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자기 주장을 잘 못할 때
엄마나 아빠가 계속
”한 번만 하게 해줘“ 이렇게 하는 거로 대신해줘요.
대신하는 거 보다는
얘가 그 상황에서 말해야 되는 것들을 말해줘서 이 아이가
“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구나.”
첫째가 배워서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줘야하는데, 대신해 준단 말이에요.
그거보다는
“너 타고 싶을 때는 분명하게 말해.
나도 탈 거야, 너 타고 난 다음에 나도 탈 거야라고 말해.,”
이렇게 해서 얘기는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도록.
그래야지만 나중에 양보와 배려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양보와 배려는 늘 인간이 꼭 배워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도덕적 윤리적인 개념이에요.
그러나 이 중간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굉장히 어린아이에게 무조건 양보를 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이거에 대해 억울함이 생겨요.
그러니까 과자를 나눠줄 때도 자기 그릇에 공평하게 나눠주시고 이런다면
생활 속에서 갈등이 좀 많이 줄어들 수 있을거라고 봐요.
그래서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됐냐하면
뗀다고 하니까 이건 자기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거죠.
얘는 다른 건 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각도 안 나고
본인이 그네를 타야 되겠다는 하나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이가 울고 있는데 진행을 하셨어요.
진행을 하면서 뭐라고 하냐하면
그런데 저는 그럴 때 꼭 질문을 해요.
“뭘 아셨다는 겁니까?” 이렇게.
애는 알았다는 게 원하는 걸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훈육 상황에선 쓰다듬는 것도 안 하시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 악을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데 쓰다듬으면 아이들이 착각을 해요.
이 행동이 약간 칭찬을 받거나 예쁨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안아서 토닥거리면서 훈육을 하는 거는 적절치가 않다고 보는 거죠.
왜냐하면 부모의 모든 말과 눈과 얼굴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으로도 애들은 많은 거를 배우기 때문에
이게 더블메시지라고 그래서 이중적인 메시지를 주면 아이들이 헷갈려요.
그런데 아빠가 못 견디고 결국 졌어.
감당이 안 되어서 애를 무릎에 앉혀 놓고
자기 스스로 진정을 한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은 거예요.
그러니까
“아하” 동기가 생긴 거야.
내가 울지 않아야 하는 동기가 생긴 거예요.
그래서 울음을 뚝 그친 거예요.
이거는
“내가 울어야 소용이 없고 내 스스로 감정을 좀 진정해야 되는구나”를 배운 게 아니라
“결국 원하는 걸 얻었네, 그러니 내가 울 필요가 없어, 울 이유가 없는 거야.”
그렇게 해서 딱 그친 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