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17.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5월 25일 방송 - 선정수행 (16:52)

Buddhastudy 2012. 8. 5. 19:08

  출처: 유나방송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선정수행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수행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하나는 삼매를 닦는 선정수행이고요, 또 하나는 지혜를 닦는 지혜수행입니다. 먼저 선정수행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팔정도에서 선정수행은 정정진, 정염, 정정, 이 세 가지 요소를 선정수행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앞에서 정견과 정사유는 지혜수행. 정어, 정업, 정명이라고 하는 세 가지는 계율, 그리고 정정진, 정염, 정정 이라고 하는 이 세 가지는 선정수행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보시와 지계수행은 조 다소 소극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항상 생활 속에서 항상 실천할 수 있다기보다 기회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정수행이나 지혜수행은 어느 순간이나 어느 때나 실천할 수 있고, 또 선한 법을 기회가 만났을 때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한 법을 만났을 때마다 항상 선한법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아주 적극적인 방법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선법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수행이다. 그래서 이 수행이라고 하는 뜻 자체가 선법을 전가 발전시킨다.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중에서 한가지인 이 선정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바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바른 노력은 경전에서는 팔정도에선 정정진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죠. 이 정정진의 경전 상에서 설명하는 것은 이미 일어나는 선을 더욱 늘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은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불선은 버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선한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쉽게 말하면 불선한 법을 버리고 선한법을 계속 계발하는 이것이 바로 바른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불선법은 버리고 항상 선법을 계발할 수 있느냐? 선법을 계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삿띠를 계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삿띠라고 하는 알아차림. 또는 마음 챙김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팔정도에서는 정념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알아차림이 있는 마음을 불교에서는 선한 마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선한 마음인데, 이 알아차림이 없는 일은 있을 수가 없고요. 그리고 이 알아차림이 있는 마음이 선한 마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탐욕이나 성냄에 물들지 않도록 해주는 그런 아주 중요한 심리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을 계속 우리 삶 속에서 유지를 한다면 그것은 선한법이 되는 거고, 알아차림을 놓치고, 다시 말하면 정신을 놓치고 어떤 경계들에 자꾸 끄달린다면 그건 불선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바른 노력을 위해서는 바른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다음이 정념이라고 하는 팔정도의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이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것이 선법을 계발하고 바른 노력을 하는 데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알아차림을 계발할 수 있느냐? 이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신을 바짝 차린다. 깨어있다. 이런 말로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서는 어떤 대상을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서 놓치지 않고 그것을 항상 바라 보는 항상 알아차리는 이런 노력이 필요한데. 어떤 대상을 중심으로 알아차리느냐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있고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마음의 느낌. 좋다 싫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이런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느낌으로 중심으로 해서 관찰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우리 마음의 변화, 마음에서 탐욕이 일어나는지, 성냄이 일어나는지, 마음이 산란한지, 집중돼 있는지, 이런 등등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으로서 삿띠를 계발할 수도 있고요.

 

또 하나는 업. 오온, 12, 사성제, 팔정도. 이런 법들에 대해서 깊이 고찰함으로써 이 법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삿띠를 계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대상에 대해서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것을 사념처수행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념처 수행을 통해서 알아차림을 계발함으로써 우리가 항상 어느 때나 선법을 계발할 수 있는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네 가지 대상의 알아차림을 다 설명하기는 시간이 좀 제한이 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특히 주제가 선정입니다.

 

그래서 그 네 가지 대상 중에서 특히 몸에 대한 알아차림. 그 몸 중에서도 우리의 호흡인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통해서 어떻게 바른 선정, 여덟 번째 요소인 정정.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지에 대해서 이 시간에는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이 하나의 대상이 되어서 이 대상에 대해서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함으로써 우리가 선법도 계속 계발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아주 고요한 삼매에 들 수 있는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 바로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들숨 날숨의 알아차림 수행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선정에 대해서 조금 더 부연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정수행은 한마디로 삼매를 닦는 수행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삼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깨끗하고 집중된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삼매의 상태를 닦는 수행을 선정수행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래서 이 선정수행을 할 때는 그 대상이 여러 가지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아는 것이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선정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대상을 정한 다음에 다른 대상들은 다른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른 대상들은 관심을 두지 않고,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우리가 정한 그 하나의 주제만 우리의 모든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선정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정수행은 이런 선정의 주제가 무엇이냐?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淸淨道論청정도론에서는 약 40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앞서 잠깐 말씀드린 들숨날숨의 알차림의 수행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은 한마디로 들숨 날숨이라고 하는 하나의 대상에만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수행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을 빨리어로는 아나빠나삿띠라고 하는데요. 이 아나빠나라는 말은 들숨 날숨이라는 뜻이고요. 삿띠라는 말은 알아차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아나빠나삿띠라는 그 말속에 이 수행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제시가 되어 있습니다.

 

들숨 날숨만을 알아차려라. 이것이 어떻게 보면 이 아나빠나삿띠. 또는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을 이끌어가는 아주 핵심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이라는 그 대상, 우리 숨이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들숨날숨이라는 거에만 마음을 두고 다른 어떤 대상에도 마음을 두지 말라. 오직 들숨날숨 만에 관심을 두고 알아차려라. 이것이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실 때 조용히 앉아서 반가부좌나 평좌, 자세를 취하시고요. 그리고 허리는 곧게 펴시고, 몸은 모든 긴장을 풉니다.

 

몸이 긴장을 하게 되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호흡을 알아차리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눈은 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화두수행을 할 때 눈을 반개를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보통 남방불교에서 수행을 할 때는 눈은 지그시 감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유는 크게 나누면 두 가지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정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오식. 다시 말하면 안이비설신으로 들어오는 대상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또는 의식으로 오직 그 들숨, 날숨만을 알아차리는 그런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과 귀코혀몸 나머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우리가 닫아두고, 오직 마음의 문만 열어놔서, 의식만으로 들숨날숨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눈을 감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분들이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을 깊이 수행을 하시다 보면 나중에 빛의 형태로 니미따라고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이 니미따가 생겼을 때 초보자들은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니미따를 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하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온몸의 긴장을 푼 다음에 자연스럽게 여러분들이 숨, 그러니까 일부러 여러분들이 숨을 조작하지는 말고요, 여러분들이 신경을 쓰든 안 쓰든 되어 지고 있는.

 

숨이라는 것은 자율신경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구태여 의식하지 않아도 숨은 쉬어집니다. 그 쉬어지는 그 숨을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자연스러운 호흡을 들어가고 내 쉬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숨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코끝과 윗입술 사이. 콧구멍 주위, 또는 윗입술 사이를 통해서 코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이렇게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겠죠. 그래서 이 코끝에서 윗입술 사이에 어딘가를 스치면서 숨이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숨이 들어갈 때 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닿는 지점을 어느 한군데를 잡아서 거기서부터 숨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것을 그 지점에서 관찰을 하면 되겠습니다.

 

초보자들은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닿는 지점을 이용해서 숨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숨이 없다면 감각을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이고, 만약에 감각이 있다는 것은 뭔가 들어가는 숨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는 이 숨이 들어가고 나올 때 일어나는 감각을 통해서 들숨과 날숨을 쉽게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각이 일어나는 그 지점을 일종의 관찰지점으로 이해를 하셔도 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아파트의 경비실이 접촉지점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경비실에서 사람이 그 경비실 앞을 통과하는 사람을 그대로 들어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나오는 사람을 관찰하고 이렇게 하듯이, 마치 닿는 지점에서 들어가는 숨을 관찰하고 나가는 숨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뭐냐 하면 경비실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을 구태여 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버린 사람을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아직 경비실 앞에 오지 않은 사람을 괜히 찾아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경비실 앞만 잘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파트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지를 하나도 안 놓치고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을 할 때도 우리가 처음 잡았던 접촉지점, 또는 관찰지점이라고 하는 그 지점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그 지점에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구태여 그 숨이 코 안으로 들어가서 목 그리고 배 이렇게 들어가는 걸 일일이 따라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숨을 쫓아다니게 되면 마음도 같이 움직이게 돼서 고도의 집중을 하는데 있어서는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숨을 여러분들이 쫓아다니지 말고 오직 그 숨을 관찰하던 지점, 거기서 들어오고 나오는 숨을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거는 경비실의 문지기 비유를 잘 이해를 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접촉지점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것, 거기에만 마음을 두고, 다른 어떤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 생각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그냥 싸우지 마시고 그 생각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에게 일어나는 생각들은 어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또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집니다. 어떤 생각이라도 일어난 생각은 사라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여러분들이 그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것이 더 많은 번뇌를 일으키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어떤 화가 일어났는데 화가 왜 일어날까? 화를 없앴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꾸 생각을 이어간다면 그 하나의 화를 통해서 더 많은 생각들이 자꾸 분화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수행을 하는 것은 바람지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떤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또는 들숨 날숨 이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생각들은 그냥 조건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내가 구태여 관여하지 않아도 저 생각은 사라져버린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은 즉시 내려놓고 관여하지 마십시오. 관여하지 말고 바로 주의력이나 관심을 다시 호흡으로 바로 돌아오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런 번뇌들이 일어났을 때 즉시 그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바로 호흡으로 돌아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모든 현상들은 무상한 것이고, 그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사라져버릴 것이고 내가 관여할 필요 없다고 이해를 함으로써 그런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