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29. 윤홍식의 즉문즉설 - 참나 찾기는 과연 쉬운 건가요

Buddhastudy 2013. 5. 19. 18:30

출처 : 홍익학당

 

참나는 여러분이 모르실 수 없으세요. 제가 항상 드리는 말씀입니다. 참나 모른다는 분은요, 본인이 모르는 거지 그런 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참나 열반 그런 질문 없죠? 제가 항상 잘 그리는 거 있죠. 에고. 참나. 그런데 우리가 이제 에고로만 산다고. 참나 모른다고 생각하시죠. 지금 여러분. 그런데 참나의 속성이 뭔지 아십니까? 불가에서 뭐라고 합니까? . 영원하고 락_지복이고, _나고요. 이게 재미있습니다. 나에요. 참나도. 참나도 납니다. 지금 여러분이 나라고 해보세요. . . 요 느낌 중에 하나가 참나입니다. 지금. 요 느낌 중에요, 생각이나 감정에 물들지 않는 나라는 느낌이 있으셨을 거에요.

 

나라고 하는 말에 더 근원적인 느낌이 참나에요. 나라고 할 때 참나랑 에고가 같이 나라고 합니다. . 참나도 난데요. 참나도 나이기 때문에 나라고 할 때 그 느낌을 내가 있다는 느낌이 사실 참나이기 때문에 나라고 할 때 이 느낌이 없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락아정중에요. 에고 입장에서 볼 때 에고는요, 무상해요. 무상하죠. 괴로워요. 더럽혀진 거 같아요. 그런데 에고도 나라고 생각해요. 이 얘긴 뭐냐 하면요, 참나랑 에고가 같이 있다 보니까 참나가 태양이라면 이 빛과 열이 에고에도 비추겠죠. 에고도요, 다른 건 다 몰라도 나라고 하는 건 알아요. 이건 참나에서 온, 바로 온 따뜻한 빛입니다.

 

즉 여러분이 아무리 참나를, 여러분이 참나의 전체는 모른다고 해도 나라고 하는 느낌이 있으시죠? 그 참나에서 오는 바로 그 느낌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이유는 나는. 꼬맹이도 그래요. 나는 참나가 지금 에고랑 참나가 같이 지금 얘기하는 거지 에고 혼자 말 못합니다. 나라는 느낌 자체가 참나에서 오는 거기 때문에 그래요. 상락아정 중에 아는 누구한테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참나를 찾으시려면 제일 힌트가 뭡니까? 영원한 걸 찾으시려면 에고가 잘 상상이 안 돼요. 즐거운 거, 에고는 괴로워서 즐겁다는 걸 막 상상해야 되요. 청정하다. 에고는 더럽혀진 거 같거든요.

 

. 여기가 힌트입니다. 이리 들어가면 바로 참나로 들어가요. 나로만 존재해 보자. 나라는 느낌, 나도 알지 않느냐. 에고도. 나로만 존재해보자. 하면 바로 참나입니다. 그래서 아주 쉽습니다. 참나를 만나고 여러분들 만나고 계시고, 이게 참나다라는 것만 아시면 되요. 에고는 뭐뭐한 나가 에고입니다. 제약된 나. 슬픈 나. 배고픈 나. 기쁜 나. 나에다 뭘 옷을 입혀놨죠. 말고요. 그냥 나에요. 여러분이 지금 나하실 때, 여러분이 나하실 때요, 그냥 나, 나와 남의 구별도 없고, 내가 어떤 존재, 어떤 스펙도 다 모르겠다. 나는 나다하고 나 하시면 그게 참나입니다. 그 울림이 참나에서 울리는 거에요.

 

어떤 제약도 안 붙은 나는 참나에요. , 목소리 큰 나. 배고픈 나. 하면 에고죠. 작잖아요. 여러 나중에 어떤 한 모습을 취해버렸잖아요. 그런데 순수한 나라고만 하세요. 이거 훌륭한 명상입니다. . . 뭔 일이 있어도 나라고만 딱 선언하세요. . 거기 번뇌가 있으십니까? 나에는 번뇌가 안 붙어요. . 사람들이 자꾸 무아니 뭐니 해가지고 나 무시하는데요. 백날 해보십시오. 되나. 무아를 찾아보십시오. 내가 무아를 찾고 있어요. 찾아질 리가 없는 일 아닙니까? 나라는 놈을 없앨 수가 없는데 무아라니요. 부처님도 그런 얘기는 안하셨어요. 부처님은 뭔 얘기만 하셨나요? 색수상행식은 내가 아니다. 제법무아, 모든 법들은 다 내가 아니다.

 

올바른 번역어는 제법비아에요. 그게. 무아가 아니고. 모든 법은 내가 아니다.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은 제법무아, 그 얘기하실 땐 항상 색깔도 내 몸,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것이 아니다. 느낌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것이 아니다. 생각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법무아다. 제법비아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그 말만 딱 가지고 와서 나를 없애야 된다는 둥, 자꾸 그런 얘기 하시는데요. 그렇게 해서는 참나를 못 만납니다. 참나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여러분 자체가 이미 참나에요. 나옹화상이 이미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밥 먹고 제 소리 듣고 말하고 하는 그게 참나라고.

 

여러분 송장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 주최가 참난데 왜 내가 그걸 몰라요? 그 말 다 하시면서 도대체 참나는 뭘까? 이러시면요. 이거는 뭐죠? 자기소개랄까요? 자기가 자기를 계속 소외시키고 있는 거지.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참나를 다들 이미 느끼고 계시기 때문에 에고도요, 에고는 차가운 지구라고 치죠. 태양이 참나라고 치면 지구가 햇살 못 느낄까요? 지구도요 태양 내리쬐는데 적도는 뜨거워 죽어요. 그 뜨거워 죽는 그 느낌에서 나오는 나, 그 느낌이 여러분이 아시는 내가 있다. 하는 그 느낌이 있어요. 누구나. 그 느낌에서 답을 찾으세요. 태양을 못 느끼시겠다면요, 등을 따갑게 내리쬐는 그 온기를 느껴보세요.

 

여러분 에고가 나라고 느끼는 그게 참나입니다. 사실은. 나라고만 하면 참나에요. 수로랑 만나면서 에고가 되요. . 아침에 일어나서 나. 아무 그게 없었어요. . ~ 어제 술 마셨구나. 숙취한 나가 되면요, 에고가 됩니다. 딱 깼을 때 청정한 나였어요. 여러분 잠에서 막 깨실 땐 다 참나에요. . 나만 있어요. ~ 다리가 왜 이러지? 몸이 왜 불편하지? ~ 이제 돈 벌러 가야지. 내가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다 지금 뭐냐 하면 이게 참나에서 에고로 들어오는 모습입니다. 참나였다가 이 현상계랑 딱 접속하는 순간 다시 에고로 변해요. 작은 내가 되요. 그래서 여러분은 작은 나를 가지고 자기가 그려놓은 그림에서 작은 나를 가지고 싸우다가 못살겠다. 자살하자. 이걸론 이 패로는 이 스펙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다음 생을 기약하자.

 

뭐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겠지만, 참나를 아시는 분이라면요, 이것도 한철 내 옷일 뿐 영원한 나는 이게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나는 부처랑도 같고, 모든 중생이 나라는 점에선 똑같다. 이런 큰마음을 갖고 사시면요, 세상을 해볼 만한 긍정적인 힘이 안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 참나를 아셔야만 긍정적이 되요. 안 그런 긍정은 저는 안 믿어요. 그건 에고가 억지로 주장하고 있는 나. 나는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속으로. 과연 될까? 과연 될까? 이런. 안되면 좆 되는데. 막 이런 마음을 계속 하면서하는 이게. 왜냐하면 현상계의 에고는요, 이원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참나를 만나야만 에고는 조용해지고 따사로워지고. 지구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태양이 옆에 없으면 죽어요. 태양 옆에 가면 살만해요. 오히려 지구가 나요. 태양은 너무 뜨겁거든요. 이해되세요? 참나랑 만나는 에고는요, 오히려 긍정적이 되고 지혜롭고 자비로워서 참나가 못하는 거를 해요. 참나는 남한테 그 보시도 못하잖아요. 에고는 보시도 하고 더 기특한 일도 해요. 참나만 만난다면요. 그래서 참나 만난다는 게 우리 사회의 힐링이니 뭐니, 무슨 짓을 해도요, 에고를 가지고 힐링을 혹시 시키고 있다면 그거랑 똑같습니다. 태양은 없는데 지구더러 야~ 열 좀 내봐. 어떻게 좀 해 봐. 어떻게 좀 해 봐.

 

뜨겁다. 나는 뜨겁다. 상상해보자. 막 이런 식의 힐링법이라면요, 에고는요, 좀 듣는 척 하다가 더 난망할겁니다. 이 세상에 답이 없구나하고. 참나 조금만 만나면은 지구가 태양 조금만 만나면 뜨거워 죽겠다고 난리를 칠겁니다. 마찬가지로 참나를 만나시면요, 안에서 올라오는 이 긍정의 힘이요. 참나는 긍정적이에요. 왜 그럴까요? 참나는 우주가 망해도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입니다. 여러분이 최악의 상황에 내 에고는 죽겠다고 할 때 참나는요, 그러지 말고 이걸 캐봐. 라는 마음이 나옵니다. 홀로 걷고요. 늘 초연해요. 살고 죽고의 애가 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이 참나, 여러분 자신이 나는 참나다라는 걸 알고 사시면요. 지구가 무너질 때도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요.

 

그 마음으로 사시면 뭐든지 뭐든지 긍정적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참나는 부정적 그런다고 해서 매정하거나 이런 자리가 아니에요. 참나는 초연하다는 겁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거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서도 항상 걱정이 없고 영원하면서 청정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와 함께 살면은 아까 세상을 바꾼다. 그러면 나만 힐링 하면 뭐합니까? 내 마음만 자꾸 힐링 하면 세계는 썩어가는 데요. 이 상락아정에서요, 이 자리를 잘 느끼면 여기서 뭐가 나오냐 하면 육바라밀이라는 아주 훌륭한 덕목들이 나옵니다. 늘 영원하고 늘 즐거운 사람이 남한테 안 베풀까요? 안 베풀 리가 없죠. 베풀고요. 이상한 짓 안 해요. 이미 즐겁기 때문에. 죄 되는 짓 안 해요.

 

남을 괴롭히지 않아요. 저 사람 괴롭히면요, 우주가 하나고 지금 모두가 난데, 왜 내가 남을 괴롭히겠습니까? 이러면요, 이런 사람들이 이제 위에 올라가시고, 이런 분들이 국민으로 계시면 그 나라는 정치권까지 싹 물갈이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사회를 힐링 시켜야 됩니다. 나 혼자 사랑과 정의를 구현해 보겠다. 혼자서 하는 건 당연히 귀한데요, 결국에 궁극적인 목적은요, 사회 전체에서 사회 정의가 굴러가야만, 억울한 사람이 안생기고 불쌍한 사람 안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나 혼자 하는 거로 만족하시면 안 돼요. 내가 먼저 시작을 한다는 느낌이죠. 내가 먼저 시작해서 절대 개인적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 참나는요.

 

참나는 원래 내게, 내 개인적인 게 아니잖아요. 공적인 물건이에요. 참나를 아시면요, 공적인 삶을 사시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기 백수, 내일자리 이런 거 걱정 보다는 우리나라 일자리 없는 게 걱정이다. 지금 이 상하나 백수겠죠. 그래서 머리 밝은 백수가 되셔서 늘 더 이 나라 밝은데 더 뭔가 하나 더 보태야 되지 않을까? 내 힐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를 힐링 시켜야 되지 않을까? 하는 더 큰 그림을 그리시게 될 겁니다. 참나가 이걸 다 만들어냅니다. 요 마음 되면 절로 나와요. 지구는요, 태양 없을 때 얼어붙을 때는 좋은 마음을 아무리 먹으려도 안 나오다가 태양이 뜨면 환해지고 따뜻하잖아요. 절로 여유가 생겨요.

 

그래서 우리 국민 각자가 여유가 생겨야 그게 진정한 힐링이고 여유가 생겨서 남한테 해코지 안하고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렇게 서로 도와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힐링이지. 나하나 마음 편하다고 혹시 힐링이 됐다고 생각하시면 그분은 바로 또 뒤통수로 뭔가 날아올 겁니다. 왜냐? 사회전체가 썩어있는데, 그 분한테 까지 해가 안갈까요? 그럼 계속 괜찮아. 나는 괜찮아 하면서 참으실 겁니까? 그래서 그런 힐링은 일시적이고요. 영원한 힐링은 내가 참나에 내 마음의 중심을 두고 살아감으로서 남까지도 다 깨어나게 해서 이 사회가 이 전체가 밝아지게 하는데 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힐링, 우리도 얘기합니다. 다 힐링힐링 해야 좋아하셔요. 저희도 힐링. 얘기합니다만은, 저는 양심힐링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홍익학당에서는 양심, 양심 떼놓고 혹시 힐링을 하시려고 한다는 거는요, 그거는 치료가 아니고 진통제입니다. 치료는요, 양심. 내 마음부터 양심, 이런 참나의 마음이 양심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건강한 상태로 만드는 게 진짜 힐링이고 사회 자체도 순수하게 건강한 상태로 만들 때 힐링이지. 힐링은 치유인데 사회가 전혀 치유가 안 되는데요. 어떻게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치유가 됩니까? . 그래서 누구, 개인부터 먼저 조금이라도 건강한 사람이 노력해서 전체가 다 건강해지게 노력하는 게 힐링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