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3_5. 아뇩다라삼먁삼보리

Buddhastudy 2017. 3. 21. 21:11



다시 44페이지보면 게송에

隔牆見角격장견각에 便知是牛변지시우요

隔山見煙격산견연에 便知是火변지시화로다

담 너머 뿔을 보고 소인 줄 알고

산 너머 연기보고 불 있는 줄 문득 알도다.

 

우리가 꼭 다보지 않아도, 극히 조짐 되는 일부만 봐도, 그 몸통을 우리가 충분히 가늠하고 알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딱 봤는데도, 이 야부라는 스님께서는 , 무슨 얘기가 전개될 것 인가하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래 연결된 한문과 한글 동시에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발아뇩다라삼보리심한 이는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응운하주며 운하항복기심하리이까.’ 어떻게 생활하여야 하며, , 응당 어떻게 머무르며 운하_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리이까.

 

그것을 제가 번역해놓기로, ‘어떻게 생활하여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리이까.’ 이렇게 해놨어요. 한글 같이 크게 읽어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 즉, 착한 보살들이 있어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여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리이까?

 

제가 워낙 한글을 잘 해석을 해놔서 대충 이거 읽어보면 감은 잡힙니다. 그런데 이 원문을 갖다 들이대면 좀 말이 어렵습니다. 그 중에 하나 말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해설2번에 보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여기서 보리심 앞에 거 다 지우고 보면, 보리 또는 보리심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 보리심만 잃지 않는다면 절대로 뒤로 물러서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시라는 말을 자꾸 구체적으로 해설을 하다보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렇게 말이 길어진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보리, 깨달음입니다. _낸다는 뜻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_고전적으로 무상정등정각,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번역해 놓은 게 더 어렵죠. 읽어보겠습니다. 무상정등정각, 무상정등정각_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말한다.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세계는 최고의 진리적 세계이다.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최고의 진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발아욕다라삼먁삼보리심이란 쉬운 말로 최고의 진리적 마음을 낸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곧 진리이다. 즉 부처님의 마음을 낸다는 뜻과 통함. 그래서 전체 해석을 해 놓은 걸 보면, 최고의 진리적 마음을 낸다는 말은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낸다는 뜻과 같다. 이렇게 해서 전체 45페이지, 거기에 다시 한글 번역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 즉, 착한 보살들이 있어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여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리이까?

 

표현은 다르지만, 다 우리는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내고 여기 모인 우리 대중, 모든 보살들은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바로 나의 문제가 되는 거죠. 왜냐? 우리는 부처님 도량에 왔고, 부처님 도량에 올 때는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 어쨌든지, 좀 편안한 마음, 최상의 행복을 구하려는 그런 마음으로 온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문제잖아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생활하며, 또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되느냐? 이런 근본적인 존재의 의미, 근본적인 나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 거죠. 그래서 한번 봐봐요. 거기에 답이 어떻게 나왔는가? ? 48페이지에, 부처님께서는 의미를 빨리 잡기 위해서 한글부터 보시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래 그래. 착하구나 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생각하여 보호해주시며

보살들에게 잘 부탁하여 맡기신단다.

자세히 들으라. 너의 묻는 말에 답해 주리라.

착한 보살들이 있어 부처님 세계에 들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다음과 같이 생활하며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느니라.”

 

여기까지는 그렇게 무슨 문맥상 어려운 데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