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582회 아들의 열등감과 적응장애

Buddhastudy 2014. 3. 5. 22:00

출처 YouTube

 

 

. 여러분들 삶도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분들도 많으시죠? 어려운 결혼생활을 해오셨고, 어려운 결혼 생활을 억지고 참고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이럴 때는 대부분 다 자식한테 기대가 많아지죠. 남편은 아예 포기해 버렸고, 애들이나 크면 거기에 의지해서 그때 가서 좀 행복을 누려보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애들이 크니까 남편보다 더 지금 애가 더 큰 걱정이 되어 있는 이런 상황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런 준비 안 된 결혼을 안했으면, 제일 좋았겠죠. 안 그래요? 그런데 집안에서 어릴 때, 이렇게 좀 행복을 만끽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결혼에 대한 욕구가 높습니다.

 

왜 그럴까? 빨리 결혼해서 좀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에. 또 결혼해서 이렇게 행복이 오기는 커녕, 더 나쁜 결과가 오게 된단 말이오. 그럼 이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집니다. 결혼에 대한 특별한 기대를 안 한 사람은 결혼해서 문제가 있어도 크게 괴롭지가 않은데, 자기 혼자 살 때 어려움이 너무 많아가지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결혼하면 무슨 희망이 있지 않겠냐? 탈출구가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뜻대로 안 풀리면, 더 괴로워진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이렇게 한참 결혼생활이 힘들어 할 때, 또 아이가 태어나는 거요. 이때 아이를 안 낳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이제 이때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가 없었으면 이혼을 했던지 무슨 수가 났었는데, 애가 태어나다 보니 애 키우는 재미로 어때요? 이런 갈등 속에서 그걸 또 낙으로 삼고, 이렇게 또 생활을 하게 되죠. 그런데 이제 아이가 크면, 남편과 갈등이 1020년 지나면서 포기할 거 포기하고, 좋아졌다기보다 내가 이제 포기함으로 해서, ~ 그냥 살만~한 경지에 이르면, 자녀가 또 사춘기를 넘어가고 성년이 되고 하면서, 여기 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지금 애 때문에 또 이렇게 탁~ 이렇게 신경을 쓰는데, 그럼 이 문제만 해결이 되면 내 인생이 해결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또 다른 문제가 또 발생 되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결혼하기 전에 인생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걸 결혼해서 풀려고 하지 말고, 그때 풀어버려야 된다. 결혼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거는 애 낳기 전에 그때 풀어버려야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요. 지금이라도 내 삶이 이 속에서도, 그러니까 남편문제 갈등이 있고, 자녀 문제 갈등이 있는 속에도 내가 행복해져 버리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내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이거야. 그런데 지금 내 처지는 이게 제일 불행한 상태지만, 앞으로 시간이 더 가면 여기 또 혹이 하나 더 붙고, 시간이 더 가면 또 혹이 하나 더 붙고,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어때요? 그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바로 앞으로 1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면, 그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하는 게 보일 겁니다. 그러니 그걸 10년 후에 돌아보고 그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하는 걸 알 때는 이미 10년 전은 의미가 없어. 지금 문제가 크기 때문에. 그러면 지금 문제가 큰 거 같지만, 지금 살만한 줄을 알아버리면, 이게 해탈이다. 이거야. 지금 살만한 줄을 알아버려야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가지고 살만한 줄을 아는 거는, 죽을 때까지 반복될 뿐이다. 그러니까 그 남편 그대로 두고, 그 자식 그대로 두고, 내가 살만해버려야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재앙이 올래야 올 수가 없어진다. 이런 얘기요. 만약에 남편하고 여러 가지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그때 그대로 내가 살만하게 마음 편해져버렸으면 자녀 문제는 안 생긴다. 이런 얘기요.

 

그거 좀 성질도 그렇고, 급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거까지 다 감안해서, 그 고치고 같이 살면 물론 좋지만, 세상이 그래 내 뜻대로 안 된다. 이젠 선택을 해야 되요. 그러니까 이런 저런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그런 요인이 고쳐지면 살겠다가 아니고, 그거 그대로 놔놓고라도, 25년 간 내가 고치려는데 안 고쳤잖아. 그죠? 지금 며칠 더 노력한다고 고쳐질까? 안 고쳐져요. 그러니 이 고치겠다는 생각은 오늘 질문하는 것으로 포기를 해야 됩니다. 고치지 말고 그냥 놔놓고도 살만한가? 안한가를 먼저 결정을 해야 되요. 고치면 살고 안 고치면 못 살겠다 에요? 안 고친 상태로라도 사는 게 낫겠다. 이렇게 결정이 들어요? 자기 마음 솔직하게 얘기해 보세요.

 

살고 싶어.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어차피 사는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100% 만족은 아니지만, 사는가 안 사는 거로 결정하니 사는 쪽이 낫겠다는 일단 50% 넘어갔다는 거 아니오. 그럼 어차피 살 바에야 나머지 60% 살고, 40% 못살겠다면 그 40%를 계속 문제 삼으면서 괴로워하면서 사는 게 나아요? 더 이상 문제 안 삼고 편하게 사는 게 나아요? 이게 현실적 이익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 문제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건 더 이상 문제 안 삼아 버리면 내가 괴로워할 일이 없어지잖아. 그런데 그 문제 안 삼는 게 나한테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꼬라지만 보면 문제가 삼아진다는 거요. 이게.

 

그러면 그런 행동하는 남편이 문제요? 그걸 문제 삼는 내가 문제요? 그러니까 그걸 문제 삼는 내가 문제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왜 스님은 자꾸 남편은 놔놓고 자꾸 아내만 고치라 그러냐? 이렇게 생각하는 건, 저의 뜻을 오해하는 거요. 질문자를 위해서 얘기하는 거요. 질문자를 위해서. 지금 25년간 고치려고 했는데 고쳐지기는커녕, 오히려 덧 낫고, 그 갈등, 고치려고 하는 그 투쟁하는 갈등 속에서 이 피해가 자녀에게 미쳐서 자녀까지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을 했다. 이 정도 자녀희생까지 치러가면서도 고치려고 했는데 못 고쳤다. 하는 거는 앞으로 시간이 102030년 내가 더 노력한다고 이게 고쳐질까? 안 고쳐질까? 그럼 안 고쳐지는 거를 내가 알아야 되요.

 

그런데 항상 그래도 안 고쳐지겠나? 그래도 안 고쳐지겠나? 이거는 망상이에요. 헛된 욕심이다. 이 말이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된다. ~ 이거는 이 사람에게는 내 마음을 기준으로 볼 때는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 드는 것도 있는데, 이게 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관점에서 볼 땐 이건 드는데, 저건 안 들어. 그런데 딴 사람이 볼 때 내가 안 드는 걸 어때요? 든다하는 사람이 있고, 드는 거를 안 든다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이 사람 자체는 장단점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사람 자체는 그냥 이 사람일뿐이에요. 성격이 급한 것도 그 사람의 한 요소고. 이 사람일 뿐인데, 내 원하는 기준으로 볼 때는 이런 건 나한테 유리하고, 저런 건 나한테 불리하니까, 좋고 나쁘고, 장점과 단점은 누구로 인해서 생겨난다? 나로 인해서 생겨난다. 이거 이해 되요?

 

그러니까 사람 하나하나, 사물 하나하나에는 좋고 나쁨이 없고, 다만 그것은 그것일 뿐이다. 이거를 교리로, 다시 말하면 불교 교리로 얘기하면 제법은 공하다. 이렇게 말해요. 그럼 공이란 말 이해가 되세요? 그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돼요. 불법은 내 지금 삶에, 내 고뇌와 관계 바로 직전에서 그게 도움이 되는 말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요건 장점 조건 단점. 그게 그 사람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착각하고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첫째. 현재에 더 이상 남편하고는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남편을 위해서 에요? 나를 위해서 에요? 나를 위해서. 그 인간 고치려다가 내 죽는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근본적으로 보면, 그 인간은 고칠 게 없어요. 고칠 것도 없고, 고쳐지지도 않고. 그러니 그걸 그대로 수용을 한다. 잘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가 살려니까? 내가 살려니까. 그 인간 때문에 내가 불행하게 산다면 내가 내 인생을 버리는 게 된다. 내가 내 인생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인간으로 인해서 내가 불행하게 살 이유가 없다. 그러니 그걸 있는 그대로 그냥 인정한다. 그 인간을 좋게 보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냥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이거는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거요. 그리고 이거는 진리에요. 그 인간은 공하기 때문에. 고치려하는 생각을 지금 버려야 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치려고 하는 이 잘못된 습관이, 나를 괴롭히는 이 습관이 꼬라지만 보면 나도 모르게 일어니까, 이게 자꾸 이런 업식. 그렇게 문제는 고치려고 하는 의식이 일어난다는 거는 이건 누구를 괴롭힐 요인이다? 나를 괴롭힐 요인이니까, 이거를 따라 가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걸 먼저 내가 고쳐야 된다. 상대를 고칠 게 아니라 누구를 고쳐야 된다? 나를. 그러니까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이 나를 고쳐야 된다. 이 말이오. 그래서 고치려는 마음, 시비분별 일으키는 마음이 일어나면, “, 내가 또 미쳤구나. 내가 또 미쳐가지고 또 나를 괴롭히려고 하구나.”

 

이렇게 해서 남편에게 참회라는 뜻이 아니라, 남편을 고치려고 하고, 남편을 시비 분별하는 그 자기를 고쳐라. 그게 안 고쳐지는 거를 깊이 뉘우치고 참회해라. 남편은 죄가 없는데, 이것 때문에 착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니까, 이건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 이 말이오. 그래서 남편에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할 때는 남편은 잘하고 내가 잘못했다. 이런 뜻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나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 하는 말은, 남편을 고칠 게 없다는 얘기가 되잖아. 그죠? 그래서 첫째 남편에게 참회를 해라. 남편을 고치려고 하는 나를 알아차리고 내려놔라. 그러고 그를 미워한, 그런 것들을 내가 하나하나 참회를 해야 된다. 이래 되면, 현 상태에서 누가 더 편해진다? 내가 더 편해진다. 남편은 똑같은데 내가 편해진다. 이 말이오. 참회를 자꾸 하면.

 

그다음 두 번째 자녀를 볼 때는 어떠냐? 아이가 문제다. 이거는 내가 옛날에 남편을 보고 너 문제다. 이 거와 똑같은 거요. 그 남편뿐만 아니라, 이 아이도 문제가 별로 없다. 이래 봐야 된다. 이 말이오. 거기에 약간 우울하고, 여러 가지 이런 약간 적응을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 이 원인 제공은 누가 했다? 내가 했다. 그러니까 아이한테는 내가 잘못했다고 참회가 아니라, 나로 인해서 아이가 저런 상황에 빠졌다 하는 걸 내가 이해해야 된다. 그러니까 너 왜 그러냐? 왜 공부 안하냐? 왜 안 나가느냐? 왜 문제가 있느냐?” 이렇게 시비하지 말고, 애고 내 맘에 안 드는 그런 행위를 할 때마다 "아이고 저게 내 닮아서 저렇구나. 나로 인해 저렇구나. 아이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한다."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야 된다.

 

그러면 아이가 엄마가 자꾸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자꾸 사태가 악화된다. 과거에 남편에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사태다 악화되듯이. 그러니까 아이를 위하는 마음을 내고, 아이의 문제를 그냥 수용해라. 여기에 애 하자는 데로 다 해주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이거 잘못 받아들이면 안 돼요. 아이의 어떤 행위도, 내가 마음에서 수용해라. 이 말이오. ? 원인제공자가 나니까. 그래서 아이한테는 항상 "아이고 미안하다. 아이고, 미안하다. 쯧쯧쯧." 이렇게 어떤 행위가 일어나더라도 이렇게 자꾸 마음을 쓰면 아이하고 나하고의 갈등이, 긴장도가 자꾸 줄어들게 된다. 아이가 엄마한테 도전을 해도 엄마가 포용을 해버리니까, 이게 시간이 처음에는 그러면 내가 수용을 해주면 더 길을 내고 설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이게 점점점점 약화된다. 이런 얘기요. 우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이 상황에도 남편에게 참회하고, 자식을 이해해버리면, 이 상황에도 나는 살만해요? 안 살만해요? 살만하다. 남편이야 죽든지, 애야 어이되든지 나는 살만하다. “스님 그럼 너무 이기주의 아닙니까?” 천만에. 일단 누가 살아야 된다? 내가 살아야 돼. 내가 행복해야 돼. 내가 행복해야 남편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고, 자녀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고, 내가 살아야 남편도 구제할 수 있고, 자식도 구제할 수 있지. 나를 죽여 버리면, 나를 괴롭혀 버리면 아무 덕도 안 돼. 나한테도 득도 안 되고 가족한테도 득도 안 된다.

 

그래서 먼저 남편한테 참회기도를 하고, 참회기도를 그냥 엎드려서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남편을 고치려고 하는 시비가 일으키는 걸 볼 때마다 ~ 내 죽을 짓을 하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 죽을 짓을 하는 이 어리석은 나를 벌을 줘야 돼. 그래가지고 한두 번 해서 안 고쳐지거든, 500배씩 벌을 주고, 1000배씩 벌을 줘가지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자기 거를 안고치려고 움켜 살기 때문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안 고치잖아. 그렇게 절을 해서 벌을 주든지, 전기로 지져서 벌을 주든지. 한번 그럴 때마다 밥 한 끼를 굶든지 이렇게 해가지고 다시는 그런 마음 못 일어나도록 이게 벌을 줘야 이 업식이 어때요? 움츠려 든다. 이 말이오.

 

안 그러면 이게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자녀에 대한 그 어떤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그냥 두둔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뭐해라? 이해해라. 야단을 치더라도 형식만 야단을 치지 마음은 연민을 갖고 대해라. 이 말이오. 이렇게 해서 해 나가면, 첫째 본인이 편해지고, 동시에 한참 지난 결과로 상황이 개선되는 데, 수행은 상황 개선되어서 내가 좋아지는 건 수행이 아니에요. 상황이 개선 안 되어도 좋아지는 게 뭐다? 수행이다. 이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