사람들 상대로 강의를 한 적이 있거든요.

 

시대가 지금 바뀌었어.

그런 거는 고민거리가 안 돼.

 

천주교에 내가 오랫동안 살았지만, 천주교 그만두고 불교 믿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

불교 집안에 오래 살다가 천주교 가도 아무 문제가 없고, 바꾸어도 되고.

그냥 그대로 다녀도 되고. 양다리 걸쳐도 되고, 아무 문제가 없어.

 

시대가 바뀌었어.

한식 먹다가 양식 먹어도 되고, 한식만 계속 고수해도 되고, 양식하고 한식하고 섞어 먹어도 되고.

요즘 뷔페 가면 다 한식하고 양식하고 같이 해 놨나? 안 해 놨나?

그런데 왜 한식이면 한식이고, 양식이면 양식이고...’

그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오. 그건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러면 하느님이 그걸 갖고 자기한테 징벌을 할까?

하이고, 생각 잘못하는 거요.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두고 뭐라고 그랬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이랬지.

자기가 절에 간 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거보다는 덜하잖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기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도

용서하소서하는 이 용서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 크리스천이에요.

그 전하고 달라.

 

그런데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내가 절에 좀 가봤다가 벌 줄까? 안 줄까?

그런 건 있을 수 없어.

그런 거 벌준다 그러면 그거는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에, 자기가 진짜 하나님이라면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어떤 할머니가 저한테 이래요.

아이고, 스님요, 걱정이 하나 있는데요

무슨 걱정?“

제가 기도를 하고 있는데 소원성취가 될까요? 안 될까요?“

무슨 소원을 갖고 있는데?“

우리 손녀가 고3인데, 제가 입시 합격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절에서, 부처님한테.

그런데 왜 그게 걱정이오

그런데 스님, 우리 손녀가 교회 다니거든요그래서 내가

아이고, 부처님이 할머니 같을까 봐 내가 이랬어.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인데, 고등학교 3학년 여자애가 교회 다닌다고 팍 시험에 떨어뜨리고, 절에 다닌다고 넣어주고 그럴까? 안 그럴까?

그러면 그게 부처님이오? 부처님 아니오? 아니오.

그러니까 부처님은 그런 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 지금 부처님을 빙자해서, 하나님을 빙자해서 무슨 안 믿으면 벌주고, 지옥 보내고 이런 건 다 장삿속으로 하는 소리예요.

그런데 그것도 이해해야 해요.

 

우리 동네 요만한 구멍가게에서 내가 20년 다녔어.

그런데 그 밑에 큰 슈퍼마켓이 생겼는데 가보니까, 물건도 더 좋고 값도 더 싸.

그러면 거기에 가면 죄인입니까?

 

그런데 이건 생각해야 해요.

이 구멍가게 주인 입장에서 볼 때는 좀 배신감을 느끼겠지.

아니, 그 물건값 조금 싸다고 20년 단골이 딴 데 가는 거 보면 배신감 느낄 거 아니오.

그건 이해를 해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조용히 그 집에 가서 물건 사면 되지,

물건 사서 주인한테

그 집에는 물건도 더 좋고, 값도 싸더라.

그동안에 우리한테 너무 많이 받아먹었어.“

이런 소리 하면 되나? 안 되나? 그건 예의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구멍가게 주인 같은 사람이 누구다? 스님이고, 신부고 목사란 말이오.

자기 가게 손님이 딴 데 가면 기분 좋아할까? 안 좋아할까? 안 좋아해.

 

그래서 우리 가게 안 다니고, 저 가게 가면

가다가 넘어져서 비 오는 날 소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입 맞출 거야

이렇게 좀 저주를 하는 거요.

이해되나? 안 되나? 이해 돼.

 

그러니까 내가 조용히 절에 가고, 교회 가면 되지, 꼭 교회 가서

옛날에 절에 다녔는데, 불교는 귀신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소리 하면 되나? 안 되나? 자기가 또 교회 가서

법륜스님 법문 들으니까 풀리든지, 교회 다녀봐야 아무 필요 없다

이런 소리 하면 되나? 안 되나? 안 돼.

그건 인간의 예의가 아니에요.

 

내가 어디를 가는 건 내 자유다. 알았죠?

그러나 스님이나 신부나 목사님들이 그런 거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돼.

그러니까 나무랄 필요는 없어.

거기까지 가서 막 패를 흔들고 자랑하고 비난하고 이러면 안 돼.

 

그런데 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있어.

절에 다니다 교회 가서

내가 20년간 절에 다녔는데, 절에 다녀봐야 소용없더라

그건 절에 헛다녀서 그런 거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교회도 다니시고, 절에도 다니시고, 절이 더 재미있으면 교회는 안 가도 되고 아시겠어요?

또 절에 다녀보니까 별 재미가 없으면 도로 교회 가도 되고,

~~~~무 문제없다!

알았죠?

 

왜 우리가 우리의 정신적 자유를

누구한테 매여서 묶여서

그렇게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안 그래도 몸뚱이 돈에 묶여서

회사에 묶여 있는 이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정신까지 또 묶여서 종노릇 평생 할 필요가 뭐가 있나?

 

하나님과 부처님과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정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하도록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이랬잖아.

 

이게 기독교 신앙에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교도 믿고, 기독교 믿고, 이게 아니라

기독교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른 신부님한테 물으면 물론 나쁘다고 그래.

당연히. 그건 이해되죠? 나쁘다는 말도.

그러니까 그런 말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천주교 다니다가 냉담 신자가 있죠. 잘 안 가는 사람.

이런 사람 중에 우리 맴버들이 절에 많이 오는 경우가 있어요.

 

크리스마스 성당 가잖아요. 이 사람들 다 데리고.

왜냐하면 찬송가 다 잘 아니까.

신부님한테 그랬어요.

신부님, 어린 양들을 좀 잘 돌보세요.

다 버려서 오도 갈 때 없는 사람 내가 데리고 왔으니까 앞으로 좀 잘 챙겨요

, 관리는 스님이 하시고, 11조는 우리 성당에 내도록 해주세요.“

신부님도 재미있지. 그렇게 농담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어요.

신부님이 우리 절에 와서, 예불은 내가 하고 법문은 신부님이 하고

내가 성당에 가서 미사는 신부님이 드리고, 강론은 내가 해.

 

크리스마스날 강론을 제가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호응이 많아요.

그러면 신부님이 질투를 해.

내가 할 때는 이렇게 호응을 안 하더니 왜 스님이 할 때는 호응을 하냐?“
이렇게 농담도 하고 그래요.

그것이 신앙이 어긋나는 게 아니다, 알았죠?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이방인에도 구원이 있다.

요즘 식으로 적용하면

보수적인 기독교는 이교도에게는 구원이 없다

그럼 예수님이 오신다면 뭐라고 그럴까?

이교도에도 구원이 있다이렇게 하실 시대에요.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스님이 성경 여러 번 읽어봤을까? 안 읽어봤을까?

그래요.

위대하신 가르침을 왜 내가 안 읽겠어요.

안 읽으면 나만 손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