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그대가 찾고 있는 것은 그대 안에 있다. [낭독62회]

Buddhastudy 2024. 1. 3. 19:40

 

 

오쇼의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함께 하겠습니다.

 

6천여 회가 넘는 강의를 통해

오쇼가 남긴 강의록은 600여권 정도가 있는데요.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책들은 대략 150여권 정도입니다.

붓다, 예수, 마하비라, 모하메드, 베다, 우파니샤드, 노자, 장자, 열자, 카비르, 파탄잘리, 헤라클레이토스, 디오니소스, 피타고라스, 하시디즘, 수피즘, ().

그 밖의 수많은 가르침들을 오쇼는

자신의 책들을 통해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는데요

오늘 함께할 책은 <노자의 도덕경>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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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추구하면 할수록 아는 것이 적어진다.

학자들을 보라.

그들은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라.

깜빡이는 빛도 없다.

 

그들을 지켜보라.

앎의 흔적도 없다.

 

그들과 함께 있어보라.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텅 비어 있다.

완전히 거짓이다.

 

안에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채색된 빈 공간, 장식된 빈 공간만 있을 뿐이다.

수많은 경전으로 장식되고 깨달은 자들의 언어로 채워졌으나

모두 빌려온 것이며 모두 죽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죽어있는 말들로 둘러싸여

그들은 스스로 거의 죽어있는 상태이다.

 

지식적인 사람에게 가보라.

그 주위에서 먼지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는 노숙하고 연륜이 깊어 보이지만

그에게서는 신선한 맛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는 살아 흐르는 강, 미지의 세계로 흘러들어 가는 강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광대하다 하더라도 아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성숙했을 때 나는 의심하게 되었고

마침내 나는 그렇게 많이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나이가 들었을 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델피에서 신탁이 이렇게 공표했다.

소크라테스는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역설입니다!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러면 누가 옳은 것입니까?

만일 신탁이 옳다면 당신이 틀린 것이고, 당신이 옳다면 신탁이 틀린 것입니다.

그런데 둘 다 틀릴 수는 없지요.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 주위에서 함께 지내면서 당신은 틀림없이 옳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절대로 거짓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신성한 신탁 역시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델피 신탁에 의해서 예언된 것은 항상 진실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황당할 밖에요.

당신이 도와주세요.

당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당신은 오직 한 가지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신탁은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틀림없이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기껏해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정한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가서 신탁에게 물어보라.

어떤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당신들이 신탁을 잘못 해석하였든지.”

 

그들은 다시 가서 신탁에게 물었다.

그러자 신탁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이 아니다.

이것이 현명한 사람의 표시다.

 

현명한 사람이란

지식은 쓸데없는 것이며, 지식은 아무 것도 모르고

비록 아무리 논리적인 체하더라도

쓰레기 같은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왜 그런가?

지식을 더 멀리 추구할수록

그대는 자신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대 밖의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대는 더 멀어진다.

전체를 찾으려고 하면서 전체로부터 더 멀어진다.

그대의 진정한 존재를 찾으려고 하면서 그대 자신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의식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대가 찾고 있는 것은 이미 그대 안에 있다.

종교는 이미 실재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진다면

그대는 점점 더 모르게 될 것이지만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대는 수많은 경전과 수많은 말과 수많은 이론을 알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말로 계속 물레를 돌려 더 많은 것을 짜 맞추고

공중에다 화려한 궁전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허황되고 추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생각과 꿈은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바다 표면의 물결일 뿐이다.

그 안에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만일 그대가 진리를 알고 싶다면 집으로 돌아오라.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찾으라. 그러면 놓칠 것이다.

찾지 마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찾으려고 하는 바로 그 노력이

그대가 그것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대의 찾으려는 시도는 운명 지어졌다.

계속 이리저리 찾고 지식을 쌓아가는 도중

어느 날 갑자기 그대는 자신이 바보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넓은 세계로 나가기 전에

먼저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라비아 알 아다비아의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어느 날 저녁 태양이 질 무렵, 그녀가 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녀가 약간 미쳤지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도우려고 몰려들었다.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무엇을 찾고 계세요?”

 

그녀가 말했다.

바늘을 잃어버렸어요.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만 바늘을 떨어뜨렸지 뭡니까. 도와주세요.”

 

그들은 그녀를 도와 같이 땅바닥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떨어뜨렸는지를 알지 않고는 찾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라비아에게 말했다.

정확하게 어디에서 떨어뜨렸는지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찾기가 쉬울 텐데요.”

 

라비아가 말했다.

묻지 마세요.

사실은 집 밖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잃어버렸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찾기를 중단하고 말했다.

미친 여자군.

집 안에서 잃어버렸으면서 왜 밖에 나와서 바늘을 찾는 거요?”

 

라비아가 말했다.

그곳은 어두워요. 여기에는 약간이라도 빛이 있잖아요?

어두운 데서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는 가난해서 등잔도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태양빛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찾는 것이랍니다.”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 정말로 미쳤구려!

어둠 속에서 찾는 것이 어려운 줄은 알아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등잔을 빌려 집 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라비아가 말했다.

당신들이 그렇게 현명한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왜 바깥에서 찾아다니고 있지요?

난 단지 당신들의 방법을 따라한 것뿐이랍니다.

만일 당신들이 그렇게 이해한다면

왜 내게서 등잔을 빌려 내면을 찾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내면에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이 우화는 매우 의미가 깊다.

그대는 바깥을 찾는다.

이유는 내면에서는 모든 것이 어둡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보라.

거기에 어두운 밤이 있다.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무엇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내면의 호수에 비친 외부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시장에서 모아놓은 사념들이 떠다닌다.

얼굴들이 왔다가 간다.

그러나 그것들은 바깥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단지 바깥세상이 비춰진 것들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어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

차라리 바깥을 찾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바깥에는 최소한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그대의 진리를 어디에서 잃었는가?

그대의 존재를 어디에서 잃어버렸는가?

어디에서 그대의 행복과 환희를 잃어버렸는가?

바깥세계의 끝없는 미로를 가기 전에

내면세계를 먼저 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내면에서 찾지 못했다면, 그때 밖으로 나가 찾아라.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면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찾았다.

그것은 이미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켜보는 것만이 필요하다.

의식의 전환과 깊은 통찰만이 필요하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