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다니던 절에서 지나치게 많은 불사금을 요구합니다

Buddhastudy 2023. 7. 17. 19:13

 

 

 

다니던 절에서 지나치게 많은 불사금을 얘기하셔서 부담됩니다.

천도재에 관해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불자가 있는지

이에 관한 법륜 스님 법문 듣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러면 사실이든 아니든

자기가 스님의 그런 위로와 종교적 의식을 통해서 자기가 위안을 얻었다하면

그걸 본인이 더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 자리에서 불사할 때

자기가 낼 수 있는 형편 범위 안에서 보시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근데 그게 양이 조금 많다. 나한테 부담이 된다. 그러면

그걸 왜 고민합니까?

내 돈 내가 내는데

 

, 스님 죄송합니다.

요새 사업이 좀 안 돼가 형편이 안 돼가

제가 그만큼 많이 못 내고 이것만 내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또 선생님 요즘 제가 사업이 잘 안되고 형편이 안 돼가

불사의 뜻은 좋은데

제가 이번에는 불사에 동참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

 

...

 

그야 뭐 친구지간에 형제간에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해가 돈 빌려 달라면

자기 돈 빌려줄까?

 

똑같은 거지.

돈 빌려달라 할 때 걱정이 되는 거는 안 빌려주면

형제간에 친구 간에 이것도 먹을 것 같고

빌려주면 돈을 못 받을 것 같고.

 

이게 돈 빌려달라는 것 때문에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것도 먹기 싫으면 뭐다?

돈을 좀 버리면 되고

돈이 버리는 게 아까우면 이걸 좀 얻어먹으면 되는데

두 가지 다 안 하려니까

돈도 안 읽고 욕도 안 하고 먹는 무슨 뾰족한 수가 없습니까?”

이런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이게 고민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돈을 주면 돌려받기가 좀 어렵겠다 싶으면

욕을 좀 얻어먹어야 해.

형제간에 몇 년간 서로 안 본다든지

친구지간에 연락 안 한다든지

그 정도 감수해야지.

 

내가 나쁜 짓 한 게 아니라 돈 빌려달라고 해서 내 못 준다는데

자기가 안 보겠다는 걸 어떻게 해요

아무리 절친이라도

그래 그러면 기다릴게이렇게 하면 되고

아무리 형제라도

그래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릴게, 풀릴 때까지 기다릴게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지.

 

그다음에 사람이 사는데

형제간에 우애가 중요하고 친구 간의 우정이 중요하면

뭐 돈 그까짓 거 버리면 되잖아.

주식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돈 까짓거 좀 버리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거를 양쪽 다 움켜쥐니까 고민이 되지.

둘 중의 하나를 딱 선택해서

그래 돈을 버리자아니면

그래, 그냥 욕 좀 얻어먹자.” 이렇게 딱 하면 된다.

 

이거 똑같은 거 아니에요.

보시해라

안 하면 그동안에 스님이 나한테 해준 거에 대해서 욕할 거 아니냐

내 기도 잘 안 해줄 거 아니냐

또 이런 식으로 또 한쪽에 머리를 굴리고

돈을 드리려니까 또 부담이 되고.

 

그러니까 이게 스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스님은 그냥 내 문제에 그런 사건이 벌어진 거의 하나일 뿐이다.

거기에 내가 어떡하겠냐?

내가 욕심을 내기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이 얘기요.

 

얼른 들으면 이거 남이 들으면

스님이 불사한다고 돈 많이 달라 그래서 생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행적 관점이 아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 빌려 달라거나, 무슨 뭐 해 달라거나

불사하라거나, 시주하라거나 하는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 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것은

내 문제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스님과 위안을 받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뭐 재산의 절반이라도 팔아서 주는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게까지 내가 돈을 줄 이유는 없겠다, 나한테는 너무 부담이 된다.’ 이러면

선생님 그동안에 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마는

이번에는 불사에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서 욕을 좀 얻어먹으면 되지!

 

비판하면 비판하고

전에는 오면 차도 한 잔 주고 하다가

인사해도 안 받는다. 그러면

돈을 안 줬는데 그 사람은 기분 나쁠 거 아니야.

기분 나쁜 거를 내가 인정해야지.

돈도 안 줘놓고 기분 나쁜 거, 그것도 인정을 안 하겠다.

그러면 안 되지.

 

절에 오면 전 같은 뭐 거사님 오셨느냐그러고

뭐 차도 내고 여러 가지 이렇게 했는데

이제 와도 뭐 못 본 척하고 인상 쓰고 그래도

그거 그 정도 받아야지 돈이 얼만데 돈값을 하려면 그 정도 감내해야지.

그거 기분 나쁘다고 딴 절에 가면 그건 의리가 없는 인간이지.

돈을 안 냈으니까.

 

죄 지은 건 아니야.

형편이 안 되어서 안 낸 거니까.

 

그러나 좀 냉대 좀 받고, 외면 좀 당하고,

그래도 절에 꾸준히 다니면

또 몇 년 다니면 해결이 될까? 안 될까? 해결이 돼.

 

지금 그 스님도 돈이 필요한데 안 주면 기분 나쁘지

시간 좀 지나면 또 풀린다는 거예요.

사람이라는 거는.

 

그래서 자기가 어떡하겠냐?

세 가지 길이 있어요.

-돈을 버리든지

-욕을 얻어먹든지

-세 번째는 그냥 돈을 조금 주고 그냥 때우던지

돈도 조금 주고 욕도 좀 얻어먹고

이렇게 상쇄한단 말에요.

 

예를 들면

100을 잃고 욕을 안 얻어먹든지

돈 안 잃고 욕을 100을 얻어먹든지

안 그러면 돈 50주고 욕을 50을 얻어먹든지

세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돼요.

 

그래서 주로 친구나 가족 중에 돈 빌려달라

1천만 원 빌려달라 이러면

100만 원을 줘버려요.

아이고, 나 천만 원 빌려줄 건 없고

네가 어렵다니까 100만 원 좀 지원할 게.”

빌려주는 게 아니고 줘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지는 천만이 필요한데 100만 원 갖고 만족하겠어요?

그러나 천만 원은 빌려주는 거고 100만 원은 줘 버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이고 미안하다. 아이고 형평이 그리 어렵나?

내 천만 원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내 지금 빌려줄 돈 없다.

마침 나한테 100만 원밖에 없는데 네가 어렵다니까

뭐 친구 간에 빌려주고 그럴 게 뭐 있나

쓰고 나중에 뭐 또 형편 되면 내 어려울 때 도와라.”

이렇게 하고 때우면

욕도 조금 적게 얻어먹고 돈도 조금 적게 읽고 이런 게 있잖아.

 

스님 보시하라 그러면

100만 원 하라 그러면 한 10만 원 가져가든지

천만 원 나라면 한 100만 원 가져가든지

1억 해라하면 한 500만 원 가져가서 드리고

스님, 제가 그 정도 드리면 좋겠는데 형편이 지금 그래 안 됩니다.

제가 이거라도 조금 보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러고 말면 되지

. 그게 어렵다고

 

내 돈을 가지고 내가 걱정해

그거 참 바보 같은 사람이네.

 

그걸 왜 또 이 절에 다니다가 그만한 일에 또 딴 절에 갈 생각을 해?

의리 없는 인간이네, 보니.

 

어려우면 예수님한테 욕 좀 얻어먹고 그냥 다니면 되지

뭐 또 기분 좀 나쁘다고 또 다른 절에 간다고 또 설치고

좋아서 그러면 몰라도 기분 나쁘다고 가는 거는 수행이 아니에요.

 

정토회보다 딴 절이 더 좋은 게 있어서 간다.

이거는 괜찮아요.

사람은 자기 자유가 있으니까.

근데 뭐 정토회 다니다 기분 나쁘다고 간다.

수행자가 뭐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관점을 가진다면 내가 볼 때는 별로 걱정이 아닌 것 같은데

 

...

 

요즘 교회도 목사도 교회 크게 짓는다고 벌려놓고

돈 안 들어와서 지금 짓다가 말면 부도 날 수가 있고

그래서 교회도 짓다가 팔리는 거 있고

절도 짓다가 코로나 나고 수입 떨어지고 하니까

수입이 안 들어오니까 돈 좀 있고 아는 사람한테 자꾸 부담을 크게 할 수밖에 없잖아.

그죠?

그건 뭐 세상 이치인데 뭐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 망한다고 나까지 따라서 망할 수는 없잖아.

 

의리를 중요시하면 같이 망해서 죽던지

안 그러면 나는 빠지고 욕 좀 얻어먹던지

그건 자기가 선택을 하는 거다.

 

...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늘 닥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중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게 인생이다

이렇게 이해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