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대행스님 법문

대행선사 법문1_ 주인공에 몰락 놔버려라

Buddhastudy 2023. 5. 15. 19:30

 

 

 

누구나가 내가 한 대가가

잘못한 대가는 잘못한 대로 올 것이고

잘한 대가는 잘한 대가대로 올 것이다, 이거죠.

 

그런 걸 모르겠걸랑은

우리가 한 달 내내 일을 하지 않으면

대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그 점 말이에요.

 

그러니 모두가, 일생 사는 게 모두가 다 그렇거든요.

그럼 부처님 법이 따로 있고 우리 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부처도 났고

부처가 났기 때문에 우리들이 부처를 섬기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한테 제일 근본적으로 우리가 말해드릴 것은

진짜로 자기 자신들을 믿어라! 이겁니다.

자신들을 믿지 않는다면 몰락 거기다 일임시켜서 참, 놔 버릴 수가 없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 내공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씨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기 때문에 또 움죽거리게 되고

이 삼합이 구성돼서 공존한다는 것을 우리 사실로써 증명해 봅시다, 이거예요.

그럼 증명해 보면 증명해 보는 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거야.

 

우리가 만약에 분별이 없으면 목석일 것이고

우리 영원한 그 생명수의 실상이 없다면 송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육신이 없다면 보이지 않으니까 무효고.

그러니까 삼위일체가 같이 공존한다는 거를 우리 전부들 알아야 돼요.

 

그럼, 부처가 어디 있느냐?

그렇다고 해서 부처를 무시하라는 거 아닙니다.

부처의 형상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에요.

부처의 말씀을 무시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오직 부처님 앞에 갔을 때는 부처님 그 형상이 내 형상이요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이요

부처님이 이날까지 가르쳐 주신 그 말씀이 바로 내 뜻이다, 이거예요.

 

그러니 여러 가지가 다 우리가

몰락 놔 버려라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이 자체가, 모든 일 하는 것도

이 세상 모든 일체 만물이 다 공해버렸으니

그 공한 자리에다 너도 놔 버려라.’ 이겁니다.

 

그럼 놔 버리는 자는 누구고 놔라하는 자는 누굽니까?

놔 버려라하는 자도 공()이요

놔 버린다하는 자도 공이다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말을 했으면서 말을 한 사이가 없다이 소리는

소리만 났다 뿐이지 말한 사이가 없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한 것은

자기 컴퓨터처럼 오관을 통해서 자기가 알고 있더라 이거야.

잊어버린 것도 잊어버린 거지만.

 

자기가 이날까지 지내온 거를 자기가 너무나 잘 알아.

그 아는 게 부처님이 아는 거예요.

자기 실상이 아는 거고.

딴 사람이 아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알고 있어요.

그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자체를 믿어라 이거야.

자기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자기를 이렇게 참, 이렇게 걸어오는 이 과정을,

어떻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거를 그렇게 내가 역력히 알고 있을까?

그 아는 놈이 누굴까?

 

그 아는 놈은 자기의 바로 생명수와 같기도 하고, 컴퓨터 같기도 하고

자기의 그 영원한 주인공이라 이 소리야.

그 주인공이라는 건 이름이지

바로 그 주인공이란 이름도 없으면서

바로 그, 에너지로 충당돼서 컴퓨터처럼 책정이 되는 걸 아셔야 돼요.

 

그러니까 놔 버리라는 건 얻다 놔 버려라, 하는 거냐 하면

자기 그 누군가, 그 알고 있는 자기가 바로 공했다, 이거야.

체도 없고 빛깔도 없는 거다, 이거야.

그러면서도 자기가 알고 있다, 이거야.

그건 부정 못할 거예요.

거기다 놔 버려라, 이거야, 모든 걸.

그것도 공이니까,

()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니까.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육신이 있기 때문에 바로 언짢은 일도 보고 좋은 일도 보지

그 좋은 일 언짢은 일 다 한데 합쳐서 알고 있는 자가 누구냐, 이거야.

그러니까 고달프다 고달프지 않다’ ‘좋다 즐겁다’ ‘나는 못살겠다 나는 괴롭다

아이구, 주먹 같은 분노가 치밀어.’

이런 거를 자기가 해 놓고도 자기가 알고 있거든요.

자기가 해 놓고 자기가 잊어버리는 게 아니고 모르는 게 아니야.

너무도 잘 알아.

자기가 한 해, 한 해, 한 해, 하루하루 24시간 걸어오는 거를

자기가 너무도 자기를 잘 알아, 남은 몰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생명수와 같은 자기 그 에너지가

전체에, 너 하나의 에너지만 있는 게 아니라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고 다 있으니만큼

그 에너지는 차이점이 나질 않아.

그래서 같이 돌고 있는 거야, 이렇게.

 

그렇기 때문에 그걸 포착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거는 ()’이라고 해.

자기가 진짜로 자기를 그, 나쁜 거든 좋은 거든 모든 걸 책정해서

자기가 아는 그놈이, 그놈이 컴퓨터 천체에 모든 걸 하고 있거든.

능력도, 오관을 통해서 컴퓨터처럼 들이고 내고 하는 것도,

바로 탐지기도, 또 텔레파시도, 이 통신도, 무전도

이거 다 하고 있는 거야, 고놈이.

 

내가 나쁜 거 좋은 거, 이런 거 말한 거 이런 거

하루 24시간 걸어온 거를 저녁 때 가만히 생각해 봐. 다 알게 되지.

다 알게 된 고놈 말이야.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고놈, 한 놈이, 그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고놈이

벌써 하고도 그 여러 가지 한 걸 다 알고 있더란 얘기야.

 

그 알고 있는 고놈이 바로 주인공(主人空)이자,

공이자 색이고 색이자 공이야.

부착돼 있으니까, 내 몸에 부착이 돼 있으니까.

 

그래서 내 몸과 사량은

항상 그 자기가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말할 수 있는 그 근본처, 주처(主處).

그 주처가 바로 누구냐?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

여기다 몰락 놔 버리란다.

그럼 놔 버리자.

, 그 주처에서 너 24시간 다, 여러 가지 하고 왔지 않느냐?

주처에서 너 여러 가지 말을 하고 왔지 않느냐?

행을 하고 왔지 않느냐?

그럼 네가, 아마 억겁 천년()서부터도 네가 끌고 왔을 거다, 나를.

 

그러니까 너는 내 바로, 내가 너한테 예를 올릴 수 있는

바로 내 조상이자 바로 자부처다 이거야.

원소다 이거야.

그래서 그걸 이름해서 주인공이라고 했다 이거야.

 

그러면 그 주처가 주인공이라고 이름을 했다면

주처(主處)라고 해도 좋고 주인공(主人空)이라고 해도 좋고 심주라고 해도 좋다 이거야.

또 마음의 주인이라고 해도 좋아.

그 뜻만 알면 돼.

모든 것은 일체 억겁 전 년서부터 해 내려온 게 그 주처에서 했다는 거.

 

그래서 벌레가 나방이 될 때도

벌레가 생각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끌고 간 거야, 나방으로.

그러듯이 사람도 이날까지 억겁을 거쳐 오면서

, 화해서 낳고 질척질척한 데서 낳고, 태로 낳고 알로 낳고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벌써 고등동물로서 화하고 말았다 이거야.

 

그러면 우리가 인간으로 돼서 그런 도리를 모르고

착한 것만이, ‘착하고 무능한 것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조건은 없어.

그렇기 때문에 이 학생들은 더군다나 더 앞으로

우리가 시대가 발전이 이렇게 된 이 시점에서

더욱더 마음을 계발하지 않으면, 그 주처를 알지 못하면,

그 주처에서 보이는 세상을, 안 보이는 세상을,

보이지 않는 생명을, 안 보이는 생명을

이 모두 보이는 생명 전부 100% 한 주먹에 쥐고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이 소리야.

그 도리를 모르면.

 

육신과 사량이 바로 난 줄 알지 말고

내 급한 근본적인 주처, 여러 가지가지 하는, 그 한 군데서 할 수 있는 그 주처

그 주처가 바로 자기 주인공이라고 이름을 지어놓은 거야.

 

그러니 거기에다

모든 거는 누가 하는가.’

한번 참구해 봐라 이거야.

 

누가 여기 왔는가?

누가 여길 오자고 그래서 왔는가. 오게 됐는가?

일체 만법을 누가 하고 있는가?

누가 말을 하게 했는가?

누가 가게 하고 오게 하는가?

이거를 가만히 생각해 봐.

그러면 자기 주처를 믿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 주처에서 하는 거는

우리가 발을 땅바닥에 대지 않고 석양의 빛을 따라서, 그 빛을 따라서 수레를 만들고

우리는 그 수레 위에 타고 맘대로, 동서남북을 맘대로 행할 수가 있고,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갈 수가 있으며,

상방하방을 맘대로 우리는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갈 수가 있다 이 소리야.

 

그러나 그뿐이 아니야.

볼 수도 있고

또는 내가 어떠한 자루 없는 자루를 쥘 수가 있고,

손이 없되 손이 있고 자루가 없되 자루가 있는

그 자루를 쥘 줄 알아야 만이 그게 주장자를 완벽하게 쥐었다 이 소리야.

 

내 근본 주처는 자루가 없으면서도 자루가 있어.

자루가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으니 없고.

그런데 보이지 않아서 없긴 한데

연방 자동적으로 나를 움죽거리게 한다. 이 소리야.

 

그러니 내가 고정된 관념으로써 고집하지 말자 이거야.

이게 나는 옳은데하고 고집하지 말고,

이게 옳지 않은데고집하지 말라 이거야.

이게 옳지 않다하는 생각도 주처에서 나온 거고

이게 옳다하는 것도 주처에서 나온 거야.

 

그러니 옳지 않다, 옳다.’ 하는 것이 나오기 이전을 말하는 거야.

이전 주처를 말하는 거야.

이전 주처는 무한량으로 그 능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그것을 계발하고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려면

오로지 그 주인공이라는 걸 항시도 놓치지 말고

항시도 그 주처에서 한다는 것을, 또 주처에서 들인다는 거,

오관을 통해서 주처에서 들이고 주처에서 내고,

항상 한 군데서 내고 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바로 거기에다가 모든 것을 일임해 버리니까 몽땅 놔 버리는 게 된다, 이 소리야.

 

놔 버려라!

놔 버리면서도 여여하게 살랬지 살지 말랬느냐!

여여하게 너까지 놔 버려라, 공했으니까.

 

그 주처만이 움죽거리게 할 수가 있는 거니까 말이야.

마음이 움죽거리지 않는다면 육체가 움죽거릴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몰락 놔 버려라. 몰락 부숴 버려라.” 하는 건데,

부숴 버릴 게 있나? 부숴 버릴 게, ?

 

그 주처는 체가 없는 거라

부숴 버릴 건덕지도 없고 붙을 자리도 없어.

허나, 각자 마음들이 그렇게 지어놓고, 고정되게 지어놓고선

거기서 풀려나지 못하는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 부숴 버리게 하기 위해서

몰락 주처에다 놔 버려라 하는 소리야.

 

주처 소리를 하지 않고 놔 버려라하는 거는

네가 여기 와 있으니까 네 자체가 바로 근본이요,

네가 근본이기 때문에 주처는 그 근본 속에 들어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벽을 치면 봇장이 울려야지

아니 벽을 치면 봇장이 울리지 않고 벽을 친 것만 보면 어떡해.

몰락 놔 버려라하면 몰락 놔 버려라하는 거를 듣는 자는 누구냐 이거야.

 

사람이 말이야.

앞으로 죽어서 천당에 가기 위해서 그런다, 승천을 하기 위해서 그런다,

내가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기 위해서 믿는다이런다면

아예 믿질 말아.

왜 그런가 하면 벌레가 된다는 것도 두렵지 않게 생각하고

어떠한 게 닥쳐도 두렵지 않게 생각하는 거

그것이 바로 자기를 버리는 거야.

 

만약에 천당에 가기 위해서 믿는다면 아예 그건 잘못된 거야.

나는 이날까지 천당에 가기 위해서라면 또 한 가지,

둘째는 내가 살다가 또 죽더라도 벌레가 되지 않고 부처가 될 걸 생각하고 내가 믿었다면, 공부를 했다면

나 이런 공부 안 해.

벌레가 될까 봐 걱정도 하지 않았고

부처가 될까봐 걱정도, 내가 좋아하지도 않았고

또 귀신이 닥친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거든지 두려워하지 않았어.

왜 그것은 그렇게 됐느냐?

나를 몰락 버렸기 때문이야.

 

내가 살 양으로 발버둥이 친다면

두려운 것도 있고, 욕심도 있겠지만

내가 몰락 버린 이상에는 두려움도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 는 죽지 않아. 영원히 죽지 않아.

내 몸뚱이는 만약에 죽을지언정 내 본(), 본처(本處), 주처(主處) ‘는 죽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옷을 벗는다 하더라도

그 모두가 나 아님이 없으니 어찌 내가 죽는 것이냐 이 소리야.

 

그 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맛이 없고 맛이 있고 그 도리를, 참 도리를 몰라서

아이, 설만들 그럴까.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아니 내 아님이 하나도 없어서 나 죽은 사이가 없다고 어찌 그렇게 말을 할까?

저건 괜한 말이지.” 이러지만

한번 공부들 해봐. 안 그런가.

 

내가 맘대로 될 수 있다는 그 점을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집이가(댁이) 될 수도 있고 집이가(댁이) 될 수도 있고,

구렁이가 될 수도 있고, 호랑이도 될 수 있고, 사자도 될 수 있고 소도 될 수 있고

모두 그렇게,

일체 만물이 다 내 몸이 될 수 있다라면 어떻게 생각해?

만약에 그런 공부가 아니라면 차라리 이런 공부는 해 뭘 해?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천리 밖에서 나를 구원해 달라고 애를 써도

나는 거기 한 치도 머무르지 않고 같이 할 수가 있어.

그 찾는 마음이나 찾는 마음을 듣는 마음이나 똑같기 때문이야.

천리 밖에서 나를 구원을 해달라고 찾아도 나는 그 사람이 돼줄 거야.

그것은 현, 실질적으로 우리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거짓이라고 하진 못할 거야.

 

그러니 어찌 짐승이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데,

어찌 짐승이라고 안 갈 수 있겠느냐 이거야. 그것도 생명인데.

 

어느 날은 무극에서 소가 병이 났으니까, 소가 죽게 됐으니까

새끼를 배고 지금 죽게 됐으니까

우리는 이것만 죽으면 다 죽습니다.” 하고 왔을 때

알았다.” 했을 때

알았다하는 순간에

내가 만약에 소가 됐다면 어떻게 할 거야.

소의 그 원소 자체가 체가 없는 거고

내 마음 자체가 체가 없는 거기 때문에

같이 둘이 해도 둘이 아니다 이 소리야.

 

그러니 같이, 같이 하나가 돼 버리니까

자기가 의사가 돼 버리고 말아 버리는 거야.

얼마나 묘한 법이야.

 

이렇게 해서 남을 꼭 머리만 깎아서 구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떠한 사업을 한다

내가 어떠한 군인으로서 수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내가 가만히 어느 상업을 하고 있다 이러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가다 보면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건지게 돼 있어.

길에 가고 오다가도 건지게 돼 있어.

 

얼마나 멋진 줄 알아?

남 보기에 삿갓을 쓰고 주장자를, 석장을 짚고

휘휘 다니다가 건져주는 거, 그 보이게만 그렇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머리를 안 깎고, 석장을 안 짚고 옷을 안 입었다 할지라도

길에 다니다가 그런 모순된 일을 보게 될 때

닿다가도 도와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을 때

, 참다운 인간의 본능의 자비와 더불어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이, 기쁜 마음이

이 세상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

이 세상을 같이 바꾸자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그 기쁨이

다 같이 기쁨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

 

잘 입고 잘 먹고 그러려고 이 중노릇 하지 않아.

몰랐단 사람은 모르지만 난 그렇질 않아.

원장님! 기운이 없으시니까 이런 걸 좀 잡수십시오.” 하고 갖다줘도

난 그 고마운 성의로 인해서 한 번쯤은 내가 먹지마는 두 번까진 먹지 않아.

 

기운이 많이 나서 무엇에다 쓰며. 무엇에다 쓸 거야?

나 할 일 하면 됐지, 가볍게.

만약에 내가 좋은 걸 많이 먹어서 가볍지 못하고 몸이 무겁다면 마음도 무거운 것이고,

마음이 무겁다면 바로 그것이 빗나가게 돼 있어.

내가 배고프지 않으면, 내가 기운이 많으면

남도, 배고픈 것도 모르고 기운 없는 것도 몰라.

 

그러니 우리 청년들은

더군다나 지금 시절이 이러니만큼

앞으로는 더 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주처의 믿음을 진실하게 가지고 한 치라도 놓치지 말고 간다면

거기서 볼록 나와.

참자기가 나와서 그때는 모든 걸 참자기가 해.

누구가 죽인다고 뒤에서 미사일이 쫓아온대도

나는 미사일을 도로 돌려보낼 수도 있는가 하면

나는 거기에서 터억 앉아서 그것을 마음대로 코치할 수가 있으니 말이야.

 

그것뿐만 아니야.

이 세상을 다 죽인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의 그 손 하나도 막을 수 있다는 그 점,

마음 하나를 돌릴 수 있다는 그 점.

 

세상 사람들이, 세상 생명들이 유생 무생이

다 나 아님이 없을 때

그 주처에서 같이 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자기를 자기가 죽이는 법이 없어.

 

그래서 그전에도 그런 말을 가끔 해주지만, 젊은 사람들 앞엔.

만약에 이쪽에서 열 명이 싸운다고 해.

그런데 이쪽에서 싸움이 붙으면 열 명, 열 명이 다 죽어 버리게 돼 있어.

그런데 이쪽에서 만약에 이런 공부 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쪽이든 이쪽이든 상관이 없어.

그러면 그 마음을 그 열 사람한테다 다 나로다가 마음을 넣어 준다면

자기가 자기를 죽일 수 없어서

자기는 마음이 쓱 돌아서서 그냥 돌아서고 말아 버려.

합의를 하고 말아 버려.

 

이건 부당한 말이 아니야.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는가 하면

우주 이 법계를 점령할 수도 있다는 그런 점은

부처님께서 모든 일체, 삼천대천세계를 항복받았다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게 말로만 해서 안 되니

우리가 진실로써 앞으로 나의 주처를 알려면

주처와 지금 현재의 삼견 사견이 주처하고 둘이 아니게 될 때

비로소 나는 자유인인 것이야, 각자.

 

이거는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유인.

그럼으로써 이 세상의 생명, 유생 무생이 다 나 아님이 하나도 없을 때

비로소 내가 내 앞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도

다 그때는 자기 마음대로 건질 수가 있다 이 소리야.

 

물질을 줘서 건지는 게 아니야.

스스로서 건지게 돼 있어.

 

 

(한생각 돌아서면 또 이렇게 변하고 이렇듯이

한생각 돌림으로써 만법을 얻고 만법을 잃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 법이라는 게 실체 하지 않는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실체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거는 너희들이 아직 주처의 그 근본을 모르고 사량으로만 그 뜻을 알기 때문에

겉탕 바퀴가 돌아가고 있어.

미리 알아버렸다 이 소리야.

그거는 그런 도리를 이해만 했다 뿐이지

네가 실천을 옮기질 못해.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에 주처에서 모든 거를 한다고 한 번쯤은,

하나를 잡고 놓치지 않고 몇 개월이 되든지, 일 년이 되든지 몇 개월만이라도

주처를 잡고 모든 거를 들이고 내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주처에서 한다는 걸 알게 되면

모든 걸 몰락 놔 버린 게 돼.

 

그래서 그것을 몰락 놔 버려라 하는 것이 거기에 있어.

그 주처가 한다는 걸 알게 되면

주처에다가 몰락 놔 버리게 되거든.

 

놔 버리는 게 첫째 과목이야. 과정이고.

놔 버리게 되면, 몰락 놔 버리게 되면

그때 가서 잘못된 거든 좋은 거든 슬픈 거든 모든 것을

아예 몰락 놔 버려라 이거야, 주처에다가.

 

그런다면 거기에서 탁 주처에서 자기, 참자기가 나왔을 때 그때 비로소

아하! 슬픔이 오고 즐거움이 오고 이러는 것은 바로 이게 공존하는 데 나툼이로구나.’

이거 나툼이라는 걸 알게 돼.

어떤 걸 내세울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자 진리로구나.

 

사람이라는 거는 고정된 관념으로써

요런 거 생각만 하나 했다면, 한 생각만 가지고 만약에 산다면 발전도 못하게?

또 성장한다고 볼 수도 없잖아?

 

그렇기 때문에 한 생각으로만 사는 게 아냐.

한 생각을 했다가 이게 진화돼서 참, 다시 올라갈 수도 있고,

이 한 생각을 했다가 이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을 하고

이러기 때문에 발전도 되고 진리도 되고,

이것이 바로 부처님 법도 되고 나툼이다, 이 소리야.

 

그러니까 주처를 완벽하게 쥐고 이게 돌아가야지,

만약에 바퀴가 심봉이 없이 바퀴만 돌아간다면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지만

심봉이 완벽하게, 양쪽이 다 완벽하게 심봉이 박혔다면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 바퀴가 굴러가도 완벽하지.

심봉이 없이 끼워졌다 빠졌다 하면 완벽하지가 못해, 바퀴가.

바퀴는 육신이라고 해, 그러면.

그래서 그 심봉은 항상 떠나지 않고 완벽해야 돼.

 

 

(내 주처에다가 맡기고 이렇게 생활하는 거하고

집착하지 않고 하는 거 하고 같은 얘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같지.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다 좀, 말이 ( ) 한데요.

저는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미련한 자는 먼저 깨칠 수가 있고

약은 자는 먼저 깨칠 수가 없단 얘기야.

 

이런 게 있어.

미련한 사람은 남이 이렇게 얘길 해주니까 그냥 고것만 쥐고 나갔어.

그러니까 거기에서 확 터진 거야.

 

우리가 지금 이론적인 말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주처, 주인공에다가 항시 붙들고 그걸 놓치지 말고 생활을 해.

생활이라는 게 거기서 모든 걸 하는 거야.

 

만약에 그 주처가 없다면 지금 송장이라니까!

그러니 그 주처만이 모든 걸 가지고 있다, 이거야

그러니까 지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억겁 전년서부터도 가지고 있어, 이게.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거고,

과거에도 가지고 있었고, 현재에도 가지고 있고, 미래에도 가지고 있고

미래를 돌아서 다시 현재로 올 때도 가지고 올 거야.

 

그러니 거기다가, 그것도 공했으니 공한 데다 몽땅 놔 버려라 하는 게

바로 대우 법사 말이고,

나는 한술 거기다 좀 허하겠으니까

주인공에다 놔 버려라

 

주인공에다 놔 버려라해서 주인공을 딱 잡고

놓치지 말고 거기에서 다하는 거니까

거기다 믿고 놔 버린다면

바로 그것이 다 놔 버리면서도 우리는 여여하게 그대로 하는 건데

하는 것을 누가 하는 건가?’

이걸 한번 참구해 봐라 이거야.

 

 

(그러니까 누가 하는가를 참구하라는 이유가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일러주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닙니까?)

 

 

고거를 붙잡지 않으면 바퀴가 거저 돌듯이, 거저 돌 듯이

항상 육으로만 자기라고 하고,

사량으로만 자기가 옳다고 그러고

그러는 사람이 될 테니까, 소인이 될 테니까

대인을 만들기 위해서,

즉 말하자면 자기 근본 자가발전소에, 언제나 불이 들어와 있는

그 자가발전소, 불성

그 자체를 발견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이론이 필요 없어,이게.

무조건 놔라이렇게 한다면 부숴라그럭한다면

이건 부술 것도 없고 놓을 것도 없이

이 주인 주처에서 하는 거야, 그냥.

 

그러니까 놓을 것도 없고 바로 부숴 버릴 것도 없어.

하는 게 없어.

주처에서 하는 거지 자기네들 몸뚱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량이 하는 게 아냐.

주처에서 하는 것만이야.

주처에서 있으니까.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뭐 할 게 있나, 송장인데.

 

그런데 주처에 있다 할지라도

이 송장 같은 이 껍데기가 없으면 상대가 없잖아?

그러니까 보이지 않아서 무효야.

 

그러니까 삼합이 공존하고 있는 거야, 지금.

그런데 지금 육신과 사량은

항상 자기 주처에 예배를 하고 있는 거야.

 

놓치지 말라 이거야.

놓치지 않아도 놓치지 말라하는 거는

체가 있어서 놓치지 말라는 게 아니야.

바로 주장자 없는 주장자를 쥐어라 이거야.

그리고 그걸 놓치지 마라 이거야.

어느 때까지는 그걸 놓치지 말고 가다보면

그건 저절로 여기 다 이렇게 돼 있고

내가 붙들지 않아도 여기 돼 있어.

 

 

(예를 들어서 그 놓지 않고 하는 얘기를 하나 해 주십시오.)

 

 

그러게 해 줬잖아.

주인공이라고 이름 해서 붙여줬잖아.

주처라고 해도 되잖아.

 

마음의 주인이시여!

당신께서 모든 거 하는 건데,

그리고 나는 오관을 통해서 나쁜 거 좋은 걸 가려서

다 이렇게 하는 것도 당신께서 계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잖아.

 

모든 것을, 너 그대로 하는 것이 하고 있지 않느냐 이거야, 주처에서.

그 몰락 놔 버려라 이거야, 거기다.

놔 버리면서도 너는 그러고 움죽거리고 있지 않느냐 이거야.

지금 말한 놈이 누구냐!” 이렇게 말이야.

 

그러니까 이론으로만 듣지 말고

우리가 이 박카스 병을 하나 들었으면

이것이 내공에, 내 마음속에 있는 주처라고 한다면

그 주처는 항상 놓치지 말아.

 

어느 때에 어느 사람이, 운전수인데 이런 얘기가 있었어.

운전수뿐만 아니라 현대건설에 다니는 사람인데

항상 자기 차를 가지고 다니니까

항상 일하면서, 일하면서도 항상 주인공 거기는, 주처는 놓치지 않았다 이거야.

 

그러다 어느 날 근 몇 개월이 지나가니까

, 알겠더라 이거야.

그건 자기 자신들이 알아.

그만 이게 합일이 됐다 이거야. 불끈 나왔다 이거야.

,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그러니까 모든 걸 체험을 해 보니까

, 절대적이거든.

안 되는 것도 법, 되는 것도 법이야, 배울 때는 또.

안된다고 해서 내버리게 되면 안 돼.

방황하면 안 돼.

안 되는 것도 주처, 되는 것도 주처.

이렇게 그냥 들어가야만 공부가 되는 거야.

 

잘 처음에는 되게 해가지고

나중에는 안 되게 만들어, .

안 되게 만들면 이것이 안 되게 만든다는 것도

이게 길인 줄 알고 따르나 안 따르나 그걸 보기 위해서.

 

우리가 발로 걸어다니는 것만 길이 아니야.

발을 대지 않고 걷는 것도 바로 진리란 말이야, 길이고.

 

그러니까 50프로 우리는 보이는 데서만 복작복작하잖아.

안 보이는 데서도 좀 자유스럽게 해야 될 거 아니야!

 

 

(원장님께서 설법하시는 걸 이렇게 들어보면요,

일전에 책을 봤는데 요가난다라는 사람이 옛날 인도에 살았었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신성에 대한 기도 같은 거 얘기하듯이

집착을 자기에 대한, 자아에 대한 집착은 전부 다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신성에 대한, 그러니까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성이 될 수 있겠죠.

거기에 대한 기도를 드리고 가는데

나중에 경험하는 걸 보면 우주에 대한 비전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거.

그러면서 같이 자기와 일치되는 그런 경험을 하는 게 쭉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하고 원장님 지금 설법이랑 어떻게 다른지.)

 

 

틀리지(다르지) 않아.

그 사람도 그만큼, 지금 말을 할 때 그만큼 그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지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으며

그 행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그게 지금 공부를 하면서도, 또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놓치지 마라 이거야.

그게 첫째 문제야.

 

그러니까 모든 일체 사는 걸 한데 모으는 거야, 모으는 거야.

모아서 거기다가 일임해 버리니까

그것도 공이요, 놔 버리는 것도 공이니 그대로 공이지.

그러면서도 있어.

 

그래야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리가 맛볼 수 있잖아?

그럴 때에 그 연구가 나와. 대 의정이 나오고. 그러는 거지

아이, 사량으로써 그냥 이게 뭐야? 이게 뭐야?’ 하고 방황하는데 뭐가 나와?

 

지금 우리는 죽어서 죽은 세계로 들어가야 맛을 보지

산 세계에서만 이렇게, 물질세계에서만 이렇게 돌다보면

어떻게 마음이 죽은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나.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 내 도반자를, 앞서의

내가 나기 이전 나를 만나야, 찾아야

내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야.

 

 

(그것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체가 없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해도 체가 없기 때문에 공해서 집착하지 말라 이거야.

그것은 방귀 뀐 거와 마찬가지니까.

지금 우리가 말하고 대답한 것도 방귀 뀐 거와 같애.

소리만 났다 뿐이지 허사무사야. 한 게 있어, 여기?

내놔 봐. 여직껏 말한 게 있나,

?

 

그 가슴에 맺힌 그 사연이 전부,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오고 가는 것이

바로 그 주처에서 한다고만 딱 붙들고 나갈 수만 있다면

나중엔 그 주처마저도

! 그냥 그건 이름이었구나.’

그러고선 내 자유 것하고 다니는 거야.

 

예전에 뭐 이런 말 있지.

어느 구절에서 내가 한번 본듯 해.

아리스토텔레스인가 그 사람이 염병을 그때 앓았을 때

그 동네동네 다니면서 다 고쳐주고

그럭하고선 자기 모든 것을 다 알았노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일을 하면서도

, 누가 하는가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해라 이거야, ?

주처, 그 주인공이 하고 있구나, 지금 이거.’

그 웃으면서도 찾을 수가 있는 거야.

왜 상을 찌푸리고 그냥 고달프게 하고 찾아?

웃으면서 즐겁게 하면서도 찾아.

 

, 이거 웃는 것도 이게 주인공이 하는구나.

주인공! 당신이 이렇게 하고 있구나.

박카스 마시는 것도.”

 

지금 일을 죽도록 하다 잊어 버렸지.

, 이거 잊어버리고 이렇게 여직껏 한 것도

바로 당신이, 주처에서 한 거로구나.’ 하고선

자꾸 하나만 붙들고 늘어져. 하나에서,

하나에서 하고 있구나.

하나로 모든 게 이게, 일체 만법이 하나로 드는구나.

하나에서 모든 거 하는구나.

 

이것만 알면 웃는 것도

허허, 이 주인공이 또 웃게 하는군.”

이렇게 웃으면서도

나 주인, 주처를 찾을 수 있다 이거야.

그게 놔 버리는 방법이야.

 

 

(그러면 거기 주인공이라 부르는데 말이죠.

그런데 당신이 하고이렇게 할 때 그 당신이라는 데 대해서도.)

 

 

그 주처야.

 

 

(어떤 신성이나 부처님같이 그런 이미지를. )

 

 

그런 거를 이미지를

너무 높게 두면 노예가 돼버리고

너무 낮게 두면 바로 내가 높아지기 때문에 안 돼.

평등하게 될 수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 부처는 내 주인공이요.

, 자기, 자기 주인공이다 이거야. 주인이다 이거야. ?

 

그러니까 배울 동안에는 항상 주인공에 잊지 말아!

항상 주인공이 모든 거를 하고 있고,

또 모든 거 한 거를 한 군데서 나온 거니까 한 군데로 자꾸 몰란 말이야.

나중에는 한 군데로 자꾸자꾸 자꾸자꾸 몰다 보면

그것이 놔 버리는 거야, 한 군데로 모는 게.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냥 이름만 주인공이라고 하는 겁니까? )

 

 

그렇지! 고렇게 여기다가,

그리고 안으로 깊숙하게,

이게 바깥에서 그냥 주인공이라고 돌면 안 돼.

이 안에 항상, 이 고개를 탁 숙일 때는 벌써 안에 이, 여기가 있단 말이야.

여기 탁, 이렇게 마음에 탁, 이게 집히게 하란 말이야.

고개를 들어도 집힌 게 있고

고개를 내려도 집혀.

항상 주인공이라는 그 주처를 여기다가 두면.

그렇게 됐을 때 여기서, 주인공 속에서 탁 터져, 그땐.

, 공부 좀들 하는 게 좋을 것 같애.

 

 

(아까 웃으면서도 부처를 볼 수 있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요,

만약에 스님 같은 분이 된다든가요... 지금 우리, 저와 같은 상태하고는 다르잖아요?)

 

 

뭐가 다르냐?

 

 

(그러니까.뭐가 된 상태는 아닌데(삭제) 다른 상태로 되는 건 아닌데

투철함의 차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투철해지기 위해서는

제 생각에는 아주 나름대로에 고통이 따라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

 

 

그것도 네 관념이야.

투철하게 내가 이게 고()가 따라야 된다 하는 것도 네 관념이야.

그거는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

그것도 놔 버려라 하는 것은 그거야, 바로.

 

이걸 먹었으면 이것도 놔 버려.

빈 깡통 들고 애쓰지 말고,

앞으로 올 것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먹고 싶으면, 목마르면 그냥 떠 먹어버려.

그리곤 그냥 무야,

다 놔 버려.

 

그것이 하나하나 자기 주처에다 놔 버리게 되면

다 거기서 한다고 놔 버리게 되면

다 오는 게 있어.

톡톡한 게 오는 게 있어.

 

이것은 자비의 칼이 오는 게 있어.

시퍼렇게 그, 자비의 칼이 완벽하게 설 때가 있어.

그때에 비로소 뜻이 같아지고.

그것은 예를 들어서 참,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오경대에 비친 달은 만강에 점을 찍네.” 할 수가 있어.

그건 무슨 소리냐?

내 마음이 투철하고 밝으면 어디고 비치지 않는 데가 없노라.” 하는 소리나 똑같애.

 

그리고 학생들, 너희들이 깨우쳐 봐야

내가 () 이런 말 이해가 가.

그러니까 한바탕들 한번 해 봐.

 

이 세상에 눈 가지고 코 가지고

다 남과 같이 태어나서 왜 못 해?

누가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말라나 공부를 하지 말라나, ?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말라나, 나가 놀지를 말라나.

그 모든 게 하는 게 주처에서 하는 거라고만 알게 되고 밀고 들어가라 이거야.

 

(만약에 주처라는 것 없이 놓는다고,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런다면 허하니까 처음에,

처음에 나가는 사람은 허하지.

 

 

(만약에 그 사람이 허하지 않다면. )

 

 

허하지 않다면 괜찮아.

허하지 않다면 바로 그 허하지 않은 그 사람 자체가 바로 선 거니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어.

허하지 않다면 몰락 그냥 항상 놔 버리게 돼 있어.

 

내가 지금 내 경우가 그러하니까. 항상 그,

내가 하는 상태도 아니면서 내가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하는 상태가 아니로서에

다 그냥 앞뒤가 끊어진 자리란 말이야.

 

앞으로 올 것도, 내가 먹은 것도 생각할 것도 없고

그렇게 하고 있다 이거야.

 

나 자체도

언제 죽을 건가. 언제 더 살아야 할 텐데이런 것도 없고,

그게 없다 이거야.

 

내가 할 일이 있으면 조금 더 할 것이고

할 일이 없으면 그냥 갈 것이고

그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