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대장경(담마빠다)

담마빠다(법구경) 15회 31, 32. 모든 장애를 지혜의 불로...

Buddhastudy 2020. 2. 27. 20:28



담마빠다 제2<방심하지 않음>

 

31.

깨어있음을 즐기거나

방심함에서 두려움을 보는 수행승은

크건 작건 모든 장애를

다 태워버리는 불처럼 나아간다.

 

--

이 게송이 전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비구가 부처님으로부터

아라한의 경지에 이끄는 수행 주제를 받아

숲에서 수행 정진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힘껏 노려해도

그는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게 더 잘 맞는 수행 주제를 달라고 부처님께 청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는

부처님을 뵈러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가 숲을 지나고 있는데

거대한 산불을 만나게 되어 그는 불을 피해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훨훨 타오르는 불길이 온 숲을 다 태워버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불이 크건 작건 모든 장애를 다 태워버리는구나!

나도 성스러운 수행법이라는 불로써 크건 작건 모든 장애를 다 태워버려야겠다

 

그는 이 생각으로 마음을 온전히 집중시켰다.

부처님께서는 제따와나 정사에 계시면서 이 비구의 생각의 과정을 아시고는

광명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의 생각은 참으로 올바르다.

불이 크건 작건 모든 장애를 다 태우듯

중생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집착을 지혜의 불로써 완전히 태워 없애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깨어있음을 즐기거나

방심함에서 두려움을 보는 수행승은

크건 작건 모든 장애를

다 태워버리는 불처럼 나아간다/

 

 

--

32.

깨어있음을 즐기거나

방심함에서 두려움을 보는 수행승은

뒤로 물러남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열반에 가까울 뿐이다.

 

 

이 게송이 설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니가마 띳싸 비구는 어느 시장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출가 후에 항상 작은 것에 만족했으며 검소하고 청정한 삶을 살았다.

 

그는 늘 자신의 친척들이 사는 마을에 탁발을 다녔고

왕이나 큰 부자가 베푸는 성대한 공양 행사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는 날, 니가마 띳싸를 못마땅하게 여긴 몇몇 비구들이 부처님께

니가마 띳싸는 친척들하고만 사사로이 가깝게 지냅니다.

그래서 왕이나 큰 부자가 베푸는 큰 공양 행사에는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라며 니가마 띳싸를 비난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니가마 띳싸를 불러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 물으셨다.

 

그러자 니가마 띳싸는

부처님이시여, 제가 제 친척들과 사사로이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가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음식만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이 거친 것이건 부드러운 것이건

목숨을 부지할 만큼만 음식을 취합니다.

그래서 이 음식이 내게는 충분한데 더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성대한 공양 행사에는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비구여, 잘했구나! 수행자라면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 삶은 나, 붓다의 수행과도 다를 바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는

이와 관련된 앵무새 왕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 옛적에 수천 마리의 앵무새들이

갠지스 강 기슭의 무화과 나무 숲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 중 앵무새 왕은

그가 살던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다 시들었는데도

그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남아있는 나무순이나 나뭇잎, 나무껄질 등을 먹고

갠지스 강물을 마시면서

그 삶에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며 살았다.

 

그 앵무새 왕을 기특하게 여긴 삭까천왕은

앵무새 왕이 살고 있던 숲을 전부 살려내었다.

 

무화과나무의 잎은 푸르러지고 무성해져

오래지 않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니가마 띳싸 비구가 전생에도 작은 것에 만족해하고 기뻐했으며

이런 수행자는 뒤로 물러남이란 있을 수 없고 열반에 가까울 뿐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깨어있음을 즐기거나

방심함에서 두려움을 보는 수행승은

뒤로 물러남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열반에 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