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28. 성소수자, 비주류의 이중적인 생활

Buddhastudy 2023. 7. 18. 19:30

 

 

 

저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30대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교수직으로 나아가는 앞날이 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로서 제 정체성을 알아가고 뽐낼 수 있는 비주류적인 패션 유흥 음악 미술 시 이런 걸 좋아하고

학자로서의 근엄하고 소박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게 위선된다고 느껴지고요.

당당하고 나답게 살고 싶지만

여자도 많이 없고 성소수자도 잘 없고 동양인도 잘 뽑아주지 않는 마당에 튀어 보이고 싶지 않고 구설수에도 오르기 싫습니다.

이런 이중생활의 마음가짐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근데 서양 사람들 속에 동양인이 살면

자연적 소수자니까 눈에 띄지 않을까요?

 

만약 제가 있는 이 시골 동네에 서양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은 다 쳐다볼까 안 쳐다볼까?

쳐다볼 때 특별히 뭐 이상하다고 해서 쳐다볼까? 그냥 쳐다볼까?

그냥 쳐다보는 거예요.

다르니까 특이하니까.

 

그 사람 뭐 굉장해서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나빠서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뭔가 늘 보든 거 하고 다르니까 그냥 쳐다보는 거예요.

 

그럼, 남자들 많은데 여자가 있으면

자연적 사람이 자주 쳐다볼까? 안 쳐다볼까?

쳐다볼 거고.

 

그러면 자기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부담된다 그러면

자기가 여성이 많은 직업을 선택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동양인이라고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우면

자기가 동얀인이 많이 사는 곳에 가서 생활하면 되는 거지

말이 이게 모순이라는 거예요.

 

서양에 동양인이 가서 살면서 안 튀기를 원하고

남자가 많은 직장에 가서 안 튀기를 원하고, 여자가 가서.

성소수자라는 게 인구의 몇 프로밖에 안 되는데

그런 성애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면서 안 튀기를 원한다?

그건 모순이잖아요.

 

애초에 사고방식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안 튀는 게 더 중요하다면

자기는 한 개라도

인종적으로 안 튀어야 하겠다하면 동양으로 오면 되고

그다음에 성별로 안 튀어야 하겠다하면 여성이 많은 쪽으로 가면 되고

성애로 안 튀어야 하겠다하면 이사를 암스텔담이나, 센프란시스코나

이런 소수성애에 대해서 크게 사회적으로 문제 안 삼는 도시로 인사를 가면 된단 말이에요.

 

자기가 추위가 싫다 그러면 따뜻한 곳으로 이사를 가든지

안 그러면 자기가 옷을 두텁게 껴입고 살든지

난방을 잘하든지 이래야 할 거 아니오.

계속 추위가 싫다면서 날이 왜 이렇게 춥냐?’고 자꾸 불평을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튀기 싫으면 덜 튀는 쪽으로,

인종적으로 덜 튀든지, 성애적으로 덜 튀든지, 성별로 덜 튀는 쪽으로 가면 되고

자기가 하는 일에 그런 거에 구애 안 받겠다 그러면

성애로 누가 뭐라고 그러든 무슨 상관이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한국도 아니고, 서양에 살면서 누가 뭐라 그러든, 그건 네 사정이고

그다음에 인종적으로 뭐라 그러든

또 여자라고 뭐라 그러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대신에 소수자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해요.

주류에서 빚어지면 실력이 좀 더 있어야 겨우 평가를 같이 받는다는 거예요.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세상이 다 그래요.

 

실력이 조금 더 우월해야 이게 소수자나 비주류도 인정을 받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기의 정체성을 주장하려면 그 정도로 있어야지.

 

제가 만약에 자선단체 모임에 가면

자선단체는 불교단체는 몇 단체 없고 전부 다 기독교 단체잖아요.

그러면 다 목사님이고 나 혼자 스님이에요.

나면 없으면 자기들끼리 행사하는데 종교단체도 아닌데

하느님한테 기도부터 먼서 하고 해요.

나만 오면 눈치를 봐요, ‘이걸 어이할까?’하고.

그럼 내가 먼저 기도해요.

, 기도합시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이렇게.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그걸 갖다고

, 여긴 종교가 아니니까 종교 행사 안됩니다이렇게 하든지

안 그러면 다수니까 인정을 해주고

기도합시다이렇게 가든지

자기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자기는 편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교수인데도

자기가 편안한 복장으로 학생복장으로 강의를 하려면 실력이 되어야 해요.

실력이 탁월하면 머리를 산발하고 가든, 가면을 쓰고 가든 아무도 말 안 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옷이라도 깔끔하게 입고 가야 할 거 아니오.

그런데 옷은 마음대로 입고 가고 싶고, 실력은 안 되고

복장 갖고 비판하는 것은 듣기 싫고.

 

내가 볼 때, 이기주의이지 정체성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성애문제에 대해서 나의 정체성이 분명하면

일부러 묻지 않으면 밝힐 필요는 없지만

물으면 밝히지 그걸 뭣 때문에 숨겨요?

네가 남자냐? 여자냐?” 그러면

여자라고 그러지, 뭣 때문에 남자라고 얘기해요.

 

네가 동양사람이냐? 서양사람이냐?라고 그러면

뭣 때문에 서양사람이라고 그래요?

인종적으로 왜 위축이 됩니까?

왜 여성이라고 위축이 되며

자기가 선택한 것도 아닌 성애가 그런 걸 어떡하란 얘기에요.

그렇게 자기가 당당하게 살고

거기에 따른 불이익은 감수하면 되는 거예요.

 

자기 얘기 들어보면 불이익은 감수하기 싫고

자기는 다 마음껏 즐기고 싶고

그것은 욕심이다.

지나친 이기주의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손해를 보고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예요, 인생이라는 건.

 

스님은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스님이라는 소리 듣고

신도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고..

그러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그런 얘기하고 똑같은 얘기란 말이오.

그런 게 먹고 싶으면 딱 벗고 나와서 세상에 자유롭게 살면 되고

이렇게 살고 싶으면 어느 정도 절제를 해야 할 거 아니오, 사람이.

세상 사람의 평균적인 시각이 있는데.

 

관점을 그렇게 딱 갖고

소수자로 비주류로 살려면 약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주류로부터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다음에

불이익을 감수하기 싫으면

위선적이다, 뭐다 할 게 뭐 있어요?

자기 득되도록 하는 게 왜 위선적이에요?

하나의 자기 재주이지.

 

집에 와서는 자유롭게 있더라도

갈 때는 해야 할 거 아니오.

 

저도 농사짓고 살 때는 머리 기르고 있지만

그래도 법회 올 때는 스님이 머리 기르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딱 깎고.

얼마나 귀찮은데, 머릴 깎으려면

그런데 깎고 와야 하잖아요.

그게 예의잖아, 위선이 아니라 예의라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데.

 

그런 관점을 갖고

조금 더 자기 재능을 살리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싶네요.

 

...

 

또 열심히 산다,

아이고 열심히 그만 사세요.

눈만 뜨면 사람은 열심히 산다 그러는데

편안하게 재미있게, 학문 연구도 재미있게 하고

뭐든지 놀이 삼아..

 

재미있게 놀 때 제일 집중이 됩니다.

애들 만화책 볼 때 제일 집중이 되고, 게임 할 때 제일 집중이 되잖아요.

 

재미있으면 저절로 집중이 되는 거지

애쓰고, 노력한다,

이 말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는 뜻이거든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시간만 많이 들고 힘만 들지 효과도 별로 안 나요.

그러니까 약간 가볍게, 재미있게

이렇게 일하는 게 좋다.

이런 말씀을 드리며

, 여러분들 가볍게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