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54. 마야, 신의 작용 - 성통공완_윤홍식

Buddhastudy 2013. 7. 14. 20:44

출처 : 홍익학당

 

딴 데서 참나 얘기는 많이 하시는데, 제가 얘기해보면 그 얘기하시면 다들 좀 절에 오래 다니신 분들도 뭐죠? 이 현상계가 그대로 참나다. 이러면 원래 반야심경에 다 쓰여 있는 글인데, 반야심경은 다들 외우시는데, 내용을 잘 모르 시니까요, 깜짝 놀랐죠. 거기에는 무명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고, 다 없다고. 오온도 없고 뭐도 없고 해서 현상계 모든 걸 다 얘기하면서 참나랑 둘이 아니다. 이 얘기를 하는 건데, 딱 그 얘기를 하시면 다들 놀래세요. 아까도 무명을 어떻게 없앨까요?” 하는데 무명이 참납니다.” 그러면 깜짝 놀라시거든요. 그래서 이런 내용을 여기 계신 분들은 이 참나자리에서 이 현상계를 긍정하신다는 건요,

 

아까 무명 그러면 이게 힌두교에선 마야라는 건데요, 이 현상계를 만든 여신을 뜻하는데. 사실은 신의 작용이죠. 참나에서 우주가 나왔잖지 않습니까? 참나에서 에고가 나왔잖아요. 참나에서 에고가 나왔으면 현상계를 만든 거 아닙니까? 뭔가 안 좋은 것도 참나에서 나왔거든요. 참나가 현상계를 만들어낸 측면을 마야라고 그래요. 똑같은 참나인데. 참나에서 현상계가 만들어지죠. 참나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잖아요. 그럼 거기가 무명이죠. 에고를 만들어낸 놈이 무명인데, 에고는 참나에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무명은 원래 실체가 없거든요. 마야라는 건. 마야가 브라만이거든요.

 

힌두교에서도. 브라만이 우주를 만들었으면 마야는 현상계를 만든 원인을 마야라고 하는데, 그렇죠? 그래서 이게 법공입니다. 이렇게. 그런 거를 실체를 아셔야 되요. 그래서 마야를 없앤다는 건 다른 게 아니고요. 내가 신성을 구현하는 걸 그냥 마야를 없앴다라고 그래요. 원래 마야는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참나가 내 안에서 온전히 드러날 때. 원래 마야라는 건 원래 없기 때문에요. 참나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내가 참나만 온전히 구현하면 나로 하여금 잘못 무지랑 아집을 겪게 만든 그 원인이 사라져버린 거지 않습니까? 실체도 원래 없는 거죠. 내가 몰라서 참나를 모른다고 하고, 그래서 욕심을 부렸는데. 그 원인이 누구 때문이냐? 마야 때문이다. 무명 때문이다.

 

뭔가 어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해서 에고가 열심히 공부했더니 무지랑 아집을 자꾸 지웠더니 마야가 내안에선 작용을 덜 하는 거죠. 이 현상계가 펼쳐지는 게 나와 남이 나누어야 되잖아요. 시간 공간 나와 남, 주관 객관이 나뉘는 이 세계의 원인을 환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참나를 뭔가 가렸다. 원래 하나여야 되는데 참나를 뭔가 밝은 참나를 어두운 뭔가가 가려서 이 고생스러운 세계를 만들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기독교로 치면 창조하신 분이 신이잖아요. 신이 마야죠. 사탄이 창조한 게 아니죠. 그러니까 마야랑 사탄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거랑 안 맞는 부분이 있죠. 이 세상을 저주하지 마시라고요.

 

결론은 뭐냐 하면, 불교에도 그런 경전들이 많아요. 실제로. 뭔가 현상계 자체 내가 에고를 느끼는 거 자체가 죄악이라는 식의. 그걸 그러지 마시라는 거죠. 에고를 긍정하시고 현상계를 긍정하시라고. 마야가 만든 게 아니고 참나가 만들었다. 무명이 만든 게 아니고 참나가 만들었는데, 내가 여기서 욕심을 부리고 무지를 일으키면 무명이 내 안에서 작용하는 거고, 내가 깨어서 살아버리면 무명은 내 안에서 작용을 안 하고. 무명의 실체인 참나로서 나는 드러나는 거죠. 무명하고 싸울게 아니라는 거죠. 무명 또한 참나가 현상계를 만들어낸 힘을 그냥 무명이라고 한다는 거죠.현상계가 긍정이 되어 버리면 현상계를 만든 존재도 긍정이 되어 버리죠.

 

이거 어려우신 가요? 일체는 법이니까. 법은 참나에서 나왔다. 법공. 법은 공에서 나왔다. 법이 그대로 공이다. 지금 느껴지세요? 참나 느껴지세요? 상식적으로 하시는 거 아니죠? 나라는 존재 있으십니까? 그 존재만 느끼세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 나라는 존재만 느끼세요. 에고의 궁시렁거림은 다 그러든지 말든지 [몰라] 하시고요. 그리고 이 생각 감정 오감의 세계를 그대로 느껴보시면 둘이니 뭐니 하는 것도 말이 나와야 되니까 말하지 마시고 참나만 느끼시면 애초에 구분이 없으시죠. 그러니까 순간을 살아도 이렇게 살 수 있는데, 그렇죠. 우리가 너무 생각 속에 빠져 살지 않습니까? 에고 속에.

 

그게 무명을 증장시키는 일입니다. 무명은 실체가 없는데 내가 무지랑 아집 속에 살며 무명을 키워주는 격이 되고, 내가 깨어서 살면 무명은 나한테 의미가 없어요. 무명은 오히려 날 도와준 겁니다. 내 에고를 유지시켜줌으로서 이런 놀라운 체험들을 하게 도와주지 않습니까? 무명이니 뭐니 말할 필요도 없는 거죠. 깨어서 살아가면. 전체가 참나의 작용이 되니까. 이게 엄청난 식견의 차이 아닙니까? 현상계는 무명이 만들어서 어둠이 만든 거라 현상계는 본래 부질없는 짓이고 어떻게든 벗어나야 된다. 이게 소승사상의 기본 철학이기 때문에 무명이 본래 없다. 이렇게 나가는 게 대승의 기본 철학입니다. 다 참나의 작용이다.

 

지금 문제 있으세요? 깨어서 보고 듣고 하시는데? 실전 반야심경. 몸으로 해보셔야지 이게 개념으로만 들어있으면 재미없어요. 그래서 순간순간 이렇게 천국을 사시라고 좀 더 나는 이렇게 생각 안할 땐 이러지만 내가 생각을 하고 고민하고 할 때는 천국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생각 이것도 다 생각감정오감 아닙니까? 그 순간에도 깨어서 그렇게 느끼시려고 노력을 해보세요. 맛이 달라집니다. 이게 이 힘이 계속 계속해서 보살은 다른 존재가 아니고 매 순간, 힘든 상황에서도 이 마음을 다시 끌어내고 다시 끌어내고 하니까 홍익인간 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겁니다.안 그러면 홍익인간 차치하고 내가 죽겠다 이 마음이 들어서 안 돼요.

 

내가 죽겠다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도 내가 죽겠다는 이 마음도 생각감정 오감일 뿐이데, 참나가 등장하면 이거 참나의 녹아버린다. 하고 딱 참나의 힘을 끌어내서 내가 죽겠다는 마음도 싹 돌려서 한 번 더 해보자. 가보자. 이렇게 자기마음을 경영할 수 있는 힘이 참나에서 나와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 세상하고 싸워버리면 안 돼요. 자기가 이 세상을 내 마음 안에 참나랑 다른 존재로 참나를 방해하는 존재로 인정해 버리시면 이 싸움은 끝이 없이 일어나는데, 저 대상이 참나랑 둘이 아니다. 하고 접근하면 해볼 만하죠. 그러겠죠. 저도 겨우 살아요. 그렇게. 계속 안 돌리면.화엄경 번역하다 나왔는데, 이번 주도 화엄경이 있어가지고 계속 강의는 하도 벌려 놔가지고 뭐 하나 끝나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또 하고. 하고.

 

그런데 이게 재미없으면 못하는데 재미가 자꾸 없어지겠죠. 재미없어질 상황이 자꾸 펼쳐지면 재미없다는 그 생각도 참나가 볼 때는 참나에서 나온 거죠. 그럼 재미없다는 생각 할 수 있으면 재미 없다도 해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깨어서 자기가 자기 마음을 딱 좀 위에서서 참나입장에서 물고를 터주면서 가면은 갈만해지고요. 아주 여유롭게 가는 게 아니고요, 잘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하루 종일 학처럼 명상하다가 영감이 와서 딱 책을 쓰고, 오면 딱 그때 되면 전지전능한 힘이 흘러서 이렇게 나아갈 거 같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게 참나의 힘으로 계속 버티고 있기 때문에 전 온몸으로 느낍니다.

 

참나의 힘이 끊기면 나는 더 걸어갈 힘이 없을 거라는 걸. 그런데 계속 참나에서 영감이 샘솟고 힘이 나오고 보람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거 아니에요. 억지로 내가 이걸 사명감을 갖고 해야 된다가 아니고요, 참나 자리 탁 돌아보면 참나를 한번 돌아보고 이게 아공이죠? 에고를 내려놓고 참나를 탁 느끼다가 참나에서 세상을 보면 법공이죠. 세상이 또 그대로 긍정 마음이 생겨서 절대적인 긍정의 힘이 안에서 나와요. 내가 힘들다고 하다는 말도 무색해져버려요. 그냥 또 하게 되요. 그게 다 원래 참나랑 둘이 아닌데, 왜 내가 그 어느 하나의 상을 세워놓고, 그걸 가지고 내가 연연해하고 있지? 하는 그 마음이 들어 버리잖아요? 좀 바꿔버리는 거죠.

 

이거를 일상에서 계속 체험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러면 일상이 그대로 그냥 공부가 되십니다. 우리나라에서 홍익인간이라고 해 놓은 게요, 엄청난 사상이에요. 예전 우리나라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얘기거든요. 깨어서. 성통. 내 머리 꼴에 내려와 있는 하느님이랑 뇌를 통해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홍익인간 하고 싶어지는 거죠. 홍익인간 해야 돼. 나는 그렇게 사명을 그렇게 받았어. 우리 민족 철학이니까 지켜야지. 이런 식으로 해선 홍익인간이 안 돼요. 본인 구제도 잘 안되기 때문에 본인부터 챙기시는 게 맞고요, 성통을 해야지 공안을 할 수가 있어요. 본성과 통해버리면요, 하느님 마음으로 세상을 딱 보니까 힘이 나죠. 그러겠죠?

 

그래서 뭐라도 더 해주고 싶게 되고. 왜 부정적인 상황에 빠져있는 나 자신도 구출수가 있고, 남도 혹시 부정적인 상황에 빠져있으면 건져주는 힘이 생기죠. 그럼 공안은 자동을 따라 오는 겁니다. 성통공안 하라는 그 철학에 이게 상고보리하화중생 이게 딱 녹아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민족의 DNA도 그게 있어서 하시면 잘 하실 거예요. 어떤 특정 단체에 철학이 아니에요. 홍익인간, 성통공안. 이건 우리 민족의 철학이지. 그리고 우리가 볼 때는 그런 말씀을 전해주시는 우리 환웅, 단군 이런 단군은 한 5천 년 전으로 보지만, 환웅 이러면 저희 선생님도 만 년 전으로 봅니다. 예전에 추장, 우리 고대 추장들이 했던 가르침이라는 거예요.

 

아메리카인디언들 보시면 아시겠죠. 아파치. 아버지란 뜻이거든요. 아파치들이 그냥 철학만 해서 되나요? 안되죠. 그러니까 이 절에서 수행하는 문화가 아니에요. 우리 몽골족문화는 아파치가 뭐해야 되냐 하면 그 부족 전체를 관리해야 되요. 깨어서 신하고 통해서 성통 공안. 그러면서 자기 책임을 다해요. 아버지로서, 또 뭐죠? 한 부족장으로서. 요즘 말하는데 대통령으로서, 통치자로서, 아프다 그러면요, 병도 고쳐줘야 되요. 아파치는. 병 고쳐 줘요. 뭐해줘. 거기에 360여사가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옛날에. 추장이. 우리 옛날 단군들은 추장이죠. 중국에서 복희, 요순 이렇게 하는 거는 우리 옛날 단군들 추장들 길이는 말 들이구요, 우리 옛날 이름도 모를 추장들이 많이 계셨겠죠. 대를 이어서.

 

그럼 그 후계자를 어떻게 키웠겠습니까? 아들한테 줬겠습니까? 자기 걸 이해하는 사람한테 줄 수밖에 없어요. 이거는. 그래서 제일 공부 잘해서 영성지능이 높아서 날 이해할만한 사람한테 후계자를 많이 키워서 가르쳐주고, 가르쳐주고 해서 이 명상 공부시키고, 명상만 해선 안 되죠. 호흡도 하죠. 명상하죠. 또 하나 뭘 하냐하면 사단을 정말 잘 해야 되요. 그래서 자기가 거느리는 나라나 부족 전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홍익인간 할 힘이 나와야 우리가 공안이라는 게 공덕을 완수했다. 자기 나름의 인간으로서 내가 준 사명을 완수했다. 요 소리 나오려면요, 참나를 열심히 하느님 뜻에 따라서 자기 능력 지혜와 능력을 발휘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딱 계시면 여기가 우리 북극성, 인체에선 여기가 북극성입니다. 정수리가. ~ 깨어있으면 여기 참나가 명확히 드러나 계시면 하시고, 하느님이랑 만나는 거랑 똑같아요. 시천주입니다. 이게 동학에서. 딱 깨어서 천주랑 바로 만나고, 조화정, 그 아버지가 하라는 건 하고 하지마라는 건 하지마시라. 일거수일투족을. 한 생각을. 한 감정, 한 언행도 거기에 맞춰서 하겠다. 인간은 이걸 다 못하지만, 그럴 각오로 이렇게 살아가시면, 하루하루 살아가시다 보면, 그럴 힘이 커지니까 영향이 커지니까 그 공부에도 또 단계라는 게 나오고 1지에서 10지가 나오지만, 그건요, 의미가 없는 게 내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그 단계는 가다보면 자연히 밟아지는 거니까, 그게 아니고 포인트는 성통공안 하겠다. 하는 거죠. 내가 본성대로 홍익인간을 나랑 만나는 모든 사람은 이익이 되게 나는 만들겠다. 그런 각오로 살아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나랑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선물을 받게 해주겠다. 이득을 얻게 해주겠다. 나랑 거래하면 손해 안 본다. 이런 기억이 있두만요, 인도에. 우리랑 거래하는 회사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홍익인간에 맞는 철학 아닙니까?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나랑 만나는 개인이 하나의 기업이 되셔서요, 나랑 거래하는 모든 사람, 손해 보지 않게 내가 하겠다. 이런 건 성통공안 아닙니까? 깨어서. 이렇게 살아가는.

 

예전에 이런 어른들이 아파치나 추장으로 계시니까 밝다는 뜻으로 (박달나무 단)자를 써서 밝은 임금. 이렇게. 머리가 엄청 밝은 임금. 그래서 재미있는 게요, (임금 황)자 옛날 갑골문 보시면요, 머리에 선을 세 가닥 그려놓습니다. 사람 머리에다가 선을 세 개 그어 놓은 게 지금 (임금 황)자가 된 거에요. 머리에서 빛이 세 줄기로 나는 사람은 그런 모습이에요. 머리가 얼마나 밝으면 임금 황자입니다. 황제 할 때 황자가 원래 동그란 머리에 선이 세 가닥 딱 그어있어요. 빛이 빛난다고. 광명한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밝다고 해서 (박달나무 단)자 써서. 한자는 나중에 붙인 거니까. 원래 우리말이 먼저 있었으니까. 밝은 칸이라든가 이런 호칭으로 불렀겠죠.

 

그래서 머리가 제일 밝은 사람만이 그 나라 전체를 경영할 수가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을 추대해서 올려서 역사가 이어온 거죠. 요임금 순임금이 다 동이족들이라 서요, 요가 아들한테 안주고 순을 찾아서 주잖아요. 이게 단군들이 옛날 전승하던 방식을 그대로 한 겁니다. 동이족이랑,또 순이 자기아들한테 안주고 우임금한테 제일 머리가 밝으니까 줬더니 우임금은 동이족 같은데 보면, 이 분이 좀 중국 그쪽인지 아들한테 줘요.그래서 유가 아들한테 줘가지고 왕조가 성립되고요. 그 전까지 동이족 전통방식으로 계승이 되다가 아들한테 가버렸어요. 왕조가 열려버리니까 공자님이 예기에 예원편보몉요, 요순까지는 대동사회, 우 임금부터 아들한테 줘버렸죠. 이때부터는소강사회, 딱 거기서 끊어버립니다. 우임금도 다 안 쳐줘요.

 

공자님은 요순의 빠라. 옛날 동이족 고대문화를 전공하신, 연구하신 분이 공자라, 요순을 쳐주고 우임금 아들한테 줬다고 쳐버려요. 그래서 대동사회는 천하의 공, 천하가 공것이라 아들한테 전수를 안했는데, 우임금부턴 천하의 위상. 천하를 사사로운 것으로 알아가지고 자기 것으로 알고 아들한테 줬다고 아주 안 좋아라 하시고. 그래서 대동사회로 돼야 한다하는. 우리가요, 대동사회 만듭시다 하는 거는요. 민족적인 의미도 있는 거예요. 옛날 동이족 고대에 홍익인간 문화를 복원해야 대동사회지, 천하를 한 개인의 집안으로 보고 경영해가는 거는 이건 소강, 조금 건강하긴 한데 아주 대동은 아니다. 하는.

 

그래서 이게 지금 예전 우리 조상들도 다른 힘으로 한 게 아니라, 참나 깨치고, 내 안에서 하느님의 힘을 찾아가지고 세상이 이거를 씀으로써 그런 놀라운 문화를 만들어냈다면 지금 하시는 분도 똑같이 그렇게 하면 우리 민족이 다시 전 세계 놀라운 문화를 내놓을 거구요, 성통공안에서 안 나오는 문화는 전세계안에 도움이 안 됩니다. 홍익인간을 할 수 있는 힘이 안 나오기 때문에. 홍익인간은 에고는 절대 못해요. 에고가 홍익인간 한다는 건, 자기한테 뭔가 이로움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말이 안 되는 얘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깨어있는 사람만이 진짜 홍익인간을 말 할 수 있고 보살도를 말 할 수 있다는 걸, 그런 것도 좀 겸해서 생각하시고 호흡하시면요, 호흡부터 잘 되실 겁니다. 명상도 더 잘되시고요. .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