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얘기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저는 행복합니다. 이대로 좋습니다. 아주 만족합니다.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세요. 그렇게 자꾸 기도를 하면 그렇게 됩니다.
Q2.
팔정도. 여덟 가지 바른길, 팔정도 가운데 첫 번째가 정견입니다. 바르게 봐라. 바르게 본다가 어떻게 보는 게 바르게 보는 거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그것이 정견이다. 이것은 지혜가 있어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 못 봅니다. 마치 제가 끼고 있는 이 안경에 빨간 색깔이 들어있는 안경알, 빨간 색깔의 유리를 끼고 있다고 하면. 저 흰 벽이 빨갛게 보입니다. 푸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있으면 저 벽이 푸르게 보인다.
그럴 때 나는 저 벽은 푸르다. 저 벽은 붉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정도몽상이라고 그럽니다. 저 벽은 사실은 희지마는 내 눈에는 어떻게 보인다? 푸르게 보인다. 내 눈에는 푸르게 보인다. 이게 진실이오. 사실은 희다. 이것도 진실이고. 내 눈에 푸르게 보인다. 이것도 진실이오. 내 눈에 푸르게 보이는 것은 거짓이 아니에요. 내 눈에 푸르게 보이는 것도 진실이오. 그런데 저 벽이 푸르다. 하는 것은 거짓이오.
즉 내 눈에 푸르게 보이는데 저 벽이 푸르기 때문에 내가 푸르다고 인식을 한다. 이렇게 착각을 한다. 즉 내 눈에 푸르게 보이는 거를 객관화 한다. 이게 뒤집어졌다. 전도몽상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들은 각각 자기 업, 업식이 있습니다. 그 업식이 이 안경과 같아요. 그래서 바깥사물이 그 업식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인식되어 지는 것은 그 업식에 의해서 변형된 색깔 모양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잘못알고 있다.
그래서 넌 나쁘다. 너는 좋다. 너는 어떻다. 어떻다. 어떻다. 마치 이건 빨갛다. 이건 파랗다. 이건 노랗다. 이런 거와 같아. 안경을 딱 벗고 보면 흰 색깔이오. 안경을 벗고 보면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이오. 그 사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법륜스님 볼 때 좋은 사람이오? 나쁜 사람이오? 좋은 사람이지. 그럼 법륜스님이라는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이건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한 사람이오. 그런데 여러분들 안경을 끼고 나를 볼 때는 무슨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오.
그런데 또 딴 안경을 끼고 나를 보는 사람은 어때요? 나쁜 사람이오. 어떤 여자 분이 나하고 연애 좀 하자고 선물도 하고 편지도 쓰고 10년을 따라다녀도 꼼짝을 안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볼 때는 어때요? 스님 참 훌륭한 스님이지. 그 여자가 볼 때는 어때요? 아주 인간 더러운 인간이오. 아시겠어요? 아주 나쁜 인간이에요. 그래서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따로 없습니다. 다 각자 업식에서 형성돼요. 좋고 나쁨은, 옳고 그름은. 나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다. 나에 의해서.
그래서 앞에서 얘기한대로 아버지가 문제다. 엄마가 문제다. 남편이 문제다. 이런 게 생겨요. 아버지도 문제고, 엄마도 문제고, 남편도 문제면, 누가 괴롭다? 내가 괴로운 거요. 내가 비참한 인생이오. 지지리 복이 없지? 왜? 태어나니 나를 낳아준 부모도 문제지. 어찌어찌 결혼했더니 재수 없게 또 남편도 문제지. 좀 있으면 또 재수 없게 애도 문제지. 지지리 이제 불행한 인간이 되는 거요. 이 불행을 자기가 계속 만들어 가는 거요.
그런데 할머니 손에 자랄 때는 엄마아빠가 그리웠어요? 안 그리었어요? 그리웠지. 그러면 술주정뱅이든 싸웠든 어쨌든 엄마 아빠가 없는 거보다 있는 게 좋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나는 있지 않으냐? 이렇게 사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남편의 문제도 좋은 남편을 만나든지, 또 남편을 만나도 좋은 면이 보일 텐데. 한 번의 상처가 있으니까 자꾸 나쁜 면만 자꾸 보이는 거요. 자기 불행을 자기가 자처하는 거요.
그래서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이 업식을, 이 안경을 벗어버리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이런 얘기요. 다른 말로 하면 지혜라고 한다. 정견. 법의 실상을 본다. 그러면 안경을 못 벗었더라도 어떻게 하면 정견에 가까우냐? 예. ‘내 눈에 푸르게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 ‘저 색깔이 푸르다.’ 이러지 말고 어떻게 말하라고? ‘내 눈에 푸르게 보인다.’ “너는 나쁜 인간이야.” 이러지 말고, ‘내가 보기에는 나쁘게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나쁘게 보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쁘다 좋다 라고 말할 수가 없어. 아무튼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여러분이 내 설법을 듣고 “에이 법륜스님 설법 틀렸어.” 이러면 내가 기분 나쁘나? 안 나쁘나? 나쁘지. 그런데 여러분들이 법문을 듣고 여러분 생각에 “에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오. 그럴 때 스님한테 와서 “스님 법문을 듣고 제 생각에는 스님 법문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제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이러면 나보고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지. 자기 생각이 그렇다는 거요.
나 기분 하나도 안 나빠. “아, 그래요? 생각은 자유니까.” 그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푸르다고 그러고. 어떤 사람은 붉다 하면 이게 싸움이 되는데. 제 눈에는 푸르게 보입니다. 한 사람은 제 눈에는 붉게 보이는데요. 하면 싸움이 안 돼. 자기 눈에 그래 보인다는데 어떻게 할 거요. 그럴 때는 ‘아~ 저 사람 눈에는 저게 빨갛게 보이구나.’ ‘저 사람 눈에는 저게 좋게 보이구나.’ 옛날부터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죠? 그죠?
그러니까 그게 달리 보이는 데도 갈등이 안 생기고 공존이 되는 거요. 차선책이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안경을 벗고 흰 것을 희다 하고 아는 게 정견이지마는, 내 눈에 푸르게 보일 때는, 내 눈에 푸르게 보인다면 그것도 진실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실지로 내 눈에 푸르게 보이니까. 그러니까 시비분별을 하지 않는 마음이면 좋은 마음이지마는, 시비분별을 해도 괜찮아요. 시비분별을 할 때 고집하면 다툼이 되지마는 내 눈에 좋게 보이는 거요.
그 사람 말 들으니까 내가 내 기분이 좋은 거요. 내 기분이 그냥 나쁠 뿐이오. 스님 그 말씀들이니 제가 기분이 나쁩니다. 자기 기분 나쁘다는데 내가 뭐라고 그럴 거요? 그야 뭐 바다보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바다 보고 기분 나쁜 사람도 있는데, 나를 시비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그렇다는 거요. 적어도 차선책은 가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대부분 하수요. 하수. 네가 나쁜 놈이야. 여기에 지금 사로잡혀 있다. 즉 전도몽상의 상태다.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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