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답답한 마음에 이러다가
우연히 옆좌석에서 애가 다리를 덜덜덜덜 떠는데
왜 다리를 떨지?
이렇게 딱 쳐다보는 순간에
봄? 보는 것, 지켜보는 그거
그래서 ‘이게 마음이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옆에 쟤 다리를 봐도
‘이거야’ 이런 확신 같은 게 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이틀 후엔인가 보니까
우연히 그냥 아무 생각 없다가 앎? 앎이라는 그거 있잖아요.
어떤 생각에 딱 이렇게 알아지는 거
이것도 마음이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 나서 지금 거의 한 달,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책을 봐도 동영상을 들어도
어떤 때는 ‘맞아 맞아’ 100% 그거 된다 그러나? 이해된다 그러나? 그렇다가
또 전혀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멍한 상태 같은 거
막 이러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 //
그게 말씀을 들어보니까
앎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통 그 앎이라는 것은
어떤 걸 이해한다는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저절로 저절로 아는 거.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아는 거.
예 저절로 알아지는 거 알아
그러니까 어떻게 수동태죠 그렇죠, 능동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거를 우리가 앎이다, 알아차림이다. 서양 사람들은 그러는데
저절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느낌?
모든 상을, 눈앞에 드러나는 상을.
그것 자체가 어떤 대상으로서의 모양은 아니지만
그거의 어떤 기능성이라고 해야 되나?
작용, 용이라고 하죠. 쓸 용
작용하고 있다
이런 식의 표현 이런 말들이 공감이 됩니까?
그게 생각 이전에 있는 일이다, 감정 이전에 있는 일이다
사물 이전에 있는 일이다 하는
그 어떤 마음 자성을 말하는 거거든요.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그게 조금 소식이 오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 소식이 오신 사람들의 특징이
생각이 잘 작동이 안 되고, 생각도 잘 안 일어나고
뭔가 멍해지는 듯한 그런 식의 느낌도 있고.
법문이라는 것이 그게 시작이고
그게 소위 말하는 우리가 입문이라고, 문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식의 표현을 하는데
대구에 관문이 어디죠? 대구 IC 정도 되겠죠.
그 안에 살짝 들어왔는데 대구 모르잖아요. 그렇죠?
특히나 ‘요거다’ 할 때, 직지할 때는 이렇게 딱 와닿는데
법문으로 요 색에 대해서 풀어 얘기하면은 모르겠는 거예요.
대구에 대해서 막 설명하면은.
근데 처음에는 다 그렇고요.
여기 익숙해지다 보면
어떤 식의 변화가 와야 되냐면
지금은 멍한 그냥 저절로 앎, 그냥 이건데
이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이것인 것이 돼야 돼요.
그러니까 막 망상을 해도 이게 돼야 돼.
근데 지금은 아직 그게
이 대구 안에서 살아본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이거와 생각이 분리돼 있는 듯한 느낌이 있을 거거든요.
그러니까 요거와 대상이.
그러니까 우리가 소위 말해서
문 안에 들어왔는데 익숙해 지면서
지혜가 넓어지는, 보는 안목이 넓어지는 공부가
이제 시작인 것이거든.
그 이전에는 우리 공부 목표가 대구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라면
대구 문밖에 있을 때
아무리 그 주변을 조사해봐야 대구에 대한 공부가 아니었잖아요.
이제 문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인 거예요.
그냥 소화되면 소화되는 대로 듣고
안 되면 그냥 통과해야 돼요.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소화되는 쪽이 점점점점 많아지고
소화 안 되는 게 점점점점 줄어들고.
‘왜 예전에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지?’ 하는 게
자기 스스로
‘내가 뭔가 어떤 뭔가 이걸 탁 가리고 있는 어떤 관념이 딱 있었구나’
그게 발견이 되면서 확 밝아지고
그런 식의 어떤 공부 여정이.
말하자면 십우도 좀 들어보셨죠?
그러면 막 처음에는 소 찾아서 막 돌아다니다가
소 궁둥이 이렇게 딱 보는 순간 있잖아요.
그 정도의 어떤 경험, 견우
그게 확고부동해지는게 득우, 그다음에 목우
이런 식으로 그다음 여정이 남아 있는데
지금 견우인 상태에서 목우나 인우구망이나
이런 말하면 못 알아듣잖아요.
근데 다행스러운 거는
하여튼 무슨 말을 하든
뭐가 어떤 경험이 일어나든
항상 이 바탕의 일이잖아요, 모든 것이.
보이고 드릴 때 이것은 하나인 것이 자각이 됩니까?
근데 어떨 때 안 되죠?
그러면 거기서부터 안이비설신의가 있잖아요.
우리의 경험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냄새 맞는 거, 맛보는 거, 아픈 거
탁치면 아픈 거
그다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는 여기가 원만하게 다 하나거든요.
공부하다 보면 하나씩 하나씩 통하는 범위가 넓어져요.
처음에는 저도 맨 처음에 체험했을 때
보는 이거, 소리가 드러나는 이 자리, 이거는 확 와닿더라고.
아 근데, 생각이 바탕이 이거라는 거는 실감이 잘 안 나는 거예요.
근데 공부를 하다 보니까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이것이 다 이 일이구나라는 게
점점점점 스스로 실감이 나고, 자각이 되고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공부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겨우겨우 대구 IC...
대구가 알아야 될 게 많잖아요.
근데 그것만으로도 한시름 던 것인 거고
이제는 그렇게 막 해봐야
대구 안에 들어오면 어디 가도 대구잖아요.
대구 밖으로 나갈 일은 없잖아요.
그걸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거는 이해가 아니라 특히나 법문은 소화의 문제거든요.
예전에는 ‘이겁니다’ 할 때 시원하게 소화가 안 됐잖아요.
근데 이제는 소화가 되잖아요.
이렇게 딱 손 든다거나 탁자를 친다거나 하면
‘이 자리입니다’ 하면 탁 소화가 되잖아요.
이해할 필요 없이.
즉각, 그게 소화거든요.
이렇게 뭔가 생각이 개입될 필요 없이 탁 와닿는 거
그게 다양한 말에서 그렇게 되거든요.
이제 말에 안 속게 돼요, 점점점 하다 보면
그 말 하는 바가 뭐가 따로 있나? 하는 것이
사실은 이거를 가리키는데
아직은 활짝 대구를 다 모르기 때문에.
팔공산 얘기하면 딴 데 있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거죠.
이제 시작이죠.
어쨌든 간에 감사합니다, 저도.
공부 안 놓고
그동안에 막 감질나는데도 포기 안 하고
오신 보람이 있으시네요.
근데 이제 시작인데
이제는 좀 뭔가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어요.
어떤 공부가 이렇게 물 흐르듯이만 가는 게 아니니까.
어떨 때는 ‘괜히 했나?’ 싶기도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근데 사실은 근원적인 어떤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거든요.
막 힘들 때 막 시달리는 순간도 와요.
아무 생각 안 하고, 아무런 분별 안 할 때는 아무 일 없다가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될 문제도 있고 그러면
그것이 더 예민하게 다가올 수도 있거든요.
너무 격차가 크니까
진짜 롤러코스터 탄 것 같은 식의 느낌도 있는데
근데 그것도 지나가는 순간이고 영원하진 않아요.
과정 중에 있는 일이고.
결국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른 일이 없구나’라는 게 스스로 분명해지고
무슨 말 들어도 안 속게 되고
그런 식의 어떤 공부가 힘을 얻고 안정을 찾아가죠.
'릴라선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라선공부] '자식이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다 (0) | 2024.04.01 |
---|---|
[릴라선공부] 참된 생명 (0) | 2024.03.26 |
[shorts, 릴라선공부] 우리의 삶은 본래 텅 비었다 (0) | 2024.03.19 |
[shorts, 릴라선공부] 모든 것이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았다! (0) | 2024.03.18 |
[릴라선공부] 본성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 (0) | 2024.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