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4_1. 무일의 오도체계

Buddhastudy 2017. 3. 22. 20:16




특강 받은 유인물을 보시면, 거기에 무일의 오도체계. 이걸 좀 보시겠습니다. 이 무일의 오도 체계 도표라고 나와 있는 것인데, 이걸 보면 우리가 말하는 마음 다스리는 것. 또는 깨달음. 이런데 대한 이해를 좀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 도표 그림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유심히 보면 나 아자가 중간에 있고, 나아, =마음심. 우린 다 나다. 나다 이러면서 사는데, 이 나다 나다하지만 나의 종류도 많습니다. 업아, 몰아, 묘아, 공아.

 

業我업아

업으로 이루어진 나. . 우리가 업을 지어서 현재 업대로 이 사바세계에서 고만큼 살고 있는 거죠. 그게 業我업아죠. 이 업아는 心使自己심사자기라. 마음이 자기 자신을 다스립니다. 마음 하자는 대로 하는 거죠. 이때 마음은 중생심입니다. 중생심. 중생심인 내 마음이 온갖 일을 다 해간다. 삼독심. , , , 삼독심도 이 마음이요, 습심_습관적인 마음, 그것도 이때 이 마음입니다. 중생심이죠.

 

우리가 길들이기 마음. 계속 반복된 그런 마음을 쓰다보면 그것이 업이 되고 말아요. 간혹 보면 유서에 60~70, 연세가 많은 그런 노인네들이 수십 년을 소매치기를 하다보니까 교도소에서 나와서 자기는 그러고 싶지 않는데도, 이 습심이 살아있어서 본이 아니게 그냥, 또 소매치기 하다가 뉴스에 나오고, 또 창피를 당하고 그러잖아요. 습심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습심을 단칼에 쳐내는 것이 수행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애착심 같은 거, 이것이 중생심의 표본입니다. 그런데 이 중생심인 이 심이 자기를 다스린다. 이 말입니다. 심사자기_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다 보니 업아를 형성하게 되는 거죠.

 

2. 沒我몰아

그런데 이 업아를 통째로 다 무너뜨리고 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수행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心滅人無심멸인무_마음도 몸도 없는 그 자리에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자리입니다. 心滅人無심멸인무_마음도 없어지고 몸도 없어진 그런 자리. 완전히 다 쉬어버린 자리. 방하착한 자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혹독한 수행도 해보고, 혹독한 수행가운데서 이 무문관에도 들어가 보고 그런 거거든요.

 

이 무문관이라고 하는 곳은 거기 들어가면 하루 한 끼 밥을 먹습니다. 일체 나다닐 수가 없고, 폐문합니다. 문을 완전히 잠급니다. 그 안에서 큰 병이 걸릴 수도 있고, 정신적인 큰 충격으로 인해서 아주 위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고비를 넘겨본 사람이라야지 또 다른 세계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길이 다 끊어지고, 이 말길이 완전히 끊어져버려야 되요.

 

그래서 아주 기가찬, 그런 세상에 놓여져 본 사람이 공부를 좀 하는 거죠. 이 세상에도 보면 큰 사건을 당한다거나 또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거나 이런 분들이

 

, 도대체 진리의 세계는 무엇인가?

현재에 나 말고, 진짜 나는 없는 건가?

 

이렇게 그러한 세상을 동경해서 불교대학 다니고, 또 절에 다니면서 열심히 수행을 해보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이 끝내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또 구현하고, 또 참자아를 찾는 수가 많습니다.

 

아무 일이 없고

여건이 좋아서는 공부가 사실 잘 안 돼요.

공부를 진짜 좀 해보는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하는

그런 파란만장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공부가 되는 겁니다.

 

아무튼 心滅人無심멸인무_몰아의 과정을 한번은 거쳐야 된다는 거죠. 오늘 저녁에 또는 낮에 나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다 몰아의 체험이라. 부처님 전에 와서 지잘났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지잘났다는 그 마음, 중생심 다 멸_없어지고, 또 나라고 하는 이 몸뚱아리 쉰 채로 여기 앉아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부하려고 와서 앉아있는 이 자체가 적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몰아의 체험도 된다. 이 말입니다.

 

3. 妙我묘아

이런 과정을 거쳤을 때 우리는 묘아에 들어간다. 그래서 이 묘아는 나를 철저히 항복받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금강경 3분에서 항복기심이라 했잖아요.

 

그 마음을 항복받는다.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통제받는다.

이 묘아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智顯使心지현사심_지혜가 나타나서 마음을 다스린다. 즉 업아에서는 마음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그러한 단계, 아주 업아인데, 이 묘아는 지현사심이라. 지혜가 나타나서 이제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중생심이라는 이 마음을 지혜가 다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꼭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니라 그랬잖아요. 묘아의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智顯使心지현사심. 智顯使心지현사심. 지혜가 나타나 마음을 다스린다.

 

바로 항복기심의 자리입니다. 반야지혜가 자기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이때 지혜라는 것은 자각, 그런 것입니다.

 

4. 空我공아

그런데 여기서 사실은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밀고 들어가 보면 공아의 세계가 나타납니다. 공아. 공아라고 하는 내가 나타나요. 이때의 공아의 나는 진리적인 나, 참된 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아에서는 空我지심원융_지혜와 마음이 완전히 하나 되어서 녹아버린 그런 경지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한 대보살의 삶은

바로 지심원융의 삶인데

그러한 나가 바로 공아다.

 

...??? 밝아있고 당당히 드러나 있는 바로 참나, 참나의 활동이 분명한 그 세계가 바로 공아의 세계입니다. 이 업아의 입장에서 하는 행위가 얼른 보면 공아에서 하는 행위하고 비슷할 수도 있어요. 행동은 똑같은데 업아의 행동의미가 다르고, 공아에서 부리는 행동의 의미가 다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행위는 누구든지 보면 비슷한 거 같지만, 그 안에 내재되고 있는 그 마음, 그 마음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다.

 

그러니까 불심을 가지고 있는 공아의 세계와 업심, 업의 마음만 가지고 있는 업아의 행위는 전혀 다르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이 공아의 세계에서 말하고 있는 이 마음은 바로 불심이요, 청정심이요, 부동심이요. 그런 것입니다그래서 그 부분을 다시 정리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옆에도 표시가 되어 있구요,

업아는 바로 심사자기요,

몰아는 심멸인무_마음도 멸하고 몸도 없는, 인도 없는 그런 자리고.

묘아는 지현사심_지혜가 드러나서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요,

공아는 지심원융이라. 지혜와 마음이 원융한 그런 자리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업아_심사자기_마음이 자기를 다스림

몰아_심멸인무_마음도 멸하고 사람도 없음.

묘아_지현사심_지혜가 드러나 마음을 다스림.

공아_지심원융_지혜와 마음이 원융함

 

우리는 업아로서만 살면 그냥 중생 삶 그대로, 사바세계의 그 험난한 삶 그대로 살지만, 우리가 지금 발심을 했지 않아요. 공부하고자해서 여기 온 것은 발심이라. 발심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럼 몰아의 단계를 거쳐서 이제는 우리는 조금 있으면 묘아의 단계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묘아의 단계에 들어가고 여기서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 공아의 세계까지 들어가서 참나를 찾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그러한 오도체계, 이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시면서 다시 본문으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