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법인. 삼법인은 뭐냐?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열반적정.
일체개고를 빼고 열반적정이라고도 합니다. 삼법인은 3가지 진리. 제법이라는 건 전부 삼라만상을, 사람이나 모든 사물을 다 말할 때 제법이라고 하고, 부처님 책을 볼 때, 제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그 다음에 법이라는 한 글자만 나오면 부처님의 진리라고 아세요. 부처님의 진리를 법이라고 한다. 이래야 책을 봐도 법문을 알아들어요. 부처님의 3가지 진리인데, 도장인 자가 찍혔죠? 인감도장. 틀림없는 부처님의 3가지 진리이다. 이건 가짜로 만들 수가 없는 진리다. 그냥 만들어낸 게 아니다. 그래서 3가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인데 인감도장하고 똑같은 진리의 말씀. 이게 상당히 중요한 거예요.
사법인에서 열반적정까지 넣었는데, 제행은 무상하다. 모든 의지작용은 무상하다. 제법은 무아다. 내가 무아다. 일체개고, 모든 건 괴롭다. 괴로운 얘기는 전 시간에 다 했어요. 열반적정은 이것을 다 깨쳐, 이걸 무상한 거 무아한 거, 일체개고를 알면 수행하면 열반적정, 아까 얘기한 니르바나.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 갈 수 있다. 이게 삼법인의 설명이거든요. 그러면 삼법인에 대해서 제가 지금 12번 법문하는 내용은 그냥 생활법문이 아니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부처님의 말씀에 의거한 오늘날의 21세기의 메시지는 뭐냐?
이걸 말씀드리기 때문에 제가 일방적으로 얘기하면, 이것도 제 얘기가 되면 여러분들이 불신할 수도 있어요. 그죠? “오, 저건 내 견해랑 안 맞는데.” 그러면. 그런데 저는 부처님 말씀에 의거해서 말씀드리기 때문에 믿으시라고. 부처님 말씀은 소개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행무상. 부처님은 제행무상에 대해서 3가지 틀림없는 진리인데, 뭐라고 말씀하셨냐.
“세존이시여, 자주 무상무상 하시는데 무엇을 무상이라고 합니까?” 여러분도 무상하다 그러죠? 뭘 무상합니까? 라고 하니까
“라다야, 우리의 몸은 변한다. 우리의 느낌은 변한다. 우리의 생각은 변한다. 우리의 의지는 변한다. 우리의 인식은 변한다.”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먼저시간에 얘기했듯이 오온, 우리의 몸의 고성요소인 몸뚱아리와 느낌_수, 상_생각과 행_의지와, 인식하는 것은 변한다. 그래서 먼저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허깨비다. 이 오온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색수상행식, 5가지 요소는 물결이요, 물거품이요, 아지랑이요, 파초요, 허깨비다.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 얘기 하는 거예요. 인식은 변한다.
“라다야. 이 같이 관찰해서 일체를 떠나라. 일체를 떠나면 탐욕이 없어지고, 탐욕이 없어지면” 여기서 일체를 떠난다는 얘기는 색수상행식이 내 몸뚱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얘기에요. 그러면 욕심이 없어지지. 몸뚱이 내게 아닌데 내게 어디가 있어. 내 몸뚱이도 내게 아닌데. 그래서
“떠나라. 그러면 해탈할 수 있느니라. 해탈한 그때 미혹의 삶은 끝난다.” 나의 괴롭고 허겁고, 미혹해서 어리석어서 거기에 빠져들고 집착하고 끌려 다니고, 내 진짜 주인공을 내놓고 살던 삶이 종식된다. 그래서 괴로움이 소멸된다. 쌍윳따니까야 23무상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변해요. 그리고 자꾸 없어지고. 주름살 생기고 흰머리 생기고, 애지중지하던 게 없어지고, 또 내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찍 가는 경우도 있고, 또 내 남편 생각했는데, 내 부인 생각했는데 가버리고, 이게 전부 무상한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무상한 거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되요. 무상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면, 변하는데 나는 변하지 않겠다하면 무상과 싸우는 거에요. 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변하는데 안 변하려고 하는 것은 발악이야.
흰머리 나고 염색하는 거 정도는 괜찮은데, 주름살 없앤다고 보톡스 맞고 수술까지 하는 건 무상하고 너하고 나하고 해보자, 우주의 진리하고 내가 해보겠다는 거요. 그런데 임시로 그렇게 해놨는데, 예뻤는데 1~3년 지나 봐요, 또 어디고치고 그런데 10년 지나다보면 고친부분이 전부 부작용으로 나타나. 그래서 무상과 싸우지 마라. 받아들여라. 주름은 주름대로, 흰머리는 흰머리대로 그렇게 받아들여라 이거에요. 그래서 형상에 집착하다보면 괴로움이에요. 그래서 형상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다보면 변하니까 괴로움이야.
불교에서 부처님 말씀에 지혜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오죠. 자비. 이거 빼면 시체에요. 이게 불교에서 이거 빼면. 지혜는 뭐냐? 형상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지혜에요. 여러분들이 형상에만 따라가고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고 뭐하고 계속 변하는 거에 대해서 부정하려고 하면, 형상에 집착하는 거야. 그러면 괴로움은 계속 떠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불교세계의 지혜는 형상을 떠나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지혜다. 불교= 지혜+ 자비. 지혜가 있으면 자비행을 해야 돼. 이제 그러한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지혜를 깨달았으면 내가 자비심을 내어서 모든 사람한테 베푸는 거야. 내 형상도 가짜야. 내 가진 것도 그게 영원하지 않고 변해. 그러니까 베풀어주면서 더불어 살아야 돼. 이게 자비라. 불교의 특징이 지혜+자비입니다. 이건 또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만은.
그래서 무상에 대한 말씀은 행이라는 것은 천류라고 해석도 하고 그러는데, 행_의지라 이런 얘기하는데, 변하는 거, 움직이는 거, 천류_옮겨가는 거, 흘러가는 거. 그래서 여러분들은 무상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면 왜 괴롭냐하면 그대로 이 모양으로 한 모양으로 있어줘. 하는 건 괴로움이에요. 있어줘 하는데 자꾸 변하거든. 그게 변하는 거고.
순천자는 생하고, 역천자는 사한다. 이 얘기 많이 들었죠? 이건 부처님의 불교 얘기 안 해도. 순천자생, 역천자사. 순천자는 생한다는 이게 진리에요. 늙고 흰머리 생기고, 쭈그러지는 것을 받아들이면 살고, 안 늙으려고 발악하면 죽어. 역천자는 죽는다. 그래서 이게 무상에 대해서 잘 깨달아야 되고.
그래서 여러분들은 거듭 얘기지만, 남진씨의 쇼에 가서 오용락, 색수상행식이 즐겁게 놀다가 집에 가려면 허전해요. 뭔가. 그 시간에는 박수치고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여기 오셔가지고 법문 들으면 이게 보약 한재 먹은 거 보다 속이 시원해. 그리고 오래가고. 여러분들이 금방 변하는데 남진 쇼에 갈 거냐? 이렇게 법문 들으러 올 거냐? 금방 결정 나요. 이걸 아는 사람이 불자요,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이걸 모르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요즘 시끄럽죠. 시끄러운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전부 모양에 따라가서, 다시 말씀드려서 외모지상주의에 따라가다 보니까 세상은 자다 깨다 보면 뉴스를 접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워. 이거 아까 얘기한데로 팔정도의 정정으로 가야 돼. 쉬어야 돼. 몰입해야 돼. 좋은 쪽으로. 그래서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형상에 집착하다보니까 세상이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 각자 마음이 내 마음, 네 마음, 네 마음, 네 마음이 깨끗할 때 가정이 깨끗하고, 그러겠죠.
내가 엄마로서 내 위치에 확실히 서서 청정하게 살 때, 가정이 맑아지고, 남편이 남편 위치에서, 엄마가 엄마 위치에서, 아이들이 학생 위치에서, 직장 위치에서 제 노릇을 해주고 청정할 때 가정이 편안하고 사회가 편안하고 심청정 국청정이라. 각자 마음이 청정하야 국가가 청정한데, 각자 마음이 맨 케이 팝만 좋아하고, 연속극만 좋아하고, 로맨스만 좋아하고 이러다보니까, 마음이 산란스러워. 내가 산란스럽고, 네가 산란스러워니까, 가정이 산란스럽게 사회가 산란스럽고, 국가가 시끄러워. 그래서 마음이 청정해야 국가가 청정하다. 무상에 대해서 잘 좀 알아두십시오.
그래서 나한테 먹구름이 와도 나한테 행복이 와도, 먹구름이 와도 어느 사이에 태풍이 불어와서 사람이 다 쓸어가고, 바닷물이 쓸어갔는데도 다음날 햇빛이 나니까, “언제 그랬드냐.” 그러잖아요. 우리가 먹구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이 힘이 들어서, 힘이 드는 것은 먹구름이 덮여서 첩첩산중 비켜갈 수가 없어. 그런데 그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무상에 대한 가르침을 공부했잖아. 그럼 “이 또한 지나간다. 먹구름 또한 지나간다. 나에게 현재 닥친 시련도 구름 지나가듯 지난 간다.” 이 걸 알면 괴로움이 없어. 자살할 일도 없고.
100미터 목표로 간다면 60미터 걸어왔어. 40미터가 남아있어. 여기서 살기가 힘들다고 스톱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무상의 가르침은 그걸 가르치는 거예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구름이 삶에 왔다. “아, 이 또한 지나간다. 비켜갈 것이다.” 자,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그 다음에 행복이 왔다. 여기도 너무 집착하면 안 돼. 금방 변하니까.
페르시아 왕자가 정복을 다 하고 나서 너무 즐거워서 밑에 사람들한테 신하들한테 “이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단어가 뭐가 있냐 일러주라.” 했더니, 논문을 몇 트럭을 써 왔어. 전국의 교수들, 학자들이 전부 다 써왔어. 트럭으로 갔다 줬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다 읽어봐도. 마지막에 한 분이 “이 또한 지나갑니다. 이 행복 기쁨 또한 순간 지나갑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친구나 누가, 남편이나 애들이 조그맣게 한마디 했다고 금방 뭐라고 한다고 하루 종일 기분상해서 우울하지 말고, 또 누구한테 칭찬 들었다고, “오늘 당신이 10년 젊게 보이네요.” 거기에 우쭐해하다, 저녁에 가서 보니까 뭐가 지워지고 해서, 쭈그러진 게 보이고, 이게 아니라는 거요.
불교 공부는 중도, 팔정도는 중도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올 때 거기에 치우치지 않고 보는 거, 맛없다. 맛있다에 집착하지 말고 중도역할에서 볼 수 있는 거, 아름답다. 좋은 소리다. 여러분들 포클레인 소리도 음악소리로 들을 수 있어야 돼. 불교 공부를 한 사람들은,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안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 지혜의 가르침인 불자는 포클레인 소리도 음악소리로 듣자. 난타도 집에서 때리면 듣기 싫어 죽겠는데, 여기 모여서 다다다닥 하니까 음악소리가 되네. 이 세계를 알 수 있어야 된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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