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힐마인드] 견성체험 l 인식과 감정의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Buddhastudy 2022. 2. 23. 18:41

 

 

 

오늘은 견성체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집에 계신 시간도 많아지게 되고,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다보면

내면으로 돌이켜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면을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제 주변에도 마찬가지고 마음공부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십니다.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이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신경을 쓰게 되면

어느 순간 누구든지 다 겪게 됩니다.

....을 반드시 겪게 되죠.

 

견성체험은 말 그대로 진아, 아트만을 살짝 한번 엿보는 단계거든요.

이렇게 되면 개인의 입장에서도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굉장히 모티브가 생겨요.

힘이 좀 생기고 뭔가 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에너지를 얻는듯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왜냐하면 인식의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요한 인식의 차이라면 아무래도 그거겠죠.

부분의식, 이기적이고 나는 이 육신 안에 갇혀있다, 이 육신이 나다라고 하는 믿음에서

견성체험을 하게 되면 그런 인식이 조금 스며듭니다.

 

어떤 의식이냐 하면 전체의식.

나의 존재는 이 육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구나라고 하는 그런 인식을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게 합니다.

 

그거에 대한 완전히 발달되어있는 촉은 아직은 없어요.

그렇지만 토양에서 새싹이 한뿌리가 요렇게 자라났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거 보단 그래도 뭐라도 하나 나타나면 그게 그나마 좀 이런 더듬이 역할을 해준다고 할까요?

 

마치 그런 거죠.

물에 그런 느낌을 손을 휘저어서 느끼는 거 말고

팔꿈치라든가 이런 무릎 같은 거로 요렇게

이게 물인가?”ㅎㅎ

너무 좀 비약이 좀 심합니다만

그래도 그런식으로라도

, 이게 이 느낌이구나라고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생각, 이 몸이 나라고 느꼈었던 그 생각에서

, 우주가 나였어” “, 저 옆에 있는 사람이 나였어

그리고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산을 보고 이 삼라만상을 다 봤을 때,

나구나라고 하는 그 인식이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저희는 수행하는 사람들끼리는 견성체험이라고 말씀드렸죠.

이것을 인지하느냐, 인식하느냐, 맛을 봤느냐 라는 것에 따라서 변곡점이 생기는 것에요.

갈림길이 생기는 거예요.

 

이걸 인지한 사람은 다른 차원으로 살게됩니다.

그거에 대해서 영향을 받은 거죠.

엄청난 영향이라 저는 그랬어요.

 

어떻게 했냐하면 밥을 먹다가

견성체험이 딱 되어 있는 상태에서 밥을 먹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울어요.

밥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오셨어. ㅎㅎ 라고 하면서

밥알을 한알한알 씹을 때마다.

 

그때는 몸이 나이기 때문에 허기짐, 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그런 단순한 습관으로 밥을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견성체험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 진행 중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내가 몰랐던 감각이 이렇게 많았구나, 이런 정보가 이렇게 많았구나라고 하는 인식의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의 그런 인식의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들이 마음의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고,

그런 마음 공부를 계속함에 있어서

그런 견성체험을 하고, 누구는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더 전력을 다해서

, 깨달아야 하겠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별에 왔고, 내가 도대체 이 일을 왜 겪고 있는가에 대한 그런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계속 탐구하고 계속 그 끈을 놓지 않고 가게 되면

반드시 거기까지, 그 물음의 해답을 얻게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다짐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부분의식

이 몸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서부터 비롯된 그런 생각

생명의 그런 이기성,

이 몸 안에 내가 갇혀있구나라고 비롯되어 있는 것

그 인식은 뭐냐하면 이기적인 마음인 거죠.

 

내 생각과 내 욕망과 내 감정이 이 몸 안에서, 그냥 이 몸 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늘 이 안에서만 맴맴 도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 수행을 통해서 그리고 내가 스스로 수행을 통해

내 마음 자락을 한 자락을 느끼고

어떤 것들이 나의 이런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있는지

그것을 마음의 때를 벗기는 순간

안 하는 사람과 한 사람의 갭 차이는 가면 갈수록 더 커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정말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에는?

 

약간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종이 갈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거의 인식의 차원이 계속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데

이 삶은 거의 물질적인 거, 낮은 주파수대로 놀다 보면

갭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앞전에 이야기했던 그분들은 분명히 머리와 표면의식과 무의식의 괴리가 점점점 줄어들어서

시크릿에서 이야기하는 바라자마자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단계까지 돌입하게 되는 거고

후자인 경우에는 머리 따로 마음따로가 되는 거죠.

 

머리로는 잘살고 싶습니다만

몸에 구족되어 있는 그런 현상들은 아직도 그런 습관에 젖어있어서

계속 해왔던 습관을, 해왔던 행위를 행동을 계속 반복해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늘 고통을 받는 사람은 계속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고

이기적인 습성의 몸에 젖게 되다보면

그 원인이 생겼던 그것들이 그 일들이 나의 몸에 구족되어 있지 않고

나의 몸에서부터 비롯되어 있지 않고

환경 때문이다라고 그렇게 책임을 전가해버리게 되는 거죠.

 

--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표면의식과 무의식의 상태가 좁아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나거나 안된 사람이 못났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너지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몸이 나라고 믿는 순간에는

에고의식으로 살게 되는 거고 부분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나와 남이 분명히 나워져 있는 생명체의 시각으로 외부 환경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보다보면 앞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런 원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게 돼요.

 

내가 뭔가 결핍되어 있고,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은 예를 들어서

돈이야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버는 쪽으로, 돈을 많이 모든 에너지들이 다 돈 버는 쪽에 신경을 쓰게 되겠죠.

그런 쪽으로 계속하다 보면

에고가 바라는 것은요,

늘 이기적인 마음이고, 그런 나의 입신에 대한 마음이고, 편하고 쾌락적인 마음이지 않습니까?

이런 너무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그런 마음을 계속 쓰다보면

늘 후유증이 남아요.

본래 생명의 이기성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전체의식 쪽에 이런 쪽의 개념에서의 그런 뭔가를 바란다? 라는 것은

종교적으로 따진다면 거의 신의식이 내 몸과 나와 신과의 그런 교감

이런 합일, 상태에 이르러서 소원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소원은 곧 우주의 소원이고, 신의 소원이다.

이렇게까지 확대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의 괴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말하는 즉시 기적 같은 일은 바로 벌어지게 되는 거죠.

 

이게 곧 어떻게 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죠.

직관, 영감이라든가, 번뜩이는 아이디어, 나도 모르는 그런 우주의 지혜

이런 것들을 영접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한 사건을 보더라도 그게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사건이 나한테 무슨 영향을 끼치고 메시지가 뭔지

그것을 분명하게 아는 순간

그 생각과 그 인식은 그 반향은 엄청납니다.

 

이러기 위해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거죠.

전혀 다르지가 않고요.

 

나는 이 몸에만 매여있는 존재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되고

그 인식 바탕 하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내 배우자와 내 가족과 내 아이들과 내 직장에 있는 동료들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그 인식 하에서 다시 구축하게 됩니다.

구축이라는 거 보다는 본래 있었는데 새로 알아내는 거죠.

발견하게 됩니다.

본래 있어 왔었는데 에고 의식에 의해서 가려져 있던 것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