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16회 무제불선원 (21:42)

Buddhastudy 2012. 5. 6. 20:42

  방송 보기: 불교TV

잘 지내셨나요? 날씨가 엄청나게 좋으네요. 날씨가 좋은 만큼 마음도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이 전화 와서 뭐라고 말씀 드리냐하면,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에요. 자기 마음을 좀 잡아 달래요. 그래서 저한테 맡긴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거든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마음 맡기신 적이 있으세요? 혹시 저 누가 그렇게 누가 맡기셨어? 으음. 부처님한테 마음을 맡겨놓으면 그게 자기 마음은 본질로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건 그 마음은 본래 평온하고 그 마음의 상태는 본래 고요하거든요. 그런데 생활 속에서는 자꾸 파동을 일으키는 거에요. 일으키는 것은 왜 그런가? 자기 생각의 작용이에요.

 

자기가 늘 마음에 불만족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마음의 행복이라는 것을 영원히 지나가도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거든요. 마음이라는 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존재해 있는 거에요. 본질로부터. 그걸 본성이라고 얘기하고, 사용하는 것은 현상이라 그러거든요. 딱 두 가지의 관념성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는 본성이고, 하나는 본질성에 있거든요. 하나는 본질성에 있고 하나는 현상에 있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음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고, 사용하지 않는 마음의 세계는 어마어마한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우리들의 마음 세계라고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16번째거든요. 16번째가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잘 들리시나요? 무제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제불선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불선 이렇게 돼 있죠. 그 다음에 뭐가 이느냐하면 이게 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돼 있죠. 그죠? 그 다음에 오늘은 하나 더 합니다. 17번째가 있습니다. 39쪽에 보시면 뭐라고 돼 있냐 그러면 제불칭찬이라고 돼 있습니다. 글자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찬이거든요. 이게. 이게 뭐냐 그러면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같은 원인데. 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두 가지 인데요. 이게 뭐냐 하면 모든 불선을 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걸 보면은 자기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착한 것이 자기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선한 것을 행하는 그것이 자기의 것이지 나쁜 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이런 뜻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그런 뜻이었구요. 뒤에 것은 뭐냐하면 모든 부처님을 칭찬하고 찬양한다. 이런 말이거든요. 조금 바꿔서 설명 드리면 글자 그대로 여러 번 설명 말씀 드렸는데, , 불행,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본래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런 뜻은 이게 글자그대로는 그 나라에 중생이 좋지 않은 일은 물론이고 나쁜 이름이라도 한마디라도 있다면, 나쁜 것이 눈에 있다면 그건 내가 부처가 되지 않겠고 그들을 전부 고치겠습니다. 제도하겠습니다. 이런 원이거든요. 그러니까 쉽게 표현하면 내 가족이나 내 가정을 전부 착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구하고, 복을 가득한 삶으로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발원에서 출발이 되는 일이죠. 그래서 그게 불선원이다. 이렇게.

 

착하지 아니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불선원입니다. 착하지 않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 그렇죠. 그게 뭐라고 그랬죠? 모든 것은 착하지 아니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야 돼요. 원하는 것은 뭐냐? 이게 분명하게 이렇게 얘기를 하셔야 돼. 우리가 살면서 병, 불행은 본래 우리게 아니에요. 내가 나타나 있는 자기의 본래 마음속 안에 생활 속에 병, 불행이 본래 내것같은데도 내게 아니거든요. 이걸 깨우쳐지기 위해서 우리가 불설아미타경을 공부하고 있고, 불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수행하고 기도하고 발원을 통해서 점점 좋아져가는 나를 발견하시게 돼요. 이런 과정을 일러서 불교수행이다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거를, 이 말을, 이제 다른 쉽게 말로 조금 의역을 많이 많이 붙여서 말하면은 이렇게 한마디로 붙이겠습니다. 제가 쉽게 좀 편하게 지금 이 순간 불성을 기뻐하자 찬양하자 이런 뜻이거든요. 쉽게 표현하면 이 말을 이런 뜻입니다. 이렇게 찬양하자. 이 두 가지가 뭐냐 하면 무제불선원이고, 제불칭양원이 거든요. 칭양. 그냥 쉽게 표현하면 찬불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부처님을 기쁘게 생각하고 지금 부처님을 환희롭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보답이 저절로 생겨 오는 것이죠.

 

이제 17번째 보면은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이 저의 이름, 아미타불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 얘기는 뭐냐 하면 진리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다른 것은 아닙니다. 라고 이렇게 좋게 표현해주는 내용 중에 하나죠. 그죠. 매일 매 순간 우리가 착한 것을 지양해야 됩니다. 제불통원이라는 것에도 들어있거든요. 지금 저희가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미타경안에 불설아키타경안에 48대원을 지금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16번째 17번째 지금 수행을 해가고 있는 과정이시거든요. 반드시 우리들 가슴속에 딱 정리를 하셔야 돼.

 

내 인생에 병, 불행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없는 거에요. 이것을 알아차리는 거에요. 이걸 깨우치는 거에요. 이것을 자기화로 만들어서 병 불행에 휘둘려 사는 삶을 이제 그만 그치는 겁니다. , 불행은 헤아리지 말고, 복과 지혜를 자꾸 헤아리시면 됩니다. 너무 쉬운 거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을 색의 요소라고 이렇게 말하고요. 그런데 이거를 뭐라고 그러냐하면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몸 요소라고 그러거든요. 그 다음에 수상행식이라고 설명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요 내용이 뭐냐 하면 색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것이 이게 불교식 얘기로는 오온이라고 하는 말로 정리가 되요. 오온. 이런 말의 뜻입니다.

 

그 얘기가 뭐냐 하면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색수상행식 오온이라고 이렇게 말해요. 반야심경에도 요런 말이 들어있죠. 너무 쉬운 것 중에 하나인데. 이것을 보고 다른 말로 얘기해서 정신요소라고 이렇게 표현해도 다르지 않죠. 이걸 마음상태라고 말하는데 이 마음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의식하고. 이거는 알아차림이거든요. 이거는 알아차린다. 이런 뜻입니다. 알아차려야 돼요. 뭘 알아차려요? 내가 지금 뭘 행동을 하고 있는지,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이렇게 보셔야 돼. 이게 몸의 요소라고 하는 말은 이게 지금 그대로 몸뚱아리 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은 건강의 모습도 보이죠. 얼굴에 보면 이게 얼굴에 관상에서 보면 찰색이라는 게 있거든요. 얼굴색을 그런 걸 찰색법이라고 표현하는데. 건강이 그냥 그대로 보이죠. 그래서 요거 보면은 이 사람의 사는 환경이 어떻게 보이는지 얼굴만 보면 그냥 보이죠. 그 몸뚱아리 보면 그대로 보이시잖아. 그 분이 말하는 언어를 보면은 이 분이 무슨 조건을 가지고 사는지 그냥 그대로 보여져요. 삶은 다 똑같은 거에요. 그죠. 그런데 요게 좀 솔깃하려면 관상얘기를 안할 수가 없어서 잠깐 하는 거에요. 진리는 왜 그렇게 졸리고 힘든지. 관상은 눈이 번쩍 이렇게 뜨여요. 희한한 일중에 하나에요.

 

이게 다 관상이잖아요. . 이거를 보고 뭐라고 그래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이걸 다 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붙이면은 이거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형태로 가면은 관상 아니에요. 그죠? 관상.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럼 이게 색에 나타난 것을 보이는 것을 전체적으로 이걸 보고 뭐라고 그러냐하면 운명이라고 표현한다고 그러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運命명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죠. 그래서 요렇게 정리가 되시잖아요. 이렇게 정리가 되면은, 이 형태 몸의 요소의 결정은 이걸 보고 뭐냐 하면 형태소라고 표현하고. 이쪽에 보면은 이거는 작용소라고 표현하거든요. 작용상태라고 말하면 됩니다.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뭘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알아차리고 그것을 의식을 느끼는 것을 수상행식이라고 표현해요. 그걸 정신요소라고 표현하죠. 그러면 나타나있는 게 뭐냐 하면 작용성이라는 겁니다. 지금 작용하고 있는 상태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렇죠. 그럼 본질을 어디 있는가?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오면은 요 마음의 상태가 밝음이 점점 많아지면 그걸 플러스 정서라 그러거든요. 플러스 상태가 점점점점 길어지면은 깊어지면 그래서 점점 플러스상태가 점점 많아지면은 밝은 점이 많아지는 거에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행복감이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 여기 좀 보세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행복에는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 행복에 자기의 값어치는 오직 자기가 느끼는 것 만큼만의 행복이거든요. 자기가 보는 만큼의 느낌의 행복이라고요. 내가 만지는 것만이 그것만이 행복이라고요. 사람이 이런 게 있어요. 이게 건강이 건강치 않은 것이 있잖아요. 사람이 병, 이걸 보고 다른 말로 병이 본질적으로 아까 없다고 그랬죠. 본질적으로 병이 없어요. 그런데 다만 이것을 뭐라고 말하냐 하면 부조화의 상태에요. 영원히 평생 병 사는 사람 없거든요. 감기 들면 나을 때 있거든요. 암도 낫거든요. 괴로운 인생이 있잖아요. 괴로운 인생도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수행하고 자기 관리 조금만 하시게 되면 조금만 기도를 하시게 되면은 자기 운명이 변해져와요.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값어치를 맞출 수가 없어요. 다만 내가 느끼는 불행감이란 말이에요. 그걸 보고 우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하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감이라고 표현하죠. 무슨 . 느낌이다 이런 뜻이죠. 느끼고 있을 상태일 뿐이지 그것은 실체로 불행은 없다는 거에요. 모든 경전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경전이. 부처님의 핵심은 다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요게 보면은 어떤 면으로 볼 때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남을 보거나 자기 자신을 보거나 이것이 전부 다 자기라고 말하거든요. 자기 형태 있는 그대로를 자기가 받아들이고,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이해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거거든요. 자기가 행동해요. 그래서 자기가 아는 거에요.

 

그래서 자기를 볼 때는 어떻게 보느냐 그러면 몸의 요소, 형태가 있는 것, 건강한 상태를 보면은 받아들이는데 무슨 작용이 생기냐하면 이 작용은 정신요소는 곧 마음의 상태거든요. 마음에는 부처님의 위신력이 같이 가득한 존재라고요. 불교의 연결선을 지어 보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요 몸, 마음 상태가 곧 뭐죠? 불보살님의 상태 고대로 연결되어져 있어요. 요거는 그냥 억지로는 안 되지만 일단 받아들여야 돼요. 왜그러냐하면 수상행식이니까. 그래서 이게 보면은요. 받아들일 때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형태는 여기에 힘을 주고 있고 이게 움직이는 게 힘이 아니라. 요거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느끼느냐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런 말을 뭐라고요?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정서의 상태다. 요렇게 표현하실 수 있죠. 그러니까 요 상태가 그대로 요 색의 형태. 모양에 고대로 나타나실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사느냐 그러면 내가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이게 나는 나이가 들었어. 나는 병들었어. 나는 정신상태가 좀 온전하지 않아. 난 또 시원찮아. 난 좀 모잘라. 나는 약해.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에요. 뭐든지.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모양새나 형태나 건강이나 환경이나 조건을 들여다 볼 때 나는 뭣 때문에 요렇게 병들었고. 요렇게 뭣 때문에 안 되고. 뭐 때문에 시원찮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삶이 전면이 달라지기 시작해요. 달라지는 거에요. 그럼 뭐가 변하느냐 하면, 첫째 상이 변해요. 은은하고 편안한 얼굴로 부처님 닮아서 자꾸 모양새가 변해가요. 편안해 가고. 그러면 여기에 뭐가 생겨요? 받아 들이는 것은 자기 안의 내면의 마음상태잖아요.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받아들이는 거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알아차리는 거거든요. 어떻게 알아차리느냐? 달라지는 대로 뭐가 생겨요? 몸의 요소. 몸의 요소. 몸의 요소는 뭐냐 하면 이 몸뚱아리가 관상이 달라져가는 거에요. 손금도 변해져갑니다. 그러면 요게 조금 조금씩 받아들이는 태도가 내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수수작용이라 그랬 거든요. 받아들이고 나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러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이 몸뚱아리에 뭔 현상이 생겨요. 좋아지게 돼 있어요. 나아지고. 사랑스러워집니다. 저처럼.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따라서 상이 변합니다. 고약한 것이 보여도 어떻게 받아들여요? 감사하게 받아드립니다. 이걸 뭐라고 해요? 이게 무슨 감? 불행감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감사 감으로 받아드리는 거에요. 따라하겠습니다. 감사하기. 고마워하기. 사랑스럽게 받아들이기. 수상행식이니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나한테 피드백이다. 이게 무슨 테클이다. 무슨 뭐가 붙었다. 이러잖아요. 그거 아무 소용없는 거에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평생 이기면 뭐합니까? 평생 재판하고, 평생 싸우고, 피켓 들고 평생 싸우는 거에요. 다 망가져요. 그걸 놓는 피켓 들고 싸우는 거 하지 말라는 뜻, 아니 거든요. 그러나 계속 그것만을 주장하고, 그것이 억울하다고, 분하다고 계속 평생 그것을 해봐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부은 그렇게 절대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풍요는 제대로 받아들일 때 자기에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을 하나둘씩 하나둘씩 마음속에 채워가시고 그러시면 생각이 생각하면 할수록 뭐가 생겨요? 행복하다라고 하는 느낌이 자꾸 들어가요. 들어가는 것은 어디에 들어가냐하면 구족한 생각이 자꾸 들어가요. 구족한 생각이 들어가요.

 

행복한 생각이 자꾸 들어가셔야 돼요. 불행감이 자꾸, 이거 왜 걱정 될까? 왜 이럴까? 왜 이럴까? 이러잖아요. 자꾸 변해가야 돼요. 그 다음에 뭐냐 그러냐하면, 행동은요, 행동은 하는 일마다 뭐죠? 뭘 갖다 주냐 하면 부스럽게 갖다 줘요. 마음의 부가 생겨져요. 본인이 먼저 마음을 열고 배우고 실천하고 옮기고 그렇게 하나 둘씩 하나 둘씩 자기가 나아져가는 것에 그게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거거든요. 이 지장사 법당이나, 이런 법당에 오셔서 복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이 그게 저한테 보답이에요. 곧 나아가서 부처님께 보답이구요. 그게 이제 우리가 살면서요. 이렇게 행동이 이게 따사로워지면 되요. 조금만 행동이 뭐라고 생겨요?

 

친절한 것이 자기에게 깃들기 시작하면은 앎이 저절로 저절로 뭐가 생기냐하면 식에서 지혜로움이 하는 일마다 좋은 일이 자기를 지배하고 살게 됩니다.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받아들이는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다른 거에요. 내가 병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걸 병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병은 이겨갈 수 있는 존재거든요.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니에요. 병은. 병은 어디서 왔어요? 밖에서 오기도 하고 안에서 오지만 대다수의 거의 85%이상이 어디서? 내부적인 거에요. 어떻게 받아들이는데 이게 고약스럽게 받아들인 거에요. 희한한 일들이 자꾸 생겨요. 끊임없이 불평하고, 끊임없이 불만하고, 끊임없이 시비하고, 끊임없이 분별하고, 끊임없지 집착하거든요. 이런 말들이 절집 안에 너무나 너무나 넘쳐 있잖아요. 정말 집착이라는 말이 뭔지. 시비분별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전혀 납득적으로 정리가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