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80회 내조가 힘들어요

Buddhastudy 2012. 11. 20. 22:03
출처: BTN

 

. 아이고 남자들 정치하는 거, 부인 중에 내가 보니까 십중팔구는 다 똑같아요. 다 저렇게 고생이에요. 그래서 하지 말라고 말리잖아. 그죠? 으음. 그런데 남자가 정치할 때 여자, 여성분도 야~ 오히려 남자보고 하라 그러고 좋아하는 그런 사람은 열에 한 명도 안 되는 거 같아요. 다 힘들어요. 사실은 조금 먹고 살만하면 고개 들고 살아도 되는데 정치하면 고개 내 숙이고 살아야 되잖아. 사실 자존심 죽이고 숙여야 되고, 부탁해야 되고, 또 부탁하는 것도 어렵지마는 부탁 들어주는 것도 쉬운 일이오? 어려운 일이오.

 

지난 15년은 그냥 부탁 하러 다니는 그게 힘들었지. 이제 지금 이렇게 남편이 뭘 하나 맡았으면 자기한테 또 부탁하는 사람 많아요? 안 많아요? 많지? 사실 그거 다 들어줄 수 있습디까? 없습디까? 그렇지. 짐이고. 아이고 괜찮아요. 아이고 힘들어요. 저런 거 생각하면 남자들 정치 안 해야 돼. 알았어요? 선거 때만 되면 나가는 사람들, 참 마누라 고생 많이 시켜요. 아이고. 나도 이게 상담을 해보고 하면 집안 안 돌보고 나라를 돌보는지는 몰라도 집안은 안 돌보고 그냥 자기 좋아서 저래 다니는데. 그런데 이왕지 이거를 어때요? 결정을 해야 돼.

 

이런 남자하고 살면 계속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될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하려면 니 알아서 해라.” 하고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질래. 그래도 살아야 되나? 그래도 데리고 어쨌든 지금 남자를 고칠 수는 내가 없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스님이, 자기가 결정을 해야 된다는 거요. 당연히 살아야 된다? ~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살아야 된다 그러면, 결국 나한테 주어진 이 짊은 피할 수가 없죠. 당연히 살아야 된다면. 선택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이 남자를 선택하려면 이 짐은 내가 같이 지어줘야 되고,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설악산을 가려면 다리가 좀 고단하게 걸어 올라가야 돼. 그러니까네, 다리 아픈 게 싫으면 설악산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러니까 이 고단함을 내가 포기하려면 버리려면 피하려면 남편을 포기해야 되고. 남편을 선택하려면 이 고단함을 지고 가야 되는데. 15년간 떨어졌는데도 걸려도 계속하려는데 그 정도 떨어졌다가 걸렸으면 포기 안 하고 계속한 사람이 앞으로 이분 계속할까? 안 할까? 자기가 볼 때 요점 한번 걸렸으니까 딱하고 그만둘 거 같아요? 계속할 거 같아요? 계속할 거 같죠.

 

그럼 자기는 일단은 자기 인생이 부부인생에서 누가 주가 돼 버렸어요? 남편이 주고 자기가 종이 돼 버렸어? . 주가 돼 버렸잖아. 왜냐하면, 내가 ~ 정치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면 남편이 그럼 내 이혼한다.” 그러면 이혼 안 하려고 나한테 달라붙으면 내가 주인이 되고, 이 정치를 해도 어때요? “아이고 헤어질 수는 없다. 아이고이래 생각하면 일단은 주가 누가 된다? 남편이 되고 내가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인생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죠?

 

그러면 이제 어차피 이 길을 가야 된다면 이렇게 자꾸 힘들어하면서 가는 게 좋아요? 어차피 설악산 갈 거면 단도리 해서 그냥 재미 붙여 가는 게 낫겠어요? 갔으면 좋겠죠? 그러려면 이런 말 들어봤어요? 좋은 자리. 정치할 때 떡~ 앉아가지고 폼 잡고 이런 거는 남편이 하고, 그렇게 남편이 하려고 하면 부인이 골목골목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가지고 나쁜, 어려운 일은 다 부인이 다 해줘야 이 남편 떡~ 목에 힘주고 일 할 수 있단 말이오. 학이 이렇게 위에 고고하게 물 위에는 있지만, 물밑에는 발이 빠르게 움직인다 듯이.

 

그러니까 둘이가 분담역할을 해야 돼요. 남편은 떡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거 하고, 자기는 그 얼굴을 위해서 손발이 되가지고 골목골목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섬겨야 된다. 이 말이오. 원래 이 시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군수든 뭐 다 무슨 선거를 해서 뽑은 사람은 주민의 뭐다? 대표하는 머슴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그 머슴을 선출한 주민들을 위해서 내가 다니면서 다 보살펴 드려야 나중에 계속 선거가 된다.

 

그럼 이기고 지는 거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건 시절 인연에 맡겨야 돼. 바람이 어떻게 불든 나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본인이 즐겁게 스님은 아무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선거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도 이런 데 와가지고 사람들 고민도 들어주고 얘기도 나누고 해요? 안 해요? 하는데 자기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결과에 무슨 이득이 있잖아. 남편이 선거에 이긴다는 이득이 있잖아. 그지? 그러니까 좀 기꺼운 마음으로.

 

어차피 하는 일이니까 어차피 할 바에야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이렇게 가볍게 마음을 내고 사람들을 이렇게 만나고. 부탁을 할 때 그 사람들 보면 만약에 시장을 하거나 군수를 하거나 이러면 청탁 중에 내가 민원인이 됐을 때는 민원 해보면 대부분 잘 안 들어줘. 그런데 내가 민원을 받아보면 민원 중에는 얼토당토않은 게 너무 많아. 그러니까 힘들어. 사실은. 이게 시장하기도. 그런데 이제 자기가 항상 민원인 마음이 돼야 돼. 이걸 옳으니 그르니 구분하지 말고.

 

얼마나 답답하면 나한테 찾아와서 저 사람이 저렇게 하소연할까. 아이고 그래요. 그래요. 아이고. 이렇게 그 사람 마음이 돼서 등을 두드려주고, 제가 힘이 못돼서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힘이 못돼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차피 민원하는 거 다 들어줄 수 있습디까? 해보니 없습디까? 안되죠.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다 될 수도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걸 다 하겠다 하는 것만 욕심이 아니고. 남의 얘기를 내가 다 들어주겠다는 것도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도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어. 되는 게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안 되는 것도 어때요? “감사합니다.” 이래야 돼. 그런 것처럼 남이 나한테 부탁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건 해드리고. 못 해주면 어떻게 한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돼. “~ 죄송합니다. 제가 그걸 해봤는데 제가 그걸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고 욕 좀 얻어먹으면 돼. 그러니까 그건 자기가 저거지. 아직 자기 잘났다는 걸 딱 움켜쥐고 있으니 그렇지.

 

욕을 기꺼이 얻어먹어야 된다. 기꺼이. 그걸 안 해줬으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욕하고 싶겠냐? 그래. 내가 욕이라도 얻어먹어 주자. 소원은 못 들어주는 대신에 욕이라도 좀 얻어 먹어주자. “욕 실컷 하시오.” 이렇게 마음을 내야 돼. 기도는 어떻게 하느냐?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 성당에 다녀요. 성당에 다니면 첫째는 예수님에 대한 걸 자기가 생각해 봐야지. 예수님의 가르침의 구원기준이 어떻게 돼 있어요? 마태복음 25장에 구원 기준이 있는데.

 

얼마 안 돼요. 최후의 심판 날, 죽께서 오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워가지고 양떼와 이리떼를 나누듯이 두 패로 탁 나눠가지고 이쪽 편에 앉은 사람보고 너희들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질지언정.” 이렇게 얘기해요. 이 사람들이 일어나서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됩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주렸을 때 먹을 걸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을 안 했고,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안 줬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도 안 왔다.” 나쁜 놈이다. 이 말이지.

 

그래서 너희는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니까 주여,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고 우리가 언제 그런 걸 하지 않는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왕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누구한테 안 한 거다? 나한테 안 한 거다. 이게 심판기준이에요.

 

교회 열심히 다녔다고 천국 가는 거 아니란 얘기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심판의 기준이에요.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 천국이 너의 것이니라. 왜 그러냐? 다섯 가지의 너희들은 나한테 했다. 이거야. 그것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뭐다? 나에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가톨릭 세례를 받았으니까 예수님 가르침을 따라야 된다. 알았어요?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이런 건 예수님이 가르침이 아니에요. 그건 유대교 논리요. 유대교 논리. 그러니까 크리스천이라면 심판의 기준이 뭔지를 알아야 돼. 그러니까 자기가 시장부인으로서, 무슨 구청장 부인으로서가 아니고, 뭐 어떤 단체장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가톨릭 신자로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마음을 내고 다 사람들 얘기를 기꺼이 들으면 돼. 그러면 신앙과 이게 일치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딱 일어나서 주님, 제가 주님을 섬기는 것은 가장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겁니다. 오늘도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 요렇게 마음을 딱 먹고 가면, 그 사람들이 막~ 얘기할 때 아이고 저 미친놈들이런 생각이 안 들고, 그들 속에 또 주님이 있는지 모른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불교 같으면 관세음보살이죠. 저들 가운데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있을 줄 모른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아침에 일어나서 하세요. 성당에서는 108배 해도 되죠? 절하면 안 돼요?

 

우상숭배가 아니잖아. 절하는 거 그죠? 그러니까 108, 108배 안 하면 우리 한국에서는 성인이 몇 명이오? 103명 아니오? 그죠? 아시죠? 성인이니까 103배 하세요. 5배 빼줄게. 103배 절하면서 주님. 주님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가장 작은 자 하나가 주님이라고 생각하고 섬기겠습니다.’ 요렇게 기도하면 그 사람들 부딪힐 때 화가 안 날거요.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더 물을 거 있으면 물으세요. 됐어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