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건강에 이상이 있는데 만약에 무리하게 임신이 된다면 장애가 될 확률이 높잖아. 그죠? 그러면 장애가 되더라도 애기를 꼭 낳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까? 안 그러면 그걸 몰라서 낳았더니 장애다 하면 물론 당연히 키워야 되지만은. 애기가 건강상 심각한 장애가 있는데도 내가 낳는 게 나아요? 그렇다면 나를 위해, 나나 그 아이를 위해서도 애기가 안 생기는 게 낫겠어?
그러니까 거기에는 장애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확실하게 ‘장애다.’ 그러면 어떻겠어? 엄마가 알고 자기 아이를 가지면 장애아가 된다는 걸 뻔히 알고 만약에 애기를 낳았다면, 키우는 거 힘드는 건 고사하고, 아이를 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애를 갖겠다는 거요? 좀 굉장히 불분명하잖아. 애기가 장난감이 아니잖아요. 내 노리갯감이 아니잖아. 아이가 다쳐서 장애가 됐거나, 낳았더니 장애라면 그건 책임지고 키워야 되지만은.
내 건강이 이상으로 애기를 낳으면 장애가 될 확률이 높다 하는데도 무리해서 애기를 낳은 다면 그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느냐는 거요. 누구를 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할 거 같아요? 남편이 좋아할 거 같아요?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애기를 갖고 싶은 마음이 할머니 할아버지 바라는 거 채워주려는 거, 남편 바라는 거 채워 주려는 거, 이런 거잖아. 그 애기가 애기가 목적이 아니잖아. 여기에 우리가 좀 반성이 돼야 돼요.
이것은 돈을 목적으로 일하는 거나, 크게 진배없어요.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돼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집에 내가 살기 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애기를 낳는다. 그럼 애기가 나중에 자기가 이 세상에 그래서 태어났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마는. 그렇게 생각하면 불행을 자처하게 된다. 진찰을 딱 체크해 봤더니 애기를 낳는 몸으로서는 좀 부적당하다. 그러면 애기를 안 가져야 되는 거요.
남편과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애기를 가져서 꼭 문제를 풀라고 그런다면 그건 자기가 그만큼 남편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거요. 또 애기 때문에 남편이 나하고 같이 산다면 남편 입장에서 이해는 되지마는 나 때문에 같이 살아야지. 애 때문에 같이 살아야 되겠어요? 그 자체가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여기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인생에 자신감이 지금 없어요. 그래서 몸을 딱 체크해 봤더니 불임일 가능성이 높은 몸이다.
그러면 내 몸이 또 문제냐? 아니에요. 자꾸 관계만 맺으면 애기를 가져서 문제인 사람 많죠? 그래서 낙태해서 괴로워하고 신체 안 좋은 사람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부부생활 하고도 애기도 안 생기고 그러면 좋은 몸이요? 나쁜 몸이요? 좋은 몸이요. 아무 몸에 이상이 없어요. 애기를 원할 때는 나쁜 몸이고, 애기를 원하지 않으면 하나도 몸에 이상이 없는 몸이요. 그러니까 내 몸 자체도 이상이 없는 몸이다.
지금 나에게 솜이 한 움큼 있는데 이걸 갖고 이불을 만들어야 되는데. 내가 칼이 필요하다고 솜을 자꾸 눌려서 칼을 만들려면 노력은 많이 드는데 성과는 없어. 나에게 쇠붙이가 하나 있는데 이걸로 송곳을 만들면, 칼을 만들면 쉽게 만들 수 있는데. 그 쇠붙이를 어떻게 해서 이불을 만들겠다. 그건 기적이 일어나도 잘 안 되는 얘기요. 그것처럼 내가 애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인 걸 가지고 자꾸 애기를 만들려고 하면, 그건 마치 솜을 가지고 칼 만드는 거와 비슷하다 이거요. 그럼 이게 나쁜 몸이다. 아니다. 이 말이야. 솜은 솜으로의 용도가 있다.
그런 데서 첫째 자기 몸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된다. 내가 지금 용도에 맞지 않는 걸 지금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 몸을 먼저 체크해 보고 건강에 이상이 있다 하면 거기 맞게 인생을 살아야지 무리해서 생각하면 화를 자처한다. 두 번째 건강에 체크해 보니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런데 애기가 없다. 그러면 이게 지금 내가 애기 낳을 준비가 안 됐다 이런 얘기요.
만약 애기를 낳았는데 애기가 낳자마자 몇 개월 만에 몇 년 만에 갑자기 죽는다 그러면, 애기를 낳는 게 나아요? 안 낳는게 나요? 안 낳는게 낫지. 그러기 때문에 인연과 과보를 아는 사람은 ‘아~ 내가 애기 가질 준비가 아직 덜 됬다는 뜻이구나. 그래서 나보고 애기를 갖고 싶으면 애기 가질 준비를 하라고 시간을 주는구나.’ 그러면 부지런히 정진을 해야 돼요. 애기를 가질 그런 마음이 되도록. 인연이 맺어지도록. 그래서 애기가 없던 사람이 기도해서 애기 낳는다 하는 건 그런 거란 말이오.
기도해서 애기 낳은 사람 중에 나쁜 결과를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기도해서 애기를 낳는다 하는 것은 애기가 중심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애기를 낳는 거는 애기 안 낳고 싶은데, 둘이 좋아하다 보니 애가 떡 생겼어. 그럼 떼버리려다가 할 수 없이 낳아 키워. 애기가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들으면 어떻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기분이 나쁘겠어요? 기분이 나쁘지. 자기 존재감에 귀함이 없어요.
그래 어머니한테 들으니까 아이고 너 낳으려고 내가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이 산 저 산, 이 절 저 절 다니며 7년을 기도해 너를 낳았다. 어릴 때 이런 얘기 들으면 나를 낳으려고 엄마가 엄청나게 고생을 했구나. 정성을 엄청나게 쏟았구나. 이런 얘기 들으면 자긍심이 딱 생기는 거요. 그래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를 위해서 생각을 접어야 될 것. 자꾸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두 번째 몸에 이상이 없으면 지금 나에게 미래에 닥칠 불행을 지금 막고 있다.
그러니 애기를 가질 준비를 하자. 그래서 수행을 열심히 해서 보살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하다. 엄마 마음이 보살 마음이니까. 그다음에 애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다만 입태가 잘 안 된다. 수정이 잘 안 된다. 이러면 요즘 과학기술이 발달했으니까 수정시키는 것만 잠깐 도움을 얻어서 내 몸에 이상이 없다면 해 볼 수는 있겠죠. 그런데 몸 자체에 이상이 있다. 그러면 집착을 딱 끊어야 돼.
입양? 이거는 좋은 일이에요. 어떤 사람이 애기를 낳았는데 키울 형편이 못되고. 나는 애기를 키우고 싶은데 낳을 형편이 못되니 서로에게 좋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애기가 정말 필요하면 애기가 있어야 되고, 키우고 싶다 하면 애기를 입양하면 되요. 그때 애기를 입양할 때 마음 자세가 어때야 되느냐? 이건 ‘남의 애를 데려왔다.’ 이 생각을 버려야 되요. 일체가 유심조요. 딱 내 품에 안기는 순간 내 자식이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자식이다. 이 생각이 확고부동해야 됩니다.
내가 낳아도 내 자식 말썽 일으키는 경우 있어요? 없어요? 내가 낳았는데도 장애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러기 때문에 입양해도 그런 경우가 있는 거지. 남의 자식이니까 말썽을 피우거나, 남의 자식이니까 장애가 있거나. 그런 거 아니다. 이 말이오. 여러분들 다 부모님이라고 하는데 진짜 나를 낳은 사람인지? 안 낳은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아는 사람 손들어봐. 그렇게 안다? 그렇게 내가 믿고 있는 거지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애기를 입양해서 오늘부터 ‘내 자식이다.’하고 탁 마음 정하고 일체 바깥에다 얘기 안 하면 그 아이는 평생 알까? 모를까? 몰라요. 그거 다 옆에서 얘기해 줘서 그렇단 말이오.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 입양을 하려면 저기 어디 임신했다. 그러고 휴가를 내가지고 저 어디 외국에 가서 좀 놀다가 한 1년쯤 있다가 애기 낳아서 데리고 왔다. 그럼 큰애 입양하려면 2~3년 있다가 오든지.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게 좋아.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고 자꾸 얘기를 하거든. 갓난아기를 입양하려면 아예 아무도 모르는 게 제일 낫고, 조금 큰 애를 입양하려면 애도 입양했다는 걸 분명히 서로 아는 게 좋아.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입양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처럼 키워야 돼. 키우는 게 부모여. 똑같은 여자 몸인데 엄마라 그럴 때 하고 여자라고 그럴 때는 개념이 틀리죠. 엄마 하면 엄청 강한 사람, 신 같은 존재이고. 여자하면 가냘픈 존재이고. 똑같은 사람인데.
그러니까 엄마가 돼야 된다. 이거야. 엄마라는 것은 기르는 자요. 낳는 자가 아니라 기르는 자다. 내가 키우면 내 자식이오. 그러니까 애기 없이 둘이 살든지. 왜? 스님은 혼자 살잖아. 그런데 둘이는 부부 관계 갖고 사니까 훨씬 조건이 좋잖아. 그러니 애기 없이 무자식 상팔자다.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그죠? 애기 없이 사는 게 복이다. 하고 받아들이면 돼요. 그리고 애기가 필요하다면 입양을 해서 하는 게 좋다.
갓난 애기를 입양하고 싶으면 일체 모르는 게 좋고. 그다음에 조금 그래도 한두 살, 사물을 인식한 뒤에 입양하면 아예 그것을 정성을 들여서 키우되 숨길 필요는 없다. 숨긴다. 그러면 나중에 커서 그게 다 어떻게 됩니까? 자기에 대해서 자기가 엄마인 줄 내 알고 자랐는데 이웃집에서 쑥덕거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어머니 아니다. 그러면 상처가 됩니까? 안됩니까? 되지. 어릴 때부터 친어머니가 아니지만, 친어머니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서 키우며 은혜롭게 생각한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미 사물을 인식하는 수준. 2~3살 됐으면 오히려 밝히고 키우는 게 낫고. 애한테 “니 입양이다.” 이런 말 하라는 게 아니라. 물으면 그걸 솔직하게 얘기하고 키우는 게 낫고 아이도 어릴 때부터 알고 자라는 게 낫고 아예 갓난 애기를 입양하려며 아예 아무도 모르는 게 낫다. 그런 선택을 딱 해서 애기를 키우세요. 공연히 그거 저기 건강이 안 좋은데 자꾸 애기를 가지려고 하는 거는 불행을 자처한다.
그러고 언제나 애기를 키우거나 애기를 가지려면 애기가 중심이어야 되거든. 내가 필요해서 애 데려오기보다는 엄마가 필요한 아이를 내가 데려와서 엄마 역할 해야 되겠다. 마음을 이렇게 먹어야 입양해도 성공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데려오면 그건 강아지 데려오는 거와 똑같다. 어린아이는 누군가가 보살펴야 되는데 아무도 보살필 수가 없다니 내 이 아이를 책임지고 보살펴야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애기를 데려다 키우면 낳은 아이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도리 수가 있습니다.
왜 둘만 살자 그래? 부모님 모시고 살면 되지. 종갓집하고 무슨 상관이야. 딱 자기중심이 서야 돼. 내가 들어보면 자기중심에서 흔들리는 거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문제는 전혀 아니에요. 자기가 지금 거기에 어떻게 붙어살려고 전전긍긍하는 거요. 왜 애기를 갖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래? 자기의 수행과 자기의 삶으로서 그 분들을 보살피고 그분들과 더불어 사는 행복을 추구해야지. 왜 제힘으로 해야지. 애 힘을 빌리려고 그래. 그 자세가 잘못됐어요.
자기 힘으로 해요. 행복을 자기 힘으로 얻어야지 그러면 부처님 당시에 얘기하고 똑같아요. 우리 관세음보살 된 것도 다 그런 얘기 아니오. 관세음보살님 되신 얘기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기 어려운데 왜 애 키워주면 먹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시집간 얘기. 또 7살 어린 아이가 죽었을 때 겨자씩 얘기 나오는 거 그것도 뭐요? 부잣집에 애기가 없어가지고 그 집에 씨받이로 들어가 애기 낳아 키워서 애기 낳은 거로 대우받고 살다가 애기가 갑자기 죽어버리니까 어때요?
엄마로서 자식이 죽었다는 것뿐만 아니고 자기 인생이 끝이 나버렸단 말이오. 왜냐하면. 그 집안은 애 때문에 이 여자를 받아들인 거지 딴것 때문에 받아들인 게 아니란 말이오. 그랬을 때 인생을 방황해서 좌절했잖아. 애기를 안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그래서 그런 여자도 깨우쳐서 자유와 행복으로 가도록 안내를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애를 가지고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마세요. 자기 행복을 자기가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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