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878회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Buddhastudy 2014. 2. 18. 22:17

출처 YouTube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우리나라에 지금 명상법 가르치는 데가 요가도 있고, 또 불교 안에도 남방불교에서 하는 위빠사나도 있고, 또 참선도 있고, 또 우리 정토수련회 아까 가보라는 깨달음장도 수련회 있잖아요. 그죠? 자기가 틈나는 데로 한 번씩 가보면 되는 거요. 여름방학 때 시간 내서 여기도 한번 가보고, 저기도 한번 가보고. 이렇게 다녀보면 자기한테 맞는 게 있을까? 없을까요? 있어요. 거기 목매달지 말고. 어느 하나만 해서 미쳐서 목매달지 말고, 이것도 한번 해보고, 저것도 한번 해보면 ~ 이거 많이 할 필요 없구나. 요것만 하면 되겠구나.”이렇게 딱 되면 거기에 집중을 하면 되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자기가 공부를 하나하나해가면 거기에 또 지도해주는 분이 있고, 그런데 이 지도해주는 분을 잘 따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이렇게 자기가 늘 봐야 되요. 자기가 어떤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면 어때요? 그것은 정법에 속하고, 갈수록 자꾸 남한테 의지하는 쪽으로 가면 그거는 맹신에 속합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를 배우면 그 사람한테 또 둘을 의지해야 되고, 또 셋을 의지해야 되고. 그래서 여러 가지 이 도움을 얻었는데 자꾸자꾸 이제는 그 사람 없으면 어때요? 아무것도 결정 못하는 쪽으로 간다. 그러면 그거는 깨달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정법과 사법의 차이는 도움이 얼마나 됐느냐가 아니고, 자기의 역량, 자기가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 또는 어떤 결정을 하는 능력이 점점 키워지고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주안점이 되어야 되요. 그런데 이제 지맘에 안 든다고 스승을 이거 스승 했다. 또 마음에 안 들면 저거 스승 했다가 이런 건 안 돼요. 자기를 버리지만 자기를 버림으로 해서 자기의 삶이 자기중심으로 자꾸 이렇게 영역이 늘어나야 되요. 그러니까 여러 군데 체크를 해보세요. 그걸 물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간단하게 뭐~ 명상을 어떻게 하느냐? 호흡은 이렇게 하고, 자세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거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거요. 중요한 거는 우리는 사는데 삶의 습관이 있어요.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피우는 습관이 있듯이, 화내고 짜증내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거든요. 사고도 습관이고. 일종의 컴퓨터를 치면 프로그램이오. 수많은 프로그램이 작동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거의 내가 사는 게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에 의해서 살려져 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서부터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게 진정한 자유요. 으흠.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내 맘대로 되는 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하는 거는 자기 욕구에 그냥 충족일 뿐이오.

 

그러니까 욕구대로 되면 행복하고, 욕구대로 안 되면 불행하죠. 욕구에 충족 불충족에 따라 행불행이 왔다 갔다 하는 이게 우리가 소위 말해서 행과 불행이 되풀이되는 윤회의 세계라 그래요. 욕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거요. 그러면 오히려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어떻게 되느냐? 행과 불행에서 벗어나버려요. 좋고 나쁨으로부터 벗어나버린다. 이런 얘기요. 그것이 이제 진정한 자유, 해탈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수행하는 것은 늘 욕구충족이오. 명상을 할 때, 진정한 명상은 마음이 고요하냐? 마음이 헐떡 거리냐? 이런 게 아니에요. 헐떡거리면 헐떡거리는 현재를 알아차리고, 고요하면 고요한 현재를 알아차리는 거요.

 

그래서 점점고요한 쪽으로 가야 되는데, 자꾸 고요한쪽으로 가야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조급해지죠. 으흠. 그러니까 더 불안해지는 거요. 그러니까 마약하는 거, 기분 좋은 거야 마약하면 기분 좋잖아요. 안 그래요? 마약투여하면 기분 좋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기분은 점점 투여약이 커져야죠. 그 기분을 유지하려면. 그것처럼 수행이라는 것도 일종의 정신적인 마약 비슷한 게 있어요. 하나하면 기분 좋은데 매달리면 그래 된다는 거요. 요거해보니 기분 좋은데, 다음에 해보니까 별로 안 좋아. 그럼 더 센 무슨 수행이 없나? 더 기분 좋은 그런 공부법이 없나?

 

이렇게 되면 명상에 미쳐가지고 방학만 되면 보따리 짊어지고 미얀마가고 티베트로 돌아다니는 사람 있잖아요. 이거 방황이에요. 마약 찾아다니는 거나 사실은 엄격하게 똑같은 거요. 말은 구도라고 하지만, 그건 방황이에요. 구도라는 것은 앉은자리에서 끝장내는 게 구도지.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 까르마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해탈이지. 무슨 바깥으로 돌아다닌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에요. 다만 처음에 공부를 어느 거를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까? 싶어서 처음에는 몇 군데 가봐야 되요. 교회도 가서 한번 보고, 절에도 가서 한번 보고. 절 중에도 여기 이렇게 이렇게 보고,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방법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체크를 해서 아~ 한군데 여기에 잡았다.

 

그러면 이제 거기서부터는 자기를 봐야 되요. 밖을 보지 말고. 그러니까 자기가 우선 학교 선생님이니까, 지금 뭐~ 자기가 조금 배워서 애들한테 가르친다. 그러면 안 돼요. 자기 학교수업이나 충실하지 딴 짓하지 말고, 그러고 자기가 먼저 쭈욱~ 다니면서 체크를 하고, 두 번째 거기에 쭈욱~ 깊이 심취를 해서 자기 치료, 자기 헐떡거림. 이런 게 어느 정도 해소가 되면,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 저 아이는 심리 불안이 저렇구나.” 저러면 대화하면서 ~ 저 아이에게는 요런 걸 조금 도와주면 도움이 되겠구나.” 이거는 학교 수업 과외 아닙니까? 그죠?

 

과외이니까 이건 약간씩 도와줘야지. 내가 학교에서 문제아 다 모아 가르치겠다. 이런 식으로 너무 덤비면 안 된다. 이 얘기요. 그런데 이제 선생님이 이런 과외,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도 약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선생님이 스승이 되는 길이 되죠. 요거는 선생이고, 요거는 돈 받고 아니고, 요거는 세상에 무슨 경쟁해서 이기고 이게 아니라, 참다운 삶의 길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조금씩 도와주면 아이들이 볼 때는 기술자, 지식기술자가 아닌, 인격자로서의 선생을 존경하게 되죠. 그러면 그런 영역을 넓히면 되요. 으흠.

 

그러니까 먼저 자기가 해본다. 가르치는 거는 섣불리 가르치면 안 돼요. 항상 자기가 충분히 해보고, 검증해보고 그렇게 해야 되요. 나는 어떤 사람 여행안내를 할 때도 내가 경주를 안내하든, 중국을 안내하든, 인도를 안내하든, 이런 여행 같은 거 안내할 때도 절대 안 가본데, 대중 많이 데리고 안갑니다. 아시겠어요? 나 혼자 먼저 가든지, 2~3명이 먼저 가든지, 다 현장답사해보고, 거기에 대해서도 다 조사하고, 위험도나 공부거리나, 어느 게 더 보면 좋은지 다~~~~~ 조사하고 그러고 나서 어때요? 전체적으로 이게 안내를 할 만한지. 이렇게 해서 사람을 안내해야 되거든요.

 

자기는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곳에 가도 괜찮아요. 가보고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아요. 그것도 공부이기 때문에. 그런데 어떤 여러분들이 유명하다고 해서 가봤더니 에이~ 볼 거 없더라.” 굉장히 좋은 거요. 뭘 깨쳤어요? “여기 볼 거 없다는 걸 확실히 깨친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볼 거 없다고 투덜거리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가서 이렇게이렇게 해봐서 아니더라. 하면 그건 낭비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이거 아니라는 거를 뭐에요? 알은 거요. 이거 큰 깨달음이에요. 내 말 이해되세요? 이게 아니구나. 하는 걸 알은 건 낭비가 아니라 굉장히 큰 깨달음이라니까. 그런데 대부분 그걸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럼 이거 아니구나하는 거는 나머지 길에서 좋은 길로 갈 확률이 높아졌잖아. 그지? 길이 5개 있는데 두 군데 가보니 아니에요. 실패가 아니에요. 그러면 이게 성공확률이 벌써 1/5에서 몇 분의 1? 2/5로 늘어난 거요. 성공의 확률이. 그래서 틀린 것을 틀린 것으로 알아차리는 거 굉장한 깨달음이오. “~ 내가 이거 모르고 있었네.” 이거보다 더 큰 깨달음은 없습니다. “~ 내가 이런 걸 몰랐구나.” 이거 굉장한 깨달음이오. 그 말은 알 수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얘기 아닙니까? 그래서 공부를 자꾸 여러분들은 너무 손쉽게 생각해요.

 

자꾸 공짜로 먹으라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먼저 딱~ 몇 군데 점검을 해보고, 그 다음에 하나 딱 잡았다하면 한눈팔면 안 되고, 그 부분에서 끝까지 딱 가보는 거요. 끝까지 가봤는데 아니다. 해도 그 배운 거요. 다시는 이 길로는 올 필요가 없으니까. 중간에 조금 하다가 물러서면 나중에 딴 데 하다 안 되면 또 어떤 생각이 드냐? ~ 거기 좀 더 해볼걸. 이러면 헷갈리는 거요. 끝까지 가서 아니면 아니구나하면 미워하면 안 돼요. 엉터리다 욕하면 안 돼요. 확인을 내가 했어요. ~ 이런 거는 처음부터 내가 요러요런 모순이 있었더니 역시 아니구나. ?? 내면 나머지 길을 가면 되거든요.

 

이렇게 해서 자기점검을 다 하고 난 뒤에 애들한테 가르치는 건 얘기를 해야 되요. 그리고 스승을 뭐, 신문에 유명하다고 스승이 되는 거 아니고 내가 믿으면 뭐가 된다? 스승이 되는 거요. 신이 뭐? 신이 있어서 신되는 거 아니오. 산을 믿으면 뭐가 된다? 산이 신이 되고, 물을 믿으면 물이 신이 되고, 나무를 믿으면 나무가 신이 되고, 하늘 믿으면 하늘이 신이 되고 그래요. 바위를 믿으면 바위가 신이 되요. 그러니까 신이 따로 있는 거 아니오. 자기가 믿으면 신이요.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서로 다른 거요. 남의 믿음을 우습게 알면 안 된다. 이 거요. 우린 보통 자기가 하늘 믿는다고 바위 믿는 사람 우습게 알고 이러잖아. 그런 건 잘못된 거요.

 

내 믿음이 소중하듯이 남의 믿음도 소중하다. 그런 관점을 가지시고 임해보시면 되요. 그러니까 내가 믿으면 스승이에요. 부처님이 오셔도 내가 못 믿으면 스승이 되요? 안 돼요? 안 돼요. 그러니까 부처가 누가 부처냐가 중요한 거 아니에요. 내가 부처로 섬기면 뭐다? 부처에요. 이 말 안 믿어지지? ? 절에 가면 돌로 깎고 쪼아놨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거나, 금칠을 해놨거나, 종이로 만들었거나, 온갖 불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조각이죠? 그런데 불교 신자는 그걸 부처로 믿어요? 안 믿어요? 믿으니까 돌이 부처가 되잖아. 돌이 부처가 되는 데 왜 사람이 부처가 안 되겠어요? 여러분도 남편을 부처로 믿어버리면 부처요.

 

돌은 가만히 있으니까 믿어지는데 남편은 저렇게 까불으니까 안 믿어지지. 그런데 돌이 영험이 있을까? 남편이 영험이 있을까? 남편이 훨씬 영험이 있어요. 돌은 아무리 그 앞에 갖다 놓고 빌어도 대답이 없어요. 돌의 좋은 점은 그거요. 하늘의 좋은 점도 그거요. 말이 없잖아. 그죠? 그런데 남편은 이게 자꾸 잔소리를 해서 이게 문제지. 그런데 영험은 남편이 더 있어요. 절에 가서 불공드리듯이 그렇게 많이 남편한테 갖다 바치고 절을 하면 남편이 영험이 있을까? 없을까? 있어요. 그런데 영험 있는데다가 기도를 해야지. 영험 없는데 가서 자꾸 기도하잖아.

 

그런데서 믿으면 부처가 되고, 돌도 믿으면 부처가 되고, 허공을 하늘에 뭐 있다고 믿으니까 그거 뭐요? 신이 되잖습니까? 태양을 믿으면 태양이 신이 되고, 달을 믿으면 월신이 되고. 그러니까 이거는 스승은 자기가 믿을 때 스승이 있지, 아무리 훌륭해도 불신하면 스승이 아니에요. 무슨 애긴지 아시겠죠? 스승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