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30. 나_윤홍식

Buddhastudy 2013. 5. 19. 18:32

출처 : 홍익학당

  

참나를 모르시는 분은 참나를 느끼시려고 자꾸 모른다 하셔야 됩니다. 참나 느낌이 있으십니까? . . 어떤 건지는 아시겠죠? 에고랑 다르죠. . 그 자리가면 존재자체로 만족하고 궁시렁대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에고가 궁시렁대죠. 심지어 에고가 궁시렁대는 중에는 그 자리가 있다는 것도 아셔야 되요. 우리 마음 안에 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화낼 때요, 막 남한테 욕하면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으시죠? 뭔가 냉정히 보고 있는 내가 있어요. 그것이 참나입니다. 참나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아요. 냉정히 보고 있는 눈 하나가 있기 때문에 욕을 하다가도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나고요. 어디에 빠져있다가도 또 딴생각이 나는 겁니다.

 

만약에 온 마음이 거기 빠져있다면 다른 생각은 못해야 되는데, 냉정한 생각이 하나가 있기 때문에 엄청 슬픈대두요 이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 있고요. 엄청 기쁜 대도 이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 올라오는데 그 마음은 에고입니다만, 이상한 생각이 올라오는 그 자리. 올라오는 그 중심을 캐 들어가 보면 그 자리는요.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은 자리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는. 별짓을 한다는 데도요 보고만 있는 자리가 있어요. 냉정히. 지금도 제 얘기 듣고 계시는 그 마음이 이 자리거든요. 제 얘기 듣고 계신데요. 제 소리를 귀로 듣고요. 이렇다 저렇다 생각하시고 거기에 대해 어떤 느낌을 느끼고 계신데 누가 지금 그걸 작업을 다 하고 계시나요?

 

제 얘기를 알아차리는 주체. 거기가 참나자리입니다. 참나가 있기 때문에 제가 내는 소리에 반응을 하시는 겁니다. 그 쪽에 아무것도 없다면 반응이 안 될 텐데. 참나가 있으시기 때문에 제가 내는 소리를 들으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공명을 하시고 뭐라고 반응을 일으키시는 겁니다. 모든 반응의 진원지가 있겠죠. 여러분 마음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때 진원지요. 그 진원지를 추적해 가는 걸 불가용으로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빛이 원래 밖으로 사방으로 밖으로만 퍼지는데, 의식이 사방을 오감에 관심이 나가있는데요. 진원지가 어디냐? 어디서 내 마음의 울림이 시작됐는가 하고 진원지를 들여다보는 거를 회광_빛을 돌려버린다고 하고요. 반조_뒤집어서 비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빛을 돌려가지고 뒤집어서 비추면은 근원을 정확히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별개 아니고요, 여러분이 나라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지금 [] 해보세요. 속으로 []. 누가 []라고 하나요? 그 자리가 참나입니다. []라는 건 말이지만, 그 말이 어디서 나오나요? 말 나온 마음 있지 않습니까? []라는 말을 하고 []라는 말이 사라진 뒤에도 있는 그 자리요. []~ 라는 말을 하고 잠깐 침묵하면서 그 나온 자리를 한번 지켜보세요. []라고 말한 자리. []라는 말을 누가 일으키고, 누가 듣고, 알아차리고 있나요? 그 마음은요, 탐진치가 없어요. 거기에는. 말이 일어나야 걱정이 생기죠. 말을 안 하고 존재하고 있는 그 마음이요. 그래서 자꾸 그 침묵 쪽으로, [몰라]도 그렇게 쓰십시오.

 

[몰라]하고 난 뒤에 그 침묵하는 상태가 진짜 모르는 상태죠. “아이고 모르겠다.” 말하고 있는 건 아직 덜 모르는 겁니다. [몰라]하고 진짜 모르겠다하는 그 마음이 [몰라]하고 무관심 하는 그 마음. 거기가 참나자리입니다. [몰라]하시고도 그 마음을 보세요. 잠깐이라도 말이 끊어진 그 마음상태를 보시고 자꾸 그 상태에 머무르시려고 한번 해보시면 쉽게 참나를 느끼실 겁니다. 어때요? 잘 모르겠어요? 참나를 느끼는 건 일이 아니죠? 만약에 억지로 느껴야 된다면 일텐데. 신기한 게요, 참나에 대한 이런 얘기는 이제 초보자분도 계시고 알아서 들으십시오. 워낙 다양한, 잘하시는 분도 있고, 처음 하시는 분도 있고. 참나에 대한 상이 하나도 없는 분들은 금방 잡으세요. 참나는 이럴 것이다 하면 분 못 잡습니다. 신기하죠.

 

공식이에요.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연이 만든 공식이에요. 뭔가 상을 세우면 마음이 그 상에 그림을 그리게 되어 있어요. 그림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참나이기 때문에 아무 기대도 안하고, 그림도 안 그리시고 계시면 그냥 참나거든요. 그냥 멍 때리는 마음이요. 멍 때리고 계시면 참나인데. 한 생각을 일으키면 참나 아닌 것들이 이제 껴요. 그래서 우리가 참나를 늘 느낀다 할 때 별거 없어요. 정말 신통한 게 없어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존재하는 거죠. 내가 늘 있다하는 그 느낌만 잘 느끼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안 느끼고 사신 적이 있나요? 꿈꿀 때도 보시면은 꿈꿀 때도 내가 있어요. 주체가. 내가 있어서 꿈을 꾸고 있어요. 그 내가 참나에요.

 

깊은 숙면을 취할 때도 내가 있어요. 무의식 속에 있지만. 그래서 깨면요, 푹 잘 잤다는 뭔가 기운을 받고 있어요. 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제 얘기 듣고 계시는 []라는 게 있으실 거에요. 1분전이랑 지금이랑 생각이 바뀌었지만, 안 바뀐 그거요. [내가 있다] 하는 그거요. 고놈이 신통장이라는 신성이고요. 자꾸 나로만 존재해보세요. []라고만 해도 되요. [몰라] 안하셔도. []. 우주. 지금 보이시는 모든 세계를 가리지 마시고 나라고만 자꾸 해보세요. []. []라고 한 뒤에 침묵하는 그 마음이요. ........ 이거 하다가 재미있는 게 온갖 삼매를 다해보고 하지만요, 삼매라든가 체험은 왔다 사라집니다. 기억 속에만 있어요. 지금은 내 곁에 있는게 진짜 참나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늘 내 곁에 있는 거요. 내 마음 안에

 

그래서 아무 기대를 안 하시고 그냥 내가 있다는 거에 만족해하시면 [나는 존재한다] 이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면 거기가 참나상태입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그냥 그대로 신성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성을 쳐주려고 하면 신성에서 어긋나요. 여러분이 신성을 찾으려고 하면 다 그건 여러분이 만든 상이기 때문에 신성하지 않아요. 존재자체가 제일 신성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가요, 제일 신성한 상태에요. 뭔 생각을 하나하면요, 여러분의 어떤 좁은 소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어디서 들은 생각, 내가 그냥 지어낸 생각. 이렇게 얼마나 자연에 비하면 작습니까? 그게 그거 떼어놓고 자연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그 상태가 신성이라는 걸 아시고 한번 자꾸 느껴보세요.

 

거기에 걱정 없잖아요. 큰 거 기대하지마시고요. 거기에는 아무 걱정도 없고 그냥 존재하는 거로 만족하다. 그 자리요. 그 느낌 드십니까? (........) 푹 쉬세요. 그래서 그 스님들 중에 쉬고 쉬고 쉬어라. 하는 푹~ 쉬어라. 이런 말 하는데 뭐죠? 그 스님들이 공부 잘하는 분들이나 하는 말들이에요. 한철 푸욱~ 쉬었다. 그러면 에고라는 망상을 안 일으켰다 이 소리거든요. 망상만 안 일으키면 부처지 뭔가 얻을게 없다라는 게, 제 선가귀감에도 그런 구절 있잖아요. 정법을 구하는게 제일 사특한거다. 그러니까 뭔가 깨닫고 싶다. 올바른 법을 알고 싶다. 하는 그 소리가 제일 마구니라는 얘기를 합니다. 아무 짓도 안 하면 부처거든요. 사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