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23. 윤홍식의 즉문즉설 - 나와 남의 참나는 같은 존재인가요

Buddhastudy 2013. 5. 5. 18:23

출처 : 홍익학당

  

. 고민하실만한 얘기죠. 이건 어려운 주제입니다. 철학적으로도.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우리가 [몰라]할 땐 내 개성을 버리지 않습니까? 나와 남이 있을 때는 이 현상계라고 하고, 나와 남이 있는 세계를 현상계라고 합니다. 나와 남이 있으려면 시공은 전제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시공이 전제돼요. 우주의 변화를 일으키고 싶으면 여러분이 무슨 게임을 만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뭔가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서로 치고받고 화해하고 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무대가 필요하고 시간성이 흘러야 됩니다. 무대가 없으면 공간이 없으면 나와 남이 찢어질 수가 없고요 시간성이 흐르지 않으면 변화가 없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변화성이라는 거는 현상계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가 만들어질 때 시공이 펼쳐지고 나와 남이 생겨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대립하기도하고 조화를 이루기도하고 하면서 우주가 변합니다. 여러 모순을 통해서요. 그래서 이 모순이라는 것도 우주의 생명이죠. 음양의 모순, 음은 양을 용납 못 하고 양은 음을 용납 못합니다. 그러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주가. 둘이 화해하면 우주가 끝나버렸겠죠. 그런데 묘하게 이해 안 되게 만들어놨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양면을 다 양쪽에서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렇게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또 대립을 이루기도 하면서 굴러갑니다.

 

그래서 이런 정도로 우주를 보시면요, 현상계에서 나와 남이 나뉘어야 되고 각자 각자가 스스로를 나라고 생각을 못한다면 이 현상계가 또 굴러가지 못하겠죠. 우주에서 각자 각자가 자기가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여야만 변화가 이러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고성이라는 거는 신이 인간한테 준 최고의 선물입니다. 나라고 하는 개체성을 주셨다는 거는 신이 너도 하나님처럼 아버지처럼 네가 네 사업 경영해봐라.”하고 분점 내어 준 겁니다. 재벌아버지가 너도 이제 네 사업해야지.”하고 하나를 분점을 내준 겁니다. 네 이름 걸고 해야지 하고 나 아무개가 하는 뭐. 여러분 몸뚱이가 성전이고, 여러분 안에 있는 그 영혼이 에고가 아무개 누구 하고 하늘이 준 여러분의 뭐랄까? 아이디죠. 여러분만의 캐릭터가 하나 생긴 겁니다.

 

그걸 잘 경영을 하라고 줬더니 어떤 명상가는 아버지가 그냥 하십시오.”하고 내 에고를 죽여야겠다.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에고를 죽이기를 명상으로 알고 도전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버지 뜻을 전혀 이해 못한 겁니다. 신이 우주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본인이 신이라면서 우주를 엄청 두려워합니다. “우주 때문에 내가 괴롭다.” 이런 생각하는 거 자체가 망상입니다. 신은 우주를 괴롭게 여기지 않아요. 그리고 아버지가 안도와줍니까? 에고 안에는 늘 아버지가 같이 있으면서 도와주는데. 사실 아버지랑 우리는 하나인데. 에고가 아버지 자녀인거지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은 그대로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 안에는 양면을 다 갖고 있습니다.

 

해볼 만해요. 그래서. 양심. 즉 어떤 신성이라고 해도 되고 성령이라고 해도 되는 그 자리가 우리 안에서 받혀주고 있고요. 늘 힘을 쓰고 있어요. 뭐가 옳은지 그른지 다 안에서 판단합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다 알고 실제 할 수 있는 능력도 다 있으세요. 에고가 심하게 반발하지만 않으면 양심대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래서 신성대로 굴러가게 다 이미 해놨어요. 조치를. 그런데 계속 아버지 탓하고 왜 저를 낳으셨나요? 좀 이상한 친구죠. 왜 저를 낳으셨나요? 경영이 잘 안되니까 나오는 말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경영이 안 되면 경영하는 법을 배워야 되는데 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걸 맡겨가지고 날 힘들게 하고, 왜 나는 절대 요구한 적이 없는데 에고를 만들어 달라고. 이런 얘기 하고 계실 겁니까? 계속?

 

자기 안에 신성이 있다는 걸 모르고. 부자상봉이 있어야 되요. 부자가 상봉하면요, 아버지가 자기를 지원해준다는 걸 몰라서 그래요. 아버지가 자기를 지원한다는 걸 알고 지금 이 순간도 전폭적으로 지금 지지해주고 지원해주고 있다는 걸 알면요, 에고가 힘이 나서 주인공 의식이 생겨요. 내가 아버지 자녀인데. 성경에 나오죠. 아버지처럼 온전해지리라. 하고 하늘에서 나와 같이 이 땅에서도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겠습니다. 하고 자기가 힘이 납니다. 이건 아버지 아는 사람이 나옵니다. 신성을 아는 사람만이 이 힘이 나와요. 그러면 이 신성은 개체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야 맞겠죠.

 

개체성이 있어버리면 이미 현상계입니다. 개체성이 인정 안하는 게 맞겠죠. 그래서 저는 이런 농담을 해요. 이해되시라고. 이 우주는 신이 혼자 놀기 심심하셔 가지고 피시방을 차리셨어요. 피시를 하는. 우주만한 수에 우주에 있는 중생만한 수의 피씨방을 다 만든 다음에 신은 우리랑 다르니까 전지전능한 힘이 있겠죠. 동시접속을 해서 게임을 하고 계시다. 여러분도 지금 캐고 들어가 보시면 신이고요. 저도 캐고 들어가 보면 신입니다. 캐릭터가 지금 다르죠. 아이템 얻은 것도 지금 다르고. 꾸민 건 다르지만 능력치들은 다 다르시지만, 한 자리. 나와 남이 없는 자리에서 우주가 나왔다가 봐야 맞기 때문에 영적으로 체험해 보시면 또 아시겠지만.

 

과학적으로도 우주가 원래 나와 남이 없죠? 원래 한 덩어리가 터져서 지금 쪼개진 게 여러분과 전데. 여러분도 지금 몸뚱이가 우주에서 여러분 몸을 뺄 수가 없습니다. 우주 안에 여러분이 몸이 있는데 이걸 나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지금 이것도 나일까요? 내 뜻대로 안 움직여요. 내 뜻대로 움직이면 이런 암이나 이런 게 왜 생기겠습니까? “생기지마.” 하면 끝나야 되는데 내 말 안 들어요. 자기가 알아서 움직입니다. 우리 죽고 난 뒤에 이거 알아서 자기가 썩어가는 것도 자기 원칙대로 움직이지 하나도 내 뜻 안 듣습니다. 우리는 잠시 빌려 타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쓸 수 있을 뿐이지 여러분 자동차 몰고 다니신다고 여러분 겁니까? 자동차가?

 

폐차장가서 차 찌그러질 때 여러분이 아프실 이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 몸만 해도 아버지가 다 관리해 주십니다. 아버지가 다 도와주고 계세요. 여러분 희로애락 여러분이 일으키는 게 아닙니다. 원래 셋팅된 대로 움직이는 거지. 나 슬퍼죽겠어. 슬픔은 여러분이 만드신 게 아닙니다. 슬픔이 자꾸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조건을 여러분이 만드실 수는 있겠지만 슬픔이니 기쁨이니 양심이니 우리가 만든 게 하나도 없어요. 다 태어났더니 이미 있길 래 쓰는데 태어났더니 다 차 한대씩 받으셨는데 다 페라리 한대씩 받으셨는데 어떤 사람은 바로 나가다가 사고 내 버리고요. 어떤 사람은 뭐~ 2030년 무사고로 타는.

 

그러면 경영능력의 차이지 누구 원망할게 없습니다. 지금 갖고 계신 에고를 잘 경영하고 계십니까? 아버지 뜻대로 내가 이 땅에서 이루고 있습니다 라고 말 나올 정도 되셔야 되요. 예수님처럼. “내 안에 아버지 있고 아버지 안에 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다 아버지가 하시는 겁니다.”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게 만드시면 베스트 드라이버고요. 성자라고 하죠. 그래서 성자성부성령보다는 같은 원리지만 불교의 법신보신화신을 하나 설명하는 거로 끝낼게요. 요 말씀을. ~ 그런데 의문이 드실만한 게 참나 에서는 에고가 없다는 것도 알겠고. 내 에고에 없는 개체성이 있다는 것도 알겠는데. 아무리 봐도 내 참나가 있거든요. 내가 느낀 참나는 내거같 거든요. 그렇죠?

 

왜그러냐하면요. 우린 에고를 통해 참나를 느끼기 때문에. 그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에고를 통해서 밖에 참나를 못 느껴요. 그러니까 내 아이디를 가지고 내 아이디 안에서 참나를 느끼기 때문에 늘 참나는 개체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왜 그러냐하면, 참나의 능력이 사람마다 드러난 수준이 다르죠. 즉 이런 말도 가능합니다. 각자의 안에 있는 참나가 서로 좀 다르며 에고 안에서는 다르게 나타나며 각각의 참나는 능력치도 다르다는 겁니다. 지금. 영성지능이라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러난 영성이 틀려요. 분명히 그런데서 보면 참나는 다르죠. 즉 에고의 세계에서 보는 참나는요 다 다릅니다. 사실은.

 

모습이 다 다르고, 어떤 삼매를 들면 어떤 참나를 느끼고. 아예 불경에는 그런 얘기까지 1지보살 되면은 무슨 참나를 느끼고. 2지보살 가면 무슨 참나를 느끼고. 참나가 변할 리가 없는데 왜 그럴까요? 에고가 변하니까요. 에고가 변하니까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달라지는 건데 하나님이 두 분이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절에서 월인천강 그러죠. 달이 천강에 비추면 그 강의 물에 이런 흔들림에 따라 어떤 달은 흔들리고 있을 거요. 어떤 달은 조용한 데 밝게 비추고 있겠죠. 그럼 그 강에 문제지 달의 문제는 아니죠. 달이 둘인 것도 아니고요. . 그래서 불가에서 절에 보시면요 이런 대웅전 이런데 가시면 주발이라고 그러나요? 쓰여 있죠. 여기에 첫째로 청정법신 청정한 법신 형체가 없죠. 비로자나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원만 아주 원만하게 원만한 보신. 보신의 보는 인과응보할 때 보자입니다. , 뭐냐 하면 인과의 세계 안에 들어와 있어요. 이게 다릅니다. 여기는 이미 에고의 세계라는 거 아시겠죠? 인과응보. 현상계에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서 돌고 도는 현상계 안에서 끝내주는 원만한 몸뚱이를 갖추신 분. 그러니까 절에 가시면 불상은 보신이에요. 법신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만들 수가 없어요. 청정 그 자체를 어떻게 만듭니까? 원만한 인자한 인격과 그런 걸 다 상징하는 불상은 만듭니다. 원만보신. 그 다음에 천백억화신. 화신은 실제 몸뚱이가 있어서 우리가 만져보고 만질 수 있는 몸뚱이입니다.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원만보신 로사나불. 하는데 재미있는 게 힌트가 노사라불이랑 노사나라는 뜻이나 비로자나에서 비는 강조어기 때문에 사실은 같은 뜻입니다. 이거 이해되세요? 이게 기독교로 치면 성부. 이 양반이 성부.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성부입니다. 노사나불은 불교의 성령이에요. 석가모니불은 화신 몸뚱이를 가지셨기 때문에 성자입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오셨어요. 이게 불교에 지금 기독교랑 똑같습니다. 법신비로자나불이 현상계 안에서 원만한 보신을 드러내서 실제로 성육신. 이 말씀이 육신이 갖춘 게 석가모니다라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님한테만 좀 이런 칭호를 많이 쓴다면 불교는 여러분 모두가 사실은 법신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라는 겁니다. 석가모니불만 이런 게 아니고.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의 내면에 캐고 들어가면 지금 게임은 누가 하고 계신지 캐고 들어가면 비로자나불을 만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느낀 참나를 지금 보신이라고 그래요. 노사나불이라고 그럽니다. 여러분이 느낀 참나 아직 원만하지 않죠. 능력이. 저도 제게 원만하지 않아요. 다 각자대로 불만이 있을 겁니다.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보신의 모습이 아직 원만한 보신은 아닙니다. 이해되십니까? 여긴 인과의 세계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즉 달이면은 이게 강에 비친 달입니다. 성부가 성령이 다른 이유가 성부는 우주 모두의 참나 그 자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참나, 한 참나가 비로자나불이라고 하고.

 

여러분 에고 안에서 발견되는 각자의 내면에서 발견되는 참나를 노사나불이라고 하고. 그거를 온 몸뚱이로 오온으로 구현하신 분을 우리가 석가모니불 여러분 여러분 한분 한분이 사실은 부처가 되면 그런 부처가 되는 겁니다. . 요 정도로 개념을 좀 성부성령이 다른 이유가 이겁니다. 성자는 육신을 가져야 되고, 성령은 똑같은 참나지만 그 성자 안에서 작동하는 아버지를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주 모든 법신, 불성 그 자체. 우주 모든 불성을 하나로 우리가 보면은 그 자리는 성부 비로자나불 자리입니다. 이렇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