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228회 남편에게 보살이 되고 싶은 직장생활 하는 주부

Buddhastudy 2013. 1. 3. 05:04

출처 YouTube

 

. ~ 마트에서 일하면 힘이 들어요? 안 들어요? 남편이 조금만 뭘 해도 해주면 내가 이 고생까진 안 해도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 때 없어요? 내가 힘들 때마다 아이고 남편이 좋은 직장까지는 굳이 없다 하더라도, 노가다라도 하든지 자기가 좀 열심히 일하면 내가 이 고생까지는 안 해도 되지 않느냐?” 이런 게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 이 말이오. 그 말은 남편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원망이 있다. 이 말이오.

 

그러면 내가 남편에 대해서 이런 기대가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원망이 있는데, 남편이 부처일 수는 없잖아. 그죠? 그런데 자꾸 내가 남편이 부처입니다. 남편이 부처입니다.’라고 하면 거짓말이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가 종교라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은 진실해지는 거란 말이오. 자꾸 자기를 속이는 게 아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기도를 자꾸 거짓말로 기도 하면 안 돼. 부처가 아닌 걸 자꾸 부처라고 하니까 자기가 하면서도 자기한테 자기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남이 돈 잘 벌고,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남편을 못 만난 내가 원망스럽고, 또 그런 남편 만나서 사는 여자를 보면 부럽지마는, 반대로 그 말썽꾸리기 남편을 당신은 부처입니다. 당신은 보살입니다.’라고 하는 그런 여자분들은 내가 진리를 모를 때는 미쳤나.” “저 여자 돌았나?” 이런 생각이 들고, 내가 이렇게 깨달음장도 갔다 오고 뭔가 진리를 알면 나는 저렇게 안 되는데 저분은 정말 그렇게 하는 거 보면 그것도 또한 어때요? “부럽다.” 이 말이오. 으음.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양쪽에 부러움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좋은 남편 만나서 편안하게 사는 여자도 부럽고, 남편이 말썽꾸러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남편을 부처님처럼 받드는 여자도 부럽단 말이오. 이게 나의 현실이다. 현재 내가 놓여있는 처지다. 이걸 먼저 자각해야 된다. 그러니 그 여자분을 말썽꾸러기 남편 부처님입니다. 하는 것도 내가 부러워할 일이 아니고, 돈 잘 버는 남편 만나 편안하게 사는 여자도 내가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이 말이오. 본인은 현재의 자기를 봐야지 자꾸 남을 본다. 이 말이오.

 

담배를 피울 때는 누군가가 담배 못 피우게 할 때, 그런 환경에서 담배 못 피우는 게 내가 괴로움이라면, 내가 끊겠다고 또 마음을 냈을 때는 못 끊는 내가 또 괴롭다. 그럼 뭔가 변화가 왔느냐? 하나도 변화 온 게 아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내가 옳고 부모가 잘못했다 해서 부모를 미워한다고 괴롭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내가 불효한 잘못을 돌아보면서 또 나를 보고 또 괴로워한다. 후회하면서. 그러니까 이거는 정반대 같지마는 똑같은 거다. 심리현상이.

 

그래서 그 깨장에서 남편을 보살이라고 보는 그 여자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오. 이제는 남은 보지 마라. 그건 그들의 인생이지. 나를 봐야 된다. 나를 보면 본인이 아까 얘기한 데로 아침에 슈퍼에 가서 일하는 거는 육체적으로 힘들잖아. 그죠?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다 정신적으로 힘든 거 아니에요. 저 산꼭대기 산장이 있는데 거기에 음료수라든지, 라면이라든지, 이런 물건을 거기서 팔려면 지어다 올려야 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럼 일당 5만 원이든 10만 원 받고 지고 올라가는 사람은 힘이 들어요? 안 들어요? 힘들죠.

 

그런데 또 그만한 무게로 텐트니 뭐니 짊어지고 또 등산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 사람도 힘들겠어요? 안 힘들겠어요? 힘들지. 둘 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게 비슷한데, 돈벌이를 위해서 지고 올라간 사람은 육체만 힘들어요?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요? 그런데 놀러 가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죠. 그러니까 육체가 힘들다고 다 힘든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내가 몇 번 얘기하지마는 디스코 장에 가서 춤을 추는데 돈 내고 추는 사람은 논다 그러지. 돈 받고 추는 사람은? 일한다. 그래.

 

똑같이 하는데 돈을 받으면 일하는 거고, 돈을 주면 노는 게 된다. 그러니까 그 슈퍼마켓 가서 일하는 것도 만약에 내가 돈을 주고 내가 원해서 그 일을 하면 그건 뭐가 된다? 노는 게 될 거고. 돈을 받고 가서 그 일 하면 뭐가 된다? 일하는 게 된다. 노동이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가지고 돈도 받고 놀면 더 좋잖아. 안 그래요? 왜 꼭 놀 때는 돈을 줘야 돼? 돈도 받고 놀고. 으음. 그러니까 일을 놀이 삼으면 육체적으로 피곤하지마는 정신적으로는 괴롭지가 않다. 이 얘기요.

 

그러니까 여기 정토회 출근해도 와가지고 법당 청소하고, 방석 깔고, 사무보고 다 일해요? 안 해요? 하죠. 사실 직장하고 똑같잖아. 그죠? 그런데 이건 뭐라고 그래요? 웃으면서 봉사라 그러잖아. 왜 봉사일까? 돈을 안 받으니까. 돈을 받으면 뭐가 된다? 일이 되요. 파출부가 돼요. 그러면 이제 돈을 받으면서도 또 많이 주니 적게 주니 일을 많이 시키니 적게 시키니 뭐 말이 많아요. 봉사할 때는 일을 많이 했니 적게 했니 이런 말 자체가 없어요. 자기가 원해서 하기 때문에. 12시까지 해도 추가 수당 주나? 안 주나? 이런 생각 안 한다. 이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남편을 어떻게 보살로 볼 거냐. 이걸 과제로 삼지 마라. 이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남녀 평등사회고 여자도 다 마음만 먹으면 직장생활에서 생활할 수 있는 시대요? 없는 시대요? 있는 시대요. 조선시대 같은 데는 남편이 죽어버리면 여자는 수입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노동을 할 수가 없어요. 사회제도가. 그러니까 남편 없는 아내라는 것은 곧 가난해진다. 이런 얘기란 말이오. 지금은 시대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옛날에 그런 습관에 자꾸 젖어가지고 돈은 누가 벌어야 된다? 남자가 벌어야 된다. 자꾸 이런 생각 하니까 남편이 돈 못 벌면 자꾸 내가 결혼 잘못한 거 같단 말이오. 이런 생각을 버리고 돈은 내가 능력이 있으면 내가 벌 수도 있고, 남편이 능력이 있으면 남편이 벌 수도 있고, 또 둘이 다 같이 벌 수도 있고. 그러니까 남편이 번다, 안 번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내가 건강하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작장을 가질 수 있는 걸 내가 감사하면서 이렇게 생활을 하시면 돼요.

 

그런데 본인이 이제 선택을 해야 되는데 남편이 벌어주는 돈을 가지고 내가 살겠다. 그런 여자가 좋다 하면 아무리 곤궁해도 돈벌이 나서면 안 돼요. 굶어 죽어도. 아시겠습니까? 항상 뭐라고 그래야 되나? 저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당신 믿고 살겠습니다. 대신에 남편 보고 잘 버느니 못 버느니 이런 말 하면 안 돼요. 그저 10원 주면 10원 먹고 살고, 100원 주면 100원 먹고 살겠습니다. 불평을 안 해야 돼. 그러고 집에 오면 왕같이 받들어 줘야 돼. 으음.

 

예를 들어서 술집 같은데 가면 여러분들 가봤는지 안 가봤는지 모르지만 가보면 들리는 소문에 뭐라고 그래요? 손님 오면 왕같이 대답하죠? 왜 왕같이 대접할까? 자기 남편도 아닌데. 돈을 주니까. 그러니까 이분은 돈을 안 줘도 내가 왕같이 대접해야 되는데 거기다 돈을 줘요? 안 줘요? 많이 주든 적게 주든 주잖아. 그러니까 왕같이 대접하는 게 나쁜 거 아니에요. 해야 돼요. 그러고 왕같이 대접하면서 그저 주는 대로 살겠다. 이렇게 하면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다만 10원이라도 갖다 줄까? 안 갖다 줄까? 갖다 줍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선택을 해야 돼. ~ 남편이 벌고 내가 살겠다. 그 남편 모시고 살겠다. 이런 마음이면 텐트를 치고 살아도, 그냥 라면은 끓여 먹고 살아도, 그저 공손하게 남편을 대하고 살면 살아 진다. 이 얘기요. 그게 아니라면 내가 나가서 벌 테니까 당신 집에 있으시오. 이런 마음으로.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남녀평등 사회인데. 이렇게 탁 자신감을 갖고 가서 일하고 남편이 돈을 버니 못 버니 이런 생각을 놔버려야 돼. 그런데 여러분들은 남녀평등으로서 권리는 똑같이 가지려고 그러고, 돈은 누구 보고 벌라 그러고? 남편보고 벌라고 그러고.

 

그거는 어떤 직장에서 사장한테 월급은 타고 권리는 똑같이 행사하려고 그러고. 나중에 회사가 안 됐을 때 책임은 안 지고, 이렇게 하면 되겠어? 뭔가 사람이 돈을 받으면 심부름을 하든지.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뭔가 인간관계라는 것은 다 거기 나름대로의 원리가 있다. 이 말이오. 그런 이치를 좀 알고 여기 지금 계시는 분은 남편이 돌아가시고도 사시는 분이 있고, 남편이 병석에 누워있는데 자기가 돈 벌어서 평생 뒷바라지하고 사는 분이 있는데. 남편 돈도 잘 못 벌 바에야 죽는 게 나아요?

 

그다음에 병석에 누워있는 게 나아요? 아니지. 그런 사람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못 벌어 줄 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괜찮잖아. 그죠? 그러니까 그에 대한 불만이 없어지면 어떨 때 ~ 남편이 부처다.’ 이런 생각이 드느냐 하면, 현재 남편 하는 행동이 잘했다. 그러니까 부처라는 뜻이 아니라. 남편이 저렇게 소위 말해서 애를 좀 먹였으니까. 내가 깨달음장까지 갔지. 남편이 애를 안 먹였으면 내가 깨달음장 갔겠어요? 안 갔겠어요? 안 간다. 이 말이오.

 

그러면 이 법을 몰랐으면 내가 얼마나 인생살이 힘들었겠냐? 그래도 깨달음장도 갔다 오고 이 법을 아니까 어때요? 지금 직장생활 하는데도 아까 말하는 거 보니 힘들어 죽겠어요.’ 안 그러고 그래도 뭐, ‘할 만하다,’ 그러고 힘이 안 든다,’ 그러고. 어디 가서 배웠는지. 하하하. 그런 얘기 나오잖아. 그럴 때 남편이 ~ 남편이 정말 보살이구나.’ 이 말은 남편이 나를 이 좋은 법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구나. 이래서 그분도 남편이 보살이라고 하는 거요. 남편이 뭐 정말 잘해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도 남편을 항상 수행의 과제로 삼아라. 이 말이오. 남편의 행동을 보고 내 속의 분별심이 일어날 때 남편을 탓하지 말고, ~ 내가 이거는 이렇게 또 내 분별을 일이키는구나. 여기 또 내 분별을 일으키고나. 이렇게 자꾸 자기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으면 남편이 나의 스승이 된다. 수행에 스승이 된다. 이렇게 공부를 해나가야 돼. 이렇게 어느 정도 마음의 이치를 알고 그러나 실제로 가면 또 안 되잖아. 그럴 때 절을 하고 수행을 하는 거요.

 

그래 다시 정리해서 결론을 내면 기도문을 달라고 했으니까. 본인이 생각할 때도 본인이 한 성질이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데로 이 세상이 남편도 돈 잘 벌고 착착착착 잘 됐으면 내가 한 성질 꽤나 하는 거를 알 수 있었을까? 없었을까? 몰랐었겠지. 죽을 때까지 아마 제 잘난 멋에 살았을 거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남편이 하는 일도 안 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면서 내 성질이 좀 많이 드러났죠. 많이 드러나다 보니까 한쪽으로는 너무너무 힘들고 또 그래서 깨달음장에 가서 자기를 살펴보니까. ‘오 내가 한 성질 하는 인간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남편으로 인해서 내가 나를 봤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어쨌든 우리가 인생을 살 때 돈을 얼마 벌어주느냐? 뭐가 어떠냐? 이런 걸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하면 남편이 부족한 사람이지마는 수행적 관점에 서면 내가 나를 볼 수 있도록 되는 거.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는 거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로부터 해방되는 거요. 이게 해탈인데 이게 제일 중요하다면 이 제일 중요한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계기를 누가 마련해 줬어? 남편이 결과적으로 마련해 줬다.

 

그러니까 남편이 돈 벌어준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 이렇게 정말 생각만 옮겨간다면 남편이 고마운 사람이오? 안 고마운 사람이오? 고마운 사람이오. 그래서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당신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를 이 좋은 길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남편한테 감사기도를 해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현실에서 딱 보면 감사한 건 온데간데없어진다. 이 말이오. 하나도 안 고맙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 기도문을 해서 아~ 당신은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내가 기도를 했는데 하나도 안 고맙고 미워지니까 그때 나를 본단 말이오.

 

~ 내가 또 나에 사로잡히는구나. 내가 또 놓쳤구나. 그래 또 절을 하면서 ~ 참 남편 고마운 분이구나.’ 이렇게 고맙다 하는 것을 또 되새기고. 또 현실에선 또 미워지고. 그런데 또 정신을 차리면 , 그래 고마운 분이지.’ 이렇게 할 때, 어느 순간에 정지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내가 바라는 남편을 탁 내려놓게 되면 남편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구나.’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본인 묻는 거 결론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기도해라? ‘여보 당신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나를 이 좋은 법으로 인도해 주신 안내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요렇게 기도하세요. 하하하

 

여러분들은 기도하라니까 무조건 이렇게 스님 법문하는 거 듣고 아이고, 남편은 부처구나.’ 이래가지고 마침 일어나서 우리 남편은 부처입니다. 우리 남편은 부처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마음속에 털끝만큼도 부처라는 생각이 없으면서 억지로 부처입니다. 부처입니다. 부처입니다.’ 이러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거야. 그러니까 이걸 잘 살펴서 이렇게 내가 조금이라도 털끝만큼이라도 ~ 이런 각도에서 보면 부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게 잡혀야 그렇게 기도를 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내가 진리의 측면에서 보고 깨어서 보면 ~ 이분이 정말 나에게 보살의 역할을 했구나.’ 그런데 현실에서 딱 보면 그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또 내 욕구를 생각하면 또 미워지고. 이럴 때 당신은 부처입니다. 당신은 보살입니다.’ 이런 기도문을 가지고 미워하는 마음을 이겨낸다. 이 말이오. 무턱대고 하는 거 아니오. 그런데 요즘 이 사이비들이 참 많아요. 적당하게 만들어가지고. 그런데 왜 적당하게 만들까? 그러면 좋다더라. 또 이것 때문에. 역시 또 기복으로 돌아가는 거요. 아시겠습니까? 남편한테 절하면 좋다더라. 또 이렇게. 참 좋은 거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