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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 노식의 단호함

Buddhastudy 2023. 12. 21. 20:05

 

 

184, 태평도 교주 장각을 중심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좌우중랑장에 황보숭과 주준,

북동중랑장에 노식과 동탁을 임명했습니다.

 

지난 삼국지 13편까지 형주에서의

황보숭과 주준의 황건적 진압에 이어

이번 영상에서는 기주, 유주 등

북방에서 황건적 토벌을 책임져야 하는

북중랑장 노식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보겠습니다.

 

노식은 유비와 공손찬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로

키가 현대 사회 기준 195cm에 해당하는 82촌이었으며

젊었을 때부터 청렴하고 강직한 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75년에

구강군과 여강군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무력의 힘이 아닌 학자의 힘으로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노식이 구강군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한 대처법으로는

군사적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닌 베품과 나눔으로써

난을 일으킨 자들이 자발적으로 복속했습니다.

 

하지만, 184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이전에 있었던 작은 규모의 반란들과는 달리

나라가 뒤집어질 만큼의 큰 규모의 난이었기 때문에

노식 또한 북중랑장으로써, 군사적 힘을 동원했습니다.

 

노식의 부대는 병력의 숫자 면에서

황건적에 비해 열세였는데도 불구하고

황건적의 본영이 있는 위군으로 진격하여

수차례의 전투 끝에 장각의 직계부대를 연파해 나갔습니다.

 

이윽고, 황건적의 주요 부대가 1만여 명을 잃게 되자

업성을 버리고, 출신지 거록군 광종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원래, 업성에서 장각과 인공장군 장량이 이끌던 황건적의 본진은

황건적 전체 부대 중에서도 가장 싸움에서 뛰어난 자들로 구성된

정예부대라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각과 장량의 부대는

노식 부대에 비해 숫적으로도 우위에 있어

관군 따위는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예상을 했으나

노식이 지휘하는 관군은 정비와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었습니다.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은

여태, 한나라의 조정은 부패와 무능으로만 가득찬

뇌물을 밝히는 인사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노식의 능력에 놀람을 금치 못하며,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연전연패에 사기가 떨어진 황건적은

거록군 광종으로 본진을 이동시켜

각지에 흩어져 있던 황건적들을 집결시켰고

다시, 체제를 잡으며 군대의 분위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작은 병력으로 힘든 싸움에서 승리해 나간 노식은

광종에서 황건적의 군세가 회복되는 모양새를 보며

잠시, 전면전은 피하고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관군에게 둘러싸인 황건적은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성을 지키는 항전인 일명, 농성전을 시작했습니다.

성 내부에서 버티는 전략을 내세운 장각은

성 위에 올라 관군의 형세를 살펴봤습니다.

 

노식이 황건적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한 방식으로는

우선, 성 주변을 따라 보루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성벽을 타고 올라서는 사닥다리인 운제와 충차, 횃불 등을 준비시켜

공격을 준비해갔습니다.

하지만, 노식은 바로 공성전에 돌입하진 않았고

참호를 파며 장기전에 돌입하였는데

이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대군으로 형성된 성안의 황건적이 굶주리게 되면

항복을 권고하거나 일망타진할 전략이었던 겁니다.

 

장각은 노식 휘하의 관군들이 철두철미하게

자신들을 쪼여오는 것을 보며 황건적의 종착점을 느꼈고

더 이상 노쇠한 몸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으킨 태평도가

되려 사람들이 죽고 있는 현실에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한편, 노식이 성을 포위하여 황건적이 지쳐가길 기다리고 있을 무렵

조정에서는 아직까지도 승전보가 없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하게만 여겨졌습니다.

이에 영제는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환관 좌풍을 파견했습니다.

 

영제가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환관에 대한 신뢰는

이런 식으로 전장의 장수들을 감시하는 역할로도 활용하였습니다.

좌풍은 노식이 이끄는 전장으로 향하였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적을 지치게 만드는 이 방법이

현 상황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 방책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좌풍이 군사 작전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숙소로 자리를 옮기고 나자

노식의 측근 참모들과 군자금을 관리하는 부하 장수는

노식에게 걱정이 섞인 얼굴로 추가업무를 요청했습니다.

 

좌풍이 요청하는 추가업무라는 것은

전투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를 조정에 전달해 줄 테니

전별금, 즉 뇌물을 푸짐하게 챙겨야 하는 내용으로

환관에 대한 예우를 갖추라는 말이었습니다.

 

벼슬 생활에 몸담아 온 노식으로서는

이런 일들이 전통적인 관행인 것을 알지만

전쟁 도중 최전방에서까지 뇌물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나라가 군대를 잘못 관리해

병력도 황건적에 비해 열세로 전투를 치르기도 어려웠으며

황건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군 내에 식량 수급도 부족한 마당에 뇌물까지 요청하니

노식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노식의 거절에 충격을 받은 좌풍은 자존심에 금이 가

황성으로 돌아가서는 자신의 주관대로 전황을 보고했습니다.

직접, 광종으로 찾아가 보니 대세는 관군에 있는데도

평소 싸움을 싫어하는 노식의 성격에 따라

아예, 공격 자체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영제는 당장 노식을 궁으로 잡아들이라 명하였고

결국, 뇌물을 건네지 않은 죄로 노식은 죄인으로서 함거에 실려 옵니다.

나라의 명을 거역한 죄로 사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중신들의 만류로 사형은 면하게 됩니다.

 

 

 

 

노식은 본래 유학자로서의 명성도 뛰어나

유학사에서도 인정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유비의 스승만으로 존경받는 것 뿐만 아니라

유비 상대진영인 조조는 훗날, 노식이 죽었을 때 깊이 탄식하며

노식의 아들 노육에게 관직을 내릴 정도로, 당대 존경을 받았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좌풍의 거짓 고해로 낙양으로 잡혀들 때

장비가 이를 발견하고 분노하여,

수레를 실어 가는 병사들을 모조리 죽이는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싶은 생각이 개인적으로 잠깐 들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때, 유비가 장비를 만류하여 그만두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야기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파직된 노식의 후임은

노식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동탁이 뒤를 잇게 됩니다.

 

동탁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십상시와 황건적에 연이어

삼국지 초반부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노식이 학식을 겸비한 장수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면

동탁은 커다란 덩치와 대단한 완력으로

그야말로 싸움밖에 모르는 타고난 무인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하나씩 갖고 다니는 화살집을

두 개를 차고 다니면서 좌우 자유자재로 활을 쏘아댔습니다.

동탁은 조조나 손견보다 15살 정도, 유비보다 20살 정도 나이가 많은 인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동탁은 45세 전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동탁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는데

성정은 거칠었지만, 자기 사람에겐 매우 잘 챙겨주는 타입이었습니다.

후한서 동탁열전에 의하면 동탁은 궁기마술은 뛰어나지만

체형 자체는 뚱뚱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소설 삼국지연의를 포함한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탐욕스러운 성격과 욕심 가득한 느낌을 가진

비만 체형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연의에서 동탁은 무능력과 더불어

등장하는 내내 비대한 몸집 때문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다는

다소 과장된 묘사로 인해

전투 능력까지 없다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 속의 동탁은

젊은 시절은 마상무예의 극치를 보여준 장수였다고 표현된 만큼

뛰어난 무공과 함께, 살찐 근육형 몸매를 예상할 수 있으며

말년에 들어서부터 노화에 따른 근육량 감소로

비만 체형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탁은 서량 지역의 양주 농서군 출신으로

아버지는 영천군 수지현의 경찰서장 격인 현위를 지냈습니다.

성장기 시절부터 호탕하고 리더쉽 행동을 좋아해

강족의 수령들 및 호걸들과 의협을 맺기를 좋아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난 직후에는

변방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며, 개척민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강족 무리들이 부하들을 이끌고 동탁을 찾아오자

생계유지를 하고 있던 유일한 소를 그 자리에서 잡아

주연을 베풀어, 강족들에게 감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대접을 받은 호걸들과 수령들은 동탁의 의리와 정성에

칭찬 일색으로 집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동탁을 향해 가축 1000마리를 모아 보내주었습니다.

 

성장기 시절부터 농사짓던 시절까지 동탁의 의협은

점점 주변 일대로 소문이 퍼졌고

호걸들과 수령들의 도움을 받으며, 동탁은

출사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게 됩니다.

 

 

 

오늘은 삼국지 14번째 시간으로

기주, 유주 등 북방에서 황건적 토벌을 나섰던 노식이

뇌물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내용과

이후, 후임으로 전장에 나선 동탁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