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산책을 하다가 애완견에게 다리를 물렸습니다.
이렇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로부터 내 몸이 다쳤을 때
어떻게 관점을 바꿔야지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성인군자처럼 굴 때의 입장과
보통 사람 입장일 때를 구분해서 물어야지
“부처님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부처님 같으면 빙긋이 웃었었겠지, 물리고도.
그런데 자기가 부처님도 아니면서 부처님 흉내를 내려고 그러면 그렇게 해야 하고
“부처님이 아니고 그냥 공부 조금 하는 수준일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떤 상태를 기준으로 해서 묻느냐는게 중요하지.
예를 들면 보통 사람이라면
그때는 발로 개를 차든지, 몽둥이가 있으면 때려 버리자 해야지
왜냐하면 이게 정당바위거든요.
그걸 여러분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사람이 때리면 방어할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당방위라는 권리가 있잖아요.
사람이 때려도 정당방위할 권리가 있는데
하물며 짐승이 덤비는데 당연히 정당방위의 권리가 있지.
그걸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거 하고
내가 화가 난 거 하고는 별개 문제라는 거다.
수행자는 화가 나느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이건 어쩔 수 없는데
화가 나는 건 내가 수행이 덜 되어서 화가 난 거다,
이거는 개 때문에도 아니고 주인 때문에도 아니고
내 뜻대로 안 되니까 화가 난 거다.
이거는 반성을 해야 할 일이고
그러나 개한테, 주인한테 내가 어떻게 행동할 거냐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에 속한다.
개한테 물린 것에 대해서 고소를 해서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자기의 권리에 속한다.
개를 바깥으로 데리고 다닐 때는 반드시 목줄을 하거나
입에 마스크를 껴서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도록 하는 게 예의에요.
그런데 자기 애완견이라고 그것도 안 지키고 다 풀어놓고 다니는 것은
자기한테 애완견이지 다른 사람한테는 위협적 존재라는 거요.
자기가 키우는 사람은
큰 사냥개도 하나도 위험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엄청난 맹견에 속한다.
이게 잘못된 거예요.
그것은 처벌을 받아야 하거나 배상을 해야 한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지,
개한테 물리니깐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내가 수행이 좀 부족해서 화가 났구나.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자기가 개를 좋아하니까
개의 권리가 더 중요하고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는 일이 벌어진다.
근데 이것도 뭐 잘못됐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집착을 하면 애정을 가지면 그게 더 중요한 가치가 되거든요.
그것도 뭐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으나 평균적으로 그렇다.
개도 반드시 목줄을 하고
맹견은 반드시 입마개를 해서
자기가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위험이 되는 거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자기가 좋으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가 된다는 걸 전혀 생각을 안 해요.
특히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한테 물린 사람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개를 더 걱정 해요.
이런 현상은 왜 생기냐?
지금 너무 애정이 쏟아져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낳아서 못 키우고 버려진 것을 보살피는 건 신경 안 쓰고
개나 고양이가 버려진 거는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럼 이 사람이 잘못됐나? 그거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누구나 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안 돌본다고 문제를 삼고,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는 옳지가 않다.
그건 자기 종교를 안 믿는다고 지옥 간다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관점을 가지시고
내가 화를 내거나 하는 건 자기 수행이 부족하다.
웃으면서
“아이고, 물려 보니 따끔하네, 병원에 갔더니 별 거 아니네” 하며 받아들이되
재발 방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물려서 위험할 걸 대비해서
반드시 주인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해서
다시는 그렇게 개를 끌고 다니지 않도록 해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거지
“아이고, 복숭아 한 상자 먹고 됐다”
내가 볼 때는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수행자는 자기 문제는 가볍게 받아들이되
이것이 타인에게 갈 거를 생각해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호랑이가 우리 어머니를 물어 죽였기 때문에
내가 호랑이를 죽인다하면 이건 복수에 들어가는 거예요.
수행자는 복수를 하면 안 된다.
그러나 그 호랑이가 다른 할머니를 또 물 것을 막기 위해서
호랑이를 죽인다면 그건 복수 개념이 아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해 왔기 때문에
스님들이 막 일본 사람을 죽인다면 그거는 세속 사람이다.
그러나 왜구가 너무나 많은 사람을 학살하기 때문에
그 피해를 막기 위해서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행자에게는 바람직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임란 때 승병이 생긴 거는 그런 정신에서 생긴 거지
세상 사람처럼
“왜놈들 밉다, 죽여라” 이렇게 하면
그거는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제가 볼 때는
광견병이나 애완용 동물 주사 맞히니까 덜한데
어쨌든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건 좋은데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미국 가면 애완동물 중에 뱀 키우는 사람 많습니다.
백화점에 가면 뱀을 팔아요.
근데 그 뱀 키우는 거,
자기는 뱀 가지고 뱀을 목에 걸고 좋다고
뱀을 다른 사람 있는데 가서 강아지 다루듯이 놔두면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들이 기겁을 할 거 아니에요.
그거는 나쁘다 이렇게 말해요.
그 사람도 뱀을 좋아하고 위험하지 않아요, 실제로.
보기에 징그럽다 이런 거지.
그러면 그게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면
아무리 내가 뱀을 좋아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듯이
내가 고양이, 개, 쥐, 애완용 동물을 좋아하는 거 하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걸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 조사해보니
개,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쥐를 또 엄청나게 겁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쥐를 애완용 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있잖아요, 하얀쥐
호주머니 넣어서 맨날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럼 다른 사람 그런 사람 보면 막 놀라서 기겁을 하잖아.
그러니까 이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강아지를 좋아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거지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개를 무서워해서 개를 멀리하면
“아이고, 동물을 사랑 안 하네” 이렇게 말하는 거는 나쁘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거는 항상 옳고
남이 하는 건 다 그르다, 이런 관점에 있기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물려도 병원에 가니까 큰 상처 아니네, 괜찮네” 이렇게 하지만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손해 배상을 청구하든지
반드시 내가 한 달간 당신 관찰해 보고
목줄, 입마개를 안 하면 내가 고발하겠다고 해서 못 하게 해야지
복숭아 한 박스 먹고 내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고
이런 거는 내가 볼 때 바람직한 건 아니다.
사회정의, 수행자로서 내 마음이 좋아졌다는 건 좋은지 몰라도
수행자는 반드시 사회적인 정의를
최선을 다해서 실현해 나가야 수행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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