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28. 윤홍식의 즉문즉설 - 완전한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Buddhastudy 2013. 5. 12. 20:48

출처 : 홍익학당

 

질문이? 이미 완전한 내가 태어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하시는 게, 여러분이 대게 완벽했는데, 뭐랄까요? 이 말도 가능한데요, 원래 완벽한 참나가 에고를 입었다. 왜 입었을까요? 이런 질문은 맞죠? 그런데 혹시 내가 원래 대게 완벽한 존재였는데 다시 타락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불교나 어디에서도 힌두교에서도 그런 식으로 상정 안 해요. 여러분 애초부터 참나를 모르셨어요. 여러분의 혼이 에고가 생긴 이래로 참나를 모르셨어요. 지금까지. 그러니까 이렇게 가시죠? 이해되시죠? . 그러니까 왜 애초에 참나에서 에고를 낳았을까요? 뭐 이런 의문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내가 대게 완벽한 존재였다가 타락한거는 아닙니다. 말이 좀, 용어를 좀 정리를 해야 될 거 같기는 한데. 그래서 참나 상태에서는 나와 남이 없죠. 우주를 통틀어 참나가 둘일 수도 없어요. 그렇죠. . 그런 존재가 영혼을 만든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영혼이 생긴 거죠. 우리에. 영혼이 생긴 이래 우리는요, 처음 생겼을 땐 비슷했겠죠. 우리 영혼들이. 뭔가 자기 좋아하는 거를 하다보니까 지금 영혼의 색이 달라진 겁니다. 에고의 색깔이 업이 달라진 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어떤 업을 지었냐하면 계속 참나를 아는 쪽으로 업을 지으신 분들이죠. 참나 뜻대로 살고 참나와 함께 하려고 했던 업을 지으신 분들은 성인이 되어 계신 거고.

 

그러니까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출발한 겁니다. 우리가. 다만 내가 계속 어떤 선택버튼을 눌렀느냐에 따라서 지금 서로 처지가 어마어마하게 달라졌겠죠.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지 않을까요? 혼간의 스펙트럼이라는 게 아주 사이코페스 악인부터 아주 그냥 성자까지. . 우주적으로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겠죠. 그게 다 본인이 지은 거죠. . 그래서 이 참나라는 건요. 이 모든 여러분의 여정에서 항상 함께하는 스승이자 보호자인데.얼마나 그 참나라는 스승과 보호자를 찾고 의지했느냐에 따라서 이게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업이. 그냥 그렇게 보시는 게 맞아요. “왜 내가 그~ 참나에서 혼이 생겼을까?”

 

이거는 아무도 모르는 얘기지만, 철학적으로 분석해보다보면 왜 우리가 태어났나요? 라고 하는 질문이랑 비슷한데. 어떤 느낌이 드세요? 왜 그런 거 같으세요? 이 에고가 필요하니까 생겼겠죠. 우주에서. 이미 참나는 신이었잖아요. 우주의 신이 영혼을 만든 겁니다. 우주를 만들고. 우주를 만든 다음에 생명체들을 만든 겁니다. 영혼들을. . 그래서 에고라는 건 참나의 어떤 소중한, 어떻게 보면 최고의 작품일겁니다. 참나가 만든 최고의 창조물이에요. 에고라는 게. 그 에고는요, 참나를 담을 수도 있고, 욕망을 담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그건 쓰기 나름인 거지. 여러분이 받은 그 자체를 좀 부정적으로 보시거나 할 거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고민하시는데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어떤 완벽한 부처였는데 혹시 타락했다든가 이런 생각은 하지 마시라고. 그런 적이 없어요. 왜냐? 그렇다면요, 여러분은 공부하시나마나 에요. 부처가 되도 다시 타라하실 거니까. 그래서 불교나 힌두교에서 절대로 無始以來무시이래로 쌓아온 악업 때문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 한 번도 부처였던 적은 없습니다. 無始以來무시이래로 시작이 없음 이래로 우리는 계속 악업을 무명 속에서 살아왔다고 얘기를 하고 시작을 합니다. 그게 꼭 시작이 없을까요? 고민해보십시오. 다만 불경이나 힌두교 경전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마 존재한 이래로는 늘 이렇게 어둠속에서 참나를 찾아 헤매온 겁니다.

 

왜냐? 이게 미션인겁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 인생이라는 여정에 게임의 룰은 참나를 찾는 거죠. 에고를 만들고, 그 에고가 참나를 찾아서 얼마나 참나에 닮은 에고가 되느냐? 참나를 반영한 에고가 되느냐가 게임의 미션이고, 그 개제를 나누는 게 제가 요즘 얘기하는 화엄십지경이라는 건요. 참나를 최대한 닮은 에고가 **, 십지로 치고, 거기를 향해서 올라가는 겁니다. 수많은 윤회를 통해서 나아가라고 하는 겁니다. 즉 이걸 보면 우주는 그러라고 만든 거죠. 참나 스스로가 있는 거보다 에고를 입음으로서 참나가 더 많은 걸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요, 여러분 참나로만 계시면 완벽할거 같습니까? 에고가 없다면요? 우주도 없다면? 지금 참나 느껴 보십시오. 재미없어요. ~~, 나로만 존재하면요. 재미있으실까요? 에고가 있어야 재미있어요. 남이 있어야 참나 안에요 사랑과 지혜와 자비가 있다고 하는데 나~~하는데서 사랑과 지혜 자비가 하나도 표현이 안 되죠. 에고가 생겨야 표현이 됩니다. 사랑이라는 수많은 표현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에고의 세계는 대게 위험한데 대신에. 아주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어요. 지옥고가 열릴 수도 있고 천국이 열릴 수도 있는데 그거는 하기 나름인 거지. 에고가 생긴 거 자체는요, 대게 저는 우주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신이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는요, 어려운 얘기하나 할까요? 철학적으로는 이게 뭐라고 하냐하면요, 참나 자체를 완벽한 존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완벽한 존재가 있다면요, 반드시 또 뭐도 있어야 되냐 하면 완벽해지는 존재랄까요? 완벽해가는 존재도 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더 아름답다는 겁니다. 논리적으로도 맞고요. 그래서 본래 완벽한 존재와 그러니까 무한, 무한성과 유한성이 만나면서 훨씬 우주는 풍성해진다는. 이것도 큰 어떤 참나의 계획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참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