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말한 데로 그대로만 하면 되겠네. 거기다 덧붙이려고 하지 말고. 그것도 제대로 안 되는 거를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첫 번째 동갑이라 싸운다. 동갑하곤 아무 관계 없는 일이오. 싸우는 거 하고 나이 같은 거 하고 무슨 상관이오?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이가 10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5살 차이 나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아니고, 동갑이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아니에요.
10살 차이가 나도 우기면 싸우게 되고, 10살 차이 나니까 나이에 한풀 죽어서 숙이면 안 싸우게 되고, 동갑이라고 ‘네가 뭐 나하고 똑같지.’ 이래 생각하면 싸우게 되고 남편을 존중하면 안 싸우게 되고, 나이하고 상관이 없고. 두 번째 둘이 싸우고 미워하고 이러면 사업이 안 돼요. 왜 그럴까? 우리가 남편이 내 말 안 듣고 자기가 나름대로 일을 벌여서 잘못되면 고소해 안 고소해요? 고소하지. “거 봐. 내 말 들어야지 네가 내 말 안 들으니까 그렇지.” 이런 생각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상대하고 갈등을 일으켜 상대를 미워하면 우리 마음이 그 사람 하는 일이 안되기를 원해요. 그것이 아무리 형제 부부라도 그래. 자식이라도 그래. 내 시키는 데로 안 하고 이 대학 넣으라니까 저 대학 넣고 자꾸 그러면 부모가 나중에 애가 떨어지면 “봐라. 엄마 말 안 듣더니.” 이렇게 말하잖아. ‘잘 됐다.’ 이 말이오. “네가 내 말 안 듣는 데, 네가 될게 뭐가 있노?” 이런 얘기거든. 그거는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란 말이오. 이게 무서운 거요. 이건 무의식의 세계에서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이거는 기도의 효험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이거는 의식의 세계에서 하는 거고, 또 고 때 뿐이에요. 그러니까 깊이 안 하기 때문에 자꾸 기도 중에 딴생각이 자꾸 들어오잖아. 잡념이 들어오잖아. 그죠? 그런데 미워지면 “아~ 저게 내 말 안 들으니까 저게 뭐가 되겠노?” 이렇게 생각 할 때는 안 되기를 원하는 게 마음 깊이 무의식세계에서 안되기를 원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 염력이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요.
그러니까 안됐다고 할 때 “봐라.” 이 말이 나오면 내가 안 되도록 기도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아이고 저걸 어쩌나?” 이 생각이 먼저 나면** “봐라.” 소리가 나오면 안 되도록 기도한 거요. 대부분 ‘봐라.’ 소리가 먼저 나오죠? 내 말 대로 안 해가지고 잘못되면 ‘봐라.’ 소리가 나와요? 안 나와요? 나오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절에 와서 아무리 불공을 드려도 안 돼요. 그래서 스님이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지 마라.’고 하는 거요. 그 자체가 복을 받는 기도란 말이오. 미워하는 거는 그 자체가 재앙을 자처하는 기도다.
그러니 그 사업이 뭐 안 되고 망하고 하는 것은 남편 탓이 아니고 내 탓이오. 내가 그렇게 안 되기를 염원하는 거요. 오직 간절하게 안 되기를 원하는 거요. 왜? 안 돼야 저게 정신을 차리거든. 되면 또 제 성질대로 할 거니까. 이러기 때문에 내 탓으로 알아야 된다.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내가 손해날 짓을 자꾸 하고 있구나.’ 이렇게 뉘우쳐야 되고. 세 번째 둘이서 맞벌이를 해도 괜찮아요. 꼭 남자만 돈을 벌어야 된다는 법은 없어요. 아내가 돈을 벌고 남자가 애들 키워도 되고 그래요.
그걸 뭘 기도를 해? 가고 싶은 건 욕심이오. 타협해야지. 남편이 “둘 중의 하나만 하라.” 그러면 애교를 좀 떨어서 “여보, 둘 다 가면 안 될까? 딴 것 좀 내 해줄게. 뭐해줄까? 지압해줄까? 어떻게 해줄까?” 이렇게 아양을 좀 떨어보고 두 개 다 갈 수 있으면 두 개 다 가고. 아양을 떨어도 떨어도 안 되면 한 개는 포기하는 게 좋은데. 둘 중에 한 개만 간다 하면 깨달음장에 갔다 오는 게 좋아. 그런데 이제 그 직장 다녀도 되고. 그런 거 큰 걱정거리 아니오.
그런데 자기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는 거거든요. 돈이 더 중요하면 직장을 다니고, 안 그러면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하고 봉사도 하고 어느 게 더 유리한지. ‘아, 이게 더 낫겠다.’ 이러면 딱 남편 잡고 매달려야 되요. ‘나는 그저 당신만 믿고 삽니다. 당신이 뭐 천막에 자자면 천막에 살 거고, 셋방에 살자면 셋방에 살 거고. 한 달에 10만 원 주면 10만 원 갖고 살 거고, 5만 원 주면 5만 원 갖고 살 거고. 100만 원 주면 100만 원 갖고 살 거고.’
‘나는 뭐 내가 나가가지고 돈 벌고 이래가지고 당신하고 맞먹고 이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당신 종 될 테니까 당신 그저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당신은 우리 집의 가장이오. 나는 그저 가정부요. 애들이나 잘 보살피고 빨래나 하고 청소나 하고 밥이나 잘하고. 그래 살겠소. 그러니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인생관이 그렇소.’ 이렇게 탁 수여야 돼. 탁 숙이고 맡겨버려야 돼. 그러면 남자가 아내가 자기를 왕으로 섬기고, 주는 대로 먹고 살겠다고 딱 그냥 항복을 해버리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살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가든지 “아이고 뭐 요즘 같은 세상에 남녀평등 세상에 종노릇하면서 살 필요 거 뭐가 있노? 까짓것 나가서 내가 돈 벌면 되지. 이렇게 생각이 들면 나가서 돈 벌고, 대등하게 살고, 밥도 네 해라. 하고 이렇게 살아도 돼요. 문제는 어떤 게 더 좋으냐?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첫째 자기가 선택을 해야 돼. 어떤 인생을 살 건지 첫째 선택을 하고. 두 번째 부부니까 두 사람의 선택에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저 사람하고 맞춰야 되잖아. 그지? 상대가 어느 걸 원하는지. 그래서 적당하게 타협을 해서 한 방향을 잡으면 되는데. 문제는 애들도 있잖아.
애를 안 낳았으면 안 낳으면 돼. 애를 낳으면서 ‘나는 나대로 살고. 너는 너대로 살고.’ 이런 결정 하면 안 돼. 그러면 아이들한테 나중에 문제가 생기니까. 아이들까지 고려해서 선택을 하면 돼요. 선택을. 나 같은 성질이다. 내가 여자다. 그러면 나는 라면을 끓여 먹고 살면 살았지 종노릇 안 하겠어. 나는 내 성질이. 딴 여자 쳐다보는데 굳이 옆에서 붙어살 생각도 없고, 뭐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애걸복걸하고 살 이유가 뭐가 있어? 그런데 문제는 자기 수준을 아는 게 필요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나? 살고 싶지만 살 수 없잖아. 그러려면 빨리 항복하는 게 좋아.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겠다. 그러면 빨리 항복하는 게 좋아. 전쟁을 오래 끌면 국가가 피폐해져. 가정이 다 망쳐. 그러니까 한번 겨뤄보고 결혼해서 한두 번 딱~ 진검승부를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이게 장기전으로 가겠다. 이렇게 되면 빨라 항복하는 게 좋아. 딱 숙이고 나는 당신의 종이로소이다. 이렇게 딱 숙이고 살면 다시 주인 되는 길이 있어 딱 숙이면 내가 편하고 두 번째 가정이 화목하고, 아이들 심성이 좋고, 나중에 고개 쳐들고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어줍잖이 지금 속으로는 켕기면서도 겉으로는 큰 소리 빵빵 치고. 이런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힘드는 거요. 나는 여러분들 남자한테 매여가지고 쳐다보고 욕하고 늦게 들어온다고 성내고 술 먹는다고 성내고 이런 거 보면 불쌍해요. 요즘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저래 살까? 왜 한 남자만 쳐다보고 저렇게 괴로워하며 살까? 이해가 잘 안 돼. 이 참 존엄한 인격을 갖고 태어나서 왜 저렇게 살까?
요즘같이 밖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 요즘은 혼자 산다고 해서 누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없잖아. 그죠? 옛날 같으면 여자 혼자 살기 어려워. 요즘은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거기 매달려 그렇게 살까? 그런데 딱 이게 정말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부처님처럼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이 정도 되면 늦게 들어오시면 ‘아이고 무슨 일이 있어 늦게 들어오셨나 보다. 피곤하시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찍 들어오면 ‘아이고, 나 보려고 일찍 들어왔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술 한 잔 먹고 들어오면 ‘아이고 오늘 사업하려고 사업 잘하시고 들어오셨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수용하면 누가 좋다? 내가 좋지. 누가 좋겠어? 그런데 내가 좋은 그 떡고물이 조금 남편한테도 떨어져. 남편도 좋아해. 그런데 그게 얄밉다. 이거지? 좋아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남편한테 떡고물 떨어지는 게 싫어서 내 떡도 버린다?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글쎄 한번 살아봐요.
그러면 그런지 안 그런지 오늘부터 딱 100일이라도 정해가지고 그냥 항상 웃으면서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하고 뭐라고만 하면 “예.” “예.” 이렇게. 그러고 한 100일만 해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러면 우리 남편이 변할까?’ 그 생각하지 말고. 그랬을 때 누가 기분이 좋은지. 누가 삶이 행복한지. 내 삶이 바뀐다니까. 그런데 속에 온갖 미움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서 그걸 바깥으로 숙이려고 거울 보고 아무리 화장해봐야 속이 썩었는데 껍데기 칠하면 뭐하노?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이 가벼우면 화장 안 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항상 좀 얼굴이 어이 생겼든 상관없이 생글생글 웃어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네 ‘웃는 얼굴에 복이 온다.’ 이런 말 있잖아. 그죠? 그렇게 기도하고 항상 좀 덜 뭐요? 덜 웃음이 나오더라도 자꾸 웃고, 거울 보고 자꾸 칠하지 말고 거울 보고 매일 웃는 연습을 해라. 하하 웃어도 보고, 헤헤 웃어도 보고. 자꾸 웃어야 돼. 그러면 다 좋은 일이 생겨.
그거 뭐 많이 벌으면 어떻고 적게 벌면 어때요? ‘당신 벌어다 주는 대로 먹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잔소리 안 하면 나중에 큰소리칠 기회 굉장히 많아요. 애들한테도 잔소리 안 하면 나도 내 맘대로 하고 살아도 돼. 그런데 잔소리해놓으면 나중에 내가 무슨 행동 하면 “엄마는 왜 그래? 엄마는 왜 그래?” 하고 자꾸 따지고 덤벼요. 과보가 반드시 따른다. 이 말이오. 그렇게 기도하세요. 기도 더 욕심내지 말고 고대로 하세요. 고대로 안 되는 자기를 자꾸 고쳐나가세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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