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노자에게 禮에 대하여 물었다. 노자는 공다에게 이름을 숨기고 명리를 쫓지 말라고 대답한다.
세상 속으로 향하는 공자와 세상 밖으로 벗어나려는 노자의 입장이 대비된다.
노자의 입장은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과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노자가 염두에 둔것은 인간 본연의 천진함과 자유였다.//
동문서답이라고 하는 것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는 얘기잖아요.
공자와 노자는 어떤 동문서답을 했는지
그것이 우리의 마음공부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가 노자에게 禮에 대하여 물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두 사람은 다 춘추시대 후반기 사람인데
노자가 공자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젊은 시절에 공부하러 천하를 떠돌아다녔는데, 그 와중에 노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노자에게 예를 묻습니다.
우리가 보통 예라고 할 때는
인의예지신, 혹은 예의 이런 얘기지만
그때 예라고 하는 것은 예와 법이니까
포괄적인 국가경영의 절차부터 시작해서 개인의 복덕까지를 다 말하는 것이죠.
그래서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인 것 같고, 한번 일회적이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기록들을 살펴보면, 어쩌면 몇 년간,
어쨌든 노자 밑에서 공자가 진짜로 배웠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2. Why 노자
왜 노자에게 물어봤는가 하고 연결이 되는데
이때 당시 노자는 은둔하기 전입니다.
은둔하기 전에는 주나라 왕실의 도서관 장서들을 관리하는 관리, 혹은 도서관의 관장이었으니까
주나라의 예법에 정통하고 또 책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적통의 지식인이었죠.
주나라의 법에 적통한 지식인이 공자에게는 왜 중요한가 하면
공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사상을 스스로 만든 게 아니고
서술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공자는 술이부자, 이렇게 얘기 했거든요.
서술할 술, 내가 지어내지는 않는다, 창조하지는 않는다, 부작
그럼 뭘 서술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서술의 대상은
주나라가 시작되었을 때 주공단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선 건국에는 정도전이라는 이론가가 있었죠.
주공단의 사상, 제도 이런 것들을 모범으로 봤기 때문에
공자는 새로운 사상을 펼친 게 아니고
춘추시대의 혼란기에서 주공단이 애초에 주나라를 건국하고자 했던 생각을 학습을 배운 거죠.
그러려면 주나라의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과 여러 가지 예법들을 알고 있었던, 배웠던 도서관장인 노자에 가서
“예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게 맞죠.
주소를 제대로 찾아간 겁니다.
그래서 노자는 실제로 공자가 여러번 찾아가고
노자에게서 이런 식의 가르침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은 정설인 것 같습니다.
3. 노자의 답변
그런데 문제는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으면서
자기가 아는 것을 다 얘기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노자가 답변하기를 요약하자면
“이름을 숨기고 명리를 쫓지 마라.”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완전한 동문서답이죠.
공자 입장에서는 이 혼란스러운 천하를 태평하게 하기 위해서
옛날의 주나라의 문물을 어떻게 보면 창조적으로 재해석해서
인간의 도를 세우겠다하는 포부, 학문의 뜻을 가지고
도서관 자리에 있던 노자에게 갔는데
노자는 완전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죠.
너무 그러지 마라,
네가 지금 이름을 낼려고 하는데, 이름과 명리를 쫓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대화가 사마천의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는 먼저 과거 성현들이 예법에 대해 품고 있었던 관점들을 쭉 읊조리고
노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노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방금 자네가 언급한 선연들은 모두 돌아가신 지 한 참이라
땅속의 유골까지 다 썩었을 거다.
그분들께서 남기신 것은 고작 한 마디 말뿐이지.
그러니 자네는 그 말로 자신을 속박할 필요가 없네.
게다가 군자는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고 만족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에게 적합한 기회가 온다면 기세 있게 나아가 대업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쑥갓처럼 바람이 가는데로 가면 그뿐이네.
똑똑한 장사꾼은 자기 물건을 깊이 숨겨 둘 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야 좋은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이지.
군자는 자신의 덕을 숨겨 다른 사람에게는 어둔한 사람처럼 보여야만 하네.
그래야만 더욱더 훌륭하게 자신을 수행할 수 있으니 말이네.
자네는 빨리 나약함과 탐욕, 슬픔과 기쁨, 마음 속의 쾌락과 업력을 씻어버리게.
그것들은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네.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공자는 한창 청운의 뜻을 품고, 주자의 땅에서 집적된 학문과 지혜를 배워서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데
노자는 억지로 그러지 말라고 억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내고 싶은 마음을 다스려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공자 입장에서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세에도 보면 공자가 노자에게 배웠다라고 하는 것은
그냥 공자가 노자에게 예에 대해서 한마디 물었다로 굉장히 축약됩니다.
그것은 공자도 일가를 이루고, 중국의 사상사를 지배하기 때문에
아마 자기네들의 교조를 보고한달까? 그런 입장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4. 결론
아까 나온 것처럼 노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속박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이 자유는 뭐, 세금을 안 낸다든지, 그런 의미의 자유라기 보다는
타고난 순수성, 순수한 본성, 이런 것이 대의명분이나 속박
그다음에 인의예지신이라고 하는 것들 때문에 가리워지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그것을 너부터 실천해라, 이런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공자와 노자 입장은
세상 속으로, 또는 세상으로부터 밖으로 입장이 좀 다른데요
나이가 든 사람, 또는 젊은 사람, 한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공자와 노자의 문답에 대해서 사실 동문서답으로 끝나는 이 문답에 대해서
느끼는 게 각각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공부와 관련해서 시사점을 찾는다면
속박과 자유라고 하는 키워드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을 가지고 일하고 하는 것들은 다 좋은데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뭔가 기여하고,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속박이냐? 자유냐?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자기 자신밖에는 모르는 거죠.
오늘은 그렇게 해서
공자와 노자의 동문서답에 담긴
속박과 자유라고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함께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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