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26. 윤홍식의 화엄경 강의 중 - 최상승선 (最上乘禪)

Buddhastudy 2013. 5. 12. 19:01

출처 : 홍익학당

     

지금 처음 불교를 믿고 열단계의 믿음을 성취, 믿음을 해서 닦아가다가 처음 1주보살이 될 때 이때 이미 육바라밀을 다 닦아요. 이미 육바라밀을 다 닦습니다. 육바라밀 열심히 수행하다가. 그런데 지금 육바라밀을 어떤 뭐죠? 배우는 단계지 육바라밀을 하려면요. 바라밀이라는 거를 하려면 참나를 봐야 되잖아요. 참나를 아직 못 봤기 때문에 이때는 육바라밀을 배우는데 육바라밀이라고 안하고 그냥 뭐죠? 여섯 가지 수행을 한다고 보통 설명합니다. 그냥. 육바라밀을 한다고 하기가 어렵잖아요. 참기는 하는데 참나를 아직 정혜쌍수. 선정과 지혜가 내면에서 흐리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게 참는 힘이 약해요. 가끔은 일어나겠지만. 가끔은 바라밀이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바라밀을 한다고 하기는 그렇고 배우는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10신에서 열심히 배우다가 텅 빈 각성이 이루어져서 선정과 지혜가 늘 흘러요. 그거를 참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 힘을 정혜쌍수라고 합니다. 참나는 본래 정혜쌍수에요. 여러분이 손을 안대도 참나는 텅 비어있고,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늘 이미 정혜가 같이 다니죠. 그래서 참나만 찾으시면 여러분은 정혜쌍수를 그냥 얻으세요. 요 느낌 아세요? 여러분이 매일 나는 선정을 하루에 10시간씩 하고, 경전공부를 나머지 한 3~4시간씩 더해. 이래서 나는 정혜를 쌍수하고 있어.” 하는 거는 에고가 닦는 거구요. 참나는 본래 정혜쌍수에요. 이해되십니까? 본래 텅 비어있고, 본래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정혜를 잃어버린 적이 없어요.

 

최상승선이라는 건요. 지금 선불교에서 화두선만을 최상승선이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경우를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 말은 참 잘못된 말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화두선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당나라 때 많은 선사들이 남긴 선문답에 화두 하라는 선문답이 없죠? 다 뭡니까? “부처가 뭡니까?” “!” 방금 저 보셨죠? 텅 비어서 보고 계셨죠? 방금 참나가 한번 드러났다 사라졌거든요. 이해되십니까? 이런 식으로 바로 가르쳐줬어요. 이걸 최상승선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원리를 아시겠습니까? 원리는 에고가 선정과 지혜를 열심히 닦아야 참나가 드러난다고 하는 공부는 최상승선이 아니에요.

 

, 이 화두를 하나 잡아서 내가 10년간 품으면 참나를 알게 될 거다. 최상승선이 아니에요. 내가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해서 참나를 볼 거야. 그게 최상승선만을 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요. 최상승선이 지니는 본래의 의미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그게 아니고요. 뭐냐 하면요. 최상승선은 자~ 보십시오. 아미타불을 하면서 내가 에고가 고요해지고, 에고가 지혜로워지고, 화두를 품으면서 자꾸자꾸 에고가 더 고요해지고 지혜로워지다가 참나를 알게 될 거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땡이라는 겁니다. 최상승선의 입장은 참나는 본래 고요하고 본래 지혜롭기 때문에 지금 곧장 참나를 잡으시면 그냥 끝난다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이 원리가 최상승선의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방편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화둔지 뭔지 그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단박에 시간이 안 걸려야 되요. “!” 방금 보셨잖아요. 그 자리는 원래 고요하고 원래 알아차리지, 절대 그 자리에는 때가 묻을 수가 없습니다. 에고를 뚫고 그 자리를 바로 만나는 게 최상승선입니다. 회광반조가 최상승선이에요. 무슨 짓을 하건 간에. “나무아미타불하다 만나면 그게 최상승선이고요. 그래서 많은 선사들이 어떻게 깨달은지 아십니까? 화두 한다고 화두 한다고 하다가 졸다 개 짓는 소리 듣고 깨어나요. 뭔 일일까요? 앉아있었기 때문에 깨어난 게 아니라니까요. 그 인과를 쌓았기 때문에 깨어난 게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포인트는.

 

인과를 쌓으면 에고가 인과를 받지만, 에고가 없는 그 세계는 인과로 접근할 수가 없잖아요. 졸다가 선정에 들락말락 들락말락 하다가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텅 빈 각성, 참나랑 탁 만나 버립니다. 만났더니 그 자리는 고요하고 알아차리고만 있더라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에고를 갈고 닦아서 도달한다도 맞는 말이에요. 그런 선도 가능하고 다 가능한데 최상승선이런 걸 자랑하려면요, 최상승선이 뭔지는 알고 자랑을 해야 해요. 우리 화두선이 최상승선. 그럼 화두는 얼마나 해야 견성을 하나요? 10년은 해야 될까? 그러면 뭔가 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 아시겠습니까?

 

에고는 지금 이 순간도 텅 비어 있고 알아차리고 있는데 왜 시간이 걸리냐는 겁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최상승선을 주장하시던 분들이 싫어하시더라고요. 저는 최상승선에 대해서 경전공부를 다시 좀 해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최상승선의 원리는 명상을 해야 깨닫는다는 논리를 깨는 원래 선입니다. 명상은 에고가 하는 거지 참나는 명상을 안 해도 이미 깨어나 있다. 이게 육조단경에 계속 쓰여 있습니다. 自性定慧자성정혜라고. 자성은 본래 고요하고 본래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단박에 알 수 있다. 황벽스님은요, 直下無心직하무심. 곧장 무심하면 그대로 참나다. 계속 이렇게 친절하게 얘기를 하는데 거기 옆에서 그게 그렇게 쉬운 거 아니야. 이러면 다 흐려버립니다.

 

유명한 고승이 푸는 그 신심명 강의 한번 제가 봤더니 놀랬어요. 가장 유명하신 분 중에 한분인데 신심명에서 지도는 무난하니. 지극한 도는 조금도 어렵지 않으니. 唯嫌揀擇유혐간택. 에고로 알음알이만 딱 끊어라. 그냥 참나다. 이랬더니 바로 밑에 뭐라고 푸신지 아십니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그래버리면 그 최상승선을 모른다는 얘깁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최상승선은 에고를 보지 않는 입장입니다. 참나만 곧장 직지인심. 곧장 참나를 보면 그 자리에는 본래 텅 비어있고, 본래 알아차리고 있더라. 하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몰라] 하시면 그냥 그 자리입니다. 말이 필요 없어요. [몰라] 하셔서 딱 존재하시면 그 자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늘 알아차리고 있고, 지금 살아오시는 동안 나라는 존재는 한 번도 잠잔 적 없고, 한 번도 알아차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주무시면 주무신지 알아차리고 있다가 깨면 잘 잤다그러고. 꿈꿀 때도 그놈이 꿈꾸고 있고, 생시에도 다 그놈이 시끄럽게 하고 있는데 그놈을 모른다고 하고 에고를 자꾸 에고야, 생각 좀 하지마라. 생각 좀 하지 말라. 참나를 보게.” 막 이러지 마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꼬집어주고 몽둥이로 때려주고 스님들이 하는 겁니다. 몽둥이 맞을 때 깜짝 놀라서 깨어나요. “그거다.” 귀를 꼬집고,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귀에다 소리 지르는 스님들도 있죠. 먹먹해서.

 

소리가 안 들리고 깜짝 놀랐겠죠. “그 놈이다.” 이때 딱 예리하신 분은 안다는 겁니다. 명상을 해야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놈이구나.” 이해되세요? 에고의 명상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에고가 명상을 할수록 잘 드러나요. 선정도 중요해요. 선정을 할수록 더 잘 느끼겠죠. 잘 느끼는 거는 있겠지만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이미 에고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자리는 그냥 드러나요. 아무튼 육바라밀을 공부하다가 그 자리를 정확히 알아버려요. 그러면 1주보살이 됩니다. 1주보살은 참나가 어디 안가요. 늘 나라는 게 있어요. 제가 지금 여러분한테 얘기하지만, 나라는 게 있어서 얘기한다는 걸 저는 늘 알고 있기 때문에 늘 깨어있습니다.

 

저는 나라는 존재가 이 얘기하고 있다고 늘 느끼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 자체가 텅 비어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 제가 힘을 써서 선정을 일부러 하고 있지 않아요. 그 자리가 본래 고요하니까 나라는 존재만 붙잡으면 그냥 고요해져버리고 초연해져버립니다. 역으로요. 그 자리를 잡으면 에고가 저절로 고요해지고 저절로 초연해지고 알아차리게 되요. 같이 깨어나 버려요. 그 자리만 붙잡으면. 이런 방식입니다. 최상승선은 참나를 바로 잡아가지고 에고가 따라가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선은 사선정은 에고를 자꾸 조용하게 시켜서 참나를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둘 다 가능해요. 그냥 알아서 쓰시되 최상승선이라는 간판을 거시려면 상점에다 그 간판 쓰시려면 좀 알고 저는 거시라는 겁니다. 최상승선이 뭔지.

 

무조건 간화선은 최상승선. 이렇게 외우고 계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 간화선도 최상승선이 되려면 이 뭐고할 때 뚝 떨어져야 되요. 생각이. 아니 화두에 분명히 머리로 의심하지마라고 했는데 이 뭐고?’ 하면 의심이 딱 끊어져야죠. “이건 뭡니까?” “여러분 그건 뭡니까?” “저를 보고 있는 그 놈은 뭡니까?” 할 때 생각이 뚝 끊어져서 그냥 존재하셔야지 화두선이지 머리로 문제를 풀지 말라고 해놓고요. ‘이 뭐고?’ “이 뭐고 해봐라.” “머리로는 답을 찾지 마라.” 이미 조건 다 된 거 아닌가요? 머리를 안 쓰고 이 뭐고?’ 하면 딱 생각이 끊어지게 되어 있지 않나요? 이미 말이? 조건이?

 

그런데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이 뭐고?’를 한 1020년 해 봐야 안다. 그러면 뭡니까? 머리로 계속 의심하고 계신다는 얘기에요. 10년간을. 그러다가 언제 깨닫습니까? “이 짓도 못 하겠다.” 할 때 깨달으세요. 10년간 의심하다 더 할 말이 없을 때 깨달으세요. 그러면 포인트를 어디다 잡아야 될까요? 그러면 나도 10년간 해야 겠다라고 하셔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생각만 놓으면 바로 가겠구나 하셔야 되겠습니까? 10년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안하다가 10년째 제대로 된 방식을 누가 찾아서 문제를 푸는 걸 보고. “~ 그럼 나도 이제부터 10년간 헤매야 되겠다.”고 생각하실 겁니까? 공부를? 그 합격한 방법만 빨리 알아내서 그냥 하셔야죠. 이해되십니까? 그렇게. 큰 그림을 그렇게 잡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