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오늘 첫 시간은 ‘왜 아프냐’ ‘왜 괴로움이냐’ 이거에 대한 말씀이거든. 그래서 다음 시간부터는 다른 처방이 나가겠습니다만은,
그러면 부처님 경전, 아함경에 괴로움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고고하시는데, 어떤 것을 고라고 합니까?”하고 제자가 물었어요.
“라타야, 오온이 고이다. 오음을 떠나서 집착하지 않아야 해탈에 이르느니라.
세존이시여 고고하시는데 어떤 것을 고라고 합니까? 라타야, 오온이 고이다. 오음을 떠나서 집착을 하지 않아야 해탈에 이르느니라. 오음이 고라고 했어요. 지금 말씀하신 거, 두 번째
“존재란 이른바 5요소이다.” 색수상행식 오온을 얘기하는 거에요. “존재란 이른반 5요소이다. 내가, 우리가 내 스스로가, 존재한다고 본다면, 내가 현재 살아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오취온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라는 건데, 위에서 같은 얘기, ‘나’란 무엇이냐. 5요소로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 ‘나’다. 그런데 그게 괴로움이다. 이 얘기에요. 자, 이것은 잡아함경 제10권에 나오는 말씀이고,
“바라문이여, 일체는 십이처에 포섭되는 것이니, 곧 6군7경이다. 만일 12처를 떠나 만일 일체를 시설코자 한다면 다만 그것은 언설일 뿐이니다.” 잡아함권 제13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설명해 드리면, 아까 얘기한데로 오온은 뭐냐?
오온을 오음이라고도 하고, 색수상행식이니라. 이것이 오온인데,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거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뭐라고 얘기했느냐하면
색을 우리 몸이라고 얘기했고, 이것이 물결이다.
수는 느낌이다. 우리의 느낌. 이것은 물거품이다.
상은 생각, 우리의 생각인데, 이것은 아지랑이다.
행은 의지죠. 의지인데 의지는 파초다.
식은 인식이죠. 인식인데 허깨비다.
이것이 아까 4고 8고 중에서 얘기한 오음성고라는 거에요. 색_우리 몸이라 했어요. 수는 느낌이고, 상은 생각이고, 행은 의지고, 식은 인식하는 거에요. 우리 몸뚱아리가 이렇게 5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는데, 부처님이 이 오온은 괴로움이다.
아까 얘기한데로 그 다음에 일체는 십이처다. 일체는 우리가 모든 거 다 얘기할 때 일체라 그러죠. 일체라고 얘기할 때 일체는 뭐냐? 12처다. 일체는 12처라는 건 뭐냐? 반야심경에 나오는 아시죠?
안이비설신의. 대상되는 게 뭐죠?
경계 색, 성, 향, 미, 촉, 법.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부드럽다 뭐다, 식은 인식하는 거고, 이게 일체라는 거에요. 일체는 12처다. 이것이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이게 6+6이면 12. 그래서 일체라는 것은 12처를 떠나서는 얘기할 수가 없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데서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상당히 중요한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왜 괴로우냐? 모든 게 실답지 아니하고, 변하는 거 아니에요. 물결도 변하고, 물거품도 변하고, 아지랑이 변하고, 파초도 벗겨봐야 아무것도 알맹이가 없고, 허깨비 전부 변하는 건데, 이게 진짜 이냥 집착해서 괴로움이 온다는 얘기에요. 이 부처님 말씀을 잘 인지하시고, 그래서 여기서 오음성고에 대해서,
음이라는 거, 음지는 어두운 거죠. 이렇게 환하지 않고, 음지는 햇빛이 비추지 않죠.
그 다음에 부처님의 지혜광명, 자비광명을 비추고 싶어도 내가 무명을 가리고 있으면 비치지를 않아요. 그렇죠? 그리고 내가 찬란한 본질은 빛이에요. 광명인데, 무명이 아니고, 광명인데,
내가 탐진치 3독 무명으로 쌓여있으면 차단해서 빛을 발휘하지 못해요. 이 두 가지,
그래서 사고팔고 중에서 제가 오늘 핵심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음성고, 5가지가 활성화 되어서 무명업장이 일어나서 하고 싶은 거, 전부다 느끼고 싶고, 좋은 것만, 좋은 생각, 좋은 인식만 하고 싶어서 괴로움이라는 건데,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접촉하잖아요. 눈으로 보잖아요. 그 다음에 소리를 듣죠. 냄새를 맡죠. 입으로 맛보죠. 그러면 좋은 것은 집착하죠. 맛있다. 소리 좋다_더 듣자. 아름답다_더 보자. 가기 싫다. 그런데 나한테 좋은 게 아니면 회피하죠.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에서 말씀하시는 핵심이 뭐냐 하면, 일체는 12처다라고 한 것은, 여기서 잘 들으세요. 왜 일체를 12처라고 얘기했느냐하면 우리 살아가는데 있어서 몸뚱아리와 생각을, 인식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에요. 상당히 중요한 얘기인데, 그래서 좋으면 집착하고 추구하고, 싫으면 싫어하고 회피한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데 전부 그러냐 이거야.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 듣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접촉하고 살 수가 있느냐 이거지. 그렇지 않다 이거에요. 그래서 괴로움이라는 거예요.
‘눈을 뜨고 이 세상을 다시 봐라. 이 세상을 다시 봐라.’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우리가 중도 얘기 많이 들었죠? 중도. 팔정도는 중도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기서 말씀하는 건 무슨 얘기냐. 좋은 것만 찾아서 집착하고, 쫓아다니고, 싫은 건 피하려고 하면, 거기서 갈등과 불안과 이런 게 와요. 그러니까 중도라는 것은 좋고 나쁘고, 예쁘고 안 예쁘고, 맛이 좋고 안 좋고, 이 양변을 떠나라는 거에요. 그걸 중도라는 거요. 중요한 얘기에요. 이것이 안 되면 영원히 내가 오음성고, 내 느낌 좋은 느낌, 좋은 생각, 좋은 소리, 좋은 냄새, 이런 것만 계속 꿈꾸면 세상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아. 그러니까 괴로움이야.
그렇기 때문에 양변, 유와 무, 예쁘고 안 예쁘고, 많고 적고에서 떠나라 해서 팔정도를 중도라고 그러고, 오음성고에서 이게 왜 부처님은 괴로움이라고 얘기했냐. 그렇잖아. 어떻게 보면 염세주의요.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고. “야, 나는 오늘 방송국간다고 이렇게 꾸미고 나왔는데, 스님이 전부다 이게 고통덩어리라고 하더라.” 그러면 누가 불교공부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것이 기초 작업으로 해서 괴로움에 대한 근본처방이 안된다면 괴로움의 소멸이 없다는 거예요. 영원히 목말라 한다는 거예요. 갈애. 목말라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12처, 6근(안이비설신의) 6경, 경계 대상(색성향미촉법). 일체는 12처다. 오음성고, 이것은 왜 괴로움이냐. 이것이 우리가 한데로 좋은 것만 추구하고 그렇게 집착하게 되어있지 않고, 계속 좋고 나쁘고 좋고 나쁜 게 돌아가기 때문에 중도로 가라. 내 주장만 가지고 따라주기를 바라지 말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다른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거,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할 수이는 게 중도에요.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면 배척되지를 않아요. 더 쫓아와요. 그렇죠? 괴롭다고 버리면 더 많이 오네. 그러기 때문에 중도라는 것은 배척도 안하고 같이.
‘즉’이라는 것. 즉. 번뇌즉 보리. 그러죠. 즉, 번뇌는 나쁜 거요. 보리는 보리심 좋죠. 좋은 거고. 그런데 이것이 같다는 거요. 즉. 이코르. 같다. 그러니까 예쁜 거 안 예쁜 거, 좋은 소리 나쁜 소리가 구분되는 게 아니라 같이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된다. 그래서 불교수행은 육안만 가지고 좋은 소리다. 좋은 냄새다 맛있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고, ‘즉’을 알아야 되요. 같다. 번뇌가 곧 보리다. 연꽃은 더러운 땅에 피더라. 더러운 물을 먹고. 더러운 건 괴로움이라면 우리는 괴로움의 자양분을 먹고 연꽃같이 피어나자. 피하려고 하지 말고, 안 피해져요. 그런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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