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에 대해 지껄이는가?
무엇이든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에크하르트
“불교의 궁극적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 석두 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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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은 사실 필요 없습니다.
왜?
깨달으면 알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에 뭔가 답을 하는 사람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습죠?
그렇다면 당신은 왜 이런 질문과 답을 하냐고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만 깨달음이라는 것이 분명 있다는 것과
거기에 이르는 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작 깨달은 이들은
그것을 말로 하면 어그러진다고 하죠.
노자 도덕경의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가 가장 유명한 말이죠.
그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말도 있습니다.
“창조도 없고 파괴도 없다.
운명도 없고 자유의지도 없다.
길도 없고 도달함도 없다.
이것이 궁극의 진실이다.”
- 라마나 마하르시
물론 그것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수 없이 많은 말과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바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륙인이
바다에 대해 묘사한 그 수많은 말과 글을 듣고 보는 것이
바다를 체험하는 것과 같나요?
체험기를 달달 외워 말하면 바다를 아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그런 이야기보따리는
트럭 수만 대분을 가져다줘도
직접 바다에 가보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음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설명보다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바다에 가려는 이에게는
바다의 생김새와 특성에 대한 지루하거나 재미난 토의보다는
바다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바다인지 알 수 있도록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닷가로 가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지도에는 당연히
대략적인 거리와 교통수단, 예상되는 시간도 있어야 할 겁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조금은 쉬워집니다.
말과 글로는 전할 수 없다는 깨달음 묘사를 그만두고
그곳에 이르는 방법을 알게 되면
여행을 시작할 수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실 나름의 이미지와 관념에 기초해
지도를 해석하게 될 것이죠?
그렇다면 지도 위에 표시할 최소한의 기호에 대해서는
서로 약속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서남북 방향이나 높낮이를 어떻게 표시할지,
지형지물의 기호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나라마다 이게 다르다면
국경을 넘을 때마다 표기법을 다시 공부해야 하겠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고
통용되고 있는 많은 영적 지식을 통해
어느 정도 이런 기호들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기준선은 필요하겠죠?
그 기준선을 어디로 잡느냐 하는 것의 기준은
가능하면 세심한 부분까지
영적 전통에 의거해 잘 정리되어서
다른 것과 비교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 전통과 현대심리학에서 앎의 단계
즉 의식의 단계와 수준을 상정하는 것은
이제 일반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석학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매우 쉽게 주변에서 그런 이론들을 찾아볼 수 있죠.
그 중 이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켄 윌버를 한 예로 들어보면,
윌버는 의식은 한 수준에서
그 위의 높은 수준으로 진화, 발달하며
이런 의식의 스펙트럼은
깨달음 전통과 현대 심리학의 발견이 거의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음에 대해
조금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의식의 진화, 발달과
명확하게 대응하는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즉 깨달음이란
의식의 진화, 발달의 결과라는 겁니다.
“개인의 의식 진화는 인류 진화의 원시적 단계들을 통과한다.
그래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인간진화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 데이비드 호킨스
즉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의식의 진보, 확장이며
그 궁극은
개체의식이 스스로를 단련해서 순수의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식이라는 착각이 줄어들어 지워지고
그 의식의 공간을 더 높고 넓은 수준의 순수의식이
대체하는 지속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존재의 변용이 일어나
질적으로 그 전과는 다른 의식 상태가 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과정이면서
존재가 변화를 일으키는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의식의 수준 단계마다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의식의 수준에 맞게 깨달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깨달음 전통과
이른바 깨달은 이들이 전하는 사실입니다.
단계와 수준이라는 용어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그냥 한 번의 깨달음으로
이른바 열반에 다다르는 식의 구도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명백하게도
그렇게 깨달음에 이른 몇몇 성자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나중에 살펴보겠습니다만
그런 성자들도 분명
리가 단계와 수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깨달음의 척도, 의식의 척도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고 특정할 수 있습니다.
의식의 단계와 수준에 대해
가장 많은 반향을 일으킨 사람은
캔 윌버와 데이비드 호킨스일 겁니다.
영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캔 윌버의 의식 진화단계에 대한 설명과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수준 척도는
참으로 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죠.
우리가 깨달음과 의식진화 단계에 대해
연관시키면서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는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실 자신의 수준 이상의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 명백히 그러함에도
말과 글을 비교하고 등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상위수준의 의식에 대해
자신은 현재 수준에서 가지고 있는 이해를 근거로
추론 상상하면서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만일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한다면
두 사람 모두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도마복음
해탈이 뭔가요? 진리가 뭔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이해하기 쉬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표현일 뿐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그 의미는 오직
현재의 의식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교사실
위의 것을 끌어내려서
내가 아는 개념, 관념으로 풀어헤쳐 본
이해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의외로 쉽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생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의 범주는
많이 다릅니다.
더하기 빼기와 받아쓰기를 겨우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의 인지능력과
성인이 그것을 비교해 보면
더 명확하겠죠.
배가 고프다, 배가 부르다 같은
물리적 수준이 감각은
초등학생이나 성인이나 큰 차이가 없겠죠.
그런데 만약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초등학생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접근방법이
성인의 그것과 같을 수 있을까요?
성인이 느끼는 자신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자존감에 대해
초등학생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일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겠죠.
이른바 구슬과 딱지를 가지고 노는 성인을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초등학생에게 부동산 등기와 세대주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깨달음은 앎입니다.
진정한 앎은 그 앎을 통해 자신이 변화하고
그 앎 만큼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앎이 일회성이 아니라
의식 수준에 따라 다르며
의식 수준의 진화, 발전,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이해를 통해서
깨달음에 대한 섣부른 앎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른바 한방에 공부를 끝낸다고 하거나
그 반대로 타고난 그대로 살 수 있을 뿐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식의 오해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영적 지식을 이해하는 이유는
어쩌면 오해를 피해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은 여행에서
의식의 수준, 단계, 진화, 확장, 변형 같은 개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의식수준을 진보시키는
실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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