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Pleia] 엄마가 내 전생이 될 수 있는 이유

Buddhastudy 2025. 1. 16. 20:09

 

 

우리가 시간이라 여기는 것은 영원하고 유일한 지금을

여러 시각과 관점에서 보는 것일 뿐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한편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영화 속에서의 모든 시간들은

이미 필름이든 데이터이든

모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인물의 일생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우리가 보든 안 보든

그 인물에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

모두 한꺼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은 영화처럼

과정과 결론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루트가 있지만

시간이 동시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비유로는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영화든 현실이든 동시에 존재하는 이 시간대를

우리는 초점을 좁혀 차례차례 프레임 다음 프레임으로 보아야

스토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선형적으로 경험해야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어린 시절

혹은 1초 전의 존재들은

여전히 그들의 생을 살고 있는데

이는 소위 전생의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나와 전생의 나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늘 지금, 지금의 나만이 나이기에

이들은 현재 나와 에너지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다른 사람, 다른 인격으로 자신들의 삶을

나와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다른 점이라면

각각 다른 개별적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어떤 의미로는 같다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전생의 나는 엄연히 다른 개별적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개별적 영혼들도

오버소울의 관점에선 모두 나입니다.

 

오버소울이란

수많은 영혼들의 집단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이 오버소울인데

지금의 개별적 영혼으로 분화해 나와

육체적인 삶을 사는 나로 집중한 상태입니다.

 

오버소울은 손에

그에게서 분화해 나온 영혼들은 손가락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차원의 오버소울로서는

이 영혼들의 모든 삶을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나

물질적 차원을 경험하기 위해선

분리된 개별적 영혼을 통해 집중된 상태여야만 합니다.

 

템플릿 레벨을 거쳐 결정화

즉 크리스탈화된 오버소울의 한 부분이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템플릿 레벨에 대해 자세한 것은

제 영상 <내가 다차원 존재라는 뜻은>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버소울이 자신을 개체로 경험하는 방법은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듯한 형태를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영혼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각각 다른 영혼들의 동시다발적인 경험입니다.

 

이 경험을 연결지어서

마치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경험이

이른바 환생인 것입니다.

 

이 영혼들은 모두 같은 오버소울을 가지고 있기에

즉 오버소울 자신이 개별적 영혼의 경험을 하는 것이기에

모두 나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오버소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의 과거, 혹은 나의 전생이라 일컫는 현상은

같은 오버소울을 가진 존재들이

에너지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와 전생의 나도 지금 함께 존재하기에

그들을 현재 나의 관점에선 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평행현실에 나는 몇 명이나 있을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구에는 현재 약 1~2000명 정도가 같은 오버소울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시간대

즉 소위 과거나 미래에도

나의 오버소울의 개별적 영혼들이 있습니다.

오버소울의 모든 영혼들의 경험을

나의 전생으로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가능은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위 전생에 나는

몇백 년 전의 나일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 같은 시간대에 지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오버소울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나와 이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도,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친한 친구, 가장 미워하는 나의 원수

심지어 엄마가 나의 전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늘 새로운 경험이고 반복적으로 루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간이라는 것을 창조하였기에 가능한

마치 하나의 생 다음,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내 눈앞에 모든 사람들이 나의 전생일 수 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모든 존재가 바로 나의 소위 환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지금의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한다고 해도

곧장 지금의 내 삶이, 내 전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오버소울을 가진 이상

그 어떤 시간대도 상관없이 나의 전생 혹은 후생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는 어떠한 상호 연결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영혼이 선택하는 테마에 의해 결정됩니다.

 

환생의 경험은 가능하지만

환생이란 구조적으로 실제로 발생하는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하나의 큰 영혼이 작은 영혼으로 나뉘어

그 삶을 차례차례 경험하는 듯한 현상이 과거이고 전생이지만

이 모든 것은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듯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저 지금의 같은 순간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이 개념이 아직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도

반복적으로 듣고, 사유하시게 되면

언젠가는 보다 명확해지는 시간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환생의 경험과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며 확장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순수한 영의 세계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

바로 변화와 성장입니다.

내가 어떤 전생과 에너지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든

가장 중요하고 힘이 있는 시점은 오직 지금입니다.

변화는 지금 여기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생은 현재의 나에게 그 어떤 힘도 가질 수 없습니다.

최면을 통한 전생의 경험으로

현생이 소위 치유가 되는 것도

전생의 힘이 아니라

그것을 결정한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