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912회 성인이 되어도 게임에 집착하는 아이, 어떡하죠

Buddhastudy 2014. 4. 28. 21:19

출처 YouTube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이미 커버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래서 3살 때까지는 내거를 버리고라도 애를 위해서 해라. 이때 3년 내가 아이를 위해서 헌신한 게 나중에 10년 할 거 미리 막아준다. 이런 얘기에요. 그다음에 어릴 때 자랄 때 좀 모범을 보여줘라. 다 그렇게 지 성질대로 살면 나중에 그거 다 고생해.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는 필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되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20살이 넘었잖아. 그죠? 놔두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를 지켜볼 수도 없고, 아이를 교화할 힘도 안 생겨. 그래서 아이는 놔놓고 내 기도를 해야 된다. 그러니까 애 낳고 키울 때 그때 내가. 아이에 대해서 미안해하면 안 돼. 그러니까 남편에 대해서 참회기도하고, 그다음에 내가 지금이라도 이 까르마, “나다.” “전무의 어떻고이런 까르마를 내려놓는. 그러니까 전문가로서는 자기가 성공했을지 몰라도 애기 엄마로서는 성공한 게 아니잖아. 그죠? 그러니까 젊을 때는 자꾸 나라는 것, 여성, 이런 거 자꾸 중요하니까, 모성을 중요 안하고 여성만 중요하니까, 그래서 결국은 여성으로서는 성공한지 몰라도 엄마로서는 실패한 케이스잖아. 그지?

 

그러니까 이런 것이 다 살아보면 스님 얘기가 이해가 되는데, 이게 지금 여성운동 하는 사람들은 스님이 너무 봉건적인 사고방식으로 지금 얘기를 한다. 직업여성의 이걸 너무 무시한다.” 이렇게 막~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들도 깨우치려면 1020년 지나야 돼. ~. 그러니까 이건 무슨 여성 운동이니 뭐니, 남녀평등이니 이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요. 이거는 다람쥐새끼 키우는 거나, 사람새끼 키우는 거나 똑같은 하나의 과정이라는 거죠. 남녀가 불평등한 거는 남녀문제고, 애기한테 엄마는 신이에요. 그러니까 엄마의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요.

 

남녀가 평등하게 엄마 역학을 하든지 불평등하게 엄마역할을 하든 그건 너그 부부문제고, 애기한테는 엄마 역할을 해 줘야 된다는 거요. 엄마 역할이 첫째 부족했다.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도 그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갈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생기니까 아기한테는 엄마 역할이 제대로 안된 거다. 이 얘기요.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애한테 좋은 아빠가 어떻게 되느냐? 좋은 아빠가 되는 길, 애기한테 없어요.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은 아내한테 잘하는 게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이에요. 그럼 아내가 편해지면 아기는 저절로 좋아지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애기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너무 공부, 이런 것만 중요시했지, 아이를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람 되도록 하는데 집중을 안했다는 거요. 그러니까 그런 재능과 기술이라는 거는 나중에 다 엉뚱하게 발현될 수가 있는 거거든요. 권력 갖고 비리행하고 못된 짓하고 세상을 이렇게 흔드는 거 다 똑똑한 사람이오? 바보 같은 사람이오? 똑똑한 사람이 세상을 어지럽게 흔들지. 보통사람이 누가 이렇게 하나? 그러기 때문에 애기는 그냥 두고, 자기가 삶을, 이 뭐랄까? 자기를 학대하면 안 돼.

 

이런 현재의 내 삶을 일단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래서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구나. 하면 이걸 통해서 인과의 법칙을 알았잖아. 그죠? 지금이라도 내 삶을 여기 휘둘리지 말고 내 삶을 먼저 참회해서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아이의 그런 모습을, 아이를 어떻게 고치려고 안하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가 편안하게 봐 줄 수가 있다는 거요. 병원이 필요하면 병원 보내주고, 집에 혼자 있는 게 편하면 집에 혼자 있게 놔주고. 그다음에 대화가 필요하면 가끔씩 엄마가 대화해주고, 밥이 필요하면 밥 좀 주고, 내가 바쁘면 얘야, 밥 챙겨먹어라.”하고 나가면 되고. 어린애가 아니니까.

 

이렇게 문제아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프다고 문제아는 아니야.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환자지 문제아는 아니잖아. 그죠? 공부를 못한다고 문제아가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아들을 문제아라고 보지 말고 지금 정신적으로 지금 안 좋잖아. 군대 가서도 벌써 이미 판정 났고. 그러면 정신과에 다니면서 적절하게 약 먹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주고 안내해주고, 그다음에 집에서 일정하게 요양하도록 도와주고, 이렇게 아이에게 필요한 거를 도와주고, 군대에서 나와라 하면 또 군대 가보고. 군대 가서 또 불합격 판정 받으면 뭐한다? 또 돌아오고.

 

내가 아는 사람도 이렇게 34번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갖고 한번 갔으면 안 오기를 원하거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그거 다 자기 지은 인연의 과보를 피하려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 상태를 지금 그대로 받아들여라. 이 상태를. 독립을 시키는데, 이 경우는 환자잖아. 그지? 환자는 우리 사회에도 어떠니? 제 자식이 아니라도 사회가 보장하나? 안하나? 보장하지? 환자인데 어떻게 독립을 시켜. 그러니까 스님 책을 지 멋대로 읽으면 안 돼. 이거는 환자이기 때문에 나이하고 관계없이 환자기 때문에 이거는 치료를 해줘야지. 치료를 해서 이게 정상적으로 군대갔다올 정도로 정상화 되면 정을 끊어도 돼. 환자로 봐야 되요.

 

우리가 남편에 대해서 지나친 기대, 자식에 대해서 지나친 기대, 부모에 대해서 기대를 갖고 있으면 실망이 따르고, 그럼 불평불만이 생겨. 자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기대가 크면 자기가 못마땅해. 으흠. 그래서 우리가 지나친 기대를 버려야 돼. 그리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돼. 다리가 없으면 다리가 없는 현실을, 몸이 아프면 아픈 현실을, 늙었으면 늙은 현실을. 있는 이대로를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된다. 남에게도 그렇고 나에게도 그렇고. 자기를 너무 이렇게 높이 이렇게 그리고 있으면 현실에 있는 자기가 늘 불만스러워. 말도 더듬하게 하고, 두서도 없고, 기억력도 없고, ~ 어짜고 이러면서.

 

그럼 결국은 자살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지 말고 현실의 자기 말이 좀 더듬더듬한다하면 더듬더듬해도 벙어리보다 낫나? 안 낫나? 낫죠? 눈이 좀 침침해서 안 보인다 해도 봉사보다 낫나? 안 낫나? 낫죠? 그래서 제가 해외여행을 혼자서 잘 다니는 이유는 내가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벙어리보다는 낫고, 내가 아무리 영어글을 몰라도 난 그림이라도 볼 수 있나? 없나? 있으니까 화장실도 사람보고 찾아갈 수가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그냥 그대로 인정해야 돼. 이대로 좋다. 이게 수행의 가장 핵심이오. 이대로 좋다. 이대로.

 

여기로부터 출발해야 된다. 이거야. 이게 긍정적 사고야. 여기로부터 출발해서 그다음에 개선해 될 거를 조금씩 조금씩 해가는 거야. 우리 아들이 지금 이런 상태, 여기에서 지금 지체부자유아나, ~ 여러 가지 사고치는 아이나 이런데 비하면 훨씬 낫잖아. 그죠? 여기에서 신체에 문제가 있으면 치료하면 되고, 다리가 하나 없으면 의족을 해서 그 상태로 출발을 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하면 되고, 거기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개선의 방향을 찾아 나가야 된다.

 

자꾸 어릴 때 공부 잘했고, 그 얘기는, 그렇게 생각하면 전부 서울역에 가서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어. 서울역에 노숙자가 뭐요? 다 옛날에 조그마한 기업에 사장했나? 안했나? 구멍가게라고 사장을 했어. 그래서 거기 노숙을 하는 거야. 농사짓는 사람 가봐라. 한명도 없지. 어릴 때부터 막노동했던 사람 거기 가 봐라. 한명도 없지. 다 사장을 했거나 뭘 했기 때문에 거기 와 있는 거야. “내가 그 정도로 했는데 어디 가서 막노동을 해.” 이렇기 때문에 그런 거야. 으흠. 그러니까 지금의 현실에 자기를 인정을 하고 이 상황을 인정을 해야 돼. 여기서부터 출발을 해야 돼.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야. 한국 사회에 대해서 문제가 많은데, 한국 사회가 문제다. 이거 막~ ~ 이렇게 불평을 하면 이 사람은 파괴밖에 안 돼. 이 분노는 파괴밖에 안 나와. 그러나 한국 사회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중국 가서 살래? 한국 살래하면 한국 살 거 아니야. 베트남 가서 살래? 한국 살래하면 한국 살 거 아니야. 그지?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거기보다는 나아. 그러니까 긍정을 바탕에 깔고. 그러면 이대로 좋으냐? 그거는 아니야. 문제가 많아. 그러니까 그러나 긍정을 바탕에 깔고 이러이런 거를 개선해야 되겠다. 이거는 건설로 가. 에너지가 건설로 가는데. 불평을 가지고 하면 파괴로 간다. 이 얘기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개인도 그렇고 문제가 많아. 그러나 이 정도로도 괜찮아. 이보다 더 나빠지면 나중에 아이고, 그때가 좋았다.” 이런 얘기 할까? 안할까? 하겠지? 그러니까 이 상태가 괜찮다는 걸 인정하고, 여기서도 출발해서 그러나 해결해야 될 과제가 있다는 거야. . 그거를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된다. 그래서 스님이 늘 법문 할 때 얘기하듯이 내가 지금 나이가 60인데, 어느 날 TV를 딱~ 보니까 100미터에 올림픽 때 10초에 달리는 사람이 있어. “, 나도 한번 해봐야지.” 그래서 10초 목표 잡아놓고 내가 3년 연습한다고 될까? 안될까? 안되겠지.

 

그러면 ~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나?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이렇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현실에 딱 뛰어보니까 25초야. 그러면 20초 정도 목표 지나고, 1년 연습하면 될까안될까? 되겠죠. 그러니까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하면 안 돼. 현실을 먼저 알고, 거기서 조금 목표를 정해서 노력을 하면 달성이 되는 거야. 달성이 되면 18초까지 한번 해볼까? 해서 해보고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그러면 20초로 만족을 하면 되는 거요. 이렇게 해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긍정적으로 나가야지, 무턱 대놓고 막~ 높이 설정해서, 자꾸 옛날에 1등 하던 거, 옛날에 어떤 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그래서 자기 학대, 가족을 미워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앞에 서론에도 얘기했지만, 부모님이 뭐 어쩌고 저쩌고 이러지만, 그래도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사람 아니야. 나를 안 안아줬다 하지만 이웃집 아줌마는 나 안나준 적 있나? 내 엄마는 안 안아주기는 해도 뭐는 줬다? 밥은 줬잖아. 생각해보면 부모는 고마운 존재지 미워할 존재를 아니야. 자꾸 남의 부모 보면서 저 집에는 저런데 왜 나는 안 해주나.” 자꾸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고도 결국 미워하게 되는 거야. 으흠.

 

부모를 미워하면 자기가 긍정될 요소가 없어. 나쁜 사람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래서 낳기만 해줘도, 그래서 멀리 나가 버린 해외 입양된 사람도 2030년 뒤에 부모 찾더나? 안 찾더나? 얼굴만 봐도 고맙다고 생각하잖아. 그러기 때문에 부모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내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욕심을 너무 내면 안 돼.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으면 문제가 없어. 그런데 그런 과정에 내가 서툴렀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다. 죄의식을 가지라는 게 아니야. 그 과보를 내가 기꺼이 달게 받아야 된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지금이라도 생각을 조금 바꾸면 부처님처럼은 못되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나을까? 안 나을까? 나아. 조금 나으면 거기서 또 조금 나아지고 조금 나아지고. 그러면 희망이 생겨. 나도 언젠가 부처님이 될 수 있겠다. 이런 희망이 생긴다. 가능성을 희망이라 그래요. 가능성. 지금 여러분들이 절망이란 건 가능성이 없다. 이런 얘기요. 으흠.

~ 한번 따라 해봅니다.

내가 희망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내가 내 가족의 희망이 되어 화목하게 살겠습니다.

.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