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82. 윤홍식의 즉문즉설 - 양심과 유사한 양심(문화, 인습)과의 구분은

Buddhastudy 2013. 12. 29. 22:31

출처 : 홍익학당

 

어떤 양심인지 가리지 마시고요 4가지만 물어보세요. 4가지를 만족해하는지. 남의 입장 배려했는지.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았는지.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자명한 판단에 근거한 건지. 4가지에 부합하면 양심 맞고요. 아무리 양심적으로 보여도 이 4가지에 어긋난 거는 가짜입니다. 내가 남한테 아무리 멋지고 성심성의 것 뭘 한 거 같아도 저 속에서 솔직히 상대방 입장 배려한 일이 아니고 나 좋자고 한 일이에요. . 그 일로 남들 들놀이 세워서 내가 뭔가 그 사람을 이용해 먹은 거면 피해준거죠. 자명한 판단도 아니고요.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이런 거보다 진심으로 내가 남의 입장 배려해서 남한테 피해 안주려고 자명한 정보들, 자명한 진리들에 근거해서 한 짓이라면 그게 우리가 저 내면에서 양심에 맞다라고 느껴주는 거 자체가 그때 우리는 진짜 양심을 이해할 수가 있어요.

 

4가지를 맞췄을 때 우리 안에서 뿌듯하게 느껴지는 그 기쁨은 이게 진자 양심이 인정해 준거고, 겉으로 우리가 어느 문화권에서 하는 예절이 있어요. 그런데 해 봤더니 찜찜해요. 이거를 하면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데, 이거를 이 문화에서는 옳다고 하는데, 내가 해보니 찜찜하더라. 그러면 그 문화는요, 뭔가 왜곡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방금 말씀드린 이 것만이 시공을 초월해서 옳은지. 모든 문화도 문화마저도 그게 양심적인지 아닌지 판단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요, 문화들 마다 다 옳다고 할 수도 없어요. 사실은. 그런데 그 문화 안에서 형성 된 우리가 아까 말씀드린 양심 비슷한 것들은 문제가 있을 수가 있어요. 들여다보면 이상해요.

 

저기 어디 있죠? 저기 중동이나 이런 데 가면 명예 살인이 있어요. 가족에서 특히 여자들을 지금 아주 집안에서 소유물로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이게 자기들이 명예래요. 그런데 그게 명예 살인이라는데 명예 붙일만한 일입니까? . 그 집안에 가족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고, 부당한 피해를 주면서 우리 가문의 명예를 지켰다라고 해요. 여자가 함부로 원하는 남자랑 결혼했다고 살인을 저질러 놓고 명예 살인이라는 말을 씌우는데, 그게 우리가 비난 할 수 있는 근거는 뭘까요? 그쪽에서는 그게 양심이고 문화일 수도 있는데. 전통인데. 그런데 우리는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아무리 전통이고 그 나라에서 인정받는 문화라 하더라도 남의 입장을 배려 안했기 때문에요. 다른 생명체 입장을 너무도 배려를 안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적하거든요.

 

그러니까 남의 입장, 다른 생명체 입장을 배려하고 거기에 맞추어주려고, 진리에 거짓이 아니고 진실에 기반 해서 하려고 노력한 이 모든 게 양심의 진짜 뿌리니까. 요걸 여기에다가 집중하시면 유사양심들을 다 식별해 내실 수도 있고, 전통이나 인습이라고 해서 거기에 강요받아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유교, 유교가 양심에 기반해서 원래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데 양심에 기반 해서 제도를 그 당시에 만들었겠죠? 어느 시대에. 그런데 벌써 시대가 흘렀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그걸 적용하려고 하면 고 양심은 이제 빠져버렸고, 형식만 남아있어요. 그럼 저는 유교에 그런 형식들도 반대하는 겁니다. 그게 맞지를 않아요. 왜 그걸 해야 되는지 모르고 하고 있거든요.

 

그게 내 양심에 도움이 되니까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죠. 지금. 하는 모든.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나는 그게 다른 생명체를 배려한 일이고, 고려해서 그 사람과 내가 더 잘살기 위해서는 이게 꼬옥~ 필요하다고 해서 이렇게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죠. . 제사를 지낸다할 때도 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뭔가 라도 안하면 양심이 너무 불편해서 이거를 한다. 이게 기본인데, 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요렇게 안하면 안 된다든가 뭔가. 그러니까 이 양심을 넘어선 영역은 사실은 이 강요 되고. 전통, 우리에게 강요해 오는 건데, 이런 강요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도 결국은 양심에서 밖에 안 나옵니다. 왜냐?

 

애초에 그 제도가 옳다고 인정받은 것도 양심에 맞았으니까 인정받았겠죠? 그래서 공자님의 3년상 얘기할 때 3년상 합니까?”라고 할 때, 공자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부모님이 3년간 우리를 젖먹이여 줬다. 무릎에 놓고 키웠다. 그 마음 때문에 내가 자식 된 도리로 불편해서 돌아가신 뒤에도 3년 기억해 드리는 거다. 이게 아니라면 근거가 없는 거예요. 그것도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죠. 이 바쁜 와중에 3년상을 다 못한다 그러면, 그 마음을 가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전통이나 그런 거 보다도 양심을 다른 생명체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그 생명체한테 도움이 주는 방향으로 하자. 하는 냉정한 분석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이것만이 시공을 초월해서 영원히 남을 양심이지, 여기에 뭔가가 더 붙어 버리면 왜곡이 일어나요. 그럼 그 시대에 통할 양심도 있는 거고, 그 시대에도 안 맞는 어떤 양심도 있겠죠. 양심적인 것처럼 들리는데, 꼬옥~ 남을 배려한 거 같은데 실제로 그대로 하면 남한테 피해가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양심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공을 초월해서 모든 생명체간에 통할 수 있는 양심을 우리가 초점을 두고 거기를 연구하면 양심의 가장 본질이 나올 거 같습니다. . 그걸 가지고 유사 양심들도 다 검열해 봐야 됩니다. 검증해 봐야 되요. 유사한데 아닌 거 많아요. 어디 스승이 얘기하는데 입을 열어? 스승 앞에선 유구무언이다.

 

옛날 전통이 그래요. 그럼 지금 다시 고려해 봐야죠. 그게 양심일까? 양심에 맞나? 선생님 말할 때는 하고 무조건 입 다물고 듣는 게 맞나? 뭔가 찜찜하니까 여러분도 그게 맞나? 이렇게 의문 가지시지 않겠어요? 저는 다 다시, 양심 운동이라는 건요, “조선시대 거 다시 합시다.” 이게 아니고요, “조선 시대보다 더 잘합시다고요. 이상한 거 있으면 다 뜯어 고칩시다에요. 우리 양심을 이상하다고, 명백히 잘못이라고 느끼는 거만이라도 고칩시다. 우리 양심에서 명백히 잘못이라고 못 느끼는데 전통으로 내려온 거 있으면요 일단은 좀 지켜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옛날 어른들이 한 거고, 명백히 틀린 거 같지 않은 건 저는 해주는 게 더 양심에 편한 거 같아요. 그 분들의 또 하나의 문화였으니까. 존중차원에서.

 

전통 문화 수호차원에서. 다만 명백히 이 전통은 남한테 피해를 준다면 빨리 뜯어고치는 것도 또 양심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인 거 같아요. 그래서 양심의 밝아지면 문화도 많이 세련되질 겁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해야 되나? 애매한 것들 많으실 거예요. 예전에 애매한 거 정해주는 남자, 개콘에 그런 프로가 나왔어요. 그게 히트 친다는 거 자체가 애매한 게 많다는 얘깁니다. 우리 삶에. 그래서 저는 양심이 답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책 광고도 한번 하고요. 양심이 답이다라고 주장을 했는데, 진짜 답이 된다고 그러면 제가 여러분한테 그런 실생활을 어떻게 쓰시라고도 말씀을 드려야 되니까 요런 얘기도 한번 또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실생활에 한번 연구해보세요.

 

여러분 양심을 충족시키는 답을 한번 찾아보시다보면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요거를 쓰다보면 놀라우리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혜로워지고 예리해지고 잘못된 걸 고치는 힘이 생기실 겁니다. 제가 확신해요. 그러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문화가 성숙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엔 이미 답이 있는데 그거 한번 찾아보시자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