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컴퓨터, TV, 만화만 보면 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처녀 때 엄마가 아버지께서 TV를 켜면
여자 나오는 것만 보고 있다고 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그 인연인지요.
이럴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애들이 맨날 컴퓨터 앞에 붙어 있고
또 맨 TV만 보고 있고, 또 만화책만 보고 있고 이러면
부모 입장에서는 좀 싫죠.
부모 입장에서는 어떤 게 제일 좋습니까?
공부하고 있는 게 제일 좋죠.
근데 그거는 부모의 입장이다, 이런 얘기죠.
그게 정말 좋으냐? 이렇게만 볼 수가 없다.
제가 어릴 때는 시골에서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애든 어른이든 다 일을 해야 돼요.
늘 그 어른들 하는 소리 보면
뉘 집 아들은 다 컸는데 입벌이도 하나 못 한다.
입벌이 하러 간다. 입벌이 못 한다.
입벌이라는 게 요즘 말하면 직장이라 이런 얘기인데
그때는 직장이 우선 밥만 먹으면 그게 직장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안 식구는 많은데 입이 무섭단 말이야.
그러니까 애가 컸으면
지 먹을 거는 자기가 벌어야 된다.
입벌이는 해야 되는데
다 큰 게 입벌이도 못하고 있으면
부모 속을 무지 썩이게 되죠.
어릴 때 기억을 보면 초등학교 땐데
학교에서 내 숙제를 한다고 학교 갔다 와서
봄날인지 여름날인지 모르겠어요.
마루에 엎드려가 숙제한다고 이래 있으면
아버님 오셔서 이렇게
“소 풀 베러 가거라” 그러는데
조금만 더 한다고 계속 엎드려, 가라는데 안 가고 있으면
짝대기를 갖고 마른장을 때리면서
“야, 이놈은 소성아!
책 보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이러거든요.
그럼 책 보다 집어 던져 보고
낮 쥐고 망태기 둘러매고 보리밭에 소풀 베러, 독새 베러 가든지
논둑에 베러 가든지 가야 된단 말이야.
그럼 그때 입장에서 부모가 볼 때는
아들이 어떤 게 제일 보기가 좋습니까?
소풀 베고, 뭐하고 이 일하는 게 보기 좋지.
방에 앉아 공부하고 있고 이런 거는 노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얘기에요.
이렇게 시대에 따라 다 다르다 이거야.
우리가 어린 시절에 아이들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거는
그때는 TV도 제대로 시골에는 없고 하니까 만화죠.
중고등학교 때 보면 애들 만화 보고 공부 안 한다고
애 없으면 만화방에 쳐들어가고 두드려 패고 난리가 난단 말이야.
그러다가 또 한때 보면
중고등학생들이 영화 보러 가죠.
영화 그것도 봤다고 학교에서 정학시키고
벽에 보면 착 이름을 써 붙여서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거예요.
요즘 제일 큰 문제는 뭡니까?
TV이도 한 물 같죠.
TV는 한 10년 전에 TV이고, 요즘은 컴퓨터 게임이에요.
애들 거 붙었다 그러면
마치 노는 판에 간 애들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죽으나 사나 그것만 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거예요.
그것만 하면 물론
일해야 되는데 일 안 하고 놀음을 한다든지
또 공부해야 되는데 공부 안 하고 TV만 본다든지
공부하라는데 공부 안 하고 만화만 본다든지
또 공부해야 되는데 공부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한다든지
하는 거는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좀 있기는 있습니다.
그것만 하고 제 나이 때 안 하면 문제죠.
그러나 그만한 나이때 그 유행은
모든 아이들이 다 겪는 일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게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은
또 그게 무조건 잘못됐다
그래 되면 애가 문제가 있다
이런 건 아니에요.
다 자신이 자라난 과정을 젊은 시절에 보면
만화 본다고 야단 맞았든지, TV 본다고 야단 맞았던지
안 그러면 우리 같으면
어린 시골에 애들 맨날 일거리가 없으니 어때요?
화투장 갖고 육백을 치든지, 나이롱뻥을 하든지
그것도 맨날 하고 있다고 야단을 맞든지
다 그 나이에 그런 어떤 일거리로 부모하고 마찰이 있다.
그런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일반적인 것이다.
이렇게 오히려 받아들이는 게 좋다.
그럼 내버려 둬야 되느냐?
그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이 뭐 크게 잘못됐다, 애가 나빠진다.
이렇게만 볼 수는 없다 이거야.
그게 ‘크게 나쁜 게 아니다’ 하는 거를 먼저 내가 알고
그러나 그게 지나치게 너무 빠지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시간을 조금 효율적으로 쓰는 게 좋지 않겠느냐?
이런 관점에서 오히려 얘기하는 게 좋다.
그다음에 두 번째 아무리 그만두라 그래도, 그만 안 두죠.
그건 왜냐하면 거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재미를 붙여 있기 때문에
일종의 정신적 중독성 비슷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이가 이 생각은
야단을 치면 그만둬야 되겠다 생각하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몰래몰래 자꾸 하는 거야.
그러니 이걸 정말 그만둬야 되겠다, 바꿔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아이에게 야단만 쳐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뭔가 다른
다른 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게 좋다.
그래서 야단을 치는 데는 조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야단을 안 치고 무조건 오냐오냐 해도 잘못되지만은
야단을 본인이 생각할 때 억울하다 싶은데 야단을 치게 되면 어떠냐?
반발심이 일어나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 생각해서도 된다.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된다.
다 인간이 자라는데 일정한 그런 시기가 있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관점에서 보지 마라.
이해하는 측면에서 먼저 봐라.
그러면 그냥 둬야 되느냐?
그냥 둘 수 있으면 그냥 두고
내가 생각할 때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 하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야 된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그런 얘기했잖아요.
애들 보는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
아이들이라는 것은 어른 하는 거 보고 고대로 배우는 거다.
너무 아이 취급을 하지 마라.
자꾸 요놈아.
그래서 머리 쓰다듬고 자꾸 애 취급을 하면
자꾸 아이도 반발심도 생기고 어리광도 피우는 거예요
가능하면 이렇게 어른으로 대우해 줘라.
대우를 어른으로 해주면서 일을 할당할 때도 어때요?
어른으로 할당을 해 가는 게 필요하다.
애 취급하면서 자꾸 심부름만 시키면 얘들이 어떠냐 하면
자기를 어린애 취급한다.
그러니까 반발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회의를 하거나 이런 자리에 가능하면
한 집안 식구로서, 한 가족의 구성 멤버로서
같이 일정한 멤버로 취급을 해 주면서
어려운 게 있어도 같이 얘기하고, 역할 분담을 하고
이런 방식으로 해야,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중학교를 넘어가면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지 않습니까?
옛날 같으면 장가를 보내거나 시집을 보내도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에 걸맞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되는데
오늘 우리 부모들은
육체가 이미 다 어른이 됐는데
계속 어린이 취급을 해서 과보호를 하기 때문에
마마보이가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 아직도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나이에
어른처럼 일 시킨단 말이야.
요즘 아동 노동 착취, 그런 문제가 그러잖아요.
그 성장 과정에서는 돌봐야 되는데
안 돌보고 일을 시키기 때문에 아이들을 억압하는 거다.
요즘은 억압이 문제가 아니라 과잉보호가 문제다.
억압이든 과잉보호든
둘 다 성장의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불안한 이유는 뭘까?
그건 본인이 조금 더 살펴보세요.
본인이 더 깊이 살펴보면
“왜 그럴까?”
이것은 본인이 조금 더 깊이 살펴봐야 돼요.
어릴 때의 그런 경험이 주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이 정확하게 원인이다, 이것은
조금 더 면담을 하거나 심리 분석을 해야 될 일이지
그냥 본인의 한두마디 갖고
이렇다, 아니다 하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법륜스님 > 2002년 그 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1년 그 시절 젊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시숙이 팔아먹은 재산을 되찾고 싶습니다 (0) | 2024.12.16 |
---|---|
[2010년 그 시절 젊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죽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습니다 (0) | 2024.09.24 |
[2010년 그 시절 젊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타지에서 혼자 공부하는 아들이 무척 걱정됩니다 (0) | 2024.09.13 |
[2001년 그 시절 젊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우리 모두가 정말 부처인가요? (0) | 2024.09.12 |
[2001년 그 시절 젊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저는 시시비비를 많이 가립니다 (0) | 20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