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그런 방법은 없어요.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거냐 하는 방법은 있는데. 내가 남을 행복하게 해줄 방법이 있느냐? 이렇게 물으면 방법은 없어요. 왜? 우리 인간은 남의 인생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런 능력도 안되고 그런 주제도 안 돼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까? 할 때는 답이 있는데 내가 엄마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느냐는 거는 답이 없다. 왜? 인생은 각자 인생이기 때문에 그것은 부모 아니라 자식 아니라 누구라도 내가 남을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어요.
그래서 답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 엄마 걱정하지 말고 지나 똑바로 살아. 그러면 딸이 행복하게 살면 엄마가 보기에 좋을까? 안 좋을까? 딸이 불행하게 살면 엄마가 보기 힘들까? 안 힘들까? 그러니까 자기가 행복하게 살아주는 게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하하하. 엄마한테 마이크 줘 봐요. 내가 이렇게 얘기해. 딸보고 ‘네가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고, 네 인생을 네가 행복하게 살면 그게 엄마한테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생각할 때 스님 말이 지당해요? 스님 말이 틀렸어요? 그것만 얘기해요. 그러면 엄마도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나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뭘 어떡해? 그냥 어떻게 하면 뭘 어떻게 하느냐는 거요. 마이크 쥐고요. 마이크 쥐고 조금만 더 해보세요. 괜찮아요. 요새 뭐가 고민이에요? 자기 걱정이 뭐요? 걱정되는 거 없는데 왜 딸이 자기를 걱정해요? 딸이 괜히 혼자 그래요? 그러니까 뭣 때문에 그래요? 무슨 일이 뜻대로 안 돼서 죽고 싶어요?
무슨 이유가 있을 때 죽고 싶어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죽고 싶어요? 그러니까 뭣 때문에 답답하냐는 거요. 어떤 일이 안 돼서 속이 답답하냐 이 말이요. 영감이 애를 먹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답답하지. 그런데 영감 살았어요? 죽었어요? 영감 살았어요? 영감 어떤 게 마음에 안 들어요? 하는 거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거 한 개만 딱 얘기해 봐요. 흉이 아니고. 그냥. 영감 어떤 거 보면 답답해요? 한마디만 해봐요.
영감이 밖에 가서는 남한테는 상냥하고 다른 여자한테는 잘하고 그러고 집구석에 들어와서 마누라한텐 윽박지르고 큰소리치고 빵빵 치고 살갑게 안 해준다. 이거지. 아이고, 그 사랑을 못 받아가지고. 이 늙어도 사랑받고 싶죠? 결혼 한지 얼마나 됐어요? 38년. 그런데 영감한테 ‘아이고 저놈의 영감이 좀 살갑게 해주면 어떻겠나?’ 내가 바라는데, 그 영감이 죽기 전에 해줄까요? 안 해줄까요? 자기가 볼 때? 안 해줄 거 같아요? 안 해줄 거 같은 영감한테 자꾸 그렇게 기대면 누구만 손해다?
그 영감이 죽기 전에 천성 고칠까? 안 고칠까? 안 고칠 거 같죠. 그런데 그걸 자꾸 바라면 어떻게 해요? 못 고치는데. 자기도 자기를 못 고치는데. 으음. 그래서 보살님이 이렇게 기도한 번 해봐요. 지금 몇이오? 나이가? 65. 그럼 아직도 한참 살 일이 많이 남았잖아요. 앞으로 20년 더 살 거 아니에요. 안만 못살아도? 너무 많아요? 얘? 그런데 기도하면 살 수 있어요. 영감한테 이렇게 기도하세요. 영감한테 자기가 기도해야 되요.
영감 앞에 보는 앞에서 하라는 게 아니라, 혼자서 영감을 생각하면서 아이고 영감, 영감이 나한테 살갑지 못해가지고 내가 지금 힘들다는데, [아이고 영감 내가 당신한테 애교가 부족하죠. 나 같은 여자 데리고 산다고 당신 답답하죠? 아이고 미안해요.] 이렇게 기도하면 돼요. 그렇게 기도하면 내가 우울한 가슴 답답한 이 속이 확 트여요. 영감보고 나한테 살갑게 해라. 이러면 죽을 때까지 해도 해결이 안 돼. 저놈의 영감 천성 못 고쳐요.
그러니까 해결하는 길은 죽는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천성 바꾸면 죽을 때가 다 됐다 이런 말 하죠. 그죠? 그래도 영감 살아있는 게 나아요? 죽는 게 나아요? 살아있는 게 낫잖아. 그지? 애는 먹여요. 대게 답답할 때는 저런 건 죽었으면 하지만 그래도 죽고 나면 또 후회가 돼요. 그러니까 영감보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입장을 바꾸어 놓고 영감입장에서 보면 또 어떠냐? 밖에 가서 여자들하고 얘기하면 잘되는데 집에 와서 마누라 얘기하면 영감도 가슴이 답답해요. 그래서 집에 오면 말하기가 싫어.
밖에 가서 막 떠들고 놀다가도 집에 와서 마누라 보면 말하기가 싫고 짜증이 나. 그래서 내가 오히려 영감 마음을 이해해 주는 거요. [아이고 영감 내가 상냥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당신 나하고 같이 산다고 참 고생했죠.] 요렇게 내가 엎드려 절을 하면 내 가슴이 꽉 막힌 게 뻥 뚫려요. 어느 순간에. 아시겠죠? 그렇게 기도를 하면 오래 살아요. 아시겠죠? 딸 따라 잘 왔네. 오늘. 하하하.
Q2
그런 막연한 얘기는 할 얘기가 별로 없어요. 그런 거 찾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애들 얘기 들어보면 돼요. 애들 얘기 들어보면 애들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고. 내가 뭘 해줘야 되겠다는 걸 앞세우면 애들이 얘기하는 게 내 귀에 잘 안 들어와요. 뭐 해줄 생각을 먼저 하면. 그러니까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생각도 할 필요 없고, 애들 만나면 애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이렇게 얘기 들어보면 돼요.
그냥 이렇게 가만히 들어보면 애들이 이런 고민도 하고 저런 고민도 하고 이럴 때 자꾸 가르치려고 그러면 어떠냐? 아이들 말문을 닫게 돼요. 자꾸 가르치려고 그러면. 가르칠 생각을 안 해야 되요. “자꾸 너는 이래라. 저래라.” “이러면 된다. 저러면 된다.” 이러면 애들이 말하기 싫어해요. 그러니까 그냥 애들 얘기를 들어주면 돼요. 쭉~ 얘기 들어주고 “어, 그래.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아이고 그렇구나.” 이렇게 끝내면 돼요.
그런데 우리는 늘 다른 사람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게 내가 뭘 해줄 수 있다. 그런 게 없어요. 남의 인생에 내가 해줄 게 없어요. 스님이 여기 여러분들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들어주고 조금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서 보도록 이렇게 계기를 그냥 마련해 줄 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제 나한테 답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답을 잘 안 하려 그러죠. 그 이유는?
답을 요구하는 사람은 내 말을 듣고 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답을 가지고 와요. 그래놓고 자기가 결정하면 책임을 다 자기가 져야 되니까 내 동의를 얻어서 나하고 반반씩 책임을 나누려 그래요. 그래서 자기가 이혼하겠다. 결정하면 자기가 이혼할 답을 얻어놓고 그래놓고 혹시 잘못될까 싶어서 스님이 “해라. 그랬다.” 이거 답을 얻어가려고 이렇게 덤터기를 씌우려고 아주 용의 주도하게 하거든요. 그럼 내가 잘 안 말려들죠. “네 인생 네가 책임져라.” 이러고 발뺌하고 나가버리거든요.
그래서 자꾸 선생님이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자기도 피곤하고 답을 주려고 그러면 답이 없는 인생을 자꾸 답을 주려면 자기가 답을 못 찾으니까 그래서 자기에게 또 내가 또 부족한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스님은 답 줄 생각을 전혀 안 해요. 듣고 대화를 할 뿐이죠. 그러면 자기가 답을 찾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요. 대화가 필요한 거요. 우리가 지식은 전달해 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인생은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어요.
남편 인생도 내가 대신할 수 없고, 자식 인생도 대신 할 수 없고, 부모 인생도 대신 할 수가 없어요. 내가 가장 부모에게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 그러면 자식이 행복하게 살면 부모가 자식 볼 때 기쁨을 얻는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부모를 행복하게 하겠다고 부모 ‘이래라저래라’고 하면 부모가 내 말 안 듣거든요. 그러면 내가 짜증 내고 성질 낸단 말이오. 그래서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된다. 이런 건 없어요. 그냥 아이들 얘기를 들으면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요.
밥을 한 끼 사주는 일도 날 수도 있고, 노래를 한 곡 불러주는 일도 생겨날 수 있고, 그저 얘기 들어주는 일도 생겨날 수 있고, 그러니까네 ‘줘야 된다.’는 욕심, 강박관념, 선행이 되면 상대편 얘기가 내 귀에 안 들어와요. 얘기 딱 몇 마디 들고 “네 이래라.” 결론부터 먼저 나거든요. 그러면 안 돼요. 쭉 들어주는 거요. 그러면 나중에 저절로 됩니다. 그러니까 원칙을 이렇게 딱 정하면 돼요. 나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인생에 있어서는 해줄 게 없다. 다만 약간 환경을 좀 조성해 줄 정도지 어떤 인생도 내가 해 줄 게 없다. 이런 원칙을 가져야 좋은 선생이 될 수가 있다.
애들이게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다 선생님을 자신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거요. 여기서 제가 얘기하면 끄떡끄떡 하잖아요. 내 말 듣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자기 생각하고 내 말이 같다. 동조에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내 말 안 듣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하고 틀린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고개를 아래로 끄덕이나 옆으로 끄덕이나 다 어차피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내 얘기 듣고도 집에 가서 하느냐? 안 하느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내 얘기 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스님 법문 듣고 좋았다 하는 것도 그 사람 공덕이고 스님 법문 듣고 안 해도 그건 그 사람의 공덕이지 나하고는 관계가 없어요. 왜 그러냐?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착각하는 거요.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요. 다만 함께 있어주는 정도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갈수록 훌륭한 스승이 될 수가 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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