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228회] 하늘마저 울어버린 세월호 아이들

Buddhastudy 2016. 10. 6. 21:33



 

안녕하세요. . 제가 세계 여러 나라를 강연 때문에 다녀보는데, 지중해성 기후라고 하죠, 지중해 연안. 그리고 미국에 샌프란시스코나 이런 지역 기후인데요. 거기가 날씨가 가장 맑습니다. 그런데 좀 너무 건조하고 뙤약볕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가을 날씨는 저는 그거보다는 더 좋은 거 같아요. 특히 어제 산에 가보니까 단풍이 빨갛게 물든 게 너무 예뻤어요. 나이가 드는가 봐요. 옛날에는 한국 좋은 줄 잘 몰랐는데. 갈수록 자꾸 한국이 좋아지는 거 보니까.

 

이게 늙으면 회귀성이라고 그래요. 해외 나가 계시는 분들이 자기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고, 또 한국 안에서도 다른 도시에 가서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이래요. 음식도 그래요. 젊을 때는 빵도 먹고 아무거나 먹다가 나이 들면 자기 어릴 때 먹던 음식, 그걸 더 찾게 되요. 이산가족 상봉하는 거 보셨죠? 얼마나 눈물이 나고 또 가슴이 아픈 얘깁니까. 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 돈도 필요가 없고, 지위도 필요가 없고, 그저 고향에 가고 싶고, 가족을 만나고 싶고, 이게 인간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정치라는 게 사람들이 이런 원하는 것을 좀 어렵더라도 해결해주는 게 정치인데, 정치가 그런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해결해주는 데 좀 인색하지 않나.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권력을 유지하는 것도 좋고, 부를 축적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자기이익을 추구하면, 이 불교의 가르침대로 하면 인연과보라고 그러죠? 나중에 반드시 나쁜 과보가 따른다. 재앙이 따른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러는데, 심어놓고 나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우리가 622, 23일 날이 제일 해가 길지만, 더운 거는 한 달 지나서 7월 말이지 않습니까. 1년 중에 해가 제일 짧은 거는 1221, 22, 이렇게 동지지만, 제일 추운 거는 1월 말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려요. 시차 때문에 우리가 인과를 잘 안 믿게 되요. ‘남 가슴 아프게 해도 잘만 살더라.’ ‘좋은 일 아무리 해도 별로 좋은 과보를 못 받더라.’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좀 시간이 걸립니다.

 

어떤 거는 즉시 나타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한 달 안에 나타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1년 안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10년 안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다음 생에 나타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조상이 지은 은덕이 자손에게 나타나는 것도 있고, 이렇게 시차가 걸리다 보니까 우리가 인과를 잘 안 믿게 되요. 으흠. 아무튼 그런 얘기가 나오다 보니까 저도 이런 얘기 하게 되는데요, 오늘은 여러분과의 대화시간입니다. . 좀 시작해 보세요.

 

 

[질문]

제 질문은 세상에 보면은 참 서글픈 일들이 참으로 많은데, 이 분들에게 다시 기회가 있는지 궁금하구요.

 

제 스스로 알아봐야 되는 어떤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도 같지만, 이렇게 기회가 돼서 이렇게 스님한테 나름대로...예를 들어서 지금 생각나는 거는 세월호 사건 때 그 수많은 저 보다 훨씬 더 생생한 아이들이, 꽃 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그런 일을 당하는데 서글픈 일을, 그 아이들에게 다음 기회가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어떤 기회? 다시 태어나서 천국에 가는 기회라든지.

인류는 지금 말씀하신 질문하신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것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연구의 결과가 3가지로 나왔어요. 그게 뭐냐?

 

죽은 뒤에 천국이 있다. 천당이 있다. 천상이 있다. 극락이 있다. 더 좋은 세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서는 좀 아쉽지만 그러나 더 좋은 곳에 가기 때문에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더 좋은 곳에 간다. 이런 생각을 한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 헤어질 때 헤어져서 나쁜 곳에 가면 헤어짐도 슬픈데, 더 가슴 아프겠지만, 헤어진 뒤에 그래도 여기보다 더 좋은데 간다니까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게 미련은 적다. 이 얘기에요.

 

이것이 인류가 계발해 온 것이 기독교에서 천국이라고 그런다면, 불교에서는 극락이라 그러든, 인도에서 천상이라 그러든, 그 종류에 관계없이 이거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가 이런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온 아이디어에요. 저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을 해요. 그거의 진위, 진짜냐? 그건 난 너무 따질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가 진짜냐?’ 따지지 말고, 먹고 나면 일단 약이에요. 그런데 이건 확실히 먹으면 도움이 좀 되요.

 

그래서 제가 옛날에 누가 질문할 때 그렇게 얘기했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의 것이니라.’ 이렇게 얘기했단 말이오. 따지지 말고 뭐하는 게 좋다? 믿는 게 좋다. 이 얘기에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나온 아이디어가 뭐냐? 다시 태어난다. 하는 아이디어에요. 다시 태어난다. 이건 주로 인도에서 나온 아이디어인데, 다시 태어나니까 문 열고 나가서 아쉬웠는데 저쪽 문으로 또 들어온다니까 이 아쉬움이 많이 위로가 되죠. 이게 이제 환생이다. 윤회다. 이렇게 말하죠. 다시 태어난다.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에요. 이게 진짜냐? 가짜냐? 이렇게 너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죽은 뒤의 얘기는 아무리 따져도 증명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그래서 이걸 갖고 사기 쳐도 발각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게 증명이 안 되니까. 그런데 이걸 나쁜 용도로 사기를 많이 치니까 그게 문제지, 이 아이디어 자체는 좋은 아이디어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세 번째 아이디어가 중국에서 나온 건데, 사주팔자라는 거요. 아시겠어요? 네가 태어나는 생년월일에 의해서 너의 삶이 결정이 된다. 그러니까 그거를 내가 볼 때 우리가 볼 때는 저거 억울하다. 저거 분하다. 하지만 그거 다 이미 풀은 풀로, 토끼는 토끼로 살 듯이, 이미 삶이 그렇게 기본적으로 운명 지어져 있다. 그러니까 그걸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중국 삼국지 같은 거 보면 죽을 때 , 내가 여기서 죽도록 이미 되어있다고 아는 사람은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이죠.

 

그런데 그게 불교냐? 불교는 아니에요. 현재의 불교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만, 그러면 부처님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셨느냐? 3가지는 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온 아이디어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는, 살아서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경지를 증득하신 거요.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죽음이 두렵지 않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에, 죽음 뒤에 두려워야 좋은 데 같다. 다시 태어난다. 이런 게 위로가 되는데, 죽음 자체가 아무런 두려움이 안 되기 때문에, 천당 간다든지, 다시 태어난다든지, 뭘 어떻게 한다든지, 이런 거하고 전혀 관계가 없어요.

 

이게 독특한 거요. 세상에 있는 종교와 다른 독특함이에요. 그런데 이거는 보통 사람이 증득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까, 불교도 인도에서 나왔다보니 인도의 위로방식인 윤회를 한다. 또는 극락에 간다. 이런 식으로 종교화 되면서 세상에 한길로 가지만, 원래 가르침은 열반, 열반이라는 말은 고뇌가 없다. 고뇌가 다 사라져버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거에 대해 크게 문제를 안 삼는 거요. 불교에서도 수많은 순교자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종교에는 그 순교를 굉장히 높이 사고 그거에 대해서 원수를 갚고 그러는데, 불교는 수많은 순교자가 있어도 그걸 갖다가 생사여탈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걸 갖고 문제 삼고 이렇게 안 해요.

 

그래서 마치 불교에는 순교자가 없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순교자가 있어요. 그러나 순교의 한을 후대에 전수를 안 시켜요. 그래서 원래 불교, 오리지널 불교는 조금 그런 종교와는 좀 차이가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그러니까 여기서 보편적으로 얘기한다면 그 분들에게도 살아서 좋은 삶을 살았다면 어려서 특별히 죄지은 건 아니잖아. 기독교 논리로 해도 다 어디 갔겠다? 천당을 갔을 거고, 불교 논리로 하면 좋은 인연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거고.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연연해하면 안 된다. 자꾸 이게 지나간 영화 돌려서 자꾸 보면서 울지 마라.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냐?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노력을 할 거냐. 이게 관심이 되어야 되요. 넘어졌을 때 앉아서 울지 말고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가야 된다. 이게 중요한 거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만약에 지나간 얘기를 자꾸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할 수는 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오. 착한 생각일 수는 있는데 어리석다 이 얘기에요.

 

그러면 우리의 슬픔은 착하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지혜로워야 해결이 된다. 지혜로운 자는 어떤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그 무엇이든지 내려놓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 우리의 쉬움이 이거죠. 대통령이 좀 더 그들을 따뜻이 위로해주고, 자녀를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원인규명을 좀 신속하게 해주고, 그죠? 미국대사가 다쳤다니까, 외국에서 들어오는 즉시 청와대도 안가고 병문을 먼저 갔는데, 우리 학생들, 국민들 300명이 돌아가셨을 때는 그런 거 놔두고 외국에 갔다 온다든지.

 

그러니까 이런 것이 우리는 좀 아쉽게 한다 이 말이오. 그렇게 안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 집 며느리가 안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거요. 이 현실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는 거요. 불교 신자들도 똑같죠. 스님들이 이렇게 이렇게 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다니면서 내가 불교라는 게 자랑스러울까?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럼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슬프게 살고, 괴롭게 살아야 되냐? 아니에요. 이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즐겁게 살아야 되는 거요. 이 현실 속에서도.

 

그런 거 안 보고 즐거우면 된다. 이 얘기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을 극복할 노력을 해야 된다. 이런 일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되는데, 그 이후에도 여러 사건을 봤는데, 별 가능성이 없다. 이 정부는 그럴 여지가 없다고 만약에 자기가 판단을 한다면, 자긴 지금부터 어떤 노력을 할까? 이 정부를 가지고 노력을 하는 길이 있고, 자기가 안 된다고 판단하면 적어도 다음 정부에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면 자긴 지금부터 무슨 노력을 해야 된다?

 

다음에 들어설 정부를, 좀 자기 마음에 드는 정부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돼. 그래서 이 정부에서 이걸 다 백프로 해결하려는 거는 이 정부를 너무 좋게 평가 하는 거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미워하는 거요. 나는 별로 좋게 생각 안하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안 해요. 그래서 요 정도 해주는 것만 해도 어때요? 아이고 고맙다. 옛날 같으면 덮어 버리는데, 그래도 그 정도 해주니 고맙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다음 정부에서 밝히자. 이렇게 자기가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가야지, 자꾸 지나간 얘기 붙들고 이렇게 하면 자기까지도 뭐해진다? 우울해진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이미 넘어진 것을 탓하지 말고, 일단 일어나고 그 다음에 다시 안 넘어지기 위한 조치를 어떻게 취할 거냐? 이렇게 좀 생각하면 좋겠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