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583회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싶어요

Buddhastudy 2014. 3. 11. 22:24

출처 YouTube

 

 

옛날에 이런 말 있죠? 모진 시어머니 밑에 모진 며느리 난다. 이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주로 지적받고 비난받고 이렇게 자랐다. 이렇게 생각해서 내 아이는 그렇게 안해야지. 이랬는데 지금 본인이 하는 행동이 똑같이 또 지적하고 비난하고, 미워하고 이러잖아요. 이게 까르마, 업의 흐름이라 그래요. 그럼 그 아이도 또 제 자식한테 또 그러고 그래요. 군대 가서 기압 주는 문화가 쭈욱~ 있으면 졸병일 때, “~ 나는 상사되면 절대로 기압 안줘야지.” 이러지만, 기압을 심하게 받은 사람일수록 상사가 되면 어때요? 또 기압을 심하게 주게 되요.

 

그래서 이게 주욱~ 하나의 문화로 흘러간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본인이 그걸, 그 흐름에, 중생의 흐름에 그냥 본인이 흘러가는 거요. 본인 잘못도 아니고, 본인도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그렇게 습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요. 문제는 이건 잘 잘못을 떠나서 부모가 밥 먹으니 자식도 뭐한다? 밥 먹듯이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거요. 그럼 자식도 또 엄마한테 상처받고 해서 자기도 결심하겠지. 내 아이한테는 안 그래야겠다면서 거기도 또 그렇게 하겠지. 큰 문제없어요. 배운 대로 하니까. 배운 대로하니까.

 

그러면 내 자식이 그러지 않기를 원하면, 내 자식을 똑똑하게 키워서 야단 안 맞는 자식이다. 이게 잘못되겠거든요. 왜냐하면 앞에도 얘기했지만 제법은 공한 거요. 잘못됐다는 건 내 생각이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자꾸 야단을 치니까 잘못되는 거죠. 자꾸 잘못했다고 하니 잘못 되는 거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공부 잘한다. 인물 잘났다. 이런 걸로 사람을 평가해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잘됐다 못됐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자기 자식한테 자기 자식을 인물이 잘났느니 못났느니, 공부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이런 걸로 평가를 안해야 그게 엄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다 그렇게 평가해요? 안 해요? 평가하지.

 

언제 제가 즉문즉설할 때 누가 일어나서 우리 애가 인물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는데 그러면서 뭐라고 해서 내가 엄청나게 야단을 친 게 있어요. 그건 엄마가 아니다. 인물 잘나고 공부 잘 하면 세상 사람들 좋아해요? 안 해요? 좋아하지. 그건 엄마가 아니죠. 건 그냥 세상 사람이지. 그럼 세상 사람은 그럴 때만 좋아하는데, 엄마라고 하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어때요? 좋아해야 그게 엄마란 말이오. 엄마가 어떻게 자식을 얘기할 때, 인물이 잘났다고 좋아하고 공부 잘한다고 좋아하고. 그건 엄마가 아니에요. 엄마의 자식이라는 것은 그냥 그 자식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거요.

 

세상이 다 문제 있다 해도 엄마는 사랑하는 거고, 세상이 다 못 생겼다 해도 엄마 눈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런 자식으로 보여야 그게 뭐다? 엄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새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가 없기 때문에 자식이 효도하는 자식도 없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식을 키울 때 엄마로서 자식을 보고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여러분들에게 효도할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자기들의 마음속에는 엄마도 똑같이 돈 잘 벌면 좋아하고, 인물 잘생기면 좋아하고, 공부 잘하면 좋아하고, 상사가 좋아하는 거나,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거나,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거나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연애는 인물 잘생기고 돈 잘 벌고 지한테 잘해주면 좋아하고, 이러니까 그게 틀어지면 원수가 되죠. 좋아하는 사랑이 지극하다는데 어떻게 원수가 됩니까? 그건 모순이지. 그런데 엄마하고 자식은 원수가 안 되거든요. 엄마는 거기에 조건이 붙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사람으로서 그냥 사랑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질문하신 분은, 그거는 엄마가 아니라 그건 세상 사람보다도 지금 더 못된, 이웃 사람도 그렇게는 안하는데, 이웃 사람보다도 더 자식한테 못되게 하기 때문에 애가 크면 부모한테 좀 사투리로 말하면 악물을 하죠. 원수를 갚을 거요. 그 원한을, 앞으로 반드시 갚을 거다.

 

그 원한을 어떻게 갚을지는 이제 다르겠죠. 엄마한테 시비해서 속 뒤집어지게 해서 원수를 갚을 수도 있고, 죽어 버려서 원수를 갚을 수도 있고, 그다음에 결혼한 며느리가 완전히 엄마하고 상극이 되도록 해서 속상하게 만들 수도 있고, 평생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빈둥빈둥해서 속을 썩일 수도 있고, 원수 갚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수를 갚겠지. 그거를 각오 하셔야 돼. 자식 키워서 똑똑한 자식 키워서 덕 보겠다. 천만에. 그건 아미 가능성이 1%도 없어. 빚 받을 일만 남았어. 그러니까 두 가지 선택을 해야 되요.

 

하나는, 내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어른들은 그냥 야, 이거 해라, 거 왜 잘못 하냐? 다 잘되라고 그냥 하는데, 내가 내 자격지심에, “내가 못나서 지적받는다. 내가 못나서 야단 받는다.” 이렇게 잘못생각 했어. 못났다고 할 게 본래 없는데, 내가 못났다고 자기를 학대한 거요. 거기에 빠져서 지금 이 모든 일이 파생되니까, 첫째는 내가 못난이가 아니라는 거, 나도 그냥 이 세상에 한 사람으로서 모든 권리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말을 잘하는 걸 비유해서 말 못하는 게 못난이다. 말은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요.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갖고 못난이 잘난이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인물이 어떤 걸 잘생겼나. 이것도 기준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잘났느니, 못났느니, 하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서 첫째는 자기를 괴롭혔고, 자녀까지 지금 괴롭히고 있고. 내가 나를 괴롭힌 건 과보가 나한테 괴로움으로 오지만, 자식을 괴롭히면 자식으로 인해서 내가 괴로움이 옵니다. 과보는 피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기도를 하세요. “부처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완전합니다. 저는 그대로 부처입니다. 그런데 바보같이 내가 나를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나를 못난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정말 나에게 참회합니다. 저는 부처의 종자를 가지고 있는, 불성을 가진 그런 거룩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자기 긍정성을 첫째 먼저 가져야 되고, 두 번째 아이들에게는 정말 내가 미안하다. 내가 눈이 삐어가지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이렇게 저렇게 고치려고 지금 비난하고 했는데, 잘못했다하고 속으로 참회하고 애들한테 지적을 안해야지. 그리고 지금 지적 안 해도 애들한테 덕볼 생각은 하지마라. 이미 씨가 뿌려졌기 때문에, 나중에 갖가지 과보가 따를 거다. 그러니 어떤 과보가 자녀 때문에 오더라도, “아이고, 부처님,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네요. 인과법이 딱 맞네요. 기꺼이 받겠습니다.” 이렇게. 이미 지어놓은 과보를 받을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럼 더 이상 과보는 안 짓겠죠. 그렇게 기도를 하셔야 그래도 조금 더 이상 화근은 안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