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Buddhastudy 2018. 10. 23. 20:11


자기 판단의 기준을 넓히려면 어찌해야 할지...

여기서 판단 기준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부분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두고

자기의 기준 잣대에 의해서 판단해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좋다 싫다를 판단하는 그런 기준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길에 있는 민들레를 민들레 그대로 보는 것과 같이

사람도 그렇게 보고 싶은데...

그런데 자꾸 개인 기준 잣대로 판단을 하다 보니까

있는 그대로 보지를 못하고 자꾸...//

 

기준을 어떻게 넓혀요? 말이 좀 이상하다.

네네, 그런 기준은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기준을 넓힌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되지 뭐.

 

예를 든다면 여기 두 사람이 앉아 계시는데, 두 사람이 얘기를 해요.

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신이 어디 있노? 신은 없어.”

, 신을 안 믿으면 어떻게 하나? 신이 우리의 모든 운명을 다 좌지우지 하는데

이렇게 한 사람은 있다 그러고 한 사람은 없다고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어요?

, 진짜 있나? 진짜 없나?” 이런 생각이 들죠.

 

밤새도록 얘기하고, 사흘을 얘기하고, 한 달을 얘기해도 끝장이 날까? 안 날까? 안 나요.

이럴 때 있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보고 없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이 허황된 소리를 한다그러고.

있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사람을 보면서 불쌍하게 여겨요.

주님을 모르다니, 어리석은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이네.”

이렇게 되기 때문에.

 

그런데 그건 간단해요.

어떻게 간단 하냐?

이 사람은 있다고 믿고, 저 사람은 없다고 믿는 거요.

믿음의 문제에요.

 

신이 객관적으로 있나? 없나의 문제가 아니고

이 사람은 있다고 믿고, 저 사람은 없다고 믿으면

믿음은 다를 수가 있어요? 똑같아야 되요?

다를 수가 있으니까 아무 문제도 없죠.

저 사람은 있다고 믿구나’ ‘저 사람은 없다고 믿구나

이러면 깨끗하게 끝나잖아.

 

그걸 왜 있느냐 없느냐. 그래?

, 저 사람은 믿는구나’ ‘저 사람은 없다고 믿는구나

이렇게 접근하는 거요.

 

믿음이 다르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은 종교가 있고 어떤 사람은 종교가 없다 그러면

종교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허황되게 여긴다. 이것도 마찬가지에요.

 

이거는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이거는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니까

둘의 믿음이 다를 뿐이지.

종교가 있고 없고 그렇게 접근하지 말고

둘이 믿음이 다르구나. 한 사람은 있다고 믿고 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구나.

 

종교의 자유에는

종교를 선택할 자유도 있고, 종교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믿을 자유도 있고 믿지 않을 자유도 있고

믿을 자유 중에 어느 신을 믿든, 어느 종교를 믿을 자유도 있다.

이래야 되는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주로 믿는 데 어느 걸 믿는 것만 자꾸 종교의 자유라고 그래요.

종교는 무슨 자유가 있다고? 안 믿을 자유가 있는 거요.

 

대산 민국 사람 중에 인구통계 내어보면 종교를 안 가진 사람이 절반이 넘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믿는 종교 중에 제일 숫자가 많은 종교가 뭐에요? 무교에요.

무교도 아주 좋은 종교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종교인이에요. 무교. 안 믿는 사람.

 

그러니까 안 믿는다는 건 세상 모든 걸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그런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어떤 초능력자,

내가 부탁하면 나만 특별히 봐주는 자,

이런 존재가 있다. 이런 거를

예이, 그거 허황된 소리지.

그런 게 있으면 그냥 공부 안하고 빌면 되지,

일은 뭐 하러 하노? 그냥 빌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이오.

이런 사람이 무교에요.

 

이거는 종교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말로 하면 그런 존재를 믿지 않는 자다. 이 말이고,

또 그런 존재가 있다고 믿는 자다.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안 믿는 사람 불쌍하죠. ?

그 분께 부탁하면 다 되는데, 저 바보 같은 놈이 그것도 모르고 자기 혼자 힘으로 한다고 저렇게 아우성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단 말이오.

 

그래서 이게 사상의 자유, 믿음의 자유, 이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이렇게 말하는 자유에 속하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르다고 알면 된다.

이념이 다르구나. 생각이 다르구나. 믿음이 다르구나. 취향이 다르구나.’

 

예를 들면 부부가 음식을 마련했는데, 남편이 음식을 먹더니

여보, 이것도 간이라고 맞췄어?”

어떤 데?”

이거 무슨 짜서 어떻게 먹어?”

입에 딱 맞구만은.”

 

한 사람은 짜다 그러고 한 사람은 싱겁다 그럴 때,

어느 한 사람이 맞고 어느 한 사람이 틀린 거요?

둘이 입맛이 다른 거요?

입맛이 다른 거요.

다를 뿐이다. 입맛이 다르다. 이렇게 접근하면 되는 거요.

, 입맛이 다르구나.”

 

이 두 사람이 입맛이 다를 때는 한 집에 살면 어떻게 맞추면 될까?

짠데 맞춰서 물을 타야 될까?

싱거운데 맞춰서 간장이나 소금을 넣는 게 나을까?

. 그럴 때는 싱거운데 맞추고, 짠걸 좋아하는 사람이 간장을 넣으면 되는 거요.

그런데 남자가 짠데 맞춰서 부인보고 물타 먹어라. 이러면 싸움이 일어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가 맞추는 방법이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 이 강당이 덥다. 어떤 사람은 춥다. 그렇게 해요.

여기도 서로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덥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몸에 열이 있거나 그런 경우도 있지마는 비교적 저 위에 있는 사람은 더워요. 밑에 있는 사람은 다리가 시려요.

왜냐하면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이런 문제에서 적절하게 조절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종아리 내놓고 추운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저 위에서 더운 사람은 밑으로 내려오고. 이렇게 순환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리를 적절하게 찾는 길이 있고, 그 다음에 강의 중에 자리를 못 옮기면 더워도 땀 좀 흘리고 참아야 되고, 추워도 숄 꺼내서 두르고 참는 수밖에 없다.

 

저는 지금 좀 더워요. 왜 그러냐하면 오늘 날씨가 약간 쌀쌀했죠. 그래서 이거 보세요. 평소에 내 옷 아닌 잠바를 하나 얻어서 입고 왔어요. 추울까 싶어서. 그랬더니 지금. 이런 옷은 공기 순환이 잘 안 되는 옷이잖아. 그죠?

조선 옷은 다 공시 순환이 잘 되거든요. 그런데 이걸 입어놓으니까 따뜻한 반면에 지금 같으면 목에 지금 땀이 줄줄줄 뒤에 나있어요. 이래도 어떻게 해? 조금 기다리라고 그러고 갈아입고 올까요? 하하하. 조금 흘리면 되요.

 

이렇게 조절하는 거요. 이 방안이 덥다 하는데, 강의 끝나고 나와 보니

저 위에 있는 사람은 왠 강의 장이 그렇게 덥노?”

밑에 있는 사람은 왠 강의장이 이렇게 춥노?” 이런단 말이에요.

 

한 방에 자는 부부도 서로 틀리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도 있는데 다른 사람도 있다.

그럴 때, 너가 문제다. 내가 문제다가 아니라,

, 이게 서로 느낌이 다르구나. 그러면 누가 덥다 그러면 추운데 맞추면 더운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옷을 좀 벗어야 되고,

더운 데다 맞추면 추운 사람은 옷을 좀 입어야 되고이렇게 조절을 하면 되는 거요.

 

이게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같아야 된다.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거요.

 

현실은 다른데 자꾸 같아야 된다고 하니까

자기하고 다른 상대가 틀린 사람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회 안에도 종교가 서로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진보 보수 이념이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다양성이 되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자기와 다른 상대를 틀렸다고 얘기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니까 다를 뿐이다.’이렇게 접근하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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